팽경(彭更)이 물어 말하였다. “뒤따르는 수레 수십 대와 따르는 사람 수백 명으로 제후에게 음식을 접대 받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알맞은 도가 아니라면 한 그릇의 밥이라도 남에게 받을 수 없지만, 만일 알맞은 도라면 순(舜)이 요(堯)임금의 천하를 받되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자네는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는가?”
이 때문에 군자는 일생의 근심이 있으나, 하루아침의 근심은 없으니, 〈군자의〉 걱정하는 바에 관한 것에는 이런 것이 있다. 〈군자는〉 ‘순(舜)은 사람이며 나도 사람인데, 순은 천하에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해질 만한데, 나는 오히려 시골 사람이 됨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다.’ 하니 이런 것이 〈군자가〉 근심할 만한 것이다. 근심을 어찌해야 하는가? 순과 같이할 뿐이다. 군자에게 〈하루아침의〉 걱정거리 같은 것은 없으니, 인(仁)이 아니면 하지 않으며, 예(禮)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 만일 하루아침의 근심이 있더라도 군자는 근심하지 않는다.”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말하되, 곧바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분으로는 뜻을 세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배움을 향한 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뜻으로 하여금 진실로 배움에 있게 한다면 인을 행하는 일은 자기에게 말미암는다. 인(仁)을 하고자 하면 〈인에〉 이를 것이니 어찌 남에게서 구하며 어찌 뒷날을 기다리겠는가? 입지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입지로써〉 바로 공부에 착수하여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해서 항상 생각하고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혹시라도 뜻이 성실하거나 독실하지 못하여 답습하는 것으로 세월만 보낸다면 수명을 다하여 세상을 마친들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