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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 인과 AB A이면 B이다 ; A하면 B하다
대표 : A 則 B
동의 : 假使 A ; A ; A ; A ; A ; A ; 苟或 A ; 使 A ; 設使 A ; A ; A ; A ; A ; A ; 如其 A ; 如令 A ; 如使 A ; 如使 A ; AB ; AB ; AB ; AB ; AB ; AB ; AB ;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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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 近道矣리라 <大學, 大學 經>  
물건에는 근본과 말단[本末]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終始]이 있으니, 먼저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안다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2 小人 閒居 爲不善호되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 厭然揜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이니 何益矣리오 此謂 誠於中이면 形於外 君子 必愼其獨也니라 <大學, 大學 傳>  
소인은 홀로 거처할 때에 불선(不善)을 행하되, 이르지 않는 바가 없다가 군자를 본 뒤에 겸연쩍게 제 불선을 가리고 제 선을 드러내니, 남이 자기를 보는 것이 마치 제 [폐간을 본 것처럼 할 것이니, 〈이것이〉 곧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이것을 마음 속에 성실히 하면 바깥에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니,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한다.
3 所謂修身 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不得其正하며 有所恐懼 不得其正하며 有所好樂 不得其正하며 有所憂患이면 不得其正이니라 <大學, 大學 傳>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화나는 바가 있으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면두려운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4 是故 財聚民散하고 財散民聚니라 <大學, 大學 傳>  
이러한 까닭에 재물이 모이면 백성은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은 모인다.
5 生財有大道하니 生之者衆하고 食之者寡하며 爲之者疾하고 用之者舒하면 財恒足矣리라 <大學, 大學 傳>  
재물을 생산함에 큰 방법이 있으니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이 많고 (그것을) 먹는 사람이 적으며 (그것을) 하는 사람이 빠르고 (그것을) 쓰는 사람이 느리면 재물은 항상 풍족할 것이다.
6 聰明睿智能盡其性者 出於其間이면 天必命之하사 以爲億兆之君師하여 使之治而敎之하여 以復其性케하시니 伏羲神農黃帝堯舜 所以繼天立極이요 而司徒之職 典樂之官 所由設也 <大學章句, 大學章句序>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로워 제 본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 사이에서 나온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 백성의 군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시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복희·신농·황제·요·순이 천명을 계승하여 〈교육의〉 표준을 세운 까닭이요, 사도의 관직과 전악의 관직을 설치한 이유였다.
7 三代之隆 其法 寖備하니 然後 王宮國都 以及閭巷 莫不有學하여 人生八歲어든 自王公以下 至於庶人之子弟 皆入小學하여 而敎之以灑掃應對進退之節 禮樂射御書數之文하고 <大學章句, 大學章句序>  
〈하(夏)·은(殷)·주(周)〉 삼대가 융성했을 때 그 〈교육의〉 법이 점차 갖추어지자, 그런 뒤로는 천자의 궁과 왕의 도읍으로부터 여항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두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신분이 높은〉 왕공으로부터 이하로 〈여항의〉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小學)에 입학시켜서 그들에게 물뿌리고 쓸며, 호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예법·음악·활쏘기·말몰기·육서법(六書法)·셈하기의 문(文)을 가르쳤다.
8 子曰 弟子入하고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호되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以學文이니라 <論語, 學而第一>  
공자가 말하였다. “제자는 들어가면 효도하고 나오면 공손하며 삼가고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해야 하니,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그로써 글을 배워야 한다.”
9 子曰 君子不重不威 學則不固니라 <論語, 學而第一>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배워도 견고하지 못하다.
10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寡悔 言寡尤하며 行寡悔 祿在其中矣니라 <論語, 爲政第二>  
공자가 말하였다.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을 제쳐두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으며,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을 제쳐두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동하면 후회가 적으니,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11 哀公 問曰 何爲民服이니잇고 孔子對曰 擧直錯諸枉民服하고 擧枉錯諸直民不服이니이다 <論語, 爲政第二>  
애공(哀公)이 물어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孔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곧은 사람을 쓰고 여러 굽은 사람들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고, 굽은 사람들을 쓰고 여러 곧은 사람들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12 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호되 如之何잇고 子曰 臨之以莊하고 孝慈하고 擧善而敎不能이니라 <論語, 爲政第二>  
계강자(季康子)가 물었다. “백성들로 하여금 공경과 충성으로 권면케 하려면 이 일을 어찌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그들에게 장엄함으로 임하면 〈백성이〉 공경하고, 효도와 사랑으로 하면 〈백성이〉 충성하고, 선한 사람을 들어 쓰고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치면 〈백성이〉 권면할 것입니다.”
13 子曰 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 不足故也吾能徵之矣로리라 <論語, 八佾第三>  
공자가 말하였다. “하(夏)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후예인〉 기(杞)나라가 충분하게 증명하지 못하고, 은(殷)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후예인〉 송(宋)나라가 충분하게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문헌이 충분하지 않은 까닭이다. 〈문헌이〉 충분하다면 내가 그 말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14 子曰 甯武子邦有道하고 邦無道하니 其知 可及也어니와 其愚 不可及也니라 <論語, 公冶長第五>  
공자가 말하였다. “영무자(甯武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면 지혜롭게 〈행동하였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면 우둔하게 〈행동하였으니〉, 그 지혜는 미칠 수 있으나 그 우둔함은 미칠 수 없다.”
15 子曰 質勝文 文勝質 文質 彬彬然後 君子니라 <論語, 雍也第六>  
공자가 말하였다. “질박함이 세련됨보다 많으면 야인(野人)이고, 세련됨이 질박함보다 많으면 〈겉만 번지르르한〉 사관(史官)이니, 세련됨과 질박함이 조화로운 뒤에야 군자(君子)이다.”
16 子曰 不憤이어든 不啓하며 不悱어든 不發호되 擧一隅 不以三隅反이어든 不復也니라 <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알고자〉 분발하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으며, 표현하려 애쓰지 않으면 말을 틔워주지 않으며, 한 모퉁이를 들어주었는데 세 모퉁이로 반증하지 못하면 다시 〈일러주지〉 않는다.”
17 子於是日不歌러시다 <論語, 述而第七>  
공자는 이 날에 곡을 하면 노래 부르지 않았다.
18 子謂顔淵曰 用之하고 舍之 惟我與爾有是夫인저 <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안연(顔淵)에게 일러 말하였다. “자신을 써주면 〈도를〉 행하고 자신을 버리면 은둔하는 것은 오직 나와 자네만이 이렇게 할 수 있네.”
19 子路曰 子行三軍이면 誰與시리잇고 <論語, 述而第七>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선생께서 삼군을 통솔하시면 누구와 함께하겠습니까?”
20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이리오 抑爲之不厭하며 誨人不倦 可謂云爾已矣니라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로소이다 <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성(聖)과 인(仁) 같은 것은 내가 어찌 감히 〈자처하〉겠는가? 그러나 행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침에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공서화가 말하였다. “〈그것이〉 바로 제자가 배울 수 없는 점입니다.”
21 危邦不入하고 亂邦不居하며 天下有道하고 無道이니라 <論語, 泰伯第八>  
위태로운 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 않으며,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22 子曰 主忠信하며 毋友不如己者勿憚改니라 <論語, 子罕第九>  
공자가 말하였다. “충신을 주로 하며, 나만 같지 못한 사람을 사귀지 말며, 잘못하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라.”
23 曰 然師愈與잇가 <論語, 先進第十一>  
〈자공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자장이 낫습니까?”
24 曰 然從之者與잇가 <論語, 先進第十一>  
(계자연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둘은) 따르는 사람인가?”
25 子曰 其言之不怍이면 爲之也難하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그 말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그것을) 실천함이 어렵다.”
26 旣而 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어든 斯已而已矣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이윽고 〈삼태기를 멘 자가〉 말하였다. “비루하구나! 땅땅하는 소리여. 자기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그만 둘 뿐이니,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 한다.”
27 子曰 上好禮民易使也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위에서 예를 좋아하면 백성을 부리기 쉽다.”
28 見其參於前也 在輿見其倚於衡也 夫然後이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서면 그것이 앞에 참여함을 보고 수레에 있으면 그것이 멍에에 기대고 있음을 보아야 하니, (생략) 그러한 뒤에 행해진다.”
29 君子哉 蘧伯玉이여 邦有道하고 邦無道可卷而懷之로다 <論語, 衛靈公第十五>  
군자로구나,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그것을) 거두어 품을 수 있도다.”
30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이면 遠怨矣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공자가 말하였다. “자신을 스스로 (자책함을) 후하게 하고 남에게 책망을 적게 하면 원망이 멀어질 것이다.”
31 子曰 巧言 亂德이요 小不忍亂大謀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공자가 말하였다. “공교로운 말은 덕을 어지럽히고 작은 것 참지 않으면 큰 계책을 어지럽힌다.”
32 知及之하며 仁能守之라도 不莊以涖之 民不敬이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지혜가 (그것에) 미치며 인이 (그것을) 잘 지켜도 장엄함으로 (그들에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33 孔子曰 求 周任 有言曰 陳力就列하여 不能者止라하니 危而不持하며 顚而不扶 將焉用彼相矣리오 <論語, 季氏第十六>  
공자가 말하였다. “구야, 주임이 말을 두어 하였다. ‘힘을 펴서 지위에 나아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만두어야 한다.’ 위태로운데 잡아주지 못하며 넘어지는데 붙들어주지 못하면 장차 어디에 저 돕는 신하를 쓰겠는가?
34 夫如是故 遠人 不服이면 修文德以來之하고 旣來之 安之니라 <論語, 季氏第十六>  
(생략) 이와 같으므로 멀리 있는 사람이 복종해오지 않으면 문덕을 닦아서 그것으로 (그들을) 오게 하고 이미 (그들을) 오게 하면 (그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35 孔子曰 天下有道 禮樂征伐 自天子出하고 天下無道 禮樂征伐 自諸侯出하나니 自諸侯出이면 蓋十世 希不失矣 自大夫出이면 五世 希不失矣 陪臣 執國命이면 三世 希不失矣니라 <論語, 季氏第十六>  
공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제후로부터 나오면 대개 십 세에 (정권을) 잃지 않음이 드물고, 대부로부터 나오면 오 세에 (정권을) 잃지 않음이 드물고, 가신이 나라의 명을 잡으면 삼 세에 잃지 않음이 드물다.
36 天下有道 政不在大夫하고 <論語, 季氏第十六>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정사가 대부에게 있지 않고
37 天下有道 庶人 不議하나니라 <論語, 季氏第十六>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서인들이 (정사를) 의논하지 않는다.”
38 子游對曰 昔者 偃也聞諸夫子호니 曰 君子 學道愛人이요 小人 學道易使也라호이다 <論語, 陽貨第十七>  
자유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예전에 제가 부자에게 들으니, ‘군자는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은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말하였습니다.”
39 子張 問仁於孔子한대 孔子曰 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니라 請問之한대 曰 恭寬信敏惠不侮하고得衆하고人任焉하고有功하고足以使人이니라 <論語, 陽貨第十七>  
자장이 인에 대해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다면 인(仁)이 된다.” 〈자장이〉 그것을 청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민첩함, 은혜로움이니, 공손하면 업신여기지 않고, 너그러우면 뭇사람들을 얻게 되고, 미더우면 남들이 그에게 일을 맡기고, 민첩하면 공이 있고, 은혜로우면 그로써 사람을 부릴 수 있다.”
40 女安爲之하라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하며 聞樂不樂하며 居處不安이라 不爲也하나니 今女安爲之하라 <論語, 陽貨第十七>  
(공자가 말하였다.)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해라. (생략) 군자가 상에 거할 때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이 편안하지 않다. 그러므로 하지 않는 것이니, 지금 네가 편안하면 면 (그렇게) 해라.”
41 子曰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不孫하고 遠之이니라 <論語, 陽貨第十七>  
공자가 말하였다. 오직 여자와 소인은 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되니, (그들을) 가까이 하면 공손하지 않고, (그들을) 멀리하면 원망한다.
42 周公 謂魯公曰 君子不施其親하며 不使大臣으로 怨乎不以하며 故舊無大故 不棄也하며 無求備於一人이니라 <論語, 微子第十八>  
주공이 노공에게 말하였다. “군자는 그 부모를 버리지 않으며, 대신이 (자신을) 등용하지 않은 것을 원망하게 하지 않으며, 친구에게 큰 잘못이 없다면 버리지 않으며, 한 사람에게 갖추어지기를 구하지 말아라.”
43 子夏曰 君子 信而後 勞其民이니 未信以爲厲己也니라 信而後이니 未信以爲謗己也니라 <論語, 子張第十九>  
자하가 말하였다. 군자는 (백성에게) 신뢰를 얻고난 뒤에 그 백성을 부리니,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것으로써 자기를 괴롭힌다고 여긴다. 신뢰를 얻고난 뒤에 간언하니,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것으로써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긴다.
44 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灑掃應對進退可矣어니와 抑末也 本之則無하니 如之何 <論語, 子張第十九>  
자하가 말하였다. “자하의 문하 사람인 제자들이 물뿌리고 쓸며, 응대하고 나아가고 물러남을 당해서는 괜찮다. 그러나 지엽적인 일이다. (그것을) 근원함은 곧 없으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45 子夏曰 仕而優하고 學而優니라 <論語, 子張第十九>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벼슬하면서 여력이 있으면 배우고, 배우고서 여력이 있으면 벼슬한다.”
46 得衆하고民任焉하고有功하고이니라 <論語, 堯曰第二十>  
너그러우면 대중을 얻고, 신의가 있으면 백성이 여기에 신임하고, 민첩하면 공이 있고, 공평하면 (백성들이) 기뻐한다.
47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로니 河內凶이어든 移其民於河東하고 移其粟於河內하며 河東凶이어든 亦然하노니 察鄰國之政컨대 無如寡人之用心者로되 鄰國之民 不加少하며 寡人之民 不加多 何也잇고 <孟子, 梁惠王上>  
양나라 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나라에는 거기에 마음을 다할 뿐이니, 하내가 흉년들면, 그곳의 백성을 하동으로 옮기고 그곳의 곡식을 하내로 옮겼으며, 하동이 흉년들어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웃 나라의 정사를 살펴보건데, 과인의 마음 씀씀이와 같은 자가 없는데도, 이웃 나라의 백성이 더 줄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더 많아지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48 孟子對曰 王 好戰하시니 請以戰喩하리이다 塡然鼓之하여 兵刃旣接이어든 棄甲曳兵而走호되 或百步而後止하며 或五十步而後止하여 以五十步 笑百步 何如하니잇고 曰 不可하니 直不百步耳언정 是亦走也니이다 曰 王如知此시면 則無望民之多於鄰國也하소서 <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왕이 전투를 좋아하시니 청하건대 전쟁으로 비유하겠습니다. 둥둥! 북을 두드려서 병기와 칼날이 이미 맞붙은 뒤에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면서 달아나되, 어떤 이는 백 보 이후에 멈추고 어떤 이는 오십 보 이후에 멈춰서, 오십 보로서 백 보를 비웃는다면 어떠합니까?” 〈왕이〉 말하였다. “옳지 않습니다. 다만 백 보가 아닐 뿐, 이것 또한 달아난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이 만약 이것을 안다면, 백성이 이웃 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49 狗彘食人食而不知檢하며 塗有餓莩而不知發하고 人死曰 非我也 歲也라하나니 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 非我也 兵也리오 王無罪歲하시면 斯天下之民 至焉하리이다 <孟子, 梁惠王上>  
개, 돼지가 사람이 먹는 것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개방할 줄 모르며, 사람이 죽으면 말하길, ‘내 〈탓이〉 아니다. 올해의 농사 〈탓〉이다’ 하니, 이것이 사람을 찔러서 그를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다. 무기 〈탓〉이다’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이 한 해의 농사를 탓하지 않는다면 곧 천하의 백성들이 여기에 이를 것입니다.”
50 對曰 天下莫不與也 知夫苗乎잇가 七八月之間苗槁矣라가 油然作雲하여 沛然下雨 苗浡然興之矣나니 其如是 孰能禦之리오 今夫天下之人牧 未有不嗜殺人者也 如有不嗜殺人者 則天下之民 皆引領而望之矣리니 誠如是也 民歸之 由水之就下하리니 沛然 誰能禦之리오호라 <孟子, 梁惠王上>  
대답하여 말하길, ‘세상에 돌아가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왕은 저 이삭을 아십니까? 칠팔월의 사이에 가물면 이삭이 마르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쏴아! 비를 내리면, 이삭이 쑥쑥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이와 같다면, 누가 싹이 자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 천하의 임금 중에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약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있다면, 세상의 백성이 모두 목을 빼고 그 임금을 바라볼 것이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백성이 그 임금에게 돌아가는 것이 물이 아래로 흘러감과 같을 것이니, 성대한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51 曰 若寡人者 可以保民乎哉잇가 曰 可하니이다 曰 何由 知吾 可也잇고 曰 臣聞之胡齕하니 曰 王坐於堂上이어시늘 有牽牛而過堂下者러니 王見之하시고 曰 牛 何之 對曰 將以釁鍾이니이다 王曰 舍之하라 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하노라 對曰 然廢釁鍾與잇가 曰 何可廢也리오 以羊易之라하니 不識케이다 有諸잇가 <孟子, 梁惠王上>  
〈선왕이〉 말하였다. “과인과 같은 자도 백성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선왕이〉 말하였다. “무슨 연유로 내가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신이 호흘(胡齕)에게 그것을 들었습니다. 〈호흘이〉 말하길 ‘왕이 당 위에 앉아 계시는데, 소를 끌고서 당 아래를 지나가는 자가 있자, 왕이 그것을 보며 말하길, 「소는 어디로 하니, 가는가?」 하니, 〈호흘이〉 대답하길, 「이 소로써 흔종(釁鍾)하려합니다.」 왕께서 말하시길 「소를 놓아줘라. 나는 그 소가 울부짖는 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끌려가는 것 같아서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겠다.」 하시자, 〈호흘이〉 대답하길 「그렇다면, 흔종을 폐지할까요?」 〈왕께서〉 말하시길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는가? 양으로 그것을 바꿔라.」 했다.’ 합니다. 알지 못하겠으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52 曰 有復於王者曰 吾力足以擧百鈞이로되 而不足以擧一羽하며 明足以察秋毫之末이로되 而不見輿薪이라하면 許之乎잇가 曰 否 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者 獨何與잇고一羽之不擧 爲不用力焉이며 輿薪之不見 爲不用明焉이며 百姓之不見保 爲不用恩焉이니 王之不王 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말하였다. “왕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어 말하길, ‘제 힘으로는 백 균을 들기 충분하지만, 힘으로 깃털 하나를 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시력으로는 가을 털의 끝을 살피는 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합니다’ 한다면, 왕은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은혜로써 금수에 미치기에 충분하지만,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호받지 않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잘 다스리지 못함은 하지 않아서일지언정,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53 曰 王之所大欲 可得聞與잇가 王笑而不言하신대 曰 爲肥甘 不足於口與 輕煖 不足於體與잇가 抑爲采色 不足視於目與 聲音 不足聽於耳與 便嬖不足使令於前與잇가 王之諸臣 皆足以供之하나니 而王 豈爲是哉시리잇고 曰 否 吾不爲是也로이다 曰 然王之所大欲 可知已 欲辟土地하며 朝秦楚하여 莅中國而撫四夷也로소이다 以若所爲 求若所欲이면 猶緣木而求魚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말하였다. “왕의 크게 하고자 하는 바를 얻어들을 수 있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맹자가〉 말하였다. “살지고 단 것이 입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가볍고 따뜻한 〈옷〉이 몸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채색이 눈에 충분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까? 좋은 소리가 귀에 충분하게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까? 총애하는 자들을 앞에서 부리기에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왕의 여러 신하가 모두 충분하게 그것을 제공하는데 왕이 어찌 그것 때문이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나는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왕이 크게 바라는 바를 알 수 있겠습니다. 토지를 개척하고 진나라와 초나라에게 조회를 받아 중국에 자리하여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고자 함입니다. 이 같이 하는 바로, 이 같이 바라는 바를 구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함과 같습니다.”
54 王曰 若是其甚與잇가 曰 殆有甚焉하니 緣木求魚 雖不得魚 無後災어니와 以若所爲 求若所欲이면 盡心力而爲之라도 後必有災하리이다 曰 可得聞與잇가 曰 鄒人 與楚人戰이면 以爲孰勝이니잇고 曰 楚人하리이다 曰 然小固不可以敵大 寡固不可以敵衆이며 弱固不可以敵强이니 海內之地 方千里者九 齊集有其一하니 以一服八 何以異於鄒敵楚哉리잇고 蓋亦反其本矣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왕이 말하였다. “이처럼 그 일이 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대게 이보다 심한 것이 있으니,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뒤의 재앙이 없지만, 이 같은 하는 바로써 이 같은 바라는 바를 구한다면, 마음과 힘을 다해서 그 일을 하더라도 뒤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재앙을〉 얻어들을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추(鄒)나라 사람과 초(楚 )나라 사람이 싸우면, 왕은 누가 이길 거라 여기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초나라 사람이 이길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작은 것은 진실로 큰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적은 것은 진실로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약한 것은 진실로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해 내의 땅에서, 사방 천 리인 것 아홉인데, 제(齊)나라 땅을 모으면 그 〈아홉에서〉 하나를 가졌습니다. 하나로써 여덟을 복종시키는 것이 추나라가 초나라를 대적하는 것과 어떤 것이 다르겠습니까? 대개 또한 그 근본을 돌이켜야 합니다.”
55 王欲行之어시든 盍反其本矣니잇고 <孟子, 梁惠王上>  
왕이 왕도정치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어찌 그 근본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56 曰 王之好樂이면 齊其庶幾乎인저 今之樂 由古之樂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말하였다. “왕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깊다면 제나라는 아마 〈다스려짐에〉 가까울 것입니다. 지금의 음악은 옛날의 음악과 같습니다.”
57 今王 與百姓同樂하시면 王矣시리이다 <孟子, 梁惠王下>  
지금 왕이 백성과 함께 즐거워한다면 왕 노릇 할 것입니다.”
58 齊宣王 見孟子於雪宮이러니 王曰 賢者 亦有此樂乎잇가 孟子對曰 有하니 人不得이면 非其上矣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제나라 선왕이 맹자를 설궁(雪宮)에서 만났는데, 왕이 말하였다. “현자(賢者)도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있습니다. 사람은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그 윗사람을 비난합니다.
59 孟子對曰 夫明堂者 王者之堂也 王欲行王政이면 勿毁之矣소서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무릇 명당(明堂)이란 것은 천자의 집이니, 임금께서 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명당을 부수지 마소서.”
60 孟子見齊宣王曰 爲巨室인댄 必使工師 求大木하시리니 工師得大木이면 王喜하여 以爲能勝其任也라하시고 匠人 斲而小之 王怒하여 以爲不勝其任矣라하시리니 夫人 幼而學之 壯而欲行之 王曰 姑舍女所學하고 而從我라하시면 何如하니잇고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제나라 선왕을 보고 말하였다. “큰 궁궐을 만들려면 반드시 도목수(都木手)로 하여금 큰 나무를 구하게 하실 것이니, 도목수가 큰 나무를 얻으면 왕께서 기뻐하여 그 임무를 다할 수 있다 여기고, 장인이 그 나무를 깎아서 작게 하면 왕이 노하여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무릇 사람이 어려서 도를 배우는 것은 장성하여 배운 것을 행하고자 하는 것인데, 왕께서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61 今有璞玉於此하면 雖萬鎰이라도 必使玉人彫琢之하시리니 至於治國家하여는 曰 姑舍女所學하고 而從我라하시면 何以異於敎玉人彫琢玉哉잇고 <孟子, 梁惠王下>  
지금 여기에 박옥(璞玉)이 있다면, 비록 10,000 일(鎰)이라도 반드시 옥공으로 하여금 그것을 다듬고 조각하게 할 것이니, 국가를 다스림에 이르러서는 말하길,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한다면, 옥공으로 하여금 옥을 다듬고 조각하게 하는 것과 어떤 것이 다르겠습니까?”
62 孟子對曰 取之而燕民悅이어든 取之하소서 古之人 有行之者하니 武王 是也니이다 取之而燕民不悅이어든 勿取하소서 古之人 有行之者하니 文王 是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였다. “연(燕)나라를 차지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면 연나라를 차지하십시오. 옛날의 사람 중에 이런 일을 행한 사람이 있었으니 무왕(武王)이 그 사람입니다. 연나라를 차지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으면 차지하지 마십시오. 옛날의 사람 중에 이런 일을 행한 사람이 있었으니 문왕(文王)이 그 사람입니다.
63 王速出令하사 反其旄倪하시며 止其重器하시고 謀於燕衆하여 置君而後 去之 猶可及止也리이다 <孟子, 梁惠王下>  
왕께서 속히 명령을 내려, 그 노약자를 되돌려보내고 그 중요한 기물을 〈가져오는 것을〉 중지하시고 연나라 백성과 상의하여 임금을 세운 뒤에 연나라를 떠나온다면, 〈천하의 군대가 움직이는 것을〉 오히려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64 鄒與魯鬨이러니 穆公 問曰 吾有司死者 三十三人이로되 而民 莫之死也하니 誅之不可勝誅 不誅疾視其長上之死而不救하니 如之何則可也잇고 <孟子, 梁惠王下>  
추(鄒)나라가 노(魯)나라와 싸우자, 목공(穆公)이 물어 말하였다. “나의 유사(有司) 중에 죽은 자가 삼십 삽인인데, 백성은 죽은 사람이 없으니, 그들을 죽인다면 이루 다 죽일 수 없고 죽이지 않는다면 그 윗사람의 죽음을 곁눈질하면서도 구원하지 않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65 孟子對曰 是謀 非吾所能及也로소이다 無已有一焉하니 鑿斯池也하며 築斯城也하여 與民守之하여 效死而民弗去 是可爲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 계책은 제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두지 말라.’ 하시면 거기엔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해자(垓子)를 (생략)파며 성벽을 (생략)쌓아서 백성과 함께 이곳을 지켜서 목숨을 바치면서 백성이 떠나지 않는다면 이 계책은 해볼 만합니다.”
66 魯平公 將出할새 嬖人臧倉者請曰 他日 君出이면 必命有司所之러시니 乘輿已駕矣로되 有司未知所之하니 敢請하노이다 公曰 將見孟子호리라 曰 何哉잇고 君所爲輕身하여 以先於匹夫者 以爲賢乎잇가 禮義 由賢者出이어늘 而孟子之後喪 踰前喪하니 君無見焉하소서 公曰 諾 <孟子, 梁惠王下>  
노(魯)나라 평공(平公)이 나가려 할 적에 폐인(嬖人) 장창(臧倉)이란 자가 물었다. “다른 날 군께서 나가실 때는 반드시 유사에게 갈 곳을 알리시더니, 오늘은 수레에 이미 멍에를 메었는데도 유사가 아직 가실 곳을 알지 못하니 감히 〈가실 곳을〉 묻습니다.”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보려 한다네.” 〈장창이〉 말하였다. “어째서입니까? 군께서 자신을 낮추기 위하여 필부인 〈맹자〉에게 먼저 〈예를 표하는〉 까닭은 〈그가〉 어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까? 예와 의는 현자로부터 나온다는데, 맹자의 후상(어머니 상)이 전상(아버지 상)보다 성대하였으니, 임금께서는 맹자를 만나지 마소서.” 평공이 말하였다. “알았네.”
67 問乎曾西曰 吾子與子路孰賢 曾西蹴然曰 吾先子之所畏也니라 曰然吾子與管仲孰賢 曾西艴然不悅曰 爾何曾比予於管仲 管仲 得君 如彼其專也 行乎國政 如彼其久也로되 功烈 如彼其卑也하니 爾何曾比予於是오하니라 <孟子, 公孫丑上>  
혹자가 증서(曾西)에게 묻기를 ‘그대와 자로(子路)는 누가 어진가요?’ 하니, 증서가 불안해하며 말하길, ‘나의 선친(증자)께서 경외하던 분이오.’ 하였다. 〈혹자가〉 말하길, ‘그렇다면 그대와 관중(管仲)은 누가 어진가요?’ 하니, 증서가 발끈하여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길, ‘그대는 어찌 곧장 나를 관중에게 비교합니까? 관중은 저같이 참으로 오로지 임금의 신임을 얻었으며, 저같이 참으로 오래토록 국정을 시행하였는데, 공렬이 저같이 참으로 낮았으니, 그대는 어찌 곧장 나를 그런 사람에 비교합니까?’ 하였습니다.
68 曰 若是則弟子之惑 滋甚케이다 且以文王之德으로 百年而後崩하사되 猶未洽於天下어시늘 武王周公 繼之然後 大行하니 今言王若易然하시니 文王 不足法與잇가 <孟子, 公孫丑上>  
〈공손추가〉 말하였다. “이와 같다면 제자의 의혹이 더욱 심해집니다. 또 문왕(文王)의 덕으로 백 년 뒤에 붕(崩)하였는데도 여전히 〈덕이〉 천하에 두루미치지 못하였고,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이 문왕을 계승한 뒤에야 〈덕이〉 크게 행해졌습니다. 지금 왕노릇하는 것이 마치 쉬운 듯 말하시니, 문왕은 본받기에 부족합니까?”
69 曰 文王 何可當也리오 由湯으로 至於武丁 賢聖之君 六七하여 天下歸殷 久矣難變也 武丁 朝諸侯 有天下호되 猶運之掌也하시니 紂之去武丁 未久也 其故家遺俗 流風善政 猶有存者하며 又有微子微仲王子比干箕子膠鬲 皆賢人也 相與輔相之 久而後 失之也하니 尺地 莫非其有也 一民 莫非其臣也어늘 然而文王 猶方百里起하시니 是以難也니라 <孟子, 公孫丑上>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탕(湯)왕으로부터 무정(武丁)에 이르기까지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이 여섯, 일곱이 일어나 천하가 은(殷)으로 돌아간 지 오래되었으니, 오래되면 변하기 어렵네. 무정(武丁)이 제후에게 조회 받고 천하를 소유하되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이하였네. 주왕(紂王)이 무정과의 거리가 오래지 않아 그 고가의 남은 풍속과 유풍과 선정이 아직도 남은 것이 있었으며, 또 미자(微子)와 미중(微仲)과 왕자 비간(比干)과 기자(箕子)와 교격(膠鬲)이 모두 어진 사람이었다네. 서로 더불어 주왕을 보좌하였던 까닭에 오랜 뒤에 천하를 잃었다네. 한 자의 땅도 주왕의 소유가 아님이 없었으며 한 사람의 백성도 주왕의 신하가 아님이 없었다네. 그런데도 문왕이 단지 사방 백 리로 일어났으니 이 때문에 어려웠다네.
70 公孫丑問曰 夫子加齊之卿相하사 得行道焉하시면 雖由此霸王이라도 不異矣리니 如此動心이릿가 否乎잇가 孟子曰 否 四十 不動心호라 <孟子, 公孫丑上>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이 제(齊)나라의 경상(卿相)에 올라서 제나라에 도를 행할 수 있다면 비록 이로 말미암아 〈왕이〉 패업을 이루고 왕자가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마음이 동요되실까요? 아니실까요?”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네. 나는 사십 세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다네.”
71 曰 若是夫子過孟賁 遠矣로소이다 曰 是不難하니 告子 先我不動心하니라 <孟子, 公孫丑上>  
〈공손추가〉 말하였다. “이와 같다면 선생님은 맹분(孟賁)보다 뛰어남이 큽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이는 어렵지 않으니, 고자(告子)도 나보다 앞서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네.”
72 其爲氣也 至大至剛하니 以直養而無害 塞于天地之間이니라 <孟子, 公孫丑上>  
그 호연지기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정직으로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천지의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네.
73 曰 伯夷伊尹 何如하니잇고 曰 不同道하니 非其君不事하며 非其民不使하여하고退 伯夷也 何事非君이며 何使非民이리오하여 治亦進하며 亂亦進 伊尹也 可以仕하며 可以止하며 可以久하며 可以速 孔子也시니 皆古聖人也 吾未能有行焉이어니와 乃所願則學孔子也로라 <孟子, 公孫丑上>  
〈공손추가〉 말하였다.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은 어떠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두 사람의〉 도가 같지 않았네. 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으며 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아서,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난 것은 백이였네.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는가?’ 하여,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나아간 것은 이윤이었네.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머무를 만하면 오래 머무르고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난 것은 공자였으니, 〈이들이〉 모두 옛 성인이었네. 나는 그들의 도를 실천함이 있을 수 없었지만, 〈내가〉 바로 원하는 것은 공자의 〈도를〉 배우는 것이네.”
74 無夫里之布 天下之民 皆悅而願爲之氓矣리라 <孟子, 公孫丑上>  
전포의 부포(夫布)와 이포(里布)의 포세(布稅)를 없애면 천하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여 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75 陳臻 問曰 前日於齊 餽兼金一百而不受하시고 於宋 餽七十鎰而受하시고 於薛 餽五十鎰而受하시니 前日之不受是 今日之受非也 今日之受是 前日之不受非也 夫子必居一於此矣시리이다 <孟子, 公孫丑下>  
진진(陳臻)이 물었다. “전날에 제(齊)나라에서는 왕이 겸금(兼金) 일백을 주었는데도 받지 않았고, 송(宋)나라에서는 칠십 일(鎰)을 주었는데 받았고, 설(薛)나라에서는 오십 일을 주었는데 받았으니, 전날에 받지 않은 것이 옳다면 오늘날에 받은 것이 잘못일 것이고, 오늘날에 받은 것이 옳다면 전날에 받지 않은 것이 잘못일 것이니, 선생은 반드시 이 중에서 하나에 해당할 것입니다.”
76 齊人 伐燕이어늘 或問曰 勸齊伐燕이라하니 有諸잇가 曰 未也 沈同 問燕可伐與아하여늘 吾應之曰 可라하니 彼然而伐之也로다 彼如曰 孰可以伐之오하면 則將應之曰 爲天吏可以伐之라하리라 有殺人者어든 或問之曰 人可殺與아하면 則將應之曰 可라하리니 彼如曰 孰可以殺之오하면 則將應之曰 爲士師則可以殺之라하리라 以燕伐燕이어니 何爲勸之哉리오 <孟子, 公孫丑下>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정벌하자, 혹자가 물었다. “ ‘〈선생이〉 제나라에 권하여 연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네. 심동이 ‘연나라를 정벌해도 됩니까?’ 묻기에, 내가 질문에 응하여 ‘된다.’고 말하니, 그(심동)가 그래서 연나라를 정벌하였다네. 저 심동이 만일 ‘누가 연나라를 정벌할 수 있습니까?’ 하였다면 장차 그 질문에 응하여 ‘천리(天吏)가 된 자라야 그 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고 말했을 것이네. 만일 살인자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 대해 묻기를 ‘〈살인한〉 사람을 죽여도 됩니까?’ 하면 장차 〈나는〉 그 질문에 응하여 ‘〈죽여도〉 된다.’고 말할 것이니, 저 〈혹자가〉 만약 ‘누가 살인자를 죽일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였다면 장차 〈나는〉 그 질문에 응하여 ‘사사가 된 자라야 살인자를 죽일 수 있다.’ 말했을 것이네. 지금에는 연나라로서 연나라를 정벌하였으니, 〈내가〉 어찌하여 그 일을 권했겠는가?”
77 且古之君子改之러니 今之君子順之로다 古之君子 其過也 如日月之食이라 民皆見之하고 及其更也하여는 民皆仰之러니 今之君子 豈徒順之리오 又從而爲之辭로다 <孟子, 公孫丑下>  
또한, 옛날의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고쳤는데, 지금의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따라갑니다. 옛날의 군자들은 그 허물이 일식과 월식 같아 백성이 모두 허물을 보았고, 그 일이 고쳐지게 되어서는 백성이 모두 그를 우러러보았습니다. 지금의 군자는 어찌 다만 그것을 따를 뿐이겠습니까? 또 뒤를 따라서 그 일 때문에 변명합니다.”
78 不悅曰 弟子齊宿而後 敢言이어늘 夫子臥而不聽하시니 請勿復敢見矣로이다 曰 坐하라 我明語子호리라 昔者 魯繆公 無人乎子思之側이면 不能安子思하고 泄柳 申詳 無人乎繆公之側이면 則不能安其身이러니라 <孟子, 公孫丑下>  
객이 불쾌해하며 말하였다. “제가 재계하고 하루를 묵은 뒤에 감히 말하였는데 선생은 누워서 듣지 않으니, 다시는 외람되지만 뵙지 않으려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앉으시오. 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겠소. 옛날에 노(魯)나라 목공(繆公)은 자사(子思)의 곁에 〈자신의 뜻을 전달할〉 사람이 없으면 자사를 편안히 여길 수 없었고, 설류(泄柳)와 신상(申詳)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제 몸을 편안히 여길 수 없었다네.
79 孟子去齊하실새 尹士語人曰 不識王之不可以爲湯武 是不明也 識其不可 然且至 是干澤也 千里而見王하여 不遇故호되 三宿而後 出晝하니 是何濡滯也 士則玆不悅하노라 <孟子, 公孫丑下>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날 적에 윤사(尹士)가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맹자가 우리〉 임금께서 탕왕과 무왕이 될 수 없음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것은 〈맹자가〉 현명하지 못한 것이고, 왕이 될 수 없음을 알았지만 불구하고 왔다면 이는 〈왕의〉 은택을 구한 것이다. 천 리를 〈찾아와〉서 왕을 알현하고 뜻이 맞지 않은 까닭에 떠나가되 사흘을 유숙한 뒤에 주(晝) 땅에서 나갔으니, 어째서 이리도 지체하였는가? 나(윤사)는 이것이 불쾌하다.”
80 予豈若是小丈夫然哉 諫於其君而不受하여 悻悻然見於其面하여窮日之力而後 宿哉리오 <孟子, 公孫丑下>  
내 어찌 다음의 소장부처럼 행동하겠는가? 그 임금에게 간하다가 받아주지 않으면 노하여 행행하게 그 얼굴에 드러내어, 떠나면 그 날의 힘을 다 소진한 뒤에 유숙하겠는가?”
81 由周而來 七百有餘歲矣 以其數過矣 以其時考之可矣니라 <孟子, 公孫丑下>  
주(周)나라부터 이후로 칠백여 년이니, 그 햇수로서는 지났고 그 시기로서 지금을 살펴보면 가능한 〈시기〉라네.
82 治天下 獨可耕且爲與 有大人之事하고 有小人之事하며 且一人之身而百工之所爲備하니 如必自爲而後 用之 率天下而路也니라 曰 或勞心하며 或勞力이니 勞心者 治人하고 勞力者 治於人이라하니 治於人者 食人하고 治人者 食於人 天下之通義也니라 <孟子, 滕文公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유독 밭을 갈면서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인의 일이 있고 소인의 일이 있다네. 또 한 사람의 몸에 백공이 만든 것이 구비되어야 하니, 만일 반드시 스스로 만든 뒤에 도구를 써야 한다면, 이는 천하의 사람을 몰아서 길로 내보내는 것이네. 그러므로 말하길 ‘어떤이는 마음으로 애를 쓰고 어떤이는 힘으로 애를 쓰니, 마음으로 애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으로 애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려진다.’ 하였으니, 남에게 다스려지는 자는 남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서 먹는 것이 천하의 공통된 의리라네.
83 他日 又求見孟子한대 孟子曰 吾今則可以見矣어니와 不直道不見하나니 我且直之호리라 吾聞 夷子 墨者라하니 墨之治喪也 以薄爲其道也 夷子 思以易天下하나니 豈以爲非是而不貴也리오 然而夷子葬其親하니 則是以所賤事親也로다 <孟子, 滕文公上>  
다른 날에 〈이지(夷之)가〉 또 맹자를 만나기를 요구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은 〈이자를〉 만날 수 있네. 직언하지 않으면 〈우리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장차 그에게 직언하겠네. 내가 듣기에, 이자는 묵가(墨家)라 하니, 묵가가 상을 치루는 것은 검소함을 바른 도로 여긴다네. 이자는 검소함으로 천하를 바꾸겠다 생각하니, 어찌 검소함을 옳지 않다고 여겨서 중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자는 자기 어버이를 장례 지낸 것이 후하였으니 이것은 천하게 〈여기는〉 것으로 부모를 섬긴 것이네.”
84 萬章 問曰 宋 小國也 將行王政하나니 齊楚惡而伐之 如之何니잇고 <孟子, 滕文公下>  
만장(萬章)이 물었다. “송(宋)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이제 장차 왕도정치를 행하려 하는데 제(齊)나라와 초(楚)나라가 이를 미워하여 공격한다면 이일을 어떻게 합니까?
85 孟子謂戴不勝曰 子欲子之王之善與 我明告子호리라 有楚大夫於此하니 欲其子之齊語也인댄 使齊人傅諸 使楚人傅諸 曰 使齊人傅之니이다 曰 一齊人 傅之어든 衆楚人 咻之 雖日撻而求其齊也라도 不可得矣어니와 引而置之莊嶽之間數年이면 雖日撻而求其楚라도 亦不可得矣리라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송(宋)의 신하〉 대불승(戴不勝)에게 일러 말하였다. “그대는 그대의 임금이 선(善)해지기를 바라십니까? 제가 분명하게 그대에게 말하겠습니다. 초(楚)나라 대부가 여기에 있는데, 자기 자식이 제나라 말을 〈하기를〉 바란다면, 제나라 사람에게 가르치게 하겠습니까? 초나라 사람에게 가르치게 하겠습니까?” 〈대불승이〉 말하였다. “제나라 사람에게 자식을 가르치게 하겠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한 명의 제나라 사람이 그를 가르치고, 여러 초나라 사람이 그에게 떠든다면 비록 날마다 때려서 그 제나라 말을 요구하더라도, 〈제나라 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끌어다가 〈제나라의 거리인〉 장악(莊嶽)의 사이에 몇 해를 둔다면, 비록 날마다 때려서 그 초나라 말을 요구하더라도 또한 〈초나라 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86 曾子曰 脅肩諂笑 病于夏畦라하며 子路曰 未同而言 觀其色컨대 赧赧然이라 非由之所知也라하니 由是觀之 君子之所養 可知已矣니라 <孟子, 滕文公下>  
증자(曾子)가 말하길,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하며 웃는 것이 여름날 밭농사보다 수고롭다.’ 하였고, 자로(子路)가 말하길, ‘〈뜻이〉 같지 않은데도 말하는 때는 그 낯빛을 보면 얼굴이 붉어져 있으니, 내(자로)가 알고 지낼 사람이 아니다.’ 하였으니, 저 말을 따라서 이 일을 본다면 군자가 기를 것을 알 수 있다네.”
87 聖王 不作하여 諸侯放恣하며 處士橫議하여 楊朱墨翟之言 盈天下하여 天下之言 不歸楊歸墨하니 楊氏 爲我하니 是無君也 墨氏 兼愛하니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니라 公明儀曰 庖有肥肉하며 廐有肥馬하고 民有飢色하며 野有餓莩 率獸而食人也라하니 楊墨之道不息하면 孔子之道不著하리니 邪說 誣民하여 充塞仁義也 仁義充塞이면 則率獸食人하다가 人將相食하리라 <孟子, 滕文公下>  
성왕(聖王)이 나오지 않으니 제후들이 방자하고 처사(處士)들이 제멋대로 의논하여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여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몰리지 않으면 묵적에게 몰렸네. 양씨는 ‘위아설’을 주장하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고, 묵씨는 ‘겸애설’을 주장하니 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네.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것, 이것이 금수라네. 공명의가 말하길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진 말이 있는데도 백성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주려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고서 사람을 먹는 것이다.’ 하니, 양주와 묵적의 도가 사라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바르지 않은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과 의를 막는 것이네. 인과 의가 막히면,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하다가 사람이 장차 서로 먹게 될 것이네.
88 孟子告齊宣王曰 君之視臣 如手足이면 臣視君 如腹心하고 君之視臣 如犬馬 臣視君 如國人하고 君之視臣 如土芥 臣視君 如寇讐니이다 <孟子, 離婁下>  
맹자가 제선왕에게 아뢰어 말하였다. “임금이 신하 보기를 〈제〉 손발과 같이 대하면 신하가 임금 보기를 〈제〉 배와 심장과 같이 여기고, 임금이 신하 보기를 개와 말과 같이 대하면 신하가 임금 보기를 일반 백성과 같이 여기고, 임금이 신하 보기를 하찮은 풀과 같이 대하면 신하가 임금 보기를 도적과 원수와 같이 여길 것입니다.”
89 曰 諫行言聽하여 膏澤 下於民이요 有故而去어든 使人導之出疆하고 又先於其所往하며 去三年不反然後 收其田里하나니 此之謂三有禮焉이니 如此爲之服矣니이다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간언이 행해지고 말이 받아들여져서 은혜가 백성에게 내려지고, 연고가 있어서 떠나면 임금이 사람을 시켜 그를 인도하여 국경을 벗어나게 하고, 또 그가 갈 곳에 먼저 〈현명함을 알리고〉 떠난 지 삼 년동안 돌아오지 않은 뒤에야 그에게 〈내렸던〉 밭과 집을 환수하였으니, 이것을 신하에게 세 가지 예를 갖추었다 이릅니다. 〈신하 대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예전에 섬겼던〉 임금을 위하여 상복을 입을 것입니다.”
90 今也 爲臣하여 諫則不行하며 言則不聽하여 膏澤 不下於民이요 有故而去어든 搏執之하고 又極之於其所往하며 去之日 遂收其田里하나니 此之謂寇讐 寇讐 何服之有리잇고 <孟子, 離婁下>  
지금엔 신하가 되어 간언하더라도 행하지 않으며, 말하더라도 들어주지 않아서 은혜가 백성에게 내려지지 않으며, 연고가 있어서 떠나면 임금이 신하를 붙잡고 또 그가 가는 곳에서 신하를 곤경에 빠트리며, 떠나는 날에 마침내 신하의 밭과 집을 환수하니, 이것을 원수라고 이르니, 원수에게 어찌 상복을 입어주는 일이 있겠습니까?”
91 孟子曰 無罪而殺士大夫可以去 無罪而戮民士可以徙니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군주가〉 죄가 없는데도 사(士)를 죽이면 대부가 그 일로 떠날 수 있고, 죄가 없는데도 백성을 욕보이면 사가 그 일로 옮겨갈 수 있다.”
92 孟子曰 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居之安하고 居之安資之深하고 資之深取之左右 逢其原이니 君子 欲其自得之也니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학문을 함에〉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하는 것은 군자 스스로 본원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니, 본원을 스스로 깨달으면 머무는 것이 편안하고, 머무는 것이 편안하면 취하는 것이 깊어지고, 취하는 것이 깊어지면 취하는 것이 주변에 〈한하더라도〉 그 근원을 만나게 되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스스로 본원을 깨닫고자 한다.”
93 孟子曰 西子蒙不潔이면 人皆掩鼻而過之니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서시(西施)도 더러운 것을 뒤집어쓰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그곳을 지나가지만,
94 雖有惡人이라도 齊戒沐浴이면 可以祀上帝니라 <孟子, 離婁下>  
비록 추한 사람이 있더라도 재계하고 목욕하면 그로써 상제(上帝)에게 제사 지낼 수 있다.”
95 有人於此하니 其待我以橫逆이어든 君子必自反也하여 我必不仁也 必無禮也로다 此物 奚宜至哉오하나니라 <孟子, 離婁下>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를 거슬림으로 대하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돌아보아서 ‘내가 반드시 어질지 못했으며, 반드시 예가 없었구나. 이런 일이 어떻게 마땅히 이르겠는가?’ 한다.
96 禹稷顔子 易地皆然이시리라 <孟子, 離婁下>  
우(禹)임금과 후직(后稷)과 안자(顔子)는 처지를 바꾼다면 모두 그렇게 했을 것이다.
97 鄕鄰 有鬪者어든 被髮纓冠而往救之 惑也 雖閉戶라도 可也니라 <孟子, 離婁下>  
마을의 이웃 중에 싸우는 사람이 있을 때, 머리를 풀어헤치고 갓에 끈만 매고 가서 그들을 말린다면 미혹된 것이니, 비록 문을 닫더라도 괜찮다.
98 孟子曰 曾子子思 同道하니 曾子 師也 父兄也 子思 臣也 微也 曾子子思 易地皆然이시리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이에 대하여〉 말하였다. “증자와 자사는 도가 같은데, 〈다만〉 증자는 스승이자 부형이었고, 자사는 신하이자 미천한 사람이었을 뿐이니, 증자와 자사가 처지를 바꿨다면 모두 그렇게 했을 것이다.”
99 齊人 有一妻一妾而處室者러니 其良人이면 必饜酒肉而後이어늘 其妻問所與飮食者하니 盡富貴也러라 其妻告其妾曰 良人이면 必饜酒肉而後할새 問其與飮食者호니 盡富貴也로되 而未嘗有顯者來하니 吾將瞷良人之所之也호리라하고 蚤起하여 施從良人之所之하니 徧國中호되 無與立談者러니 卒之東郭墦間之祭者하여 乞其餘하고 不足이어든 又顧而之他하니 此其爲饜足之道也러라 其妻歸告其妾曰 良人者 所仰望而終身也어늘 今若此라하고 與其妾으로 訕其良人而相泣於中庭이어늘 而良人 未之知也하여 施施從外來하여 驕其妻妾하더라 <孟子, 離婁下>  
제나라 사람 중에 한 아내와 한 첩을 두고서 집에 사는 자가 있었는데, 그 남편이 외출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난 뒤에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함께 마시고 먹은 사람을 물어보면 모두 부귀한 사람이었다네. 그의 아내가 그 첩에게 알려 말하길, ‘남편이 외출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난 뒤에 돌아오기에 그 함께 마시고 먹은 사람을 물어보니 모두 부귀한 사람인데, 한번도 명성이 있는 사람이 찾아온 일이 있지 않으니, 내가 장차 남편의 가는 곳을 엿보겠네.’ 하고, 일찍 일어나서 남편이 가는 곳을 미행하니, 성 안을 두루 다니되, 함께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동쪽 성곽의 무덤 근처의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가서 그 남은 음식을 구걸하고 충분하지 않으면 또 돌아보고서 다른 곳을 가니, 이것이 그가 배부르기 위한 방법이었다네. 그의 아내가 돌아와서 그의 첩에게 일러 말하길, ‘남편은 우러러 바라보면서 생을 마칠 바인데 지금 이와 같네.’ 하고, 그의 첩과 함께 제 남편을 헐뜯으면서 서로 마당 가운데에서 울었는데, 남편은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의기양양하게 밖으로부터 돌아와 그의 아내와 첩에게 교만하였다네.
100 由君子觀之컨대 人之所以求富貴利達者 其妻妾 不羞也而不相泣者 幾希矣리라 <孟子, 離婁下>  
군자로 말미암아 이것을 본다면, 사람들이 부귀와 이익과 영예를 추구하는 방법은 그의 아내와 첩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거나 서로 울지 않을 일이 거의 드물 것이네.”
101 萬章曰 父母愛之어시든 喜而不忘하고 父母惡之어시든 勞而不怨이니 怨乎잇가 曰 長息 問於公明高曰 舜 往于田 則吾旣得聞命矣어니와 號泣于旻天 于父母 則吾不知也로이다 公明高曰 是 非爾所知也라하니 夫公明高 以孝子之心 爲不若是恝이라 我竭力耕田하여 共爲子職而已矣 父母之不我愛 於我 何哉오하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은〉 기뻐하고 잊지 말아야 하고,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면 〈자식은〉 노력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하니, 그렇다면 순은 〈부모를〉 원망하였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식이 〈스승인〉 공명고에게 물어 말하길 ‘순이 밭에 간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지만, 하늘과 부모에 부르짖으며 운 것은 제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공명고가 말하길, ‘그것은 네(장식)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저 공명고(公明高)는 효자의 마음을 다음처럼 무관심하진 않다고 여겼다네. ‘나는 힘을 다해 밭을 갈아 공손히 자식의 직분을 할 뿐이니, 부모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어떠하겠는가?’라고….
102 少則慕父母하다가 知好色慕少艾하고 有妻子慕妻子하고慕君하고 不得於君熱中이니 大孝 終身慕父母하나니 五十而慕者 予於大舜 見之矣로라 <孟子, 萬章上>  
사람이 어려서는 부모를 사모하다가, 여색을 좋아할 줄 알게 되면 젊고 예쁜 여인을 좋아하고, 아내와 자식을 갖게 되면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며, 벼슬하면 임금을 사모하고, 임금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속을 태우는데, 큰 효자는 생을 마치도록 부모를 사모하니, 오 십에 〈부모를〉 사모하는 것, 나는 위대한 순(舜)에게서 그것을 보았다네.”
103 萬章 問曰 詩云 娶妻如之何 必告父母라하니 信斯言也인댄 宜莫如舜이니 舜之不告而娶 何也잇고 孟子曰 告不得娶하시리니 男女居室 人之大倫也 如告則廢人之大倫하여 以懟父母 是以 不告也시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萬章)이 물어 말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길, ‘아내를 맞이하는 것을 어찌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고해야 한다.’ 하니, 진실로 이 말대로라면 순(舜)처럼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순이 고하지 않고서 장가든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고했다면 장가들 수 없었다네. 남녀가 한 집에 사는 것은 사람의 큰 윤리이니, 만약 고했다면 사람의 큰 인륜을 폐지하여 부모를 원망하였을 것이네. 이 때문에 고하지 않은 것이네.”
104 萬章曰 舜之不告而娶 則吾旣得聞命矣어니와 帝之妻舜而不告 何也잇고 曰 帝亦知告焉이면 不得妻也시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순(舜)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서 장가든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얻어들었지만 요(堯)임금이 〈딸을〉 순에게 시집 보내고서 고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요임금 또한 그들에게 고했다면 시집 보낼 수 없음을 알았다네.”
105 曰 然 僞喜者與잇가 曰 否 昔者 有饋生魚於鄭子産이어늘 子産 使校人으로 畜之池한대 校人 烹之하고 反命曰 始舍之하니 圉圉焉이러니 少則洋洋焉하여 攸然而逝하더이다 子産曰 得其所哉인저 得其所哉인저하여늘 校人 出曰 孰謂子産智 予旣烹而食之어늘 曰 得其所哉인저 得其所哉인저하니 君子 可欺以其方이어니와 難罔以非其道 彼以愛兄之道來 誠信而喜之시니 奚僞焉이시리오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순은 거짓으로 기뻐한 자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옛날에 살아있는 물고기를 정나라 자산(鄭子産)에게 보낸 〈사람이〉 있었는데, 자산이 교인에게 물고기를 연못에서 기르게 하였는데, 교인이 물고기를 삶아 먹고는 돌아와서 보고하여 말하길 ‘처음에 물고기를 놓아주었더니 비실비실하더니 잠시 뒤엔 팔팔해져서 여유로워져서 가버렸습니다.’라고 하자, 자산이 말하길 ‘제자리를 얻었구나. 제자리를 얻었구나.’ 하였다네. 〈그러자〉 교인이 나와서 말하길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고 말하였는가? 내가 이미 물고기를 삶아서 먹었는데, 「제자리를 얻었구나. 제자리를 얻었구나!」 라고 하는구나!’ 〈한 일이 있었다네〉. 그러므로 군자는 올바른 방법으로 속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올바른 방법아닌 것으로 속이기는 어렵다네. 저 상이 형을 사랑하는 도리로써 왔다네. 그러므로 〈순은〉 진실로 상의 행위를 믿고서 기뻐하였으니, 〈순이 기뻐한 일이〉 어찌 거짓이겠는가?”
106 舜有天下也 孰與之잇고 曰 天與之시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물었다.〉 “그렇다면, 순임금이 소유한 천하는 누가 그것을 준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천하를 준 것이네.”
107 舜有天下也 孰與之잇고 <孟子, 萬章上>  
〈만장이 물었다.〉 “그렇다면, 순임금이 천하를 소유하였으니, 누가 천하를 그에게 준 것입니까?”
108 萬章 問曰 人 有言호되 至於禹而德衰하여 不傳於賢而傳於子라하니 有諸잇가 孟子曰 否 不然也 與賢與賢하고 與子與子니라 昔者 薦禹於天十有七年 舜崩커시늘 三年之喪하고 禹避舜之子於陽城이러시니 天下之民 從之 若堯崩之後 不從堯之子而從舜也하니라 禹薦益於天七年 禹崩커시늘 三年之喪하고 避禹之子於箕山之陰이러니 朝覲訟獄者 不之益而之啓曰 吾君之子也라하며 謳歌者 不謳歌益而謳歌啓曰 吾君之子也라하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물어 말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길, ‘우임금때에 이르러 덕이 쇠퇴하여 현명한 사람에게 〈왕의 지위를〉 전하지 않고 아들에게 전수하였다’라고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네. 그렇지 않다네. 하늘이 현명한 사람에게 주게 하면 현명한 사람에게 주고, 하늘이 아들에게 주게 하면 아들에게 주는 것이네. 옛날에 순임금이 우임금을 하늘에 천거한 지 열하고 또 일곱 해 만에 순임금이 죽자, 삼 년의 상을 마치고 우임금은 순임금의 아들을 양성으로 피해 갔는데, 천하의 백성들이 우임금을 따르기를 요임금이 죽은 뒤에 요임금의 아들을 따르지 않고 순임금을 따른 것과 같았다네. 우임금이 익을 하늘에 천거한 지 일곱 해 만에 우임금이 죽자, 삼 년의 상을 마치고 익은 우임금의 아들을 기산의 북쪽으로 피했는데, 조회하고 송사하는 자들이 익에게 가지 않고 계에게 가며 말하길, ‘우리 임금의 아들이다.’라고 하였으며, 칭송하는 자들은 익을 칭송하지 않고 계를 칭송하며 말하길, ‘우리 임금의 아들이다.’라고 하였다네.
109 孟子曰 伯夷 目不視惡色하며 耳不聽惡聲하고 非其君不事하며 非其民不使하여하고退하여 橫政之所出 橫民之所止 不忍居也하며 思與鄕人處호되 如以朝衣朝冠으로 坐於塗炭也러니 當紂之時하여 居北海之濱하여 以待天下之淸也하니 聞伯夷之風者 頑夫廉하며 懦夫有立志하니라 <孟子, 萬章下>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는 눈으로 나쁜 색을 보지 않았고, 귀로 나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올바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올바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아서,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나서, 나쁜 정치가 나오는 곳과 나쁜 백성이 머무르는 곳에는 차마 거주하지 않았으며, 속인과 함께 지냄을 생각하되, 마치 조정의 옷과 조정의 관으로써 더러운 곳에 앉아 있는 듯 하더니, 주의 시대를 당하여 북쪽 바다의 물가에 살면서, 천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렸으니,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를 들은 자는 욕심 많은 사내는 청렴해지고, 나약한 사내는 뜻을 세움이 있었다.
110 巧也力也 由射於百步之外也하니 其至 爾力也어니와 其中 非爾力也니라 <孟子, 萬章下>  
지를 비유하면 기교이고, 성을 비유하면 힘이다. 백 보의 밖에서 활 쏘는 것과 같으니, 그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는 것은 너의 힘 〈때문〉이지만, 그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는 것은 너의 힘이 아니다.”
111 孟獻子 百乘之家也 有友五人焉하더니 樂正裘 牧仲이요 其三人 則予忘之矣로라 獻子之與此五人者 友也 無獻子之家者也 此五人者 亦有獻子之家 不與之友矣리라 <孟子, 萬章下>  
맹헌자는 백승의 집안이네. 벗 다섯 사람이 그에게 있었는데 악정구와 목중이고, 그들 〈외에〉 세 사람은 내가 이름을 잊었네. 맹헌자가 이 다섯 사람과 벗할 적에 맹헌자가 〈백승의〉 집안이라는 것을 〈의식함이〉 없었으니, 이들 다섯 사람이 또한 헌자의 집안을 〈의식함이〉 있었다면 그들과 벗하지 않았을 것이네.
112 非惟小國之君 爲然也 雖大國之君이라도 亦有之하니 晉平公之於亥唐也 入云하고 坐云하고 食云하여 雖疏食菜羹이라도 未嘗不飽하니 蓋不敢不飽也이나 終於此而已矣 弗與共天位也하며 弗與治天職也하며 弗與食天祿也하니 士之尊賢者也 非王公之尊賢也니라 <孟子, 萬章下>  
오직 작은 나라의 군주만이 그리 한 것은 아니네. 비록 큰 나라의 군주라도 또한 그런 일이 있으니,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해당(亥唐)을 대할 때에 〈해당이〉 들어오라고 말하면 들어가고, 앉으라고 말하면 앉고, 먹으라고 말하면 먹어서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일찍이 배불리 먹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대개 감히 배불리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네. 그러나 거기에 끝날 뿐이었네. 그와 함께 하늘이 내린 지위를 공유하지 않았으며, 그와 함께 하늘이 내린 직책을 다스리지 않았으며, 그와 함께 하늘이 내린 녹을 받지 않았으니, 〈이것은〉 선비가 현자를 높이는 것이지, 왕공이 현자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네.
113 曰 然孔子之仕也 非事道與잇가 曰 事道也시니라 事道어시니 奚獵較也잇고 曰 孔子先簿正祭器하사 不以四方之食으로 供簿正하시니라 曰 奚不去也시니잇고 曰 爲之兆也시니 兆足以行矣로되 而不行而後하시니 是以 未嘗有所終三年淹也시니라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공자가 벼슬한 것은 도 행하기를 일삼은 것이 아닙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도 행하기를 일삼은 것이라네.” 〈만장이 말하였다.〉 “〈공자가〉 도 행하기를 일삼았다면 어찌 엽각을 한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공자는 미리 문서로 제사의 기물을 정해서 사방의 음식으로써 〈구하기 어려울까〉 문서로 정해둔 음식을 공급하지 못하게 한 것이네.” 〈만장이〉 말하였다. “어찌 떠나지 않은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도를 행할 조짐을 〈보여주신〉 것이네. 조짐으로 〈도를〉 행하기에 충분한데도 〈도가〉 행해지지 않은 뒤에 떠났다네. 이 때문에 일찍이 삼 년을 다하도록 지체한 곳이 있지 않았던 것이네.
114 萬章曰 君 餽之粟이면 受之乎잇가 曰 受之니라 受之 何義也잇고 曰 君之於氓也 固周之니라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임금이 선비에게 곡식을 주면 곡식을 받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곡식을 받는다네.” 〈만장이 말하였다.〉 “곡식을 받는 것은 무슨 의리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이 백성을 대할 때에 진실로 백성을 구휼한다네.”
115 曰 周之하고 賜之不受 何也잇고 曰 不敢也니라 曰 敢問其不敢 何也잇고 曰 抱關擊柝者 皆有常職하여 以食於上하나니 無常職而賜於上者 以爲不恭也니라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군주가〉 자신을 구휼해 주면 받고, 자신에게 녹을 주면 받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이네.” 〈만장이〉 말하였다. “감히 묻습니다. 그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관문을 안고 목탁을 치는 자는 모두 일정한 직책이 있어서 윗사람에게 녹을 먹는데, 일정한 직책이 없으면서 윗사람에게 하사받는 것을 공손하지 않다고 여긴다네.”
116 曰 君 餽之受之라하시니 不識케이다 可常繼乎잇가 曰 繆公之於子思也 亟問하시며 亟餽鼎肉이어늘 子思不悅하사 於卒也 摽使者하여 出諸大門之外하시고 北面稽首再拜而不受하시고 曰 今而後 知君之犬馬畜伋이라하시니 蓋自是 臺無餽也하니 悅賢不能擧 又不能養也 可謂悅賢乎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임금이 구휼할 것을 보내주면 그것을 받는다고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계속 〈받아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목공이 자사를 대할 적에는 자주 문안하고 자주 삶은 고기를 보냈는데, 자사는 기뻐하지 않고서 결국에는 심부름 보낸 자를 물리쳐서 대문의 밖으로 내보내고, 북쪽을 마주하고 머리를 조아려 재배하고서 받지 않으며 말하길, ‘오늘 이후에 임금께서 개와 말처럼 나를 길렀다는 것을 알았다.’ 하였으니, 대체로 이때부터 〈명을 받은〉 하인을 〈통해〉 〈물건을〉 보낸 일이 없었으니, 현명한 자를 좋아하면서 등용할 수 없고 또 봉양할 수 없다면, 현명한 자를 좋아한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117 萬章曰 庶人 召之役往役하고 欲見之하여 召之不往見之 何也잇고 曰 往役 義也 往見 不義也니라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서민이 〈임금이〉 자신을 불러 부역시키면 가서 부역하고, 임금이 자신을 만나고자 하여 자신을 부르면 가서 임금을 만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가서 부역하는 것은 의리이고, 가서 만나는 것은 의리가 아니라네.”
118 且君之欲見之也 何爲也哉 曰 爲其多聞也 爲其賢也니이다 曰 爲其多聞也인댄 天子 不召師 而況諸侯乎 爲其賢也인댄 吾未聞欲見賢而召之也로라 繆公 亟見於子思하고 曰 古 千乘之國 以友士하니 何如하니잇고 子思不悅曰 古之人 有言曰 事之云乎언정 豈曰友之云乎리오하시니 子思之不悅也 豈不曰 以位則子 君也 臣也 何敢與君友也 以德則子 事我者也 奚可以與我友리오 千乘之君 求與之友로되 而不可得也 而況可召與 <孟子, 萬章下>  
또 임금이 그를 만나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만장이〉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며, 그가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라면 천자도 스승을 부르지 않는데, 하물며 제후가 〈그를 부르〉겠는가? 그가 현명하기 때문이라면 나는 어진이를 만나고자 하여 어진이를 부르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네. 목공이 자사를 자주 만나서 말하길, ‘옛날에 천승의 나라를 〈가진 군주〉로서 선비와 벗하였으니, 어떠합니까?’ 하자, 자사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길, ‘옛사람이 말에 이르길, 「그를 섬겼다고 말할지언정 어찌 그와 벗하였다 말하겠습니까?」’ 하였으니, 자사가 기뻐하지 않은 것은 어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위로는 그대는 임금이고 나는 신하이니, 어찌 감히 임금과 벗하겠습니까? 덕으로는 그대는 나를 섬기는 자이니, 어찌 나와 벗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천승의 임금도 자사와 벗하기를 구해서 얻을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함부로〉 부를 수 있겠는가?
119 萬章曰 孔子 命召어시든 不俟駕而行하시니孔子 非與잇가 曰 孔子 當仕有官職而以其官召之也니라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공자는 임금이 명령하여 부르면 멍에 메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갔으니, 그렇다면 공자는 잘못한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공자는 벼슬을 담당하여 관직이 있었는데, 〈임금은〉 그 관직으로 공자를 부른 것이라네.”
120 齊宣王 問卿한대 孟子曰 王 何卿之問也시니잇고 王曰 卿 不同乎잇가 曰 不同하니 有貴戚之卿하며 有異姓之卿하니이다 王曰 請問貴戚之卿하노이다 曰 君有大過하고 反覆之而不聽易位니이다 <孟子, 萬章下>  
제(齊)나라 선왕이 경(卿)에 대해 묻자,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어떤 경을 묻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경이 같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같지 않습니다. 귀척(貴戚)의 경이 있고, 이성(異姓)의 경이 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귀척의 경을 묻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에게 큰 잘못이 있으면 간언하고, 간언을 반복하는데도 듣지 않으면 〈임금의〉 자리를 바꿉니다.”
121 色定然後 請問異姓之卿한대 曰 君有過하고 反覆之而不聽니이다 <孟子, 萬章下>  
왕이 얼굴색이 안정된 뒤에 이성(異姓)의 경에 대해 묻자,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간언하고, 간언을 반복하는데도 듣지 않으면 떠납니다.”
122 告子曰 性 猶湍水也 決諸東方東流하고 決諸西方西流하나니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水之無分於東西也니라 <孟子, 告子上>  
고자가 말하였다. “성은 여울물과 같습니다.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로 흐르니, 사람의 성품이 선과 불선에 구분이 없음은 물이 동서에 구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123 犬之性 猶牛之性이며 牛之性 猶人之性與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개의 성(性)이 소의 성(性)과 같으며, 소의 성(性)이 사람의 성(性)과 같다 〈고 말하는 것〉 입니까?”
124 曰 吾弟愛之하고 秦人之弟不愛也하나니 以我爲悅者也 謂之內 長楚人之長하며 亦長吾之長하나니 以長爲悅者也 謂之外也라하노라 <孟子, 告子上>  
〈고자가〉 말하였다. “내 아우이면 아우를 사랑하고 진(秦)나라 사람의 아우이면 사랑하지 않으니, 이는 나를 〈위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仁)을 ‘안에 있다’ 이른 것입니다. 초(楚)나라 사람의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고 또 나의 어른도 어른으로 여기니, 이는 나이가 많은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義)를 ‘밖에 있다’ 이른 것입니다.”
125 鄕人 長於伯兄一歲 誰敬 曰 敬兄이니라誰先 曰 先酌鄕人이니라 所敬 在此하고 所長 在彼하니 果在外 非由內也로다 <孟子, 告子上>  
〈맹계자가 말하였다.〉 “시골 사람이 맏형보다 한 살 많으면 누구를 공경하겠습니까?” 〈공도자가〉 말하였다. “형을 공경합니다.” 〈맹계자가 말하였다.〉 “술을 따르면 누구에게 먼저 하겠습니까?” 〈공도자가〉 말하였다. “시골 사람에게 먼저 따릅니다.” 〈맹계자가 말하였다.〉 “공경하는 바는 형에게 있고 어른으로 여기는 바는 고을 사람에게 있으니, 과연 밖에 있는 것이지, 안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126 公都子不能答하여 以告孟子한대 孟子曰 敬叔父乎 敬弟乎아하면 彼將曰敬叔父라하리라 曰弟爲尸誰敬고하면 彼將曰敬弟라하리라 子曰 惡在其敬叔父也오하면 彼將曰在位故也라하리니 子亦曰 在位故也라하라 庸敬 在兄하고 斯須之敬 在鄕人하니라 <孟子, 告子上>  
공도자(公都子)가 대답할 수 없어서 맹자에게 고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숙부를 공경하는가? 동생을 공경하는가?’ 〈말하면〉, 맹계자는 장차 ‘숙부를 공경한다.’ 말할 것이네. 〈그대가〉 ‘동생이 시동(尸童)이 되면 누구를 공경하겠는가?’ 말하면, 맹계자는 장차 ‘동생을 공경한다.’ 말할 것이네. 그대가 ‘어디에 그 숙부를 공경함이 있는가?’ 말하면, 맹계자는 장차 ‘시동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말할 것이네. 그대 역시 ‘빈객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게. 평소의 공경은 형에게 있고 잠깐의 공경은 마을 사람에게 있다네.”
127 季子聞之하고 曰 敬叔父則敬하고 敬弟하니 果在外 非由內也로다 公都子曰 冬日飮湯하고 夏日飮水하나니飮食 亦在外也로다 <孟子, 告子上>  
맹계자(孟季子)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숙부를 공경할 때엔 〈숙부를〉 공경하고, 아우를 공경할 때엔 〈아우를〉 공경하니, 〈의는〉 과연 밖에 있는 것이지, 안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공도자가 말하였다. “겨울날에는 끓는 물을 마시고 여름날엔 찬 물을 마시니, 그렇다면 마시고 먹는 것 또한 밖에 있는 것입니다.”
128 或曰 性 可以爲善이며 可以爲不善이니 是故 文武興民好善하고 幽厲興民好暴라하고 <孟子, 告子上>  
혹자는 말하길, ‘성으로 선(善)하게 만들 수 있으며, 〈성〉으로 불선(不善)하게 만들 수 있으니, 이 때문에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선(善)을 좋아하고,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포악함을 좋아한다.’ 하고,
129 今曰 性善이라하시니彼皆非與잇가 <孟子, 告子上>  
〈선생께서〉 지금 말하시길, ‘성(性)이 선(善)하다.’ 하시니, 그렇다면 저들이 모두 틀린 것입니까?”
130 惻隱之心 人皆有之하며 羞惡之心 人皆有之하며 恭敬之心 人皆有之하며 是非之心 人皆有之하니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언마는 弗思耳矣 曰 求得之하고失之라하니 或相倍蓰而無算者 不能盡其才者也니라 <孟子, 告子上>  
측은해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공경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니, 측은지심은 인(仁)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이고 공경지심은 예(禮)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이니, 인·의·예·지가 밖으로부터 나를 녹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인의예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네. 그러므로 말하길, ‘구하면 인의예지를 얻고, 버리면 인·의·예·지를 잃는다.’ 하는 것이니, 혹 〈선악의 차이가〉 서로 두 배, 다섯 배가 되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자기의 〈타고난〉 재질을 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네.
131 雖存乎人者인들 豈無仁義之心哉리오마는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어니 可以爲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 與人相近也者幾希어늘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나니 梏之反覆이면 其夜氣不足以存이요 夜氣不足以存이면 其違禽獸 不遠矣 見其禽獸也하고 而以爲未嘗有才焉者라하나니 是豈人之情也哉리오 <孟子, 告子上>  
비록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 사람이 스스로의 양심(良心)을 잃은 까닭은 또한 도끼가 나무를 를 만나면 날마다 나무를 베어버리는 것과 같으니, 〈산이〉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 밤낮의 자라는 바와 새벽의 기운에, 그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본성이〉 다른 사람과 서로 가까운 것이 거의 없는데, 곧 그 낮에 행동하는 것이 본성을 구속하여 없앰이 있으니, 구속을 반복하면 그 밤 기운이 보존되는 것이 충분하지 않고, 밤 기운이 보존되는 것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으니, 사람이 그 금수를 보고서 ‘일찍이 그 사람에게 재질이 없었다’ 여길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 모습이겠는가?
132 孔子曰 操하고하여 出入無時하며 莫知其鄕 惟心之謂與인저하시니라 <孟子, 告子上>  
공자가 말하길,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서, 나가고 들어옴이 〈일정한〉 때가 없으며 그 〈어디로 갈지〉 방향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오직 마음을 이르는 것이리라.’ 하였다.”
133 今夫奕之爲數 小數也 不專心致志 不得也 奕秋 通國之善奕者也 使奕秋 誨二人奕이어든 其一人 專心致志하여 惟奕秋之爲聽하고 一人 雖聽之 一心 以爲有鴻鵠將至어든 思援弓繳而射之하면 雖與之俱學이라도 弗若之矣나니 爲是其智弗若與 曰非然也니라 <孟子, 告子上>  
지금 저 바둑에서 수는 두는 작은 기예지만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혁추(奕秋)는 온 나라의 〈사람〉 가운데에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다. 혁추로 하여금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하면, 그 중 한 사람은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하여 오직 혁추의 〈말〉을 따르고, 〈다른〉 한 사람은 비록 혁추의 말을 듣더라도 한쪽의 마음으로 생각하되, ‘기러기와 큰 새가 있어 장차 이르면 활과 주살을 당겨서 새를 쏘아 맞히겠다.’ 생각한다면, 비록 그와 함께 배우더라도 그 사람과 같지 못할 것이니, 이는 그가 지혜가 같지 않기 때문인가?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134 一簞食 一豆羹 得之하고 弗得라도 嘑爾而與之 行道之人 弗受하며 蹴爾而與之 乞人 不屑也니라 <孟子, 告子上>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꾸짖으면서 밥과 국을 주면 길 가던 사람도 받지 않으며 발로 차서 밥과 국을 주면 빌어먹는 사람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135 萬鍾不辨禮義而受之하나니 萬鍾 於我何加焉이리오 爲宮室之美 妻妾之奉 所識窮乏者得我與인저 <孟子, 告子上>  
만종(萬鍾)의 〈많은 양〉이면 예의를 살피지 않고 녹을 받으니, 만종의 〈녹이〉 나에게 무슨 보탬이겠는가? 집의 아름다움, 처첩의 봉양, 알던 바 궁핍한 자들이 나에게 얻어 〈고마워 하는 것〉 때문일 것이다.
136 有鷄犬放知求之호되 有放心而不知求하나니 <孟子, 告子上>  
사람은 닭과 개가 잃어버린 일이 있으면 도망간 가축을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는데도 찾을 줄 모르니,
137 指不若人이면 知惡之호되 心不若人이면 則不知惡하나니 此之謂不知類也니라 <孟子, 告子上>  
손가락이 남과 같지 않으면 그것을 싫어할 줄 알면서 마음이 남과 같지 않으면 싫어할 줄 알지 못하니 이것을 〈경중의〉 등급을 알지 못한다고 이른다.”
138 孟子曰 人之於身也 兼所愛 兼所愛 兼所養也 無尺寸之膚 不愛焉이면 無尺寸之膚 不養也 所以考其善不善者 豈有他哉리오 於己 取之而已矣니라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자신의〉 몸에 대하여 사랑하는 것이 같으니, 사랑하는 것이 같으면 기르는 것이 같다. 한 자, 한 치의 피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으면 한 자, 한 치의 피부를 가꾸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니, 그 〈기름의〉 잘잘못을 상고하는 방법이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자기에게서 잘잘못을 취할 뿐이다.
139 今有場師 舍其梧檟하고 養其樲棘하면 爲賤場師焉이니라 <孟子, 告子上>  
지금 한 원예사[場師]가 그 좋은 오동나무를 버리고 그 작은 대추나무를 기른다면, 수준 낮은 원예사가 될 것이다.
140 養其一指하고 而失其肩背而不知也 爲狼疾人也니라 <孟子, 告子上>  
자신의 한 손가락만을 기르고 자신의 어깨와 등을 잃고서도 알지 못한다면, 서두르는 늑대처럼 〈부족한〉 사람이다.
141 飮食之人 無有失也 口腹 豈適爲尺寸之膚哉리오 <孟子, 告子上>  
마시고 먹기 〈좋아하〉는 사람이 〈큰 것을 기르는 것을〉 잃는 일이 없다면, 입과 배가 어찌 다만 한 자, 한 치의 피부가 될 뿐이겠는가?”
142 曰 鈞是人也로되 或從其大體하며 或從其小體 何也잇고 曰 耳目之官 不思而蔽於物하나니 物交物引之而已矣 心之官則思得之하고 不思不得也 此天之所與我者 先立乎其大者 其小者 不能奪也 此爲大人而已矣니라 <孟子, 告子上>  
〈공도자가〉 말하였다. “똑같이 사람인데, 어떤 이는 그 대체를 따르며 어떤 이는 그 소체를 따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귀와 눈이란 기관은 생각하지 못하여 물건에 가려지니 외물(外物)이 〈이목(耳目)이라는〉 물과 접촉하면 〈이목은〉 외물에 끌려갈 뿐이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대체를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네. 이것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준 것이니, 먼저 그 큰 것(마음)을 세운다면 그 작은 것(이목)이 빼앗을 수 없으니, 이것이 대인이 된 까닭일 뿐이라네.”
143 今之人 修其天爵하여 以要人爵하고 旣得人爵이어든 而棄其天爵하나니 惑之甚者也 終亦必亡而已矣니라 <孟子, 告子上>  
오늘의 사람은 그 천작을 닦아서 인작을 구하고, 이미 인작을 얻으면 그 천작을 버리니, 그렇다면 〈이는〉 미혹됨 중에 심한 것이다. 끝내 또 반드시 〈인작을〉 잃을 뿐이다.”
144 孟子曰 仁之勝不仁也 猶水勝火하니 今之爲仁者 猶以一杯水 救一車薪之火也 不熄謂之水不勝火라하나니 此又與於不仁之甚者也니라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인(仁)이 불인(不仁)을 이기는 것은 물이 불을 이기는 것과 같으니, 지금의 인을 행하는 사람은 한 잔의 물로 한 수레 섶의 불을 끄는 것과 같다. 꺼지지 않으면 그것을 일러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니, 이는 또 불인을 돕는 것이 심한 것이다.
145 曰 禮重이니라 曰 以禮食飢而死하고 不以禮食得食이라도 必以禮乎 親迎不得妻하고 不親迎得妻라도 必親迎乎 <孟子, 告子下>  
〈옥려자가〉 말하였다. “예가 중요합니다.” 〈임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예로써 먹으면 굶어서 죽고 예로써 먹지 않으면 먹을 수 있더라도, 반드시 예로써 해야 합니까? 〈아내를〉 친영(親迎)하면 아내를 얻지 못하고 친영하지 않으면 아내를 얻더라도, 반드시 친영해야 합니까?”
146 往應之曰 紾兄之臂而奪之食得食하고 不紾不得食이라도 則將紾之乎 踰東家牆而摟其處子得妻하고 不摟不得妻라도 則將摟之乎아하라 <孟子, 告子下>  
〈자네는 임나라 사람에게〉 가서 그 말에 응하여 〈이렇게〉 말하게. ‘형의 팔을 비틀어 형에게 음식을 뺏으면 음식을 얻고 비틀지 않으면 음식을 얻지 못하더라도 장차 형의 팔을 비틀겠는가? 동쪽 집의 담장을 넘어 그 처자를 끌고 오면 아내를 얻고 끌고 오지 않으면 아내를 얻지 못하더라도 장차 처자를 끌고 오겠는가?’라고.”
147 聞 文王 十尺이요 九尺이라하니 今交 九尺四寸以長이로되 食粟而已로니 如何니잇고 <孟子, 告子下>  
〈조교가 말하였다.〉 “제가 들으니, ‘문왕은 〈키가〉 열 자이고, 탕왕은 〈키가〉 아홉 자이다.’ 하니, 지금 저는 아홉 자 네 치만큼 큰데도 〈재능 없이〉 곡식을 먹고 있을 뿐이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148 曰 奚有於是리오 亦爲之而已矣니라 有人於此하니 力不能勝一匹雛 爲無力人矣 今曰擧百鈞이면 爲有力人矣擧烏獲之任이면 是亦爲烏獲而已矣니라 夫人 豈以不勝爲患哉리오 弗爲耳니라 <孟子, 告子下>  
〈맹자가〉 말하였다. “〈요순처럼 되는 것이〉 어찌 신장에 달려 있겠습니까? 또한 〈요순과 같은〉 노력을 하〈면 될〉 뿐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 힘이 한 마리 오리 새끼를 이길 수 없으면 힘없는 사람이 되고, 만약 ‘백 균을 든다.’고 한다면 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니, 그렇다면 오확(烏獲)의 짐을 든다면 그 또한 오확이 될 뿐입니다. 대체 사람들은 왜 이겨내지 못할 것으로 근심을 삼을까요? 〈근심할 것은 요순의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149 曰 昔者 王豹處於淇 而河西善謳하고 綿駒處於高唐 而齊右善歌하고 華周杞梁之妻 善哭其夫 而變國俗하니 有諸內 必形諸外하나니 爲其事而無其功者 未嘗覩之也로니 是故 無賢者也髡必識之니이다 <孟子, 告子下>  
〈순우곤이〉 말하였다. “옛날에 왕표(王豹)가 기수(淇水)에 거처하자 하서(河西)의 〈사람들이〉 노래를 잘하였고, 면구(綿駒)가 고당(高唐)에 거처하자 제(齊)나라 서쪽 지방 〈사람들이〉 노래를 잘하였고, 화주(華周)와 기량(杞梁)의 아내가 제 남편의 〈상(喪)에〉 곡(哭)을 잘하자 나라의 풍속이 변했습니다. 안에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드러납니다. 그러한 일을 하고서 그러한 공이 없는 사람을 나는 그런 사람을 일찍이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 세상에〉 어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있다면 내가 반드시 그런 사람을 알았을 것입니다.”
150 天子適諸侯曰巡狩 諸侯朝於天子曰述職이니 春省耕而補不足하며 秋省斂而助不給하나니 入其疆하니 土地辟하며 田野治하며 養老尊賢하며 俊傑 在位하면 有慶이니 慶以地하고 入其疆하니 土地荒蕪하며 遺老失賢하며 掊克 在位하면 有讓이니 一不朝貶其爵하고 再不朝削其地하고 三不朝六師 移之 是故 天子 討而不伐하고 諸侯 伐而不討하나니 五霸者 摟諸侯하여 以伐諸侯者也 曰 五霸者 三王之罪人也라하노라 <孟子, 告子下>  
천자가 제후국에 가는 것을 순행(巡狩)이라 하고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하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하는데, 봄에는 김매기를 살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고, 가을에는 수확하는 것을 살펴서 넉넉하지 못한 것을 돕는다. 〈천자가〉 제후의 경내에 들어갔더니, 토지가 〈잘〉 개간되었으며 논밭과 들판이 〈잘〉 다스려졌으며 노인을 봉양하고 어진 이를 높이며 뛰어나고 출중한 이가 벼슬자리에 있으면 상을 주는데 땅으로 상을 준다. 제후의 경내에 들어갔더니, 토지는 황폐하며 노인을 버려두고 어진 이를 잃어버리며 세금을 많이 거두는 이가 벼슬자리에 있으면 꾸짖음이 있다. 한 번 조회하지 않으면 제후의 관작을 강등시키고 두 번 조회하지 않으면 제후의 토지를 줄이고 세 번 조회하지 않으면 〈천자가〉 6군을 〈보내〉 그 제후를 바꿔버린다. 이 때문에 천자는 〈죄를〉 성토하고 정벌하지 않으며 제후는 〈죄를〉 정벌하고 성토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패는 제후를 이끌어서 제후를 정벌한 자이니, 그러므로 말하길 ‘오패는 삼왕에게 죄인이다.’ 하였다.
151 今魯 方百里者五 子以爲有王者作인댄 魯在所損乎 在所益乎 <孟子, 告子下>  
지금 노나라가 사방 백 리인 땅이 다섯이오. 그대 생각에는, 왕업을 이루는 자가 나오는 일이 있다면 노나라는 줄어드는 편에 있겠소? 더해지는 편에 있겠소?
152 萬室之國 一人可乎 曰 不可하니 器不足用也니이다 <孟子, 告子下>  
만 가구가 〈사는〉 나라에서 한 사람이 질그릇을 만들면 되겠소?” 〈백규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그릇이 쓰기에 부족합니다.”
153 夫苟不好善이면 則人將曰 訑訑 予旣已知之矣로라하리니 訑訑之聲音顔色 距人於千里之外하나니 士止於千里之外하면 讒諂面諛之人 至矣리니 與讒諂面諛之人居 國欲治인들 可得乎 <孟子, 告子下>  
대체로 진실로 선을 좋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길, ‘으쓱거릴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리니, 으쓱거리는 음성과 얼굴빛은 사람을 천 리의 밖에서 막는다. 선비가 천 리의 밖에서 멈춘다면 참소하고 아첨하고 면전에서 아부하는 사람이 이를 것이니, 참소하고 아첨하고 면전에서 아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면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한들 할 수 있겠는가?”
154 陳子曰 古之君子 何如니잇고 孟子曰 所就三이요 所去三이니라 <孟子, 告子下>  
진자(陳子)가 말하였다. “옛날의 군자는 어찌하면 벼슬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벼슬에 나아간 경우가 셋, 물러난 경우가 셋이었다네.
155 迎之致敬以有禮하며 言將行其言也就之하고 禮貌未衰 言弗行也去之니라 <孟子, 告子下>  
〈임금이〉 맞이할 적에 공경을 다하여 예를 갖추며, ‘장차 그 말을 행하겠다.’ 말하면 〈군자는〉 그 임금에게 나아갔고, 예우하는 모습은 시들지 않았으나 말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그 임글을 떠났다네.
156 其次 雖未行其言也 迎之致敬以有禮就之하고 禮貌衰去之니라 <孟子, 告子下>  
그 다음으로는, 비록 아직 그의 말을 행하지 않았으나, 맞이할 적에 공경을 다하여 예를 갖추면 임금에게 나아가고, 예우하는 모습이 시들면 임금을 떠났다네.
157 無法家拂士하고無敵國外患者 國恒亡이니라 <孟子, 告子下>  
들어가서는 법도 있는 집안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나가서는 적국과 외환이 없는 자는 나라가 항상 망한다.
158 孟子曰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知天矣니라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그 성을 아니,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159 孟子曰 求得之하고失之하나니 是求 有益於得也 求在我者也일새니라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구하면 구하는 것을 얻고 버려두면 버려둔 것을 잃으니, 이처럼 구하는 것은 얻은 것에서 보탬이 있으니,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해서이다.
160 古之人 得志하얀 澤加於民하고 不得志하얀 修身見於世하니獨善其身하고兼善天下니라 <孟子, 盡心上>  
옛날의 사람들은 뜻을 이루면 은택이 백성에게 더해지고 뜻을 얻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냈으니, 곤궁하면 홀로 자기 몸을 선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감화시켜 선하게 하였다네.”
161 孟子曰 有事君人者하니 事是君이면 爲容悅者也니라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기는 사람이 있으니, 그 임금을 섬기면 〈임금에게〉 용납되고 〈임금을〉 기쁘게 하는 자이다.
162 孟子曰 伯夷辟紂하여 居北海之濱이러니 聞文王作하고 興曰 盍歸乎來리오 吾聞西伯 善養老者라하고 大公 辟紂하여 居東海之濱이러니 聞文王作하고 興曰 盍歸乎來리오 吾聞西伯 善養老者라하니 天下 有善養老 仁人 以爲己歸矣리라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伯夷)는 주(紂)왕을 피하여 북해(北海)의 가에 살았는데,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분발하여 말하길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듣기에, 서백(西伯, 문왕)은 노인을 잘 봉양하는 사람이다.’ 하였다. 태공(大公)은 주(紂)왕을 피하여 동해의 가에 살았는데, 문왕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분발하여 말하길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듣기에 서백은 노인을 잘 봉양하는 사람이다.’ 하니, 천하에 노인을 잘 봉양하는 이가 있으면 어진 사람들이 그곳을 자신이 돌아갈 곳으로 삼을 것이다.
163 五畝之宅 樹墻下以桑하여 匹婦蠶之 老者足以衣帛矣 五母雞 二母彘 無失其時 老者足以無失肉矣 百畝之田 匹夫耕之 八口之家 可以無飢矣리라 <孟子, 盡心上>  
5묘의 집 담 아래에 뽕나무를 심어서 한 아내가 거기에 누에를 치면 늙은 이가 충분히 그것으로 비단옷을 입을 수 있고, 다섯 마리 암탉과 두 마리 암퇘지를 〈기르되〉 그 〈새끼칠〉 때를 잃지 않으면 늙은 이가 충분히 그것으로 고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100묘의 밭에 한 남자가 그곳을 경작하면 여덟 식구의 집안이 그것으로 굶주림이 없을 수 있다.
164 人能無以饑渴之害 爲心害 不及人 不爲憂矣리라 <孟子, 盡心上>  
사람이 굶주림과 목마름의 방해를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할까를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165 賢者之爲人臣也 其君 不賢이면 固可放與잇가 <孟子, 盡心上>  
어진 사람이 남의 신하가 된 때에 자기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정말 추방해도 됩니까?”
166 孟子曰 有伊尹之志커니와 無伊尹之志簒也니라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이윤과 〈같〉은 뜻이 있으면 괜찮지만, 이윤과 〈같〉은 뜻이 없으면 찬탈(簒奪)이라네.”
167 公孫丑曰 詩曰 不素餐兮라하니 君子之不耕而食 何也잇고 孟子曰 君子居是國也 其君 用之 安富尊榮하고 其子弟從之 孝弟忠信하나니 不素餐兮 孰大於是리오 <孟子, 盡心上>  
공손추가 말하였다. “《시경(詩經)》 〈〈벌단(伐檀)〉에〉 이르길 ‘공짜 밥을 먹지 않는다.’ 하니, 군자가 밭 갈지 않고 먹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어떤 나라에 거처할 때에 그 임금이 그를 등용하면 〈그 나라는〉 편안해지고 부유해지며 존귀해지고 영예로우며, 그 자제들이 그를 따르면 〈자제는〉 효도하고 공손하며 충성스럽고 미덥게 〈되니〉 ‘공짜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에서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168 桃應 問曰 舜爲天子 皐陶爲士어든 瞽瞍殺人이면 如之何잇고 <孟子, 盡心上>  
도응이 물어 말하였다. “순(舜)이 천자가 되고 고요(皐陶)가 사(士)가 되었는데, 고수(瞽瞍)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어찌하겠습니까?”
169 不禁與잇가 <孟子, 盡心上>  
〈도응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순임금은 막지 않았겠습니까?”
170 如之何잇고 <孟子, 盡心上>  
〈도응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순임금은 그 일을 어떻게 했겠습니까?”
171 孟子曰 盡信書 不如無書니라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서경(書經)》을 모두 믿으면 《서경(書經)》이 없는 것만 못하다.
172 孟子曰 吾今而後 知殺人親之重也로라 殺人之父 人亦殺其父하고 殺人之兄이면 人亦殺其兄하나니非自殺之也언정 一間耳니라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나는 오늘 에야 남의 어버이를 죽이는 것이 엄중한 일임을 알았다. 남의 어버이를 죽이면 남도 내 어버이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도 내 형을 죽이니, 그렇다면 스스로 자기 가족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털끝 하나의 차이일 뿐이다.”
173 孟子曰 不信仁賢國空虛하고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어질고 현명한 이를 믿지 않으면 나라가 텅 비고,
174 無禮義上下亂하고 <孟子, 盡心下>  
예(禮)와 의(義)가 없으면 위아래가 혼란하고
175 無政事財用不足이니라 <孟子, 盡心下>  
정사가 없으면 재용이 넉넉하지 못하다.”
176 諸侯危社稷이면 變置하나니라 <孟子, 盡心下>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바꾸어 세운다.
177 犧牲 旣成하며 粢盛 旣潔하여 祭祀以時호되 然而旱乾水溢이면 變置社稷하나니라 <孟子, 盡心下>  
희생(犧牲)이 이미 갖춰지고 제사 음식이 이미 정결하여 때에 따라서 제사 지내는데, 그런데도 가뭄이 들고 물이 넘치면 사직(社稷)을 바꾸어 설치한다.”
178 孟子謂高子曰 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하고 爲間不用 茅塞之矣나니 茅塞子之心矣로다 <孟子, 盡心下>  
맹자가 고자(高子)에게 말하였다. “산길의 좁은 길은 잠깐 그 길을 사용하면 길을 이루고, 잠깐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그 길을 막으니, 지금 띠풀이 그대의 마음을 막았구나.”
179 公孫丑問曰 膾炙與羊棗孰美니잇고 孟子曰 膾炙哉인저 公孫丑曰 然曾子 何爲食膾炙而不食羊棗시니잇고 曰 膾炙 所同也 羊棗 所獨也 諱名不諱姓하나니 所同也 所獨也일새니라 <孟子, 盡心下>  
공손추(公孫丑)가 물어 말하였다. “고기[膾炙]와 대추 중에 무엇이 맛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고기입니다.” 공손추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증자는 어찌하여 고기는 먹고 대추는 먹지 않았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고기는 함께 〈즐겼던〉 것이고 대추는 〈증석이〉 홀로 〈즐겼던〉 것이니, 이름은 휘(諱)하면서 성(姓)은 휘(諱)하지 않는 것은 성은 같이 〈쓰는〉 것이고 이름은 혼자 〈쓰는〉 것이여서라네.”
180 君子 反經而已矣 經正庶民興하고 庶民興이면 斯無邪慝矣리라 <孟子, 盡心下>  
군자는 떳떳한 도를 회복할뿐이니, 떳떳한 도가 바르게 되면 뭇 백성이 흥기하고 뭇 백성이 흥기하면 사특함이 없어질것이네.”
181 子曰 文武之政 布在方策하니 其人存其政擧하고 其人亡其政息이니이다 <中庸, 中庸>  
공자가 말했다. “문왕과 무왕의 정치가 방책[竹簡]에 펼쳐져 있으니,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런 정치가 거행되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그런 정치는 사라집니다.”
182 知斯三者 知所以修身이요 知所以修身이면 知所以治人이요 知所以治人이면 知所以治天下國家矣리라 <中庸, 中庸>  
이 세가지를 알면 몸을 수양하는 것을 알 것이요, 몸을 수양하는 것을 알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알 것이요,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알면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것을 알 것이다.
183 修身道立하고 尊賢不惑하고 親親諸父昆弟不怨하고 敬大臣不眩하고 體群臣士之報禮重하고 子庶民百姓勸하고 來百工財用足하고 柔遠人四方歸之하고 懷諸侯天下畏之니라 <中庸, 中庸>  
몸을 닦으면 도가 확립되고 어진 사람을 존경하면 의혹되지 않고 친족을 친애하면 백숙부와 형과 아우들이 원망하지 않고 대신을 공경하면 혼란하지 않고 뭇 신하를 체찰하면 선비의 보답하는 예가 중하고 서민을 사랑하면 백성들이 권면하고 온갖 백성을 오게하면 재용이 풍족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회유하면 사방이 (그에게) 귀의하고 제후들을 품어주면 천하가 (그를) 두려워한다.
184 凡事 豫하고 不豫하나니 言前定不跲하고 事前定不困하고 行前定不疚하고 道前定不窮이니라 <中庸, 中庸>  
무릇 일이란 미리하면 성립하고 미리하지 않으면 폐한다. 말을 미리 정하면 차질이 없고 일을 미리 정하면 곤궁하지 않고 행동을 미리 정하면 결함이 없고 도를 미리 정하면 궁하지 않다.
185 自誠明 謂之性이요 自明誠 謂之敎明矣誠矣니라 <中庸, 中庸>  
정성으로부터 밝아짐을 (그것을) 말하여 ‘성‘이라고 하고 밝음으로부터 정성스러워지니 (그것을) 말하여 ‘교‘라고 하니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정성스러워진다.
186 其次 致曲이니 曲能有誠이니하고하고하고하고하고 唯天下至誠이야 爲能化니라 <中庸, 中庸>  
그 다음은 구석을 이르게 하는 것이다. 구석에도 성실할 수 있으니 성실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뚜렷이〉 드러나고 뚜렷이 드러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화한다.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실함이라야 화하게 할 수 있다.
187 이나 人莫不有是形이라 雖上智 不能無人心하고 亦莫不有是性이라 雖下愚 不能無道心하니 二者雜於方寸之間하여 而不知所以治之 危者愈危하고 微者愈微하여 而天理之公 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리라 <中庸章句, 中庸章句序>  
그러나, 사람은 이 〈사사로운〉 형기를 가지지 않은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또한, 이 〈바른〉 성명을 가지지 않은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가장 어리석은 자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인심과 도심의〉 두 가지가 짧은 순간의 사이에 섞여있는데도 그것을 다스릴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위태한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해져서 공정한 천리가 끝내 저 사사로운 인욕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188 目不視邪色하며 耳不聽淫聲하며令瞽誦詩하며 道正事하더니라 <小學, 立敎第一>  
눈으로는 바르지 않은 색을 보지 않으며,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밤이면 맹인에게 시를 외우며 바른 일을 말하게 하였다.
189 如此 生子 形容端正하며 才過人矣리라 <小學, 立敎第一>  
이와 같이 하면 아이를 낳음에 용모가 단정하며, 재주가 남들을 뛰어넘을 것이다.
190 四十 始仕하여 方物出謀發慮하여 道合服從하고 不可니라 <小學, 立敎第一>  
마흔 살에 비로소 벼슬하여, 사물에 대하여 계책을 내고 생각을 내어서 도에 부합하면 복종하고, 가능하지 않으면 떠난다.
191 爲妻爲妾이니라 <小學, 立敎第一>  
맞이하면 아내가 되고, 따라가면 첩이 된다.
192 孟子曰 人之有道也 飽食暖衣하여 逸居而無敎 近於禽獸일새 聖人 有憂之하사 使契爲司徒하사 敎以人倫하시니 父子有親하며 君臣有義하며 夫婦有別하며 長幼有序하며 朋友有信이니라 <小學, 立敎第一>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에게 도가 있으니,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짐승에 가깝게 된다. 성인이 (그것에) 근심함을 두어 계로 하여금 사도로 삼아 인륜으로써 가르치게 하셨으니, 아버지와 아들 간에는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 간에는 의가 있고, 남편과 아내 간에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어린아이 간에는 차례가 있고, 친구 간에는 신의가 있는 것이다.
193 見善從之하고 聞義하며 溫柔孝弟하여 毋驕恃力이니라 <小學, 立敎第一>  
선을 보면 (그것을) 따르고, 의를 들으면 실행하며, 온화하고 유순하며 효도하고 공손하여, 교만하여 힘을 믿지 말아야 한다.
194 孔子曰 弟子入하고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하되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以學文이니라 <小學, 立敎第一>  
공자가 말하였다. 제자들은 들어가면 효도하고 나가면 공손히 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미덥게 하여 널리 여러 사람을 사랑하되 인한 자를 가까이 할 것이니, 행하고서 남은 힘이 있으면 그로써 글을 배워야 한다.
195 以適父母舅姑之所하되 及所하여 下氣怡聲하여 問衣燠寒하며 疾痛苛癢 而敬抑搔之하며 出入或先或後하여 而敬扶持之니라 <小學, 明倫第二>  
(생략) 아버지와 어머니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되, 계신 곳에 이르러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온화하게 하여 옷이 따뜻한지 추운지를 여쭈며, 병들어 아프거나 옴으로 가려우면 공손히 (그곳을) 만져드리고 긁어드리며, 나가시거나 들어오시면 혹은 앞서기도 하고 혹은 뒤서기도 하여 공손히 (그를) 부축해드리고 붙들어 드린다.
196 婦或賜之飮食衣服布帛佩帨茝蘭이어든 受而獻諸舅姑 舅姑受之하여 如新受賜하고 若反賜之則辭하되 不得命이어든 如更受賜하여 藏以待乏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며느리는 친정 형제가 (그에게) 음식과 옷과 베와 비단과 차는 수건과 향초를 주면 받고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드려야 하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그것을) 받으시면, 기뻐 마치 내가 새롭게 물건을 받는 것처럼 여기고, 만약 도로 (그것을) 주시면 사양하되, 허락을 받지 못하면 다시 물건을 받는 것처럼 여겨 보관하여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물건이) 소진되기를 기다린다.
197 婦若有私親兄弟하여 將與之어든 必復請其故하여 賜而後 與之니라 <小學, 明倫第二>  
만약 며느리에게 사친의 형제가 있어 (그들에게) (물건을) 주려고 한다면 반드시 다시 그 예전에 받았던 물건을 청하여 (시부모님께서) 주시고 난 뒤에 (그것을) 주어야 한다.
198 若不言이어시든視足하고視膝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만약 말씀하지 않으시면, 서계시면 발을 보고, 앉아 계시면 무릎을 본다.
199 禮記曰 父命呼어시든 唯而不諾하며 手執業投之하고 食在口吐之하며 走而不趨니라 <小學, 明倫第二>  
〈예기〉에 말하였다. 부모가 명하여 부르시면 빨리 대답하고 느리게 대답하지 말며, 손에 일감을 잡고 있으면 (일단) (그것을) 던져두고, 음식이 입에 있으면 (그것을) 뱉으며, 달려가고 종종걸음치지 말아야 한다.
200 內則曰 舅沒姑老 冢婦所祭祀賓客 每事 必請於姑하고 介婦 請於冢婦니라 <小學, 明倫第二>  
〈내칙〉에 말하였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시어머니는 (맏며느리에게) 가사를 물려 주니, 맏며느리는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대해서 매사를 반드시 시어머니께 여쭙고, 작은 며느리는 맏며느리에게 물어야 한다.
201 內則曰 父母有過어시든 下氣怡色柔聲以諫이니 諫若不入이어든 起敬起孝하여復諫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내칙〉에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과실이 있으시면 기운을 낮추고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조언을 드리고, 조언을 만약 들어주지 않으시면 공경을 일으키고 효도를 일으켜서, 기뻐하시면 다시 조언을 드린다.
202 曲禮曰 子之事親也 三諫而不聽이어시든 號泣而隨之니라 <小學, 明倫第二>  
〈곡례〉에 말하였다. 자식이 부모를 섬김에 세 번 조언을 드려서 들어주지 않으시면 부르짖고 울면서 (그를) 따라야 한다.
203 祭統曰 夫祭也者 必夫婦親之 所以備外內之官也 官備具備니라 <小學, 明倫第二>  
〈제통〉에 말하였다. 무릇 제사라는 것은 반드시 남편과 아내가 (그것을) 직접해야 한다. 바깥과 안의 일을 갖추기 위해서이니, 일이 갖추어지면 제물도 갖추어진다.
204 君子之祭也 必身親莅之 有故어든 使人 可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군자가 제사를 지낼 적에 반드시 몸소 직접 (그 일에) 임해야 하니, 연고가 있으면 다른 사람을 시키는 것이 옳다.
205 是故 先王之孝也 色不忘乎目하며 聲不絶乎耳하며 心志嗜欲 不忘乎心하시니 致愛하고 致慤 著存 不忘乎心이어니 夫安得不敬乎리오 <小學, 明倫第二>  
이러한 까닭에 선왕의 효도는 (부모의) 안색을 눈에서 잊지 않으며, 음성을 귀에서 끊지 않으며, 심지와 즐기고 원하셨던 것을 마음에서 잊지 않으셨으니, 사랑을 극진히 하면 존재하고, 정성을 극진히 하면 나타난다. 나타나고 존재함을 마음에서 잊지 않으니, 대저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6 以孝事君이요 以敬事長이라 忠順 不失하여 以事其上然後에야 能守其祭祀하리니 此士之孝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효로써 임금을 섬기면 충성이 되고, 공경으로써 어른을 섬기면 순종이 된다. 충성과 순종을 잃지 않아서 그 윗사람을 섬기고, 그러한 뒤에 그 제사를 지킬 수 있으니, 이것은 선비의 효이다.
207 孝子之事親致其敬하고致其樂하고致其憂하고致其哀하고致其嚴이니 五者備矣然後에야 能事親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효자가 부모를 섬길 적에, 거처할 때에는 그 공경함을 극진히 하고, 봉양할 때에는 그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병드셨을 적에는 그 근심을 극진히 하고 상을 치를 적에는 그 슬픔을 극진히 하고, 제사 지낼 적 에는 그 엄숙함을 극진히 하니, 다섯 가지가 갖추어지고, 그러한 뒤에 부모를 섬길 수 있다.
208 事親者 居上不驕하며 爲下不亂하며 在醜不爭이니 居上而驕하고 爲下而亂하고 在醜而爭이니 三者 不除하면 雖日用三牲之養이라도 猶爲不孝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부모를 섬기는 자는 위에 거하여서는 교만하지 않으며, 아래가 되어서는 어지럽히지 않으며, 동료간에 있어서는 다투지 않아야 한다. 위에 거하여 교만하면 망하고, 아래가 되어서 어지럽히면 형벌을 받으며, 동료간에 있어서 다투면 병기로 해치게 되니, 이 세 가지를 제거하지 않으면 비록 날마다 세 가지 희생물의 봉양을 쓰더라도오히려 불효가 된다.
209 君言어든 主人 出拜君言之辱하고 使者歸어든 必拜送于門外니라 <小學, 明倫第二>  
임금의 말씀이 이르면 주인은 나가서 임금의 말씀이 욕됨에 절하고, 심부름 온 자가 돌아가면 반드시 문 밖에서 절하여 보낸다.
210 若使人於君所어든 則必朝服而命之하고 使者反이어든 必下堂而受命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만약 임금이 계신 곳에 사람을 심부름 보내게 되면 반드시 조복을 입고서 (그에게) 명하며, 심부름 보낸 자가 돌아오면 반드시 대청으로 내려가서 명을 받는다.
211 大臣 以道事君하다가 不可니라 <小學, 明倫第二>  
대신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할 수 없으면 그만 둔다.
212 有官守者 不得其職하고 有言責者 不得其言니라 <小學, 明倫第二>  
지킬 관직이 있는 자는 그 직분을 할 수 없으면 떠나고, 말할 책임이 있는 자는 그 말을 할 수 없으면 떠나간다.
213 取妻하되 不取同姓이니 買妾 不知其姓卜之니라 <小學, 明倫第二>  
아내를 맞이하되 동성을 맞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첩을 구할 때 그 성을 알지 못하면 (그것을) 점친다.
214 男不言內하고 女不言外하며 非祭非喪이어든 不相授器 其相授女受以篚하고 其無篚皆坐奠之而後 取之니라니라 <小學, 明倫第二>  
남자는 안의 일을 말하지 않으며, 여자는 바깥 일을 말하지 않으며, 제사가 아니고 초상이 아니면 서로 그릇을 주지 않는다. (그) 서로 주게 되면 여자는 광주리로써 받고, (그) 광주리가 없으면 모두 앉아서 (그) 내려놓고 뒤에 (그것을) 가져간다.
215 男子入內하여 不嘯不指하며 夜行以燭이니 無燭하고 女子出門 必擁蔽其面하며 夜行以燭이니 無燭니라 <小學, 明倫第二>  
남자는 안에 들어가서 휘파람 불지 않고 손가락질하지 않으며, 밤에 다닐 적에 횃불을 사용하니, 횃불이 없으면 그만둔다. 여자는 문을 나갈 적에 반드시 그 얼굴을 막아 가리며, 밤에 다닐 적에 횃불을 사용하니, 횃불이 없으면 그만둔다.
216 年長以倍父事之하고 十年以長兄事之하고 五年以長肩隨之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두배가 되면 아버지처럼 (그를) 섬기고, 열살이 (생략) 많으면 형처럼 (그를) 섬기고, 다섯살이 (생략) 많으면 (걸을 때) 어깨를 나란히 하되 (그를) 뒤따른다.
217 從於先生할새 不越路而與人言하며 遭先生於道하여 趨而進하여 正立拱手하여 先生 與之言하고 不與之言趨而退니라 <小學, 明倫第二>  
선생을 따라갈 적에 길을 넘어가 다른 사람과 말하지 않으며, 선생을 길에서 만나면 종종걸음으로 걸어 나아가 바르게 서서 두 손을 마주 잡고서 선생이 나와 함께 말하면 대답하고 나와 함께 말하지 않으면 종종걸음으로 걸어 물러난다.
218 從長者而上丘陵이면 必鄕長者所視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을 따라서 언덕에 올라가면 반드시 나이 많은 사람이 보는 곳으로 (시선이) 향해야 한다.
219 長者與之提携어든 兩手 奉長者之手하고 負劍辟咡詔之어든 掩口而對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이 나에게 (손을) 잡아 이끌어주면 두 손으로 나이 많은 사람의 손을 받들고, 검을 차듯이 옆에 끼고서 입가까지 (몸을) 기울여 나에게 가르쳐주면 입을 가리고서 대답한다.
220 侍坐於先生할새 先生 問焉이어든하며 請業하고 請益니라 <小學, 明倫第二>  
선생을 모시고 앉을 적에 선생이 물으시면 (생략) (질문이) 끝나면 대답하며, 학업을 청하고자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고, 더 묻기를 청하고자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221 侍坐於君子할새 君子問更端이면 起而對니라 <小學, 明倫第二>  
군자를 모시고 앉아있을 때 군자가 단서를 바꾸어 물으면 일어나서 대답해야 한다.
222 侍坐於君子할새 若有告者曰 少閒이어든 願有復也라커든 左右屛而待니라 <小學, 明倫第二>  
군자를 모시고 앉아있을 때 만약 아뢰는 사람이 있어 말하길, ‘(군자께서) 조금 한가해지시면 (다시) 아룀이 있길 바랍니다.’ 라고 하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물러가서 기다려야 한다.
223 侍飮於長者할새 酒進하여 拜受於尊所하되 長者辭어든 少者反席而飮하고 長者擧未釂어든 少者不敢飮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을 모시고 술을 마실 때 술이 나오면 일어나서 술통이 있는 곳에 (가서) 절하고 받되, 나이 많은 사람이 사양하면 젊은 사람은 자리로 돌아와서 마시며, 나이 많은 사람이 (술잔을) 들되, 아직 다 마시지 않았으면 젊은 사람은 감히 마시지 않아야 한다.
224 少儀曰 尊長 於己 踰等이어든 不敢問其年하며 燕見 不將命하며 遇於道하여하고 不請所之니라 <小學, 明倫第二>  
〈소의〉에 말하였다. 존귀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보다 등급이 높으면 감히 그 나이를 묻지 않으며, 사적으로 뵐 때 (사람을 시켜) 명을 전달하게 하지 않으며, 길에서 만나 마주치면 뵙되, 가시는 곳을 묻지 않는다.
225 侍坐 弗使어든 不執琴瑟하며 不畫地하며 手無容하며 不翣也하며坐而將命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장자를) 모시고 앉아 있을 때 시키지 않으면 거문고나 비파를 잡지 않으며, 바닥을 손가락으로 긋지 않으며, 손으로 모양내어 장난하지 않으며 부채질하지 않으며, 누워계시면 앉아서 명을 받든다.
226 侍射約矢하고 侍投擁矢하며洗而以請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장자를) 모시고 활을 쏘면 화살을 묶어 (한꺼번에) 쏘며, 모시고 투호를 하면 화살을 안고 하며, 이기면 (잔을) 씻어서 (드시기를) 청한다.
227 子貢 問友한대 孔子曰 忠告而善道之하되 不可하여 毋自辱焉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자공이 벗을 사귐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진심을 다하여 말해주고 선으로써 (그를) 인도하되, 할 수 없으면 그만두어서 스스로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228 主人 入門而右하고 入門而左하여 主人 就東階하고 就西階하되 客若降等이면 就主人之階 主人 固辭然後 復就西階니라 <小學, 明倫第二>  
주인은 문에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가고, 손님은 문을 들어가서 왼쪽으로 간 뒤, 주인은 동쪽 계단으로 나아가고, 손님은 서쪽 계단으로 나아가되, 손님이 만약 항렬이 낮으면 주인의 계단으로 나아가니, 주인이 굳이 사양한 뒤에야 손님이 다시 서쪽 계단으로 나아간다.
229 主人 與客讓登하여 主人 先登이어든 從之하여 拾級聚足하여 連步以上하되 上於東階先右足하고 上於西階先左足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주인이 손님과 함께 (계단에) 오르기를 사양하여 주인이 먼저 올라가면 손님이 (그를) 뒤따른다. 층계를 오를 때 발을 모아서 걸음을 연속하여 오르되, 동쪽 계단으로 오르면 오른쪽 발을 먼저 하고, 서쪽 계단으로 오르면 왼쪽 발을 먼저한다.
230 大夫士相見 雖貴賤 不敵하나 主人敬客이어든 先拜客하고 客敬主人이어든 先拜主人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대부와 선비가 서로 만날 적에 비록 귀천이 대등하지 않더라도, (귀천에 상관없이) 주인이 손님을 공경하면 먼저 손님에게 절하고, 손님이 주인을 공경하면 먼저 주인에게 절한다.
231 天子有爭臣七人이면 雖無道 不失其天下하고 諸侯有爭臣五人이면 雖無道 不失其國하고 大夫有爭臣三人이면 雖無道 不失其家하고 士有爭友 身不離於令名하고 父有爭子 身不陷於不義니라 <小學, 明倫第二>  
천자에게 간쟁하는 신하 일곱 사람이 있으면 비록 도가 없더라도 그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에게 간쟁하는 신하 다섯 사람이 있으면 비록 도가 없더라도 그 나라를 잃지 않고, 대부에게 간쟁하는 신하 세 사람이 있으면 비록 도가 없더라도 그 집안을 잃지 않고, 선비에게 충고하는 친구가 있으면 몸이 아름다운 이름에서 떠나지 않고, 아버지에게 조언 드리는 자식이 있으면 몸이 의롭지 않음에 빠지지 않는다.
232 當不義 子不可以弗爭於父 臣不可以弗爭於君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그러므로 의롭지 않음을 당하면 자식은 그로써 아버지에게 조언드리지 않을 수 없고, 신하는 그로써 임금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다.
233 欒共子曰 民生於三이라 事之如一이니 父生之하시고 師敎之하시고 君食之하시나니 非父 不生이요 非食 不長이요 非敎 不知 生之族也 一事之하여 唯其所在 致死焉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난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은 세 사람에게서 살게 되었으니, 섬기기를 한결같이 해야 한다. 부모는 나를 낳으시고, 스승은 나를 가르치시고, 임금은 나를 먹이셨으니, 부모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임금이) 먹여줌이 아니면 자라지 못하고, (스승이) 가르쳐줌이 아니면 알지 못하니, (두 가지는 부모가) 낳아 주신 것의 부류이다. 그러므로 한결같이 (그들을) 섬겨서 오직 그들이 있는 곳이면 죽음을 다해야 한다.
234 將上堂할새 聲必揚하며 戶外 有二屨어든 言聞하고 言不聞不入하며 <小學, 敬身第三>  
당에 오르려 할 때 소리를 반드시 드높이며, 문밖에 두 켤레 신발이 있으면 말소리가 들리면 들어가고,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는다.
235 曲禮曰 凡視上於面 下於帶이니라 <小學, 敬身第三>  
곡례에 말하였다. “무릇 시선은 얼굴보다 올라가면 교만하고, 띠보다 내려가면 근심스럽고, 기울면 간사하다.”
236 趨以采齊하고 行以肆夏하며 周還中規하고 折還中矩하며揖之하고 退揚之하나니 然後 玉琤鳴也 君子 在車聞鸞和之聲하고鳴佩玉하나니 是以 非辟之心 無自入也니라 <小學, 敬身第三>  
달려감에는 채자로써 하고, 걸어감에는 사하로써 하며, 두루 돌 때는 규에 맞게 하고, 꺾어 돌 때는 곱자에 맞게 하며, 나아감에는 읍하고 물러남에는 몸을 드니, 그런 뒤에 옥소리가 울린다. 그러므로 군자는 수레에 있으면 난화의 소리를 듣고, 걸어감에는 패옥이 울린다. 이 때문에 그릇되고 편벽된 마음이 부터 들어옴이 없다.
237 少儀曰 侍食於君子 先飯而後已 毋放飯하며 毋流歠하며 小飯而亟之하며 數噍하여 毋爲口容이니라 <小學, 敬身第三>  
소의에 말하였다. 군자를 모시고 먹을 때면 먼저 먹고 뒤에 끝낸다. 밥을 크게 뜨지 말며, 흘려 마시지 말며, 조금씩 먹고 빨리 삼키며, 자주 씹어, 입 모양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238 慕父母하고 知好色慕少艾하고 有妻子慕妻子하고慕君하고 不得於君熱中이니 大孝 終身慕父母하나니 五十而慕者 予於大舜 見之矣로라 <小學, 稽古第四>  
사람이 어릴 때는 부모를 사모하고, 여색을 좋아할 줄 알면 젊고 아름다운 소녀를 사모하고, 처자가 있으면 처자를 사모하고, 벼슬하면 임금을 사모하고, 임금에게 (뜻을) 얻지 못하면 마음이 탄다. 큰 효도는 몸을 마치도록 부모를 사모하니, 오십에도 사모하는 자를 나는 대순에게서 (그것을) 보았다.
239 其有不安節이어시든 內竪以告文王하여든 文王 色憂하사 行不能正履하더시니 王季復膳然後 亦復初러시다 食上 必在視寒暖之節하시며 食下어든 問所膳하시고 命膳宰曰 末有原이라하여시든 應曰 諾然後 退하더시다 <小學, 稽古第四>  
그 편치 않을 때가 있으면 내시가 이것을 문왕에게 고하면 문왕은 얼굴빛에 근심하시어, 걸음을 바로 걸을 수 없었는데, 왕계가 음식을 회복한 뒤에야 또한 처음대로 회복하였다. 음식을 올릴 적에 반드시 차고 따뜻한 정도를 살펴보며, 상을 물리면 먹은 바를 묻고, 요리사에게 명하여 말하였다. “거듭함이 있지 말라.” 응답하여 말하기를, “예“ 라고 한 뒤에 물러갔다.
240 箕子者 親戚也 紂始爲象箸어늘 箕子嘆曰 彼爲象箸하니 必爲玉杯로다 爲玉杯 必思遠方珍怪之物而御之矣리니 輿馬宮室之漸 自此始하여 不可振也로다 <小學, 稽古第四>  
기자는 주왕의 친척이다. 주왕이 처음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저 사람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었으니, 반드시 옥 술잔을 만들 것이다. 옥 술잔을 만들면, 반드시 먼 곳의 진귀하고 괴이한 물건을 생각하여 (그것을) 사용할 것이니, 수레와 말과 궁실을 차츰 (사치함을) 이로부터 시작되어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241 王子比干者 亦紂之親戚也 見箕子諫不聽而爲奴하고 曰 君有過而不以死爭이며 百姓 何辜오하고 乃直言諫紂한대 紂怒曰 吾聞聖人之心 有七竅라하니 信有諸乎아하고 乃遂殺王子比干하여 刳視其心하니라 <小學, 稽古第四>  
왕자 비간은 또한 주왕의 친척이었다. 기자가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고 노예로 삼음을 보고는 말하였다. “임금이 잘못이 있는데도 죽음으로써 간쟁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무슨 죄인가?” 이에 직언으로 주왕에게 간언하였다. 주왕이 노하여 말하였다. “내 들으니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진실로 그것이 있는가?” 이에 마침내 왕자 비간을 죽여, 그 심장을 갈라 보았다.
242 微子曰 父子 有骨肉하고 而臣主 以義屬이라 父有過어든 子三諫而不聽이면 隨而號之하고 人臣 三諫而不聽이면 則其義可以去矣라하고 於是 遂行하니라 <小學, 稽古第四>  
미자가 말하였다. “부자에게는 골육(의 친함이) 있고, 신하와 군주는 의로 연결되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잘못이 있으면 자식이 세 번 간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따르며 울부짖고, 남의 신하가 세 번 간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그 의는 이로써 떠날 수 있다.” 이에 마침내 떠났다.
243 王孫賈事齊閔王하다가 王出走어늘 賈失王之處러니 其母曰 女朝去而晩來 吾倚門而望하고 女莫出而不還이면 吾倚閭而望이러니 女今事王하다가 王出走어시늘 女不知其處하니 女尙何歸 <小學, 稽古第四>  
왕손가가 제나라 민왕을 섬기다가 왕이 (나라를) 떠나 도망가자, 고가 왕이 있는 곳을 잃게 되었다.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네가 아침에 나가서 늦게 오면 내가 문에 기대어 바라보고, 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마을 문에 기대어 바라보았다. 네가 지금 임금을 섬기다가 임금이 (나라를) 떠나 도망갔는데, 너는 그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니 너는 오히려 어찌 돌아왔느냐?”
244 하라 吾誥女하리라하나니善心生하고하나니忘善하고 忘善惡心生하나니라 沃土之民 不材 淫也 瘠土之民 莫不嚮義 勞也니라 <小學, 稽古第四>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백성은 수고로우면 생각하게 되니, 생각하면 선한 마음이 일어나며, 편안하면 음탕해지니, 음탕하면 선을 잊으며, 선을 잊으면 나쁜 마음이 생겨난다. 비옥한 토지의 백성이 재능이 없음은 음탕해서이고, 척박한 토지의 백성이 의를 향하지 않음이 없음은 수고로워서이다.
245 是故 王后親織玄紞하고 公侯之夫人 加以紘綖하고 卿之內子 爲大帶하고 命婦 成祭服하고 列士之妻 加之以朝服하고 自庶士以下 皆衣其夫하나니 社而賦事하며 烝而獻功하여 男女効績하여有辟 古之制也니라 <小學, 稽古第四>  
이 때문에 왕후는 친히 검은 귀막이 끈을 짜고, 공후의 부인은 끈과 면류관 덮개를 더 만들고, 경의 내자는 큰 띠를 만들고, 명부는 제복을 완성하고, 열사의 아내는 조복을 더 하고 서사로부터 이로써 아래로 모두 그 남편을 입힌다. 사제를 지내고서 일을 맡겨주며, 증제를 지내고서 일을 바쳐, 남자와 여자가 공적을 힘써서 잘못이 있으면 형벌이 있는 것은 옛날의 제도이다.
246 爲子弟不能安灑掃應對하고 接朋友不能下朋友하고 有官長不能下官長하고 爲宰相不能下天下之賢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자식과 아우가 되어서는 물 뿌리고 쓸고 응하고 대접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지 못하고, 친구를 접하면 친구에게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관청의 우두머리가 있으면 관청의 우두머리에게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재상이 되면 천하의 어진 사람에게 (자신을) 낮추지 못한다.
247 至於徇私意하여 義理都喪也하나니 只爲病根不去하여 隨所居所接而長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심하면 사사로운 뜻을 따라 의리가 모두 없어지는 데 이른다. 다만 병의 근원이 제거되지 않아서 거처하는 바와 접한 바를 따라서 자랐기 때문이다.”
248 言溫而氣和 顔子之不遷 漸可學矣 過而能悔하며 又不憚改 顔子之不貳 漸可學矣리라 <小學, 嘉言第五>  
말이 온화하고 기운이 화하면 안자가 (노여움을 3자에게) 옮기지 않은 것을 점차 배울 수 있고, 잘못하고서 잘 뉘우치며 또 고치기를 꺼리지 않으면 안자가 (잘못을) 거듭하지 않음을 점차 배울 수 있다.
249 知埋鬻之戲不如俎豆하고 念慈母之愛至於三遷하여 自幼至老 不厭不改하여 終始一意하면 我之不動心 亦可以如孟子矣리라 <小學, 嘉言第五>  
묻고 물건 파는 놀이가 제사 놀이 같음만 못한 것을 알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사랑이 세 번 이사함에 이른 것을 생각하여,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지킴을) 고치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한뜻이면 나의 흔들리지 않는 마음 또한 그것으로 맹자와 같아질 수 있다.
250 若夫立志不高 其學 皆常人之事 語及顔孟이면 不敢當也하여 其心 必曰 我爲孩童이어니 豈敢學顔孟哉리오하리니 此人 不可以語上矣니라 先生長者 見其卑下하고 豈肯與之語哉리오 先生長者 不肯與之語하면 其所與語 皆下等人也 言不忠信 下等人也 行不篤敬 下等人也 過而不知悔 下等人也 悔而不知改 下等人也 聞下等之語하고 爲下等之事하면 譬如坐於房舍之中하여 四面 皆墻壁也 雖欲開明이나 不可得矣리라 <小學, 嘉言第五>  
만약 무릇 뜻을 세움이 높지 못하면 그 배움은 모두 보통 사람의 일이다. 말이 안자와 맹자에게 미치면 감히 감당하지 못하여, 그 마음에 반드시 〈다음과 같이〉 여길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이니, 어찌 감히 안자와 맹자를 배우겠는가?’ 이 사람은 그것으로 위의 것을 말해줄 수 없다. 선생과 어른이 그 비천하고 낮음을 보고 어찌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즐기겠는가? 선생과 어른이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즐기지 않으면 그가 더불어 말하는 바는 모두 낮은 등급의 사람이다. 말이 진실하고 미덥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행실이 독실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잘못하고서 뉘우칠 줄 알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뉘우치면서 고칠 줄 알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니, 낮은 등급의 말을 듣고 낮은 등급의 일을 행하면, 비유하건대 마치 방의 가운데에 앉아서 네 쪽이 모두 담벽인 것과 같으니, 비록 열어 밝게 하고자 하지만 얻을 수 없다.”
251 夫學 須靜也 須學也 非學이면 無以廣才 非靜이면 無以成學이니 慆慢不能硏精이요 險躁不能理性이니라 年與時馳하며 意與歲去하여 遂成枯落이어든 悲歎窮廬인들 將復何及也리오 <小學, 嘉言第五>  
무릇 배움은 반드시 안정하여야 하고, 재주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 배움이 아니면 그것으로 재주를 넓힐 수 없고, 안정이 아니면 그것으로 배움을 이룰 수 없으니, 방자하고 게으르면 정밀한 것을 연구할 수 없고, 거칠고 조급하면 성품을 다스릴 수 없다. 나이가 때와 달리며 뜻이 해와 가서 마침내 마르고 시듦을 이루면 궁색한 오두막에서 슬퍼하고 탄식한들 장차 다시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252 戒爾學干祿하노니 莫若勤道藝 嘗聞諸格言하니 學而優라하니 不患人不知 惟患學不至니라 <小學, 嘉言第五>  
너에게 녹을 구함을 배우는 것을 경계하니, 도와 재주를 부지런히 함만 같은 것이 없다. 일찍이 바른말을 들으니, 배우고 여력이 있으면 벼슬한다고 하니,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오직 배움이 지극하지 못함을 근심하라.
253 戒爾遠取辱하노니近乎禮 自卑而尊人하며 先彼而後己 相鼠與茅鴟 宜鑑詩人刺니라 <小學, 嘉言第五>  
너에게 수치와 치욕을 멀리할 것을 경계하니, 공손하면 예에 가깝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남을 먼저하고 자기를 뒤에 할 것이니, 상서와 모치에서 마땅히 시인의 풍자를 보아야 한다.
254 物盛必衰 有隆還有替 速成不堅牢하고 亟走多顚躓하나니라 灼灼園中花 早發還先萎 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 賦命有疾徐하니 靑雲難力致 寄語謝諸郞하노니 躁進徒爲耳니라 <小學, 嘉言第五>  
사물은 성하면 반드시 쇠하고, 융성함이 있으면 도리어 쇠함이 있으니, 빨리 이루면 견고하고 튼튼하지 못하고 빨리 달리면 넘어지고 쓰러짐이 많다. 활짝 핀 정원 안의 꽃은 일찍 피지만 도리어 먼저 시들고 더디고 더디게 자란 시냇가의 소나무는 울창하고 울창하게 늦도록 푸르름을 머금는다. 부여받은 명에 빠르고 늦음이 있으니, 청운은 힘써 이루기 어렵다. 말을 붙여 여러 젊은이에게 말하니, 조급히 나아감은 헛되이 하는 것일 뿐이다.”
255 吉也者 目不觀非禮之色하며 耳不聽非禮之聲하며 口不道非禮之言하며 足不踐非禮之地하여 人非善不交하며 物非義不取하며 親賢如就芝蘭하며 避惡如畏蛇蝎하나니 或曰 不謂之吉人이라도 吾不信也하리라 <小學, 嘉言第五>  
길한 사람은 눈으로 예가 아닌 색을 보지 않으며, 귀로 예가 아닌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입으로 예가 아닌 말을 말하지 않으며, 발로 예가 아닌 곳을 밟지 않아서, 사람이 선한 이가 아니면 사귀지 않으며, 물건이 의로운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으며,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기를 마치 지초와 난초에 나아가듯이 하며 악한 사람을 피하기를 마치 뱀과 전갈을 두려워하듯 하니, 혹자가 말함에 (그를) 일러 길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면 나는 믿지 않겠다.
256 凶也者 語言 詭譎하며 動止陰險하며 好利飾非하며 貪淫樂禍하여 疾良善如讐隙하며 犯刑憲如飮食하여隕身滅性하고覆宗絶嗣하나니 或曰 不謂之凶人이라도 吾不信也하리라 <小學, 嘉言第五>  
흉한 사람은 말이 어긋나고 속이며, 움직이고 멈춤이 음침하고 험하며, 이익을 좋아하고 잘못을 꾸미며, 음란함을 탐하고 화를 좋아하여, 어질고 선한 사람을 미워하기를 마치 원수와 원한같이 여기고, 형벌과 법을 범하기를 마치 마시고 먹듯이 하여, 작으면 몸을 잃고 성을 멸하며, 크면 종사를 전복시키고 후사를 끊어지게 한다. 혹자가 말함에 (그를) 일러 흉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면 나는 믿지 않겠다.
257 古靈陳先生 爲仙居令하여 敎其民曰 爲吾民者 父義母慈하며 兄友弟恭하며 子孝하며 夫婦有恩하며 男女有別하며 子弟有學하며 鄕閭有禮하며 貧窮患難 親戚相救하며 婚姻死喪 隣保相助하며 無墮農業하며 無作盜賊하며 無學賭博하며 無好爭訟하며 無以惡陵善하며 無以富呑貧하며 行者讓路하며 耕者讓畔하며 斑白者不負戴於道路하면 爲禮義之俗矣리라 <小學, 嘉言第五>  
고령 진 선생이 선거의 현령이 되어 그 백성들에게 가르쳐 말하였다. “나의 백성 된 사람들은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사랑하며, 형은 우애하고 동생은 공손하며, 자식은 효도하며, 남편과 아내는 은혜가 있으며, 남자와 여자는 분별이 있으며, 자식과 아우는 배움이 있으며, 마을에는 예의가 있으며, 가난하고 곤궁하며 근심하고 어려울 적에 친척이 서로 도우며, 혼인과 장례와 초상에 이웃 조합이 서로 도우며, 농사일을 폐하지 말며, 도둑질하고 해치는 이가 되지 말며, 노름하고 내기함을 배우지 말며, 다투거나 송사함을 좋아하지 말며, 악으로 선을 능멸하지 말며, 부유함으로 가난한 이를 겸병하지 말며,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며, 밭 가는 사람은 밭두둑을 양보하며, 흰 머리가 섞인 사람은 도로에 (짐을) 지고 (머리에) 이지 않으면, 예절과 의리의 풍속이 될 것이다.”
258 凡子受父母之命 必籍記而佩之하여 時省而速行之하고 事畢返命焉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무릇 자식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받음에 반드시 장부에 기록하여 (그것을) 차고서 때로 살펴서 빨리 (그것을) 행하고 일을 마치면 그에게 명령을 보고해야 한다.
259 或所命 有不可行者어든 和色柔聲하여 具是非利害而白之하여 待父母之許然後 改之하고 若不許라도 苟於事 無大害者어든 亦當曲從이니 若以父母之命 爲非하여 而直行己志하면 雖所執 皆是라도 猶爲不順之子 況未必是乎 <小學, 嘉言第五>  
혹 명령한 바가 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갖추어 (그것을) 말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것을) 고치고, 만약 허락하지 않더라도 만약 일에 있어 큰 해가 없는 것이면, 또한 마땅히 굽혀 따라야 한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그르다 여겨 곧바로 자기의 뜻을 행하면, 비록 집행하는 바가 모두 옳더라도 오히려 순하지 못한 자식이 되니, 하물며 반드시 옳지 않음에 있어서랴.
260 五代之時 居喪食肉者 人猶以爲異事하니 是流俗之弊 其來甚近也니라 今之士大夫 居喪 食肉飮酒 無異平日하고 又相從宴集하여 靦然無愧어든 人亦恬不爲怪하나니 禮俗之壞 習以爲常하니 悲夫 <小學, 嘉言第五>  
그렇다면 오대의 시대에 상에 거함에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으로 이상한 일로 여겼으니, 이 흘러가는 속세의 폐단이 그 유래가 매우 가깝다. 지금의 사대부는 상에 거하면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심이 평소의 날과 다름이 없고, 또 서로 따라 잔치하고 모여 뻔뻔하게 부끄러움이 없거든 사람들 또한 편안하게 여겨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의 있는 풍속이 무너짐에 익숙하여 그것으로 보통으로 여기니, 슬프구나!
261 乃至鄙野之人하여는 或初喪未斂 親賓 則齎酒饌往勞之어든 主人 亦自備酒饌하여 相與飮啜하여 醉飽連日하고 及葬하여 亦如之하며 甚者 初喪 作樂以娛尸하고 及殯葬하여 以樂導輀車而號泣隨之하며 亦有乘喪卽嫁娶者하니 習俗之難變 愚夫之難曉 乃至此乎 <小學, 嘉言第五>  
이에 비루하고 비속한 사람에 이르러서 혹 초상에 염을 하지 않았을 적에 친구와 빈객이 곧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그를) 위로하면 주인 된 사람이 또한 스스로 술과 안주를 갖추어 서로 더불어 마시고 마셔서 취하고 배불리 먹기를 날을 이어서 하며 장례에 이르러서도 또한 이와 같이 하며, 심한 경우는 초상에 음악을 연주하여 시신을 즐겁게 하고, 빈소 차리고 장례 함에 이르러선 곧 음악으로 상여를 인도하게 하고서 부르짖고 울면서 (그것을) 따르며 또한 상을 틈타 곧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들이 있다. 슬프다! 익숙한 세속을 변화시키기 어려움과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치기 어려움이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구나!
262 童蒙訓曰 當官之法 唯有三事하니 曰淸曰愼曰勤이니 知此三者 知所以持身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동몽훈에 말하였다. “관직을 맡는 법이 오직 세 가지 일이 있으니, 청렴함을 이르고, 신중함을 이르고, 근면함을 이른다. 이 세 가지를 알면 그것으로 몸을 가질 바를 알 것이다.”
263 安定胡先生曰 嫁女 必須勝吾家者 勝吾家 女之事人 必欽必戒니라 娶婦 必須不若吾家者 不若吾家 婦之事舅姑 必執婦道니라 <小學, 嘉言第五>  
안정호 선생이 말하였다. “딸을 시집보내기를 반드시 모름지기 내 집보다 나은 사람에게 해야 하니, 내 집보다 나으면 딸이 사람을 섬김이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한다. 며느리 맞이하기를 반드시 모름지기 내 집만 못한 사람에게 해야 하니, 내 집만 못하면,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섬김이 반드시 며느리의 도를 지킨다.”
264 娣姒之比兄弟 疎薄矣 今使疎薄之人而節量親厚之恩이면 猶方底而圓蓋 必不合矣 唯友悌深至하여 不爲傍人之所移者라야 免夫인저 <小學, 嘉言第五>  
손윗동서와 손아랫동서를 형과 동생에 견주면 소원하고 박하니, 이제 소원하고 박한 사람으로 친하고 후한 은혜를 절제하고 헤아리게 하면, 모난 밑에 동그란 덮개와 같아서 반드시 맞지 않을 것이니, 오직 우애와 공경이 깊고 지극하여 옆 사람이 옮긴 바 되지 않은 사람이라야 면할 수 있다!
265 橫渠先生曰 斯干詩 言兄及弟矣 式相好矣 無相猶矣라하니 言兄弟宜相好 不要相學이니 似也 人情 大抵患在施之不見報이라 恩不能終하나니 不要相學이요 己施之而已니라 <小學, 嘉言第五>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시경의) 사간시에 말하였다. ‘형과 아우는 (어조사) 서로 사랑하고, 서로 같아선 안 된다.’ 형과 아우가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하고, 마땅히 서로 (나쁜 점을) 배워선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유‘는 같음이다. 사람의 정은 대저 병통이 은혜를 갚음을 당하지 않으면 그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은혜를 잘 마치지 못하니, 마땅히 서로 배우려 하지 말고 자기가 (그것을) 베풀고 그친다.
266 吾吳中宗族 甚衆하니 於吾 固有親疎어니와 然吾祖宗視之 均是子孫이니 固無親疎也 苟祖宗之意 無親疎 則饑寒者 吾安得不恤也리오 自祖宗來 積德百餘年而始發於吾하여 得至大官하니 若獨享富貴而不恤宗族이면 異日 何以見祖宗於地下 今何顔入家廟乎리오 於是 恩例俸賜 常均於族人하고 幷置義田宅云하니라 <小學, 嘉言第五>  
내가 있는 오지방 가운데 종족이 매우 많으니, 나에게 있어서는 진실로 가깝고 멂이 있지만, 그러나 우리 조상이 (그를) 보면 똑같은 이 자식과 손자이니, 본래 가깝고 멂이 없다. 진실로 조상의 뜻에 가깝고 멂이 없다면, 굶주리고 추워하는 사람을 내 어찌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상으로부터 이래로 덕을 쌓은 지 백여 년만에 비로소 나에게서 발하여 큰 벼슬에 이를 수 있었으니, 만약 홀로 부유함과 귀함을 누리고 종족을 구제하지 않으면 다른 날에 어떻게 그것으로 지하에서 조상을 볼 수 있겠으며, 이제 무슨 낯으로 집안의 사당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에 은혜로운 대우와 녹봉과 하사받은 것을 항상 집안사람들에게 고루 주고 아울러 의로운 밭과 집을 설치하였다.
267 이요이요 不及亦不失於令名하리라 <小學, 嘉言第五>  
더하면 성인이고, 미치면 현인이고, 미치지 못해도 곧 또한 아름다운 이름을 잃지 않을 것이다.
268 伊川先生 甚愛表記 君子莊敬日彊 安肆日偸之語하더시니 盖常人之情 纔放肆日就曠蕩하고 自檢束日就規矩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표기의 ‘군자가 장엄하고 공경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일하고 방자하면 날로 게을러진다’는 말을 매우 좋아하였다. 대개 보통 사람의 정은 조금만 방자하고 안일하면 날로 비고 방탕한 데로 나아가고, 스스로 검사하고 단속하면 날로 법도로 나아간다.
269 其動箴曰 哲人 知幾하여 誠之於思하고 志士 勵行이라 守之於爲하나니 順理 從欲惟危 造次克念하여 戰兢自持하라 習與性成하면 聖賢同歸하리라 <小學, 嘉言第五>  
그 움직임에 대한 경계에서 말하였다. ‘밝은 사람은 기미를 알아서 (그것을) 생각에 성실하게 하고 뜻을 둔 선비는 행실을 힘써 (그것을) 행위에 지킨다. 이치를 따르면 넉넉하고 욕심을 따르면 오직 위태로우니, 잠깐 사이에도 잘 생각하여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스스로 지켜라. 습관이 본성과 이루어지면 성인과 현인이 똑같이 돌아간다.’
270 橫渠先生曰 學者捨禮義하면 飽食終日하여 無所猷爲하여 與下民一致 所事不踰衣食之間 燕遊之樂耳니라 <小學, 嘉言第五>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배우는 사람이 예와 의를 버리면 배불리 먹고 날을 마쳐서, 도모하여 하는 바가 없어 하등의 사람과 똑같이 이르니, 일삼는 바가 옷과 음식의 사이와 잔치하고 노는 즐거움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271 胡子曰 今之儒者 移學文藝干仕進之心하여 以收其放心而美其身이면 何古人之不可及哉리오 父兄 以文藝令其子弟하고 朋友以仕進相招하여 往而不返하면 心始荒而不治하여 萬事之成 咸不逮古先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호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유학하는 사람은 문장과 재주를 배워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는 마음을 옮겨서 그것으로 그 잃어버린 마음을 거두어서 그 몸을 아름답게 하면 어찌 옛사람에게 미칠 수 없겠는가? 아버지와 형이 문장과 재주로써 그 자식과 아우에게 명령하고, 벗과 친구가 벼슬에 나아가는 것으로 서로 불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이 비로소 거칠어져서 다스려지지 않아서 모든 일의 이룸이 모두 옛날 선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272 伊川先生曰 大學 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 於今 可見古人爲學次第者 獨賴此篇之存이요 而其他則未有如論孟者 學者必由是而學焉이면 庶乎其不差矣리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인데 처음 배우는 사람이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지금에 옛사람이 학문하는 차례와 순서를 볼 수 있는 것은 유독 이편이 보존됨에 의뢰할 뿐이고, 그 나머지는 논어와 맹자만 한 것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이를 말미암아서 여기서 배우면 그 어긋나지 않음에 가까울 것이다.”
273 六經 須循環理會 儘無窮하니 待自家長得一格이면 又見得하리라 <小學, 嘉言第五>  
여섯 경전은 반드시 차례로 돌아가며 이해하고 알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진실로 (의리가) 끝이 없다. 자기 자신이 한 품격이 자라기를 (어조사) 기다리면 또 소견이 (어조사) 각별할 것이다.
274 呂氏童蒙訓曰 今日 記一事하고 明日 記一事하면自然貫穿하며 今日 辨一理하고 明日 辨一理하면自然浹洽하며 <小學, 嘉言第五>  
여씨의 동몽훈에 말하였다. “오늘날에 한 가지 일을 기억하고 다음 날에 한 가지 일을 기억하면, 오래되면 저절로 그러하게 꿰고 뚫으며, 오늘날에 한 가지 이치를 분별하고 다음 날에 한 가지 이치를 분별하면, 오래되면 저절로 그러하게 무 젖고 스며든다.
275 今日 行一難事하고 明日 行一難事하면自然堅固 <小學, 嘉言第五>  
오늘날에 한 가지 어려운 일을 행하고 다음 날에 한 가지 어려운 일을 행하면, 오래되면 저절로 그러하게 단단하고 굳어진다.
276 自謂之窮神知化호되 而不足以開物成務하며 言爲無不周徧호되 實則外於倫理하며 窮深極微호되 而不可以入堯舜之道 天下之學 非淺陋固滯 必入於此니라 <小學, 嘉言第五>  
(불교에서) 스스로 (그것을) 이르기를 ‘신묘함을 궁구하고 변화를 안다’고 하되 충분히 그것으로 인물을 개발하고 일을 이루지 못하며, ‘말과 행위가 두루 두루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되 실제는 윤리와 이치에서 벗어나며, ‘깊음을 다하고 은미함을 극진히 한다.’ 고 하되 그것으로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에 들어갈 수 없으니, 천하의 학문이 천하고 누추하며 고루하고 막힌 것이 아니면 반드시 이에 들어간다.
277 伊川先生 看詳學制하시니 大槪 以爲學校 禮義相先之地어늘 而月使之爭 殊非敎養之道 請改試爲課하여 有所未至어든 學官 召而敎之하고 更不考定高下하며 <小學, 善行第六>  
이천 선생이 학제를 살펴 상세히 하였으니 대강은 다음과 같다. “학교는 예의를 서로 앞세우는 곳이다. 그렇기에 달마다 (그들로) 하여금 경쟁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가르치고 기르는 도가 아니다. 청컨대 시험을 바꾸어서 과로 하여 이르지 못한 것이 있으면 학관이 불러서 (그를) 가르치고 다시는 높고 낮음을 상고하여 정하지 않는다
278 有善書于籍하고 有過若違約者 亦書之하여 三犯而行罰하되 不悛者 絶之니라 <小學, 善行第六>  
선이 있으면 장부에 기록하고, 잘못이 있거나 또 약속을 위반한 사람을 또한 (그곳에) 기록하여 세 번 범하면 벌을 시행하되 고치지 않는 사람은 (그를) 제명한다.
279 椿 每近出하여 或日斜不至어든 不先飯하여 椿還然後 共食하더니 親授匙箸하며 味皆先嘗하고 椿 命食然後하니라 爲肆州 椿 在京宅이러니 每有四時嘉味어든 輒因使次하여 附之하고 若或未寄 不先入口하니라 一家之內 男女百口러니 緦服 同爨하되 庭無間言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양춘이 매번 가까이 외출하여 혹 해가 기울어도 (집에) 이르지 않으면 양진이 먼저 밥을 먹지 않다가 양춘이 돌아온 연후에 함께 먹었다. (같이) 먹게 되면 양진이 직접 수저를 (놓아) 주었고, 맛을 모두 먼저 맛보고 양춘이 먹으라고 명한 연후에 먹었다. 양진이 사주를 다스릴 때 양춘은 서울 집에 있었다. 매번 사철의 아름다운 음식이 있으면 그때마다 심부름꾼 편을 통하여 (그것을) 보냈고, 만약 혹 보내지 못했다면 먼저 입에 넣지 않았다. 한 가문의 안에 남녀가 백 식구였는데 시마복까지 함께 밥을 지어 먹었는데 뜰에 이간하는 말이 없었다.
280 賢而多財損其志하고 愚而多財益其過하나니라 且夫富者 衆之怨也 吾旣無以敎化子孫이라 不欲益其過而生怨하노라 又此金者 聖主所以惠養老臣也 樂與鄕黨宗族으로 共享其賜하여 以盡吾餘日하노니 不亦可乎 <小學, 善行第六>  
어질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하고, 어리석으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과실을 더하게 된다. 또 무릇 부유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원망을 받는다. 내가 이미 이로써 자손을 교화시키지 못했으니, 그 과실을 보태어서 원망을 낳고자 하지 않는다. 또 이 금은 성주께서 이로써 노신을 은혜롭게 길러주려는 바이다. 그러므로 즐겁게 마을 종족과 함께 그 은사를 누리면서 이로써 나의 남은 날을 다하려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281 崔孝芬兄弟孝義慈厚하더니 弟孝暐等 奉孝芬하되 盡恭順之禮하여 坐食進退 孝芬 不命不敢也하며 鷄鳴而起하여 且溫顔色하며 一錢尺帛 不入私房하고 吉凶有須 聚對分給하더니 諸婦亦相親愛하여 有無 共之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최효분 형제는 효성스럽고 의로우며 인자하며 후덕하였다. 아우 효위 등이 효분을 받들되 공순한 예를 다하여 앉으며 먹으며 나아가며 물러갈 때 효분이 명령하지 않으면 감히 하지 않았다. 닭이 울면 일어나서 우선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며, 한 푼, 한 자의 비단도 방에 사사롭게 들이지 않고 길흉사에 비용이 있을 때는 모여 대하여 나누어주었다. 여러 아내도 또한 서로 친애하여 있고 없음을 (그것을) 함께 하였다.
282 孝芬 叔振 旣亡後 孝芬等 承奉叔母李氏하되 若事所生하여 旦夕溫凊하며 出入啓覲하며 家事巨細 一以咨決하며 每兄弟出行 有獲이면 尺寸以上 皆入李之庫하고 四時分賚 李氏自裁之하더니 如此二十餘歲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효분의 숙부 진이 이미 죽고 난 뒤에 효분 등은 숙모 이씨를 받들되 낳아준 바를 섬기듯이 하여 아침저녁으로 따뜻하고 시원하게 해드리며 나가고 들어올 때 아뢰고 뵈었으며 집안일의 크고 작은 것을 한결같이 물어서 결정하였다. 매번 형제가 출행하다가 한 척, 한 자 이상의 것을 얻은 것이 있으면 모두 이씨의 창고에 넣고 사시에 나누어 주는 일을 이씨가 스스로 (그것을) 재량하게 하였는데, 이와 같이 20여 년이었다.
283 中門東 有小齋러니 自非朝謁之日이면 每平旦 輒出至小齋어든 諸子仲郢 皆束帶하여 晨省於中門之北하니라 公綽 決私事하며 接賓客하고 與弟公權及群從弟 再會食하여 自旦至莫 不離小齋하고 燭至命一人子弟하여 執經史하여 躬讀一過訖하고 乃講議居官治家之法하며 或論文하며 或聽琴하다가 至人定鍾然後 歸寢이어든 諸子復昏定於中門之北하더니 凡二十餘年 未嘗一日變易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중문 동쪽에 작은 방이 있는데 스스로 조회에 알현하는 날이 아니면 매 이른 새벽에 곧 나가 작은 방에 이르거든, 여러 아들과 중영은 모두 띠를 묶고 중문의 북쪽에서 새벽 문안을 올렸다. 공작은 사사로운 일을 결단하며 빈객을 접대하고 아우인 공권및 여러 종제와 함께 두 번 모여 식사하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은 방을 떠나지 않았다. 촛불이 이르면, 한 사람의 자제에게 명하여 경서와 사서를 잡게 하여 몸소 읽어 한 번 지나가고는 마침내 관직에 거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법을 강론하고 의논하며, 혹은 문장을 논하기도 하고, 혹은 거문고를 듣기도 하다가 인정의 종소리가 이른 연후에 침실로 돌아가면 여러 아들이 다시 중문의 북쪽에서 저녁 문안을 드렸다. 무릇 20여 년 동안 (이러한 행동을) 일찍이 하루라도 바꾼적이 없었다.
284 其遇飢歲어든 諸子皆蔬食하더니 曰 昔吾兄弟侍先君爲丹州刺史 以學業未成이라하여 不聽食肉하시더니 吾不敢忘也하노라 <小學, 善行第六>  
그 흉년을 만나면 여러 아들은 모두 거친 밥을 먹었는데 (유공작이) 말하기를 옛날 우리 형제는 선군이 단주자사가 되었을 때 모셨는데, 학업이 성취되지 않았다고 하여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나는 감히 잊지 못한다.”
285 汪信民 嘗言 人常咬得菜根이면 百事 可做라하여늘 胡康侯聞之하고 擊節嘆賞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왕신민이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얻어먹으려고 하면 온갖 일을 이룰 수 있다." 하였다. 호강후가 (그것을) 듣고 마디를 치면서 감탄하고 칭찬하였다.
286 學優하야 爲國盡忠하라 <新編四字小學, 父母2>  
배움이 넉넉하면 벼슬하여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라.
287 不逢時하고 逢時 士之常也니라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때를 만나지 못하면 〈물러나〉 은거하고, 때를 만나면 〈나아가〉 벼슬하는 것은 선비의 당연한 일이다.
288 將相 寧有種乎리오 時來亦可爲也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장수와 재상이 어찌 종자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또한 〈장수와 재상이〉 될 수 있다.
289 思之勿深이니多疑니라 商酌折衷하여 三思最宜니라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생각을 깊게 하지 말아야 하니 깊게 하면 의심이 많게 된다. 헤아려 절충하여, 세 번 생각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290 慕而學之 雖不得其實이나 亦庶幾矣리라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좋아하여 그것을 배우면 비록 그 내용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가까울 것이다.
291 器盈 物之常理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그릇이 가득 차면 넘치는 것은 사물의 일반적인 이치이다.
292 易曰 出其言善이면 千里之外應之하고 出其言不善이면 千里之外違之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주역(周易)》에 말하였다. “그 말을 내뱉은 것이 선하면 천리의 밖에서도 그 말에 호응하고, 그 말을 내뱉은 것이 불선하면 천리의 밖에서도 그 말을 피한다.”
293 以愛妻子之心으로 事親이면 曲盡其孝 以保富貴之心으로 奉君이면 無往不忠이요 以責人之心으로 責己 寡過 以恕己之心으로 恕人이면 全交니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면 그 효도를 다할 것이요, 부귀를 보전하는 마음으로 임금을 받들면 가는 곳마다 충성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으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면 우의를 보전할 것이다.
294 景行錄云 人性如水하니 水一傾不可復이요 性一縱不可反이라 制水者 必以堤防하고 制性者 必以禮法이니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경행록》에 말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으니, 물은 한 번 쏟아지면 회복할 수 없고, 성품은 한 번 방종해지면 돌이킬 수 없다. 물을 제어하는 것은 반드시 제방을 사용해야 하고, 성품을 제어하는 것은 반드시 예법을 사용해야 한다.”
295 張敬夫曰 小勇者 血氣之怒也 大勇者 理義之怒也 血氣之怒 不可有 義理之怒 不可無 知此 可以見情性之正而識天理人欲之分矣리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장경부가 말하였다. “작은 용기는 혈기의 노함이요, 큰 용기는 의리의 노함이다. 혈기의 노함은 있어서는 안되고, 의리의 노함은 없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안다면 그로써 성정의 바름을 보아서 천리와 인욕의 구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96 直言訣曰 鏡以照面이요 智以照心이라 鏡明塵埃不往이요 智明邪惡不生이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직언결》에 말하였다. “거울은 얼굴을 비추는 도구이고, 지혜는 마음을 비추는 도구이다. 거울이 밝으면 티끌이 다가가지 못하고, 지혜가 밝으면 사악함이 생기지 않는다.”
297 余定居海山之陽할새 有一二學徒 相從問學하니 余慙無以爲師 而且恐初學 不知向方하고 且無堅固之志而泛泛請益이면 彼此無補하고 反貽人譏 略書一冊子하여 粗敍立心飭躬奉親接物之方하고 名曰擊蒙要訣이라하여 欲使學徒觀此하고 洗心立脚하여 當日下功하고 而余亦久患因循하여 欲以自警省焉하노라 丁丑季冬 德水李珥하노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序>  
내가 해산의 남쪽[해주]에 거처를 정하자 어떤 한둘의 학도들이 함께 어울려 배우기를 청하였다. 나는 스승 될 자질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또 처음 배우는 이가 방향을 알지 못하고 또 견고하고 굳은 뜻이 없어 대강대강 배움을 청하면 저와 내가 도움이 없고 도리어 남의 비웃음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러므로 한 책자를 간략하게 써서, 마음을 세우고 몸을 삼가고 부모를 봉양하고 사물을 접하는 방법을 대략 서술하고, ‘격몽요결’이라 이름하였다. 학도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 마음을 씻고 토대를 세우고 당일에 공부를 시작하게 하고자 하고, 나 역시 〈나쁜 습관을〉 인습한 것을 오랫동안 근심했는데, 이로써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정축년(1577) 늦겨울에 덕수 이이는 쓴다.
298 是故 孟子曰 父子有親하며 君臣有義하며 夫婦有別하며 長幼有序하며 朋友有信이라하시니 人而不知有五常이면 其違禽獸不遠矣리라 <童蒙先習, 首篇>  
이 때문에 맹자(孟子)가 말하길, “아버지와 자식은 친함이 있고[父子有親], 임금과 신하는 의로움이 있고[君臣有義], 남편과 아내는 구별이 있고[夫婦有別],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고[長幼有序], 친구는 믿음이 있다[朋友有信].” 하시니, 사람이면서 오상(五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그 금수(禽獸)와의 거리가 멀지 않을 것이다.
299 父慈子孝하며 君義臣忠하며 夫和婦順하며 兄友弟恭하며 朋友輔仁然後에야 方可謂之人矣리라 <童蒙先習, 首篇>  
그렇다면, 부모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임금은 의롭고 신하는 충성하며, 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순종하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경하며, 벗 사이에 인을 도운 뒤라야, 비로소 그를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00 人之容貌 不可變醜爲姸이며 膂力 不可變弱爲强이며 身體 不可變短爲長이니 此則已定之分이라 不可改也어니와 惟有心志 可以變愚爲智하며 變不肖爲賢이니 此則心之虛靈 不拘於稟受故也 莫美於智하며 莫貴於賢이어늘 何苦而不爲賢智하여 以虧損天所賦之本性乎 人存此志하여 堅固不退 庶幾乎道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바꾸어 예쁘게 할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바꾸어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할 수 없다. 이것들은 이미 결정된 분수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심지는 그로써 어리석음을 바꾸어 슬기롭게 만들고 불초한 것을 바꾸어 어질게 만들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의 허령이 타고난 기질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슬기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어짊보다 귀한 것이 없거늘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을 실천하지 않고서 하늘이 부여한 바의 본성을 훼손하는가? 사람들이 이 뜻을 보존하여 견고하게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301 凡人 自謂立志하되 而不卽用功하고 遲回等待者 名爲立志 而實無向學之誠故也 苟使吾志 誠在於學이면 則爲仁由己 欲之 何求於人이며 何待於後哉리오 所貴乎立志者 卽下工夫하여 猶恐不及하여 念念不退故也 如或志不誠篤하여 因循度日이면 則窮年沒世인들 豈有所成就哉리오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말하되, 곧바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분으로는 뜻을 세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배움을 향한 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뜻으로 하여금 진실로 배움에 있게 한다면 인을 행하는 일은 자기에게 말미암는다. 인(仁)을 하고자 하면 〈인에〉 이를 것이니 어찌 남에게서 구하며 어찌 뒷날을 기다리겠는가? 입지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입지로써〉 바로 공부에 착수하여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해서 항상 생각하고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혹시라도 뜻이 성실하거나 독실하지 못하여 답습하는 것으로 세월만 보낸다면 수명을 다하여 세상을 마친들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는가?
302 一晝夜之內 有十二時하니 十二時 會而爲一日하고 三十日 會而爲一月하고 十有二月 合而成一歲니라 月或有小月하니 小月則二十九日 爲一月이요 歲或有閏月하니 有閏十三月 成一歲니라 <啓蒙篇, 天篇>  
하루 낮과 밤의 안에 열두 시(時)가 있으니, 열두 시가 모여서 하루가 되고, 삼십 일이 모여서 한 달이 되고, 열 또 두 달이 모여서 일 년을 이룬다. 달에는 혹 작은 달이 있으니, 작은 달은 이십구일이 한 달이 되고, 한 해에 혹 윤달이 있으니, 윤달이 있으면 십삼 개월이 한 해를 이룬다.
303 晝長夜短而天地之氣大暑 爲夏하고 夜長晝短而天地之氣大寒이면 爲冬이니 春秋則晝夜長短 平均하되 而春氣 微溫하고 秋氣 微涼이니라 <啓蒙篇, 天篇>  
낮이 길고 밤이 짧으면서 하늘과 땅의 기후가 크게 더우면 여름이 되고, 밤이 길고 낮이 짧으면서 하늘과 땅의 기후가 크게 차가우면 겨울이 되니, 봄과 가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지만 봄의 기후가 조금 따듯하고, 가을 기후가 조금 서늘하다.
304 春則萬物生하고 夏則萬物長하며 秋則萬物成熟하고 冬則萬物閉藏하나니萬物之所以生長收藏 無非四時之功也니라 天篇이라 <啓蒙篇, 天篇>  
봄이면 만물이 생겨나고, 여름이면 만물이 자라며, 가을이면 만물이 익고, 겨울이면 만물이 거두어 감춘다. 그렇다면 만물이 생겨나서 자라나며, 거두어지고 감추어지는 까닭은 사계절의 공효가 아닌 것이 없다. 오른쪽은 천편이다.
305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四者 修身之要也 禮與非禮 初學 難辨이니 必須窮理而明之하여 但於已知處 力行之 思過半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네 가지는 몸을 닦는 요체이다. 예와 예가 아닌 것을 처음 배우는 자들이 분별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모름지기 이치를 궁구하고 예와 비례를 밝혀서 다만 이미 아는 방면에 그것을 힘써 행한다면 생각하여 〈깨닫는 것이〉 반을 넘을 것이다.
306 山海之氣上하여 與天氣相交 興雲霧하고 降雨雪하며 爲霜露하고 生風雷니라 <啓蒙篇, 地篇>  
산과 바다의 기운이 올라가 하늘의 기운과 서로 만나면 구름과 안개를 일어나고 비와 눈을 내리며, 서리와 이슬이 되고 바람과 우레를 만든다.
307 苟能莊以涖之하여 以體乾健之道하고 柔以正之하여 以承坤順之義 則家道正矣어니와 反是而夫不能專制하여 御之不其道하고 婦乘其夫하여 事之不其義하여 昧三從之道하고 有七去之惡이면 家道索矣리라 <童蒙先習, 夫婦有別>  
만일 〈남편이〉 엄숙함으로 〈집안의 사람을〉 대하여 하늘의 굳건한 도를 체득(體得)할 수 있고, 〈아내가〉 부드러움으로 〈집안의 사람을〉 바로잡아서, 땅의 순(順)한 의를 받들 〈수 있다〉면 집을 이끄는 도리[家道]가 바를 것이지만, 이와 반대로, 남편이 오로지 제어를 하지 못하여 〈집안〉 다스림에 올바른 도리를 쓰지 못하고, 아내가 그 남편의 〈잘못을〉 틈타서 〈남편〉 섬김에 올바른 의리를 쓰지 못하여 세 가지 〈아내가〉 따라야 할 도[三從之道]에 어둡고, 일곱가지 〈아내를〉 내치는 악행이 있다면, 집안의 도리가 다하게 될 것이다.
308 暑氣蒸鬱이면 油然而作雲하여 沛然而下雨하고 寒氣陰凝이면 露結而爲霜하고 雨凝而成雪이라 春夏 多雨露하고 秋冬 多霜雪하니 變化莫測者 風雷也니라 <啓蒙篇, 地篇>  
더운 기운에 증기가 가득 차면 유연하게 구름을 일으켜 패연하게 비를 내리고, 찬 기운에 음기가 엉기면 이슬이 맺혀서 서리가 되고, 비가 엉겨서 눈을 이룬다. 그러므로 봄과 여름에는 비와 이슬이 많고, 가을과 겨울에는 서리와 눈이 많은데,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바람과 우레이다.
309 多言多慮 最害心術하니 無事當靜坐存心하고 接人當擇言簡重하여 時然後言이면 言不得不簡이니 言簡者近道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은 것이 마음 수양에 가장 해로우니 일이 없으면 응당 고요히 앉아 마음을 보존하고, 사람을 접하면 응당 말을 가려서 간략하고 신중히 하여, 때에 맞은 뒤에 말하면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 간략한 것이 도에 가깝다.
310 徐行後長者 謂之弟 疾行先長者 謂之不弟 是故 年長以倍父事之하고 十年以長兄事之하고 五年以長肩隨之 長慈幼하며 幼敬長하여 然後에야 無侮少陵長之弊하여 而人道正矣리라 <童蒙先習, 長幼有序>  
천천히 가면서 어른을 뒤따르는 것, 그것을 공손함[悌]이라 이르고, 빨리 가면서 어른을 앞서는 것, 그것을 공손하지 못함[不悌]이라 이른다. 이 때문에 나이가 배로서 많으면 부모로서 그 〈연장자를〉 섬기고, 십 년으로서 많으면 형으로서 그 〈연장자를〉 섬기고, 오 년으로서 많으면 어깨를 맞대고 그 〈연장자를〉 따라야 하니, 어른이 어린아이를 사랑하며 어린아이가 어른을 공경한 뒤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며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서, 사람의 도리가 바르게 될 것이다.
311 有事以理應事하고 讀書以誠窮理하여 除二者外 靜坐收斂此心하여 使寂寂無紛起之念하고 惺惺無昏昧之失 可也 所謂敬以直內者如此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일이 있으면 이치로 일에 응하고 책을 읽으면 정성으로 이치를 궁구하여, 두 가지를 제한 이외에는 고요히 앉아 이 마음을 거두고 다잡아서 고요하고 고요하여 어지럽게 일어나는 생각이 없고 밝고 밝아 어둡고 깜깜한 실수가 없게 함이 옳으니, 이른바 공경으로 안을 곧게 한다는 것이 이와 같다.
312 春生而秋死者 草也葉脫而春復榮華者 木也 其葉蒼翠 其花五色이니 其根深者 枝葉 必茂하고 其有花者 必有實이니라 <啓蒙篇, 物篇>  
봄에 나서 가을에 죽는 것은 풀이고, 가을에 잎이 떨어지고 봄에 다시 꽃이 무성한 것은 나무이다. 그 잎이 푸르고, 그 꽃이 오색이니, 그 뿌리가 깊은 것은 가지와 잎이 반드시 무성하고, 그 꽃이 있는 것은 반드시 열매가 있다.
313 每日 頻自點檢하여 心不存乎 學不進乎 行不力乎아하여改之하고加勉하여 孜孜毋怠하여 斃而後已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매번 날마다 자주 스스로 점검하되 마음을 보존하지 않았는가, 학문을 진전시키지 않았는가, 행실을 힘쓰지 않았는가 하여, 있으면 (그것을) 고치고 없으면 더욱 부지런히 하여, 힘쓰고 힘써서 게을리하지 말아 죽고 난 뒤에 그만둘 것이다.
314 是故 取友 必端人하며 擇友 必勝己 要當責善以信하며 切切偲偲하여 忠告而善道之하다가 不可니라 <童蒙先習, 朋友有信>  
이 때문에 벗을 취함에 반드시 단정한 사람을 〈취하며〉, 벗을 선택함에 반드시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택해야하니〉, 마땅히 진실함으로 선을 권하[責善]며 절절하게 선을 권하여, 충심으로 고하고 그 〈친구를〉 선으로 이끌다가 안되면 그만두어야 한다.
315 苟或交遊之際 不以切磋琢磨 爲相與하고 但以歡狎戱謔으로 爲相親이면 安能久而不疎乎리오 <童蒙先習, 朋友有信>  
만약 교유하는 사이에 절차탁마(切磋琢磨)로써 함께하지 않고, 다만 스스럼 없이 농담하는 것으로 가까이 지낸다면, 어찌 오래도록 〈서로에게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316 父母愛之어시든 喜而不忘하며 惡之어시든 懼而無怨하며 有過어시든 諫而不逆하고 三諫而不聽이어시든 號泣而隨之하며 怒而撻之流血이라도 不敢疾怨하며 居則致其敬하고 養則致其樂하고 病則致其憂하고 喪則致其哀하고 祭則致其嚴이니라 <童蒙先習, 總論>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해주시면 기뻐하고 잊지 않으며, 〈부모님이〉 자식을 미워하시면 〈자식은〉 두려워하되 〈부모를〉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님이〉 허물이 있으면 〈자식은〉 간하되 〈부모를〉 거역하지 않으며, 세 번 간했으나 듣지 않으시면 부르짖고 울면서 〈부모를〉 따르며, 〈부모님이〉 노하여 〈자식을〉 매질하여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부모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거처할 때는 자신의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는 자신의 즐거움을 다하고, 병이 생겼을 때는 자신의 근심을 다하고, 초상을 당했을 때는 자신의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때는 자신의 엄숙함을 다한다.
317 欲觀其人 行之善不善인대 必先觀其人之孝不孝 可不愼哉 可不懼哉 苟能孝於其親이면 則推之於君臣也 夫婦也 長幼也 朋友也 何往而不可哉리오孝之於人 大矣로되 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 <童蒙先習, 總論>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선한지 선하지 않은지 살펴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하는지 효도하지 않는지 볼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 부모에게 효도한다면 그 효도를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에 미루어 봄에, 어디에 대입한들 옳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효도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고원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318 人非父母 無從而生이요 且人生三歲然後 始免於父母之懷 欲盡其孝 服勤至死하고 父母沒이면 致喪三年하여 以報其生成之恩이니라 <啓蒙篇, 人篇>  
사람은 부모가 아니면 따라서 태어날 수 없고, 게다가 사람은 태어난 지 삼년이 된 뒤에야 비로소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그러므로 그 효도를 다하고자 한다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히 힘쓰고, 부모가 죽으면 삼 년의 상례를 치뤄서 그 낳아 길러준 은혜에 보답한다.
319 耕於野者 食君之土하고 立於朝者 食君之祿이니 固非父母不生이요 亦非君不食이라 臣之事君 如子之事父하여 唯義所在 則舍命效忠이니라 <啓蒙篇, 人篇>  
들에서 밭 가는 사람은 임금의 토지에서 먹고, 조정에 선 사람은 임금의 녹을 먹으니, 사람은 진실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또한 임금이 아니면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하가 임금 섬기기를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이해서, 오직 의리가 있는 곳에는 곧 목숨을 바치고 충성을 바친다.
320 同受父母之餘氣하여 以爲人者 兄弟也 且人之方幼也連牀하고同衾하여 共被父母之恩者 亦莫如我兄弟也 愛其父母者 亦必愛其兄弟니라 <啓蒙篇, 人篇>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은기운을 같이 받아서 사람이 된 것이 형제이다. 또 사람이 바야흐로 어렸을 때에는 먹을 때는 상을 잇고, 잠을 잘 때엔 이불을 같이 하면서 부모의 은혜를 함께 입은 사람은 또한 나의 형제같은 이가 없다. 그러므로 제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반드시 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321 曰 哀哀父母 生我劬勞라하니 父母之恩 爲如何哉 豈敢自有其身하여 以不盡孝於父母乎 人能恒存此心이면 自有向親之誠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그러므로 (《시경》에) 말하였다.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로우셨다. 부모의 은혜는 어떠함이 되는가? 어찌 감히 스스로 그 몸을 소유하여 그것으로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절로 부모를 향한 정성이 있을 것이다.
322 宗族 雖有親疎遠近之分이나이나 推究其本하면 同是祖先之骨肉이니 苟於宗族 不相友愛하면 是忘其本也 人而忘本이면 家道漸替리라 <啓蒙篇, 人篇>  
종족은 비록 친소와 원근의 나뉨이 있지만, 그러나 그 근본을 깊이 살펴보면, 다 같이 조상의 뼈와 살이니, 만일 종족에 대해서 서로 우애하지 않으면 이것은 그 근본을 잊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근본을 잊으면 집안의 도리가 점점 쇠퇴하리라.
323 凡事父母者 一事一行 毋敢自專하여 必稟命而後行이니 若事之可爲者 父母不許어시든 必委曲陳達하여 頷可而後行이요 若終不許라도 則亦不可直遂其情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행동도 감히 스스로 마음대로 하지 말고 반드시 명을 여쭈고 난 뒤에 행해야 한다. 만약 일가운데 할 만한 것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반드시 자세하게 말하여 머리를 끄덕이고 허락한 뒤에 행하고, 만약 끝내 허락하지 않으면 또한 곧바로 그 뜻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324 每日未明而起하여 盥櫛衣帶하고 就父母寢所하여 下氣怡聲하여 問燠寒安否하며詣寢所하여 定其褥席하고 察其溫凉하며 日間侍奉 常愉色婉容하여 應對恭敬하고 左右就養하여 極盡其誠하며 出入 必拜辭拜謁이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매양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 입고 띠를 매고, 부모의 침소로 나아가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온화하게 하여 따뜻한지 차가운지 편안한지 아닌지를 묻고, 어두우면 침소로 나아가 그 이부자리를 깔고 그 따뜻한지 서늘한지를 살핀다. 낮 동안 모시고 받듦에 항상 얼굴빛을 즐겁게 하고 용모를 공손히 하여 응대하기를 공손하고 공경히 하고, 좌우로 나아가 봉양함에 그 정성을 극진히 하며, 나가고 들어옴에 반드시 절하고 아뢰며 절하고 뵈어야 한다.
325 人非學問이면 固難知其何者爲孝 何者爲忠이며 何者爲弟 何者爲信이라 必須讀書窮理하여 求觀於古人하고 體驗於吾心하여 得其一善하여 勉行之 孝弟忠信之節 自無不合於天敍之則矣리라 <啓蒙篇, 人篇>  
사람이 학문이 아니면, 진실로 그 어떤 것이 효도가 되며, 어떤 것이 충성이 되며, 어떤 것이 공손함이 되며, 어떤 것이 신의가 되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모름지기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해서 옛사람에게서 구하여 관찰하고, 몸소 내 마음에서 증험하여, 그 한 가지 선을 얻어 힘써 그것을 행하면, 효도, 공손, 충성, 신의의 절도가 저절로 하늘의 질서의 법칙에 부합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326 復時 俗例必呼小字하니 非禮也 少者猶可呼名이어니와 長者不可呼名이요 隨生時所稱 可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혼을 부르는) 복을 할 때 세속의 관례에 반드시 어릴 때 이름을 부르니, 예가 아니다. 어린아이면 그래도 이름을 부을 수 있으나 어른이라면 이름을 부을 수 없고 살았을 때 부르던 바를 따르는 것이 옳다.
327 母喪 父在父爲喪主 凡祝辭 皆當用夫告妻之例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어머니 상에 아버지가 계시면 아버지가 상주가 되니, 모든 축사를 모두 마땅히 남편이 아내에게 고하는 예를 써야 한다.
328 尸在牀而未殯 男女位于尸傍이면 其位南上이니 以尸頭所在爲上也 旣殯之後 女子則依前位于堂上호되 南上하고 男子則位于階下호되 其位當北上이니 以殯所在爲上也 發引時 男女之位 復南上이니 以靈柩所在爲上也 隨時變位而各有禮意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시신이 침상에 있어 아직 빈소 차리지 않았을 때 남자와 여자가 시신 곁에 자리하면 그 위치는 남쪽을 상석으로 하니, 시신의 머리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는 것이다. 이미 빈소를 차린 뒤에 딸은 전례대로 당의 위에 자리하되 남쪽을 상석으로 하고, 남자는 섬돌 아래에 자리하되 그 위치는 마땅히 북쪽을 상석으로 삼아야 하니, 빈소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는 것이다. 발인할 때는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다시 남쪽을 상석으로 하니, 영구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는 것이다. 때에 따라 자리를 바꾸되 각각 예의 뜻이 있다.
329 今人 多不解禮하여 每弔客致慰 專不起動하고 只俯伏而已하니 此非禮也 弔客 拜靈座而出이어든 喪者當出自喪次하여 向弔客하여 再拜而哭 可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예를 알지 못하여, 매양 조객이 위로할 때에 전혀 (몸을) 일으켜 움직이지 않고 단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있을 뿐이니, 이는 예가 아니다. 조객이 영상에 절하고 나오면 상주는 마땅히 상차로부터 나와서 조객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곡함이 옳다.
330 衰絰 非疾病服役이면 不可脫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상복과 수질이나 요질은 질병이나 일하는 경우가 아니면 벗을 안된다.
331 家禮 父母之喪 成服之日 始食粥하고 卒哭之日 始疏食 水飮하고 不食菜果하며 小祥之後 始食菜果하니 禮文如此하니 非有疾病이면 當從禮文이니라 人或有過禮而啜粥三年者하니 若是誠孝出人하여 無一毫勉强之意 雖過禮라도 猶或可也어니와 若誠孝未至어늘 而勉强踰禮 是自欺而欺親也 切宜戒之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주자의〉 《가례(家禮)》에 ‘부모의 상에는 상복을 갖추어 입는[成服] 날에야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하는 날에야 비로소 거친 밥과 물을 마시고, 채소나 과일을 먹지 않으며, 소상의 뒤에야 비로소 채소와 과일을 먹는다.’〈고 하였다.〉 예문(禮文)이 이와 같으니, 질병(疾病)이 없으면(있지 않으면) 마땅히 예문을 따라야한다. 사람들 (중에) 혹 예를 지나쳐서 삼 년을 죽을 먹는 사람이 있으니, 이처럼 성효가 남보다 뛰어나서, 조금도 힘써서 억지로 하는 뜻이 없다면 비록 예에 지나치더라도 오히려 혹 괜찮으나, 만일 성효가 지극하지 못하면서 힘써 억지로 예를 넘는다면 이는 자신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것이니, 절대로 마땅히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332 今之識禮之家 多於葬後返魂하니 此固正禮로되 但時人效顰하여 遂廢廬墓之俗하고 返魂之後 各還其家하여 與妻子同處하여 禮坊大壞하니 甚可寒心이라 凡喪親者 自度一一從禮하여 無毫分虧欠이어든 當依禮返魂이어니와 如或未然이면 則當依舊俗廬墓 可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오늘날에 예를 아는 집안들이 대부분 장례 지낸 뒤에 반혼하니, 이는 진실로 바른 예인데, 단지 당시 사람들이 흉내만 내어 마침내 여묘의 풍속을 없애고 반혼한 뒤에 각자 그 집으로 돌아와 처자와 함께 거처하여 예에 금기가 크게 무너지니, 매우 한심스럽다. 무릇 어버이를 잃은 자는 스스로 하나하나 예를 따를 것을 헤아려 조금도 이지러지고 모자람이 없다면 마땅히 예를 따라 반혼할 것이고, 만일 혹 그렇지 못하면 마땅히 옛 풍속을 따라 여묘함이 옳다.
333 親喪 成服之前 哭泣 不絶於口하고 葬前 哭無定時하여 哀至하며 卒哭後朝夕哭二時而已 禮文 大槪如此어니와 若孝子情至 則哭泣 豈有定數哉 凡喪 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 喪事 不過盡其哀敬而已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어버이의 상에 성복하기 전에는 곡하고 우는 것을 입에서 끊이지 않게 하고, 장사지내기 전에 곡함에 정해진 때가 없어 슬픔이 지극하면 곡하며, 졸곡한 뒤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때에만 곡할 뿐이다. 예문이 대개 이와 같으나, 만약 효자의 마음이 지극하면 곡하고 우는 것이 어찌 정해진 수가 있겠는가? 무릇 초상은 그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충분하기보다는 예는 부족하더라도 슬픔이 충분함 만 못하니, 상사는 그 슬픔과 공경을 다 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334 師友之義重者 及親戚之無服而情厚者 與凡相知之分密者 皆於聞喪之日 若道遠하여 不能往臨其喪이면 則設位而哭이니라 師則隨其情義深淺하여 或心喪三年 或期年 或九月 或五月 或三月이요雖最重이나 不過三月이니라 若師喪 欲行三年期年者 不能奔喪이어든 當朝夕設位而哭하여 四日而止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스승과 벗의 의리가 중한 자와 친척 중에 복입는 예가 없으면서 정이 두터운 자와 무릇 서로 알던 교분이 친밀한 자는 모두 상을 들은 날에 만약 길이 멀어 그 상에 가서 지킬 수 없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한다. 스승이라면 그 정의의 깊고 얕음을 따라 혹 심상 삼 년, 혹 기년, 혹 9개월, 혹 5개월, 혹 3개월이요, 친구라면 비록 가장 중하더라도 3개월을 넘지 않는다. 만약 스승의 상에 삼 년이나 기년을 행하고자 하는 자가 초상에 달려갈 수 없으면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곡하여, 나흘에 그친다.
335 凡遭服者 每月朔日 設位服其服而會哭하고 月數旣滿이면 於次月朔日 設位服其服하고 會哭而除之 其間哀至 可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복을 입게 된 자는 매월 초하루에 신위를 설치하고 그 복을 입고 모여서 곡하고, 달 수가 이미 찼으면 다음 달 초하루에 신위를 설치하고 그 복을 입고 모여서 곡하고 (그것을) 벗으니, 그사이에 슬픔이 지극하면 곡해도 좋다.
336 正至朔望하고 俗節薦以時食이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정월 초하루와 동지, 초하루, 보름이면 (사당에) 참배하고, 속절이면 계절 음식을 올린다.
337 婢僕 代我之勞하니 當先恩而後威라야 乃得其心이니 君之於民 主之於僕 其理一也 君不恤民民散이니 民散國亡하고 主不恤僕僕散이니 僕散家敗 勢所必至 其於婢僕 必須軫念飢寒하여 資給衣食하여 使得其所하고 而有過惡이면 則先須勤勤敎誨하여 使之改革하고 敎之不改然後 乃施楚撻하여 使其心으로 知厥主之楚撻 出於敎誨 而非所以憎嫉이니 然後 可使改心革面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하인은 나의 수고를 대신해주니, 마땅히 은혜를 먼저하고 위엄을 뒤로 하면 해야만 이에 그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임금이 백성에 대해서와 주인이 하인에 대해서는 그 이치가 하나이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지니,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며, 주인이 하인을 돌보지 않으면 하인이 흩어진다. 하인이 흩어지면 집안이 패망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 하인에 대하여 반드시 (생략) (그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 것을 깊이 염려하여 옷과 음식을 공급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알맞은 곳을 얻게 하고, 허물과 악행이 있으면 (생략) 먼저 반드시 부지런히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 을 고치게 하고 (그를) 가르쳐도 고치지 않은 뒤에 이에 회초리질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마음에 그 주인의 회초리질이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고, 미워하기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러한 뒤에야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고치고 얼굴을 고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338 處世章 第十: 古之學者 未嘗求仕로되 學成爲上者 擧而用之하니 蓋仕者 爲人이요 非爲己也 今世則不然하여 以科擧取人하여 雖有通天之學 絶人之行이라도 非科擧 無由進於行道之位 父敎其子하고 兄勉其弟하여 科擧之外 更無他術하니 士習之偸 職此之由 第今爲士者 多爲父母之望 門戶之計하여 不免做科業이나 亦當利其器 俟其時하여 得失 付之天命이요 不可貪躁熱中하여 以喪其志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열째 〈처세장〉: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나 배움이 이루어지면 윗 사람이 천거하여 그 사람을 등용하였으니, 대체로 벼슬[仕]이란 남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 과거로 사람을 뽑아 비록 천리를 통달한 학문과 남들을 뛰어넘는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자신이 배운〉 도를 행하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그 자식에게 〈과거공부를〉 하게 하고 형은 그 아우에게 〈과거공부를〉 권면하여 과거의 〈공부〉 이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속이 경박한 것은 오로지 이러한 까닭이다. 다만 지금 선비된 자가 대부분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계책을 때문에 과거 공부하는 것을 벋어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실력을 연마하여 그 때를 기다려 얻음과 잃음을 하늘의 운수에 맡겨야 하며, 출세에 급급하고 열중해서 그 뜻을 잃어서는 안된다.
339 過猶不及: 子貢問 師與商也孰賢이니잇고 子曰 師也하고 商也 不及이니라 曰 然師愈與잇가 子曰 過猶不及이니라 <原文故事成語, 處世>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자공이 물었다. “사(師, 子張)와 상(商, 子夏)은 누가 낫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 〈자공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사가 낫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340 門前雀羅: 夫以汲鄭之賢으로도 有勢賓客十倍 無勢하니 況衆人乎 下邽翟公有言이라 <原文故事成語, 處世>  
341 孟子對曰 王好戰하시니 請以戰喩하리이다 塡然鼓之하여 兵刃旣接이어든 棄甲曳兵而走하되 或百步而後止하며 或五十步而後止하여 以五十步 笑百步 何如하니잇고하니 曰 不可하니 直不百步耳언정 是亦走也니이다하다 曰 王如知此시면 則無望民之多於隣國也하소서하다 <原文故事成語, 形勢>  
342 吳越同舟: 善用兵者 譬如率然이라 率然者 常山之蛇也 擊其首尾至하고 擊其尾首至하고 擊其中首尾俱至 敢問兵可使如率然乎아하면 曰 可라하다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라가 遇風이면 其相救也 如左右手 <原文故事成語, 形勢>  
343 自上古 不屬爲人이니이다 漢數千里爭利 人馬罷리니 虜以全制其敝니이다 且彊弩之極矢 不能穿魯縞하고 衝風之末力 不能漂鴻毛니이다 非初不勁이나 末力衰也니이다 擊之不便이니 不如和親이니이다하다 群臣議者 多附安國이라 於是上許和親이라 <原文故事成語, 形勢>  
344 鵬程萬里: 北冥有魚한대 其名爲鯤이라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한대 其名爲鵬이라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이라 是鳥也 海運하면 將徙於南冥이라 南冥者 天池也 齊諧者 志怪者也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하고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라하다 <原文故事成語, 努力>  
345 操於是出敎한대 唯曰 鷄肋而已라하다 外曹莫能曉한대 修獨曰 夫鷄肋 食之無所得이요 棄之如可惜이니 公歸計決矣라하다 乃令外白稍嚴하니 操於此廻師 <原文故事成語, 努力>  
346 晉車胤字武子 南平人이라 恭勤不倦하며 博覽多通이라 家貧하여 不常得油하여 夏月練囊盛數十螢火하여 以照書하여 以夜繼日焉이라 <原文故事成語, 努力>  
347 井底之蛙: 子獨不聞夫埳井之鼃乎 謂東海之鱉曰 吾樂與로다 吾出跳梁乎井幹之上하고 入休乎缺甃之崖하며 赴水接腋持頤하고 蹶泥沒足滅跗 還視虷蟹與科斗하니 莫吾能若也 <原文故事成語, 愚鈍>  
348 故木受繩하고 金就礪하며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 知明而行無過矣리라 故不登高山이면 不知天之高也 不臨深溪 不知地之厚也 不聞先王之遺言이면 不知學問之大也 干越夷貉之子 生而同聲이나 長而異俗 敎使之然也라하다 <原文故事成語, 愚鈍>  
349 晏子至하니 楚王賜晏子酒 酒酣 吏二縛一人詣王하니 王曰 縛者曷爲者也오하니 對曰 齊人也 坐盜니이다하다 王視晏子曰 齊人固善盜乎아하니 晏子避席對曰 聞之컨대 橘生淮南爲橘이요 生于淮北爲枳라하니이다 葉徒相似 其實味不同이니이다 所以然者 水土異也니이다 今民生長于齊 不盜한대 入楚하니 得無楚之水土 使民善盜耶아하다 王笑曰 聖人非所與熙也 寡人反取病焉이라하다 <原文故事成語, 才致>  
350 不言長短: 昔黃相國喜 微時行役이라가 憩于路上이라 見田夫駕二牛而耕者하고 問曰 二牛何者爲勝고하니 田夫不對하고 輟耕而至하여 附耳細語曰 此牛勝이니이다하다 公怪之曰 何以附耳相語오하니 田夫曰 雖畜物이라도 其心與人同也니이다 此勝彼劣하니 使牛聞之 寧無不平之心乎리오하다 公大悟하여 遂不復言人之長短云이라하다 <原文故事成語, 才致>  
351 倚閭之望: 齊淖齒之亂 王孫賈從湣王이라가 失王之處 其母曰 汝朝出而晩來 吾倚門而望하고 汝暮出而不還하면 吾倚閭而望이러니 汝今事王이라가 王走어시늘 汝不知其處하니 汝尙何歸焉고하다 王孫賈乃攻淖齒하여 殺之 於是 齊亡臣 相與求湣王子法章하여 立以爲齊王하고 保莒城하여 以拒燕하다 <原文故事成語, 信義>  
352 曾參殺人: 昔者 曾子處費 費人有與曾子同名族者而殺人할새 人告曾子母曰 曾參殺人이라하니 曾子之母曰 吾子不殺人이라하고 織自若이라 有頃焉 人又曰 曾參殺人이라하니 其母尙織自若也 頃之 一人又告之曰 曾參殺人이라하니 其母懼하여 投杼踰牆而走 夫以曾參之賢與母之信也로도 而三人疑之하면 慈母不能信也 <原文故事成語, 信義>  
353 野鼠求婚: 野鼠 欲爲其子擇高婚한대 初謂惟天最尊하여 遂求之於天이라 天曰 我雖兼包萬有 非日月이면 無以顯吾德이라하니 野鼠求之於日月이라 日月曰 我雖普照 惟雲蔽之하니 彼居吾上乎로다하니 野鼠求之於雲이라 <原文故事成語, 慾心>  
354 雲曰 我雖使日月 失明하나 惟風吹散하니 彼居吾上乎로다하니 野鼠求之於風이라 風曰 我雖能散雲이나 惟田間石佛 吹之不倒하니 彼居吾上이로다하니 野鼠求之於石佛이라 石佛曰 我雖不畏風이나 惟野鼠穿我足底 傾倒하니 彼居吾上乎로다하니 野鼠於是傲然自得曰 天下之尊 莫我若也라하고 遂婚於野鼠 <原文故事成語, 慾心>  
355 易曰 出其言善이면 千里應之하고 出言不善이면 千里外違이라 <原本明心寶鑑, 繼善篇第一 >  
《주역》 〈〈계사전〉에〉 이르길, 군자가 〈집에서〉 말을 냄이 선하면 천 리의 〈밖에서도〉 그 말에 호응하고, 〈군자가〉 말을 냄이 선하지 못하면 천 리의 밖에서도 떠나간다.
356 景行錄云 知足可樂이요 務貪니라 <原本明心寶鑑, 安分篇第六 >  
《경행록》에 이르길, 만족할 줄 알면 즐거울 수 있고 탐욕에 힘쓰면 근심스럽다.” 하였다.
357 汪信民 嘗言 人常咬得菜根이면 百事 可做 <原本明心寶鑑, 安分篇第六 >  
왕신민(왕혁)이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온갖 일을 할 수 있다.” 하였다.
358 景行錄云 以愛妻子之心으로 事親이면 曲盡其孝 以保富貴之心으로 奉君이면 無往不忠이요 以責人之心으로 責己 寡過 以恕己之心으로 恕人이면 全交니라 <原本明心寶鑑, 存心篇第七 >  
《경행록》에 말하였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부모를 섬기면 그 효도를 다할 것이고, 부귀를 보전하려는 마음으로써 임금을 받들면 가는 곳마다 충성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책망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써 남을 용서하면 사귐을 온전히 할 것이다.”
359 景行錄云 人性 如水하여 水一傾不可復이요 性一縱不可反이니 制水者 必以堤防하고 制性者 必以禮法이니라 <原本明心寶鑑, 戒性篇第八 >  
《경행록》에 말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아서, 물은 한 번 엎질러지면 다시 담을 수 없고, 성품은 한 번 방종해지면 되돌릴 수 없다. 물을 제어하는 자는 반드시 제방으로써 하며, 성품을 제어하는 자는 반드시 예와 법으로써 해야 한다.”
360 張敬夫曰 小勇者 血氣之怒也 大勇者理義之怒也 血氣之怒 不可有 義理之怒 不可無 知此可以見情性之正하여 而識天理人欲之分矣리라 <原本明心寶鑑, 戒性篇第八 >  
장경부(장식)가 말하였다. “소용은 혈기의 노여움이요, 대용은 의리의 노여움이다. 혈기의 노여움은 있어서는 안되고, 의리의 노여움은 없어서는 안되니, 이것을 안다면 그로써 성정의 바름을 보아서 천리와 인욕의 구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61 學者 乃身之寶 學者 乃世之珍이니라 是故乃爲君子 不學爲小人이니 後之學者 宜各勉之니라 <原本明心寶鑑, 勤學篇第九 >  
배움은 곧 몸의 보물이고, 배운 사람은 곧 세상의 보물이다. 이러한 까닭에 배우면 곧 군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이 된다. 후세의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각자 (그것을) 힘써야한다.
362 景行錄云 木有所養이면 根本固而枝葉茂하여 棟樑之材成하고 水有所養이면 泉源壯而流派長하여 灌漑之利博하고 人有所養이면 志氣大而識見明하여 忠義之士出이니 可不養哉 <原本明心寶鑑, 省心篇第十一 >  
《경행록》에 말하였다. “나무를 관리하는 것이 있으면 뿌리가 튼튼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기둥과 대들보의 재목을 이루고, 물을 관리하는 것이 있으면 샘의 근원이 힘차고 물줄기가 길어서 관개의 이익이 넓으며, 사람을 잘 길러주는 것이 있으면 뜻과 기운이 크고 식견이 밝아져서 충의의 선비가 나오니, 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363 直言訣曰 鏡以照面이요 智以照心이니 鏡明塵埃不往이요 智明邪惡不生이니라 <原本明心寶鑑, 省心篇第十一 >  
《직언결(直言訣)》에 이르길, “거울은 얼굴을 비추는 도구[所以]이고 지혜는 마음을 비추는 도구이니, 거울이 밝으면 티끌이 다가가지 못하고 지혜가 밝으면 사악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364 左傳曰 意合이면 吳越相親이요 意不合이면 骨肉爲讐敵이니라 <原本明心寶鑑, 省心篇第十一 >  
《춘추좌씨전》에 이르길, “뜻이 맞으면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도 서로 친해질 수 있고, 뜻이 맞지 않으면 부모·형제도 원수가 된다.” 하였다.
365 疏廣曰 賢而多財 損其志하고 愚而多財 益其過니라 <原本明心寶鑑, 省心篇第十一 >  
소광이 말하였다. “현명하면서 재물이 많으면 그 뜻을 해치고, 어리석으면서 재물이 많으면 그 허물을 더하게 된다.”
366 荀子曰 士有妬友賢交不親하고 君有妬臣賢人不至니라 <原本明心寶鑑, 省心篇第十一 >  
순자가 이르길, “선비에게 질투하는 벗이 있으면 어진 벗이 가까이하지 않고, 임금에게 질투하는 신하가 있으면 어진 사람이 오지 않는다.”
367 學優하야 爲國盡忠하라 敬信節用하야 愛民如子하라 <四字小學, 四字小學>  
배움이 넉넉하면 벼슬하여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라. 삼가고 미더우며 절약해 쓰며, 백성 사랑을 자식과 같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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