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말하였다. “왕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어 말하길, ‘제 힘으로는 백 균을 들기 충분하지만, 힘으로 깃털 하나를 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시력으로는 가을 털의 끝을 살피는 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합니다’ 한다면, 왕은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은혜로써 금수에 미치기에 충분하지만,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호받지 않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잘 다스리지 못함은 하지 않아서일지언정,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나의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 미치며, 내 아이를 아이로 대해서 남의 아이에게 미치면,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 〈사제(思齊)〉에 이르길, ‘내 처를 본으로 삼아서, 형제에게 이르러서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것에 베풀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 보면 그것으로써 사해를 보전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보지 않으면 처자식조차 보호할 수 없으니, 옛날의 사람이 남보다 크게 뛰어넘는 까닭은 다른 까닭이 없습니다. 그 해야 할 것을 잘 미루어 갔을 뿐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충분하게 금수에게 미치면서도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왕의 크게 하고자 하는 바를 얻어들을 수 있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맹자가〉 말하였다. “살지고 단 것이 입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가볍고 따뜻한 〈옷〉이 몸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채색이 눈에 충분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까? 좋은 소리가 귀에 충분하게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까? 총애하는 자들을 앞에서 부리기에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왕의 여러 신하가 모두 충분하게 그것을 제공하는데 왕이 어찌 그것 때문이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나는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왕이 크게 바라는 바를 알 수 있겠습니다. 토지를 개척하고 진나라와 초나라에게 조회를 받아 중국에 자리하여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고자 함입니다. 이 같이 하는 바로, 이 같이 바라는 바를 구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함과 같습니다.”
이런 까닭에 현명한 군주는 백성의 생산을 마련해주되, 반드시 위로는 생업으로 부모를 섬기는 데에 풍족하며 아래로는 생업으로 처자식을 기르는 데 풍족하게 하고, 풍년에는 종신토록 배부르고 흉년이라도 죽음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런 뒤에야 〈백성을〉 이끌어서 선으로 가기 때문에 백성이 군주를 따르기가 쉽습니다.
오늘날에는 백성의 생업을 마련해주되, 위로는 생업으로 부모를 섬기기에 풍족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생업으로 처자식을 기르는 데에 풍족하지 못하여, 풍년에 종신토록 고통스럽고 흉년에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이는 오직 죽음에서 구제하는 데에도 넉넉하지 못할까를 두려워하니, 어느 겨를에 예의를 닦겠습니까?
무릇 나에게 있는 것인 사단(四端)을 그것을 모두 넓혀 채울 줄 안다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솟아 오르는 것과 같을 것이니, 만일 사단을 확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천하를 보전할 수 있고, 만일 사단을 확충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부모조차 섬길 수 없다.”
천하의 선비가 좋아해주는 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인데 그것으로 〈순의〉 근심을 풀기에는 충분하지 않았고, 예쁜 여색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인데, 요임금의 두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도 그것으로 〈순의〉 근심을 풀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으며, 부유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인데 부유함에서는 천하를 소유하였는데도 그것으로 〈순의〉 근심을 풀기에는 충분하지 않았고, 〈신분이〉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인데, 귀함에서는 천자가 되었는데도 그것으로 〈순의〉 근심을 풀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과 아름다운 여색과 부귀함으로 근심을 풀기에 충분한 것이 없었고, 오직 부모에게 순(順)하여야 그것으로 근심을 푸는 것이 가능했다네.
비록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 사람이 스스로의 양심(良心)을 잃은 까닭은 또한 도끼가 나무를 를 만나면 날마다 나무를 베어버리는 것과 같으니, 〈산이〉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 밤낮의 자라는 바와 새벽의 기운에, 그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본성이〉 다른 사람과 서로 가까운 것이 거의 없는데, 곧 그 낮에 행동하는 것이 본성을 구속하여 없앰이 있으니, 구속을 반복하면 그 밤 기운이 보존되는 것이 충분하지 않고, 밤 기운이 보존되는 것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으니, 사람이 그 금수를 보고서 ‘일찍이 그 사람에게 재질이 없었다’ 여길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 모습이겠는가?
5묘의 집 담 아래에 뽕나무를 심어서 한 아내가 거기에 누에를 치면 늙은 이가 충분히 그것으로 비단옷을 입을 수 있고, 다섯 마리 암탉과 두 마리 암퇘지를 〈기르되〉 그 〈새끼칠〉 때를 잃지 않으면 늙은 이가 충분히 그것으로 고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100묘의 밭에 한 남자가 그곳을 경작하면 여덟 식구의 집안이 그것으로 굶주림이 없을 수 있다.
분성괄(盆成括)이 제(齊)나라에서 벼슬하였는데, 맹자가 말하였다. “죽겠구나. 분성괄이여!” 분성괄이 죽임을 당하자, 문인(門人)이 물어 말하였다. “선생은 무엇 때문에 그가 장차 살해 될 것을 알았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조금 재주를 가졌고, 군자의 큰 도를 듣지 못하였으니, 곧 이것 만으로 제 몸을 죽이기에 충분할 뿐이었다.”
이런 까닭에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사람이 되어서 배반하지 않는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그 말이 흥기시킬 수 있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그 침묵이 용납할 수 있다. 《시경》에 말했다. “이미 밝고 또 밝아서 그 몸을 보존한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천하의 선비가 좋아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이로써 근심을 풀기에 충분하지 않았으며, 아름다운 여색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요임금의 두 딸을 아내로 삼았으면서 이로써 근심을 풀기에 충분하지 않았으며, 부유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부유함이 천하를 소유하였으면서 이로써 근심을 풀기에 충분하지 않았으며,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귀함이 천자가 되었으면서 이로써 근심을 풀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좋아함과 아름다운 여색과 부유함과 귀함에 근심을 풀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오직 부모에게 순하여야 이로써 근심을 풀 수 있었다.
여형공이 일찍이 말하였다. “뒤에 태어난 처음 배우는 이들은 우선 반드시 기의 형상을 이해하고 알아야 하니, 기의 형상이 좋을 때는 모든 일이 이에 마땅하다. 기의 형상은 말과 글과 용모와 거동의 가벼움과 무거움과 빠름과 느림에서 충분히 그것으로 (그것을) 볼 수 있다. 오직 군자와 소인이 여기에서 (어조사) 나누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귀함과 천함과 장수와 요절이 말미암아 정해지는 것이다.
(불교에서) 스스로 (그것을) 이르기를 ‘신묘함을 궁구하고 변화를 안다’고 하되 충분히 그것으로 인물을 개발하고 일을 이루지 못하며, ‘말과 행위가 두루 두루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되 실제는 윤리와 이치에서 벗어나며, ‘깊음을 다하고 은미함을 극진히 한다.’ 고 하되 그것으로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에 들어갈 수 없으니, 천하의 학문이 천하고 누추하며 고루하고 막힌 것이 아니면 반드시 이에 들어간다.
소광이 말하였다. “내 어찌 노망이 나서 자손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다만 본래 옛날 밭과 집이 있으니 자손으로 하여금 그 속에서 부지런히 힘쓰면, 충분히 이로써 옷과 음식을 이바지하면 보통 사람과 같아질 것이니, 지금 다시 (그것을) 증익하여 이로써 넉넉하게 남도록 한다면, 다만 자손에게 게으름을 가르칠 뿐이다.
아아! 《서경(書經)》을 어찌 쉽게 말하겠는가? 이제(二帝)·삼왕(三王)이 천하를 다스렸던 대경대법(大經大法)이 모두 이 책에 실려있으나, 식견이 얕은 자로서 어찌 깊은 뜻을 다 밝힐 수 있겠는가? 또 수 천 년의 뒤에 태어나서 수 천 년의 앞을 강론하여 밝히고자 하니 또한 이미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