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강자(季康子)가 물었다. “중유(仲由)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유는 과감하니 정사에 종사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계강자가〉 말하였다. “사(賜)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사는 통달하였으니 정사에 종사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계강자가〉 말하였다. “구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구(求)는 다재다능하니 정사에 종사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번지가 지(智)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마땅한 것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그것을 멀리한다면 지혜롭다고 이를 수 있다.” 〈번지가〉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어진 사람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음을 뒤로 하니, 〈이것을〉 인이라 말할 수 있다.”
〈양화가〉 공자에게 일러 말하였다. “이리 오십시오. 내가 당신과 말하렵니다.” 〈양화가〉 말하였다. “그 보물을 품고서 그 나라를 헤매는 것이 어질다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일을 좇기를 좋아하면서도 자주 때를 잃는 것이 지혜롭다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양화가 말하였다.〉 “해와 달이 흘러가니,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장차 벼슬하겠습니다.”
유하혜(柳下惠)가 옥관(獄官)이 되어 세 번 쫓겨났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은 이로써 떠날 수 있지 않은가?” 〈유하혜가〉 말하였다. “도를 곧게 하여 사람을 섬기면 어디를 가더라도 세 번 쫓겨나지 않겠는가? 도(道)를 굽혀서 남을 섬긴다면 어찌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나겠는가?”
자하가 (그것을) 듣고 말하였다. “아, 자유가 지나치다. 군자의 도는 무엇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겠으며, 무엇을 뒤라 하여 게을리하겠는가? 초목에 비유하자면 종류로써 구별되는 것과 같으니, 군자의 도가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처음이 있고 끝이 있는 자는 아마도 오직 성인이실 것이다.”
숙손무숙이 중니를 헐뜯자, 자공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하지 마십시오. 중니는 헐뜯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 중에 현명한 자는 언덕〈과 같으〉니 그래도 넘을 수 있지만, 부자는 해와 달〈과 같으〉니 그것을 넘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끊고자 하 나 그 어찌 해와 달에 해치겠습니까? 다만 그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일 뿐입니다.”
〈선왕이〉 말하였다. “과인과 같은 자도 백성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선왕이〉 말하였다. “무슨 연유로 내가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신이 호흘(胡齕)에게 그것을 들었습니다. 〈호흘이〉 말하길 ‘왕이 당 위에 앉아 계시는데, 소를 끌고서 당 아래를 지나가는 자가 있자, 왕이 그것을 보며 말하길, 「소는 어디로 하니, 가는가?」 하니, 〈호흘이〉 대답하길, 「이 소로써 흔종(釁鍾)하려합니다.」 왕께서 말하시길 「소를 놓아줘라. 나는 그 소가 울부짖는 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끌려가는 것 같아서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겠다.」 하시자, 〈호흘이〉 대답하길 「그렇다면, 흔종을 폐지할까요?」 〈왕께서〉 말하시길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는가? 양으로 그것을 바꿔라.」 했다.’ 합니다. 알지 못하겠으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나의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 미치며, 내 아이를 아이로 대해서 남의 아이에게 미치면,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 〈사제(思齊)〉에 이르길, ‘내 처를 본으로 삼아서, 형제에게 이르러서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것에 베풀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 보면 그것으로써 사해를 보전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보지 않으면 처자식조차 보호할 수 없으니, 옛날의 사람이 남보다 크게 뛰어넘는 까닭은 다른 까닭이 없습니다. 그 해야 할 것을 잘 미루어 갔을 뿐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충분하게 금수에게 미치면서도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왕의 크게 하고자 하는 바를 얻어들을 수 있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맹자가〉 말하였다. “살지고 단 것이 입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가볍고 따뜻한 〈옷〉이 몸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채색이 눈에 충분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까? 좋은 소리가 귀에 충분하게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까? 총애하는 자들을 앞에서 부리기에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왕의 여러 신하가 모두 충분하게 그것을 제공하는데 왕이 어찌 그것 때문이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나는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왕이 크게 바라는 바를 알 수 있겠습니다. 토지를 개척하고 진나라와 초나라에게 조회를 받아 중국에 자리하여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고자 함입니다. 이 같이 하는 바로, 이 같이 바라는 바를 구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함과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이처럼 그 일이 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대게 이보다 심한 것이 있으니,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뒤의 재앙이 없지만, 이 같은 하는 바로써 이 같은 바라는 바를 구한다면, 마음과 힘을 다해서 그 일을 하더라도 뒤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재앙을〉 얻어들을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추(鄒)나라 사람과 초(楚 )나라 사람이 싸우면, 왕은 누가 이길 거라 여기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초나라 사람이 이길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작은 것은 진실로 큰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적은 것은 진실로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약한 것은 진실로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해 내의 땅에서, 사방 천 리인 것 아홉인데, 제(齊)나라 땅을 모으면 그 〈아홉에서〉 하나를 가졌습니다. 하나로써 여덟을 복종시키는 것이 추나라가 초나라를 대적하는 것과 어떤 것이 다르겠습니까? 대개 또한 그 근본을 돌이켜야 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어두워서 이에 나아갈 수 없으니, 바라건데 부자는 나의 뜻을 도와 분명하게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한번 그것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항산(恒産)이 없는데에도 항심(恒産)이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거니와, 만약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심이 없으니,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트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심동(沈同)이 그 개인적으로 물었다. “연나라를 정벌해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됩니다. 〈연나라 왕인〉 자쾌(子噲)도 남에게 연(燕)나라를 줄 수 없으며, 〈재상인〉 자지(子之)도 자쾌에게 연나라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벼슬하는 자가 있다면 그대가 그를 좋아하여 왕에게 고하지 않고 사사로이 그에게 그대의 녹봉과 작위를 주고, 저 선비가 또한 임금의 명령이 없는데도 사사로이 그대에게 녹봉과 작위를 받는다면 괜찮겠습니까? 어떤 것이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정벌하자, 혹자가 물었다. “ ‘〈선생이〉 제나라에 권하여 연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네. 심동이 ‘연나라를 정벌해도 됩니까?’ 묻기에, 내가 질문에 응하여 ‘된다.’고 말하니, 그(심동)가 그래서 연나라를 정벌하였다네. 저 심동이 만일 ‘누가 연나라를 정벌할 수 있습니까?’ 하였다면 장차 그 질문에 응하여 ‘천리(天吏)가 된 자라야 그 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고 말했을 것이네. 만일 살인자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 대해 묻기를 ‘〈살인한〉 사람을 죽여도 됩니까?’ 하면 장차 〈나는〉 그 질문에 응하여 ‘〈죽여도〉 된다.’고 말할 것이니, 저 〈혹자가〉 만약 ‘누가 살인자를 죽일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였다면 장차 〈나는〉 그 질문에 응하여 ‘사사가 된 자라야 살인자를 죽일 수 있다.’ 말했을 것이네. 지금에는 연나라로서 연나라를 정벌하였으니, 〈내가〉 어찌하여 그 일을 권했겠는가?”
왕이 맹자를 찾아가 말하였다. “전날에 만나길 원해도 할 수 없다가, 모실 수 있어서 조정에 함께하는 자들이 매우 기뻤습니다.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니 알지 못하겠으나, 이번을 이어서 만날 기회를 얻을수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감히 청하지 못할 뿐이지 진실로 바라는 바입니다.”
연우(然友)가 추(鄒) 땅에 가서 맹자에게 물으니, 맹자가 말하였다. “또한 훌륭하지 않습니까? 부모의 상은 진실로 스스로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증자가 말씀하시길 ‘살아계실 때는 예로 부모님을 섬기고, 돌아가셨을 때는 예로 부모님을 장례를 치르고, 예로 부모님을 제사를 지내면 효라고 이를 만하다.’ 하였습니다. 제후의 예를 나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내가 일찍이 상례에 대해 듣기로는 3년의 상에 거친 베의 상복과 죽으로 된 음식의 〈상례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하(夏)·은(殷)·주(周)〉 삼대가 그것을 함께했습니다.”
백성이 살아가는 방법은 항산(恒産)이 있는 사람은 항심(恒心)이 있고, 항산이 없는 사람은 항심이 없습니다.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뜨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필전(畢戰)을 보내어 정전제를 물었는데,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의 임금(문공)이 장차 인정을 시행하고자 하여 그대를 선택하여 보낸 것이니, 그대는 반드시 이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무릇 인정(仁政)이란 것은 반드시 경계의 구획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경계의 구획이 바르지 않으면 정지(井地)가 균등하지 않고 녹이 공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폭군과 오리(汚吏)는 반드시 그 경계를 구획하는 일에 소홀했습니다. 경계를 구획한 것이 이미 바르면 토지를 나누어주고 녹을 제정하는 것은 앉아서 정할 수 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유독 밭을 갈면서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인의 일이 있고 소인의 일이 있다네. 또 한 사람의 몸에 백공이 만든 것이 구비되어야 하니, 만일 반드시 스스로 만든 뒤에 도구를 써야 한다면, 이는 천하의 사람을 몰아서 길로 내보내는 것이네. 그러므로 말하길 ‘어떤이는 마음으로 애를 쓰고 어떤이는 힘으로 애를 쓰니, 마음으로 애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으로 애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려진다.’ 하였으니, 남에게 다스려지는 자는 남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서 먹는 것이 천하의 공통된 의리라네.
요(堯)임금의 때가 되어서는 천하가 여전히 안정되지 못하여 홍수가 제멋대로 흘러 천하에 범람하여 초목이 매우 무성해지며 금수가 번성하여 자랐다네. 오곡이 익지 않으며 금수가 사람을 핍박하여 짐승의 발자국과 새의 발자국이 난 길이 나라 안에 교차하거늘 요임금이 홀로 이것을 근심하여 순(舜)을 등용하여 여기에 다스림을 펼쳤네. 순임금이 익에게 불을 담당하게 하였는데, 익(益)이 산택에 불을 놓아서 초목을 태우니, 금수가 도망가서 숨었네. 우(禹)가 황하의 아홉 지류를 텄으며, 제수(濟水)와 탑수(漯水)를 터서 바다에 흘려보내고, 여수(汝水)와 한수(漢水)를 트고 회수(淮水)와 사수(泗水)를 터서 강에 그것을 흘려보내니, 그러한 뒤에 나라가 〈곡식을〉 얻어서 먹을 수 있었네. 이때가 되어 우가 집 밖에서 8년에 세 번 자기 집 문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못했으니, 비록 〈직접〉 농사를 짓고자 하더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진대가 말하였다. “제후를 만나지 않는 것은 아마 작은 지조인 듯합니다. 지금 한번 그를 만나면 크게는 그것으로 왕업(王業)을 이루고 작게는 그것으로 패업(霸業)을 이룰 것입니다. 또 기록에 이르길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편다.’ 하니, 아마 행할 수 있는 듯합니다.”
58
且夫枉尺而直尋者는 以利言也니 如以利면 則枉尋直尺而利라도 亦可爲與아<孟子, 滕文公下>
게다가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펴는 것’은 이익으로 말한 것이네. 만일 이익으로 〈말을〉 한다면, 여덟 자를 굽히고 한 자를 펴서 이롭더라도 또한 행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조간자(趙簡子)가 왕양에게 총애하는 신하인 해(奚)를 위하여 수레를 몰게 하였는데, 〈해는〉 하루를 다하도록 짐승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네. 총신 해가 보고하기를 ‘〈왕양은〉 천하의 쓸모없는 〈수레 몰이〉 솜씨입니다.’ 하였다네. 혹자가 이 일을 왕양에게 알리자, 왕양이 〈간자에게〉 말하길 ‘수레 몰이를 다시 하겠습니다.’ 하였네. 〈간자가 해에게〉 강요한 뒤에 〈해가〉 승낙하였는데, 〈이번에는〉 하루아침에 짐승 열 마리를 잡았네. 총신 해가 보고하기를 ‘천하의 훌륭한 〈수레 몰이〉 솜씨입니다.’ 하였네. 〈이에〉 간자가 말하길 ‘내가 너(해)를 위해 〈왕양에게〉 수레 모는 일을 담당하게 하겠다.’ 하고는 왕양에게 〈해의 수레몰이를 담당하도록〉 지시하였는데, 왕량은 불가하다며 말하길 ‘제가 그(해)를 위하여 저의 수레 모는 일을 규범대로 했더니 하루를 다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고, 그를 위하여 〈짐승과〉 속임수로 마주치게 했더니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았습니다. 《시경》 〈거공(車攻)〉에 이르길, 「〈운전수는〉 올바른 수레 모는 방법을 잃지 않고, 〈사수는〉 화살을 쏠 때마다 깨트리듯 하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소인(小人)을 위하여 수레 모는 일은 익숙하지 않으니 사양하겠습니다.’ 하였다네.
〈팽경이〉 말하였다. “목공과 수레공은 그 뜻이 장차 그것으로 녹봉을 구하려는 것이지만, 군자가 도를 행하는 것도 그 뜻이 또한 장차 그것으로 녹봉을 구하려는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자네는 어찌 그 뜻을 말하는가?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공이 있어 녹을 줄만 하면 자네에게 녹을 줄 것이네. 또 자네는 뜻을 〈보고〉 녹을 주겠는가? 공을 〈보고〉 녹을 주겠는가?” 〈팽경이〉 말하였다. “뜻을 〈보고〉 녹을 주겠습니다.”
증자(曾子)가 말하길,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하며 웃는 것이 여름날 밭농사보다 수고롭다.’ 하였고, 자로(子路)가 말하길, ‘〈뜻이〉 같지 않은데도 말하는 때는 그 낯빛을 보면 얼굴이 붉어져 있으니, 내(자로)가 알고 지낼 사람이 아니다.’ 하였으니, 저 말을 따라서 이 일을 본다면 군자가 기를 것을 알 수 있다네.”
맹자가 말하였다. “공손한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검소한 사람은 남에게서 빼앗지 않으니, 남에게서 업신여기고 빼앗는 임금은 오직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니, 어찌 공손함과 검소함을 할 수 있겠는가? 공손함과 검소함이 어찌 목소리와 웃는 모습으로 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증자(曾子)가 증석(曾晳)을 봉양할 때 반드시 술과 고기를 올렸는데, 장차 치우려 할 때 반드시 〈증석에게〉 줄 곳을 물었으며, 남은 것이 있는지 물으면 반드시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증석이 죽자, 증원(曾元)이 증자를 봉양할 때 반드시 술과 고기를 올렸는데, 장차 치우려 할 때 〈증자에게〉 줄 곳을 묻지 않았으며, 남은 것이 있는지 물으면 ‘없습니다.’라고 답하였으니, 장차 남은 것을 〈증자에게〉 다시 올리려는 것이었다. 이는, 이른바 ‘〈어버이의〉 입과 몸을 봉양하는 것’이니, 증자처럼 한다면 ‘〈어버이의〉 뜻을 봉양했다.’고 이를 만하다.
지(智)의 실제는 〈인의〉 이 두 가지를 알고서 떠나지 않는 것이 그것이고, 예(禮)의 실제는 〈인의〉 이 두 가지를 절도에 맞추고 꾸미는 것이 그것이고, 음악의 실제는 〈인의〉 이 두 가지를 즐거워하는 것이니, 즐거워하면 〈인과 의가〉 생겨날 것이니, 〈인의가〉 생겨난다면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어찌 그만둘 수 있는가?’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발은 구르고 손은 춤출 것이다.”
72
王曰 禮에 爲舊君有服하니 何如라야 斯可爲服矣니잇고<孟子, 離婁下>
왕이 말하였다. “《의례(儀禮)》에 ‘옛 임금을 위하여 복을 입는다.’는 것이 있으니, 어찌하면 〈옛 임금을 위해〉 상복을 입게 할 수 있습니까?”
73
孟子曰 無罪而殺士則大夫可以去요 無罪而戮民則士可以徙니라<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군주가〉 죄가 없는데도 사(士)를 죽이면 대부가 그 일로 떠날 수 있고, 죄가 없는데도 백성을 욕보이면 사가 그 일로 옮겨갈 수 있다.”
74
孟子曰 人有不爲也而後에可以有爲니라<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은 하지 않은 일이 있은 뒤에 그로써 큰 일을 할 수 있다.”
75
天之高也와 星辰之遠也나 苟求其故면 千歲之日至를可坐而致也니라<孟子, 離婁下>
하늘이 높고 별이 멀지만, 만일 하늘과 별의 자취를 탐색한다면 천 년 〈뒤〉의 동지(冬至)를 앉아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순은 거짓으로 기뻐한 자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옛날에 살아있는 물고기를 정나라 자산(鄭子産)에게 보낸 〈사람이〉 있었는데, 자산이 교인에게 물고기를 연못에서 기르게 하였는데, 교인이 물고기를 삶아 먹고는 돌아와서 보고하여 말하길 ‘처음에 물고기를 놓아주었더니 비실비실하더니 잠시 뒤엔 팔팔해져서 여유로워져서 가버렸습니다.’라고 하자, 자산이 말하길 ‘제자리를 얻었구나. 제자리를 얻었구나.’ 하였다네. 〈그러자〉 교인이 나와서 말하길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고 말하였는가? 내가 이미 물고기를 삶아서 먹었는데, 「제자리를 얻었구나. 제자리를 얻었구나!」 라고 하는구나!’ 〈한 일이 있었다네〉. 그러므로 군자는 올바른 방법으로 속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올바른 방법아닌 것으로 속이기는 어렵다네. 저 상이 형을 사랑하는 도리로써 왔다네. 그러므로 〈순은〉 진실로 상의 행위를 믿고서 기뻐하였으니, 〈순이 기뻐한 일이〉 어찌 거짓이겠는가?”
만장이 말하였다. “순임금이 공공(共工)을 유주(幽州)에 유배 보내고, 환두(驩兜)를 숭산(崇山)에 추방하였으며, 삼묘를 삼위(三危)에서 죽이고, 곤(鯀)을 우산(羽山)에서 죽여 네 사람을 처벌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복종한 것은 어질지 못한 자를 죽여서입니다. 상이 매우 어질지 못한데도 그를 유비에 봉하였으니 유비의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어진 사람도 진실로 이와 같습니까? 타인에 있어서는 그 사람을 죽이고, 아우에 있어서는 그 사람을 봉하였군요.” 〈맹자가〉 말하였다. “어진 사람은 아우를 대함에 아우에게 노여움을 숨기지 않고, 아우에게 원망을 묵혀 두지 않으며, 아우를 가까이하고 사랑할 뿐이라네. 아우를 가까이한다면 아우가 귀하길 바라고, 아우를 사랑한다면 아우가 부유하길 바라는 것이니, 아우를 유비에 봉한 것은 아우를 부유하게 하고 귀하게 해준 것이네. 자신은 천자가 되고 아우는 필부가 된다면 아우를 가까이하고 사랑한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공자께서는〉 위나라에서 안수유를 주인으로 삼았는데, 미자의 아내는 자로의 아내와 형제였다네. 미자가 자로에게 일러 말하길, ‘공자가 나를 주인 삼는다면 위나라의 벼슬을 얻을 수 있다.’ 하거늘 자로가 그 일을 고하니, 공자가 말씀하시길, ‘명에 달려 있다.’ 하였네. 공자는 예로써 나아가며 의로써 물러나 그것을 얻거나 얻지 못할 적에 말하시길, ‘명에 달려 있다.’ 하였으니, 그런데 옹저와 내시 척환을 주인 삼았다면 이는 의를 무시하고 명을 무시하는 것이라네.
〈백리해는〉 우공이 간언할 수 없음을 알고서 떠나 진으로 가니, 〈이때의〉 나이가 이미 칠십이었네. 일찍이 소를 먹이는 것으로써 진나라 목공에게 간언하는 것이 더러운 일이 됨을 알지 못했다면,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간언할 수 없어서 간언하지 않았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공이 망하려는 것을 알고서 먼저 그곳을 떠났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네. 당시에 진나라에 등용되어 ‘목공은 함께 행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를 도왔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를 도와서 그 임금을 천하에 드러내어 후세에 전할 수 있게 하니, 현명하지 않고서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팔아서 그 임금을 만드는 것은 시골의 스스로를 아끼는 자들도 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백리해 같은〉 현명한 자가 ‘그일을 했다’고 이르겠는가?”
만장이 말하였다. “지금 국도 성문의 밖에서 타인에게 강도질하는 자가 있는데, 그 사귐에는 도를 쓰고 그 〈물건을〉 주고받음에는 예를 쓴다면 강도질한 것을 받아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옳지 않네. 《서경》 〈강고〉에 이르길 ‘다른 사람에게 재물을 죽여서 강탈하여 억세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온 백성이 원망하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니, 이는 가르칠 것을 기다리지 않고서 죽일 자라네. 빼앗은 물건을 받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만장이〉 말하였다. “지금의 제후들이 백성에게서 재물을 취하는 것이 강도질과 같은데, ‘만일 그 예를 갖춘 교제를 잘한다면 군자도 예물을 받는다.’고 하니, 감히 묻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생각하길, 왕노릇하는 자가 나옴이 있다면 장차 지금의 제후를 연합하여 그를 죽이겠는가? 그 가르침이 고쳐지지 않은 뒤에 그를 죽이겠는가? 무릇 제 소유가 아닌데도 남의 것을 취하는 자를 도둑이라고 이르는 것은 유추하여 지극한 뜻에 이른 것이네. 공자가 노나라에서 벼슬할 적에 노나라 사람들이 엽각(獵較)을 하였는데 공자 또한 엽각을 하였으니, 엽각하는 것도 오히려 가능한데 하물며 그 준 것을 받는 것이 〈무엇이 문제겠는가〉?
공자는 도가 행해질 수 있음[行可]을 보고 〈하게〉 된 벼슬살이가 있으며, 군주의 타당한 예우[際可]에 〈하게〉 된 벼슬살이가 있으며, 군주의 어진이 봉양[公養]에서 〈하게〉 된 벼슬살이가 있다네. 계환자에겐 도가 행해질 수 있음을 본 〈경우〉의 벼슬이고, 위나라 영공에겐 군주가 타당하게 예우한 〈경우〉의 벼슬이고, 위나라 효공에겐 군주가 어진이를 봉양한 〈경우〉의 벼슬이라네.”
〈만장이〉 말하였다. “임금이 구휼할 것을 보내주면 그것을 받는다고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계속 〈받아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목공이 자사를 대할 적에는 자주 문안하고 자주 삶은 고기를 보냈는데, 자사는 기뻐하지 않고서 결국에는 심부름 보낸 자를 물리쳐서 대문의 밖으로 내보내고, 북쪽을 마주하고 머리를 조아려 재배하고서 받지 않으며 말하길, ‘오늘 이후에 임금께서 개와 말처럼 나를 길렀다는 것을 알았다.’ 하였으니, 대체로 이때부터 〈명을 받은〉 하인을 〈통해〉 〈물건을〉 보낸 일이 없었으니, 현명한 자를 좋아하면서 등용할 수 없고 또 봉양할 수 없다면, 현명한 자를 좋아한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만장이〉 말하였다. “감히 묻습니다. 나라의 임금이 군자를 봉양하고자 할 때 어찌 하면 봉양한다고 이를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의 명령으로 〈하인이〉 봉양할 물건을 가져오면 〈군자는〉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려서 받는다네. 그런 뒤에 창고 관리는 곡식을 대주며 푸줏간 관리는 고기를 대주지만 〈매번〉 임금의 명령으로 봉양할 물건을 가져오지 않는다네. 자사(子思)는 그 일로써 생각하길, ‘삶은 고기가 나로 하여금 번거롭게 자주 절하게 하니, 〈이것은〉 군자를 봉양하는 도가 아니다.’ 하였다네.
또 임금이 그를 만나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만장이〉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며, 그가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라면 천자도 스승을 부르지 않는데, 하물며 제후가 〈그를 부르〉겠는가? 그가 현명하기 때문이라면 나는 어진이를 만나고자 하여 어진이를 부르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네. 목공이 자사를 자주 만나서 말하길, ‘옛날에 천승의 나라를 〈가진 군주〉로서 선비와 벗하였으니, 어떠합니까?’ 하자, 자사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길, ‘옛사람이 말에 이르길, 「그를 섬겼다고 말할지언정 어찌 그와 벗하였다 말하겠습니까?」’ 하였으니, 자사가 기뻐하지 않은 것은 어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위로는 그대는 임금이고 나는 신하이니, 어찌 감히 임금과 벗하겠습니까? 덕으로는 그대는 나를 섬기는 자이니, 어찌 나와 벗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천승의 임금도 자사와 벗하기를 구해서 얻을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함부로〉 부를 수 있겠는가?
천하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을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서 또 위로 올라가서 옛날의 사람을 논하니, 옛사람의 시를 외우고 옛사람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이 때문에 옛사람의 시대에 〈행한 자취를〉 논하는 것이니, 이는 위로 올라가 〈옛사람을〉 벗하는 것이라네.”
지금 저 물을 쳐서 튀기면 〈물로〉 하여금 이마를 지나게 할 수 있으며, 막아서 물을 흐르게 하면 〈물로〉 하여금 산에 있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습니까? 그 〈외부의〉 힘이 곧 그러한 것이니, 사람에게 불선을 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성품이 또한 물의 본성과 같아서 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우산이 큰 도성에 근교(近郊)이기 때문에 도끼로 나무를 벌목하였으니,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체로 그곳에서 밤낮으로 자라는 까닭과 비와 이슬이 적셔준 까닭에 새싹이 우산에서 생겨나고 있었지만, 소와 양까지 또 우산에 풀어놓고서 길렀[放牧]으니, 이 때문에 저처럼 민둥민둥[濯濯]한 것인데, 사람들은 우산이 민둥민둥한 것을 보고서 ‘일찍이 우산에는 재목(材木)이 없었다.’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90
不揣其本而齊其末이면 方寸之木을可使高於岑樓니라<孟子, 告子下>
그 근본을 헤아리지 않고 그 끝만 가지런히 하면, 겨우 한 치인 나무를 높고 뾰족한 누대보다 높게 할 수 있다네.
91
曹交問曰 人皆可以爲堯舜이라하니 有諸잇가 孟子曰 然하다<孟子, 告子下>
조교(曹交)가 물어 말하였다. “‘사람은 모두 요(堯)와 순(舜)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하니, 그런 말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체로 진실로 선을 좋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길, ‘으쓱거릴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리니, 으쓱거리는 음성과 얼굴빛은 사람을 천 리의 밖에서 막는다. 선비가 천 리의 밖에서 멈춘다면 참소하고 아첨하고 면전에서 아부하는 사람이 이를 것이니, 참소하고 아첨하고 면전에서 아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면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한들 할 수 있겠는가?”
그 다음으로는, 아침에 먹지 못하고 저녁에 먹지 못하여 굶주려서 문을 나갈 수 없는데, 군주가 사실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크게는 그의 도를 행할 수 없고 또 그 말을 수 따를 없어서 〈그로〉 하여금 나의 토지에서 굶주리게 한 것을 내가 부끄러워한다.’ 하고 그를 구휼한다면, 또한 받을 수는 있겠지만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이라네.”
95
有天民者하니 達可行於天下而後에 行之者也니라<孟子, 盡心上>
천민인 자가 있으니, 영달하여 천하에 행할 수 있은 뒤에 도를 행하는 자이다.
96
孟子曰 易其田疇하며 薄其稅斂이면 民可使富也니라<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 농지를 가꾸고 그 세금 징수를 줄이면 백성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그것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부부의 불초함으로도 (그것을) 해낼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에) 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천지의 큼에도 사람이 오히려 서운해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군자의 큰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실을 수 없으며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쪼갤 수 없다.
《시경》에 말했다. 비단 옷을 “입고 홑옷을 겹쳐 입었네."라고 하였으니, 그 문채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의 도는 희미하지만 날로 빛나고 소인의 도는 선명하지만 날로 없어진다. 군자의 도는 담박하지만 싫지않고 간략하지만 문채가 나며 온화하지만 조리가 있으니 먼 것이 가까운 데서 (시작됨을) 알며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을 알며 은미함이 드러남을 안다면 더불어 덕에 들어갈 수 있다.
그 경전(서경)에 나타난 것으로, “진실로 그 중의 〈도를〉 지켜라[允執厥中]” 한 것은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에게 전해 준 것이고,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隱微)하니, 오직 정밀히 〈살피고〉 오직 한결같이 〈지켜야〉 진실로 그 중의 〈도를〉 지킬 수 있다.” 한 것은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전해 준 것이다. 요임금의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는〉 한마디 말이 〈이미〉 지극하고 〈할 말을〉 다했음에도, 순임금이 다시 거기에 세 마디 말[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을 더한 것은 곧 저 요임금의 한마디 말이 반드시 순의 말처럼 한 뒤에야 〈행해지길〉 바랄만 함을 밝힌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효성스럽기 때문에 충성을 임금에게 옮길 수 있고, 형을 섬기는 것이 공손하기 때문에 순종함을 장관에게 옮길 수 있고, 집안에 거처하는 것이 잘 다스려졌기 때문에 다스림을 관청에 옮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행실이 안에서 이루어지고, 이름이 후대에 세워지는 것이다.
사의에 말하였다. 활 쏘는 사람은 나아가고 물러나고 주선함을 반드시 예에 맞게 해야 하니, 안의 뜻이 바르고 밖의 몸이 곧은 그런 뒤에야 활과 화살을 잡음이 세심하고 견고하며, 활과 화살을 잡음이 세심하고 견고한 그런 뒤에야 그것으로써 맞춘다고 말할 수 있으니, 여기에서 그것으로써# 덕행을 볼 수 있다.
맹자가 성의 선함을 말하면서, 말마다 반드시 요와 순을 일컬었다. 그 말씀에 말하였다. “순은 천하에 법이 되어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향인이 됨을 면치 못하니, 이것은 근심할 만한 하다. (그것을) 근심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순과 같이할 뿐이다.” 지나간 행적을 뽑고 지난 말씀을 실증하여, 이 편을 지어 읽는 자들에게 흥기하는 바가 있게 한다.
맹자가 말하였다. 증자가 증석을 봉양할 때 반드시 술과 고기가 있었는데, 장차 물리려 할 때 반드시 줄 곳을 청하여 남은 것이 있는지 물으면 반드시 ‘있다‘고 말하였다. 증석이 죽자, 증원이 증자를 봉양하기를 반드시 술과 고기가 있었는데, 장차 물리려 할 때 줄 곳을 청하지 않았으며, 남은 것이 있는지 물으면 말하기를 ‘없다‘고 하였다. 이것을 다시 올리려는 것이었으니, 이는 입과 몸을 봉양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만약 증자와 같이한다면 뜻을 봉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악정자춘이 말하였다. “좋다. 너의 물음 같음이여. 좋다. 너의 물음 같음이여. 내가 증자에게 들었고, 증자는 부자에게 들었으니, 말하기를, ‘하늘이 낳는 바와 땅이 기르는 바에 오직 사람이 큼이 되니 부모가 온전하게 낳았으니, 자식이 온전하게 돌아가야 효라 이를 수 있다.’ 고 하였다. 그 몸을 훼손하지 않고, 그 몸을 욕되지 않게 하면 온전하다고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걸음 한 걸음에도 감히 효를 잊지 않는다. 지금 나는 효의 도를 잊었다. 나는 이 때문에 근심하는 기색이 있는 것이다. 한 번 발을 드는 데도 감히 부모를 잊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큰길로) 다니고 지름길로 가지 않으며, 배를 타고 헤엄치지 아니하여, 감히 죽은 부모가 남긴 몸으로 위태한 일을 행하지 않으며, 한번 말을 내는데 감히 부모를 잊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나쁜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으며, 성내는 말이 몸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으며, 그 부모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면, 효라 이를 수 있다.”
무릇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 거하는 사람은 대상의 전에 모두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니, 만약 병이 있으면 잠시 모름지기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되, 병이 그치면 또한 마땅히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만일 고기 없는 음식이 목으로 잘 내려가지 않아서 오래되어 파리하고 여위어 병을 이룰까 염려되는 사람은 고기즙과 포와 젓갈이나 혹 고기 조금과 약간으로 그 입맛을 돋울 수 있을지언정 진귀한 음식, 성대한 음식을 마음대로 먹거나 및 남과 연회 하며 즐겨서는 안 되니, 이는 곧 비록 상복을 입었더라도 그 실제는 상례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50세 위로 혈기가 이미 쇠하여 반드시 술과 고기에 도움받아 받들어 봉양하는 사람은 곧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뿐이다.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인데 처음 배우는 사람이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지금에 옛사람이 학문하는 차례와 순서를 볼 수 있는 것은 유독 이편이 보존됨에 의뢰할 뿐이고, 그 나머지는 논어와 맹자만 한 것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이를 말미암아서 여기서 배우면 그 어긋나지 않음에 가까울 것이다.”
부인이 여씨에게 시집감에 이르러는 부인의 어머니는 신국부인의 언니였다. 하루는 딸을 보러 왔는데 집 뒤에 냄비와 가마솥의 종류들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지 않으며 신국부인에게 말하였다. “어찌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사사롭게 음식을 만들게 하여 가법을 무너트릴 수 있는가?" 하니 그 엄함이 이와 같았다.
그 제자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는데, 그 사람의 뛰어남과 어리석음에 따라서 모두 순순하게 단아하고 삼갔다. 그 언어와 행동거지는 (그를) 만나보면 묻지 않더라도 선생의 제자가 임을 알 수 있었고, 그 배우는 사람들이 서로 말함에 선생이라고 칭하면 묻지 않아도 호공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도는 반드시 인륜에서 근본 하여 사물의 이치를 밝게 하며 그 가르침은 소학의 쇄소응대로부터 이후로 그 효제충신을 닦으며 예악을 주선하는 것이다. 그 이끌어 도와주고 격려하며 점차 연마하여 성취하는 바의 도는 모두 절도와 순서가 있어야 하니 그 요점은 선을 택하고 몸을 닦아 천하를 교화하여 이루는 것에 이르고, 향인으로부터 하여 성인에 이를 수 있는 도에 달려있다.
그 학문과 행실이 모두 여기에 맞는 사람은 덕을 이룬 군자이니 재주와 학식이 밝고 통달하여 선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날마다 그 가르침을 받게 하고 (그중에서) 그 학문이 밝고 덕이 높은 사람을 뽑아 태학의 스승으로 삼고 그다음으로써 천하의 학교에 나누어 가르치게 한다.
한나라 진주의 효부 나이 16살에 시집가서 자식을 두지 못하였는데, 그의 남편이 수자리에 갈 때가 되었다. 장차 떠날 때 효부에게 부탁하며 말하였다. “내가 살지 죽을지 알 수 없고, 다행히 늙으신 어머니가 있으나 다른 형제 중에는 봉양을 갖출 사람이 없으니 내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그대가 기꺼이 우리 어머니를 봉양하겠는가?” 효부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도둑이 떠난 뒤에 집안 사람이 묻기를 “어찌 홀로 두려워하지 않았는가?” 노씨가 말하였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까닭은 그 인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웃과 마을에 위급함이 있더라도 오히려 서로 달려가 구제하는데 하물며 시어머니를 버릴 수 있음에 있어서야! 만약 만에 하나 위태롭거나 화를 당했다면 어찌 마땅히 홀로 살겠는가?”
여형공이 (그것을) 듣고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없다’는 세 글자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해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옛사람이 ‘사람은 모두 요임금과 순임금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였으니, 대개 여기에서 관찰하여 (그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제오륜에게 물어 말하였다 “공에게도 사사로움이 있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 사람 중에 나에게 천리마를 준 사람이 있었다. 내가 비록 받지는 않았으나 삼공이 천거한 바가 있을 때마다 마음에 잊을 수 없었으나, 또한 끝내 등용하지 않았다. 내 형의 아들이 일찍이 병이 들었는데 하룻밤에도 열 번을 갔으나 물러나서 편안하게 잠들었고 내 아들이 병에 걸려서는 비록 살펴보지는 않았으나 밤을 마치도록 잠들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것이 어찌 사사로움이 없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항상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대우는 성인인데도 이에 한 촌의 시간도 아꼈는데, 보통 사람에게 이르러서 마땅히 한 푼의 시간도 아껴야 하거늘, 어찌 편안하게 놀고 크게 취하여 살아서는 당시에 보탬이 없고, 죽어서는 후세에 알려짐이 없을 수 있는가? 이는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여러 참좌들이 혹 잡담으로 일을 폐할 때에는 이에 명을 내려 그 술그릇과 포박의 도구를 가져다가 모두 (그것을) 강에 던졌으며, 아전과 장수의 경우에는 편복을 가하며 말하기를 “저포라는 것은 돼지를 기르는 노비의 놀이일 뿐이고, 노장의 부화함은 선왕의 법언이 아니니 행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마땅히 그 의관을 바로잡으며 그 위의를 잡아야 하니, 어찌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명망을 기른다고 하여 스스로 크게 통달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수개월 만에 딸이 혼인 모임에서 돌아와 왕애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저번의 비녀는 풍외랑의 아내 머리 장식이 되었습니다.’ 하니, 바로 풍구이다. 왕애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풍구는 낭관이 되어서 아내의 머리 장식이 70만 전 짜리가 있으니 어찌 오래 할 수 있겠는가?’ 풍구는 가상 속의 문인으로 가장 친밀하였다. 가씨에게 노복 중에 자못 베푸는 이가 위엄과 복록을 있었다. 풍구가 (그를) 불러서 (경계하도록) 권면하였다. 열흘도 이르지 않았는데 풍구는 새벽에 가씨를 만나러 갔는데, 어떤 두 노복이 지황주를 받들어 (그것을) 내어 마시게 하였는데 먹고 곧 죽었다. 가씨는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으나 끝내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또 명년에 왕씨와 가씨 모두 재앙을 만났다. 아! 왕씨는 진귀한 물건과 기이한 재화를 물건의 요망함이라 하였으니, 진실로 말을 안 것이지만, 물건의 요망함만 알고 은혜와 권세가 높고 빛남의 요망함이 물건보다 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가? 풍구는 낮은 지위로 보화를 탐하여 이미 그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였고 섬기는 바에 충성을 다하였으나 그 몸을 보전하지 못했으니, 이 또한 말하기에 부족하다. 가씨의 노복이 장무의 사이에서 문객을 해쳤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부귀를 누리고자 하였으나,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첫째. 뜻을 세우는 것에 대한 글: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이 될 것으로 스스로 기약하여, 한 가닥의 털 만큼도 스스로 작다 여기고 물러나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대체로 중인과 성인이 그 본성은 한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섞임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나, 만약 참되게 알고 실천할 수 있어서 그 옛날에 물든 것을 버리고 그 본성의 처음을 회복한다면, 털끝만큼을 보태지 않더라도 온갖 선이 두루 갖추어질 것이니, 중인들이 어찌 성인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는 ‘〈인간은〉 본성이 선(善)하다’고 말하되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어서 그것을 실증하며 말하길 ‘사람은 모두 그 때문에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시니,〉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차이가 없거늘, 성인은 무슨 연고로 홀로 성인이 되었으며, 나는 무슨 연고로 홀로 중인(衆人)이 되었는가? 진실로 뜻이 확립되지 못하고 앎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실하지 못한 데서 말미암았을 뿐이다. 뜻을 확립하고 앎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는 것이 모두 나에게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할 수 있겠는가?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또한 이와 같다’ 하였으니 나 또한 마땅히 안연(顔淵)이 순임금처럼 〈되고자〉 바란 것으로 본보기를 삼겠다.”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바꾸어 예쁘게 할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바꾸어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할 수 없다. 이것들은 이미 결정된 분수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심지는 그로써 어리석음을 바꾸어 슬기롭게 만들고 불초한 것을 바꾸어 어질게 만들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의 허령이 타고난 기질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슬기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어짊보다 귀한 것이 없거늘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을 실천하지 않고서 하늘이 부여한 바의 본성을 훼손하는가? 사람들이 이 뜻을 보존하여 견고하게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습관 중에 마음을 해치는 것은 대개 이와 같으니 그 나머지는 모두 거론하는 것이 어렵다. 이 습관이 사람의 뜻을 견고하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독실하지 못하〈게 하여〉 오늘 행한 것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쳤다가 저녁에 또다시 그렇게 한다. 반드시 모름지기 용맹한 뜻을 크게 분발하여, 마치 칼 한 자루로 뿌리를 깨끗하게 끊어버리는 듯하고 마음의 바탕을 깨끗이 씻어 털끝만큼도 남은 맥이 없게 하고 수시로 엄격하게 반성하는 공부를 매번 더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한 점이라도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없게 하여야 그러한 뒤에 그로써 학문에 나아가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양육을 받기만 하고 자기 힘으로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니, 만약 이처럼 문득 세월을 보내면 끝내 정성으로 봉양할 때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모름지기 몸소 집안일을 맡아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마련한 뒤에야 자식의 직분이 곧 닦여진다. 만약 부모가 굳이 들어 따라주지 않으면 비록 집안일을 맡을 수는 없더라도 또한 마땅히 주선하고 보조하여 힘을 다해 맛있는 음식의 갖춤을 얻어 그것으로 어버이의 입에 맞도록 함이 옳다. 만약 마음마다 생각마다 어버이 봉양함에 있다면 진미를 또한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양 생각해보면 왕연이 추위가 지독한 겨울날 매서운 추위에 몸에는 온전한 옷이 없었는데 어버이는 맛있는 음식을 다하여 사람들에게 감탄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게 한다.
형제는 부모가 남겨준 몸을 함께 받아서 나와는 한 몸과 같다. (그를) 볼 때 마땅히 서로의 간격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이 있고 없음을 모두 마땅히 (생략) 함께 해야 한다. 가령 형은 굶으나 동생은 배부르고, 동생은 추우나 형은 따뜻하다면 곧 이는 한 몸의 가운데 지체가 혹 병들고 혹 건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생략) 때문이다. 만약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생략)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약 좋지 못한 행실이 있다면 (생략) 마땅히 정성을 쌓아 진실스럽게 충고해서 점차 도리로서 깨우쳐 감동하여 깨닫기를 기약해야 하니, 대뜸 사나운 낯빛과 거슬리는 말을 가하여서 그 부드러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학자들은 겉으로는 비록 몸을 조심하면서도 안으로는 독실한 자가 드물어서, 부부 (생략) 사이에 이부자리 (생략) 위에서 정욕을 내버려 두어 그 위의를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부가 서로 친압하지 않으면서 서로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이와 같이 하면서 자신을 닦고 집을 바르게 하고자 하면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반드시(생략) 지아비는 온화하면서도 의로 제어하고 지어미는 유순하여 바름으로 받들어서 부부의 사이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은 연후에 집안의 일이 다스려질 수 있다. 만약 예전처럼 서로 친압하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서로 공경하고자 한다면, 그 형세가 행해지기 어려우니, 반드시 이에 아내와 함께 서로 경계하여 반드시 이전의 습관을 버리고 점차 예에 들어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내가 만약 내가 말을 하고 몸을 지키는 것이 한결같이 바름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면, (생략) 반드시 점차 서로 믿고 순종할 것이다.
하인은 나의 수고를 대신해주니, 마땅히 은혜를 먼저하고 위엄을 뒤로 하면 해야만 이에 그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임금이 백성에 대해서와 주인이 하인에 대해서는 그 이치가 하나이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지니,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며, 주인이 하인을 돌보지 않으면 하인이 흩어진다. 하인이 흩어지면 집안이 패망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 하인에 대하여 반드시 (생략) (그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 것을 깊이 염려하여 옷과 음식을 공급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알맞은 곳을 얻게 하고, 허물과 악행이 있으면 (생략) 먼저 반드시 부지런히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 을 고치게 하고 (그를) 가르쳐도 고치지 않은 뒤에 이에 회초리질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마음에 그 주인의 회초리질이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고, 미워하기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러한 뒤에야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고치고 얼굴을 고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마땅히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함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 할 뿐이고, 쌓아두고 풍족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생략)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 사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김을 매는 사람이 있으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부유함과 귀함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비교하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략) 어찌 마음의 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모름지기 부유함과 귀함을 가볍게 여기고 가난함과 천함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중국은 여러 읍의 관리에게 사사로운 녹봉이 있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를 미루어서 이로써 남의 위급함을 도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령에게 따로 사사로운 녹봉이 없다. 다만 공곡으로 일상생활의 비용에 응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사사로이 다른 사람에게 준다면 곧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벌과 꾸짖음이 있다. 심하면 장물죄를 범하는 것에 이르고, 받은 사람 또한 그러하다. 선비가 되어 수령의 선물을 받으면 곧 이는 바로 금령을 범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의) 금령을 물었으니, 그렇다면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어찌 금령을 범할 수 있겠는가? 수령의 선물은 대개 받기가 어려운 것이니, 만약 사사롭게 국고의 곡식을 준다면 곧 사람이 친한지 소원한지와 명분이 있고 없는지와 물건이 많고 적은지를 따지지 않고 모두 받아서는 안 된다.
사람 중에 나를 헐뜯고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서 스스로 살펴야 한다. 만약 나에게 실제로 헐뜯을 만 한 는 행실이 있다면, 스스로 꾸짖고 안으로 책하여 잘못 고치지를 꺼리지 않는다. 만약 나의 잘못이 매우 작은데도 더하고 넓히고 보태어 말한만약 다면 저 사람의 말이 비록 지나치지만, 나에게 실제로 비방을 받을만한 실마리가 있는 것이니, 또한 마땅히 전날의 잘못을 깎고 제거하여 털끝만큼도 남겨두지 않는다. 만약 나에게 본래 허물이 없는데도 거짓말을 날조했다면, 이것은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망령된 사람과 어찌 거짓과 진실을 따질 수 있겠는가? 또 저 사람의 거짓된 훼방은 바람이 귀를 지나가고 구름이 허공을 지나가는 것과 같으니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무릇 이와 같다면 곧 훼방이 올 때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쓴다면, 나에게 유익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마을 사람과 함께 거처할 때 비록 물음에 따라 대답하면서도 끝내 비루하고 더러운 말을 해서는 안된다. 비록 엄숙하고 삼가서 스스로 (몸가짐을) 지키더라도 절대로 자랑하고 높은 체 하는 기색을 두지 않는다. 오직 마땅히 좋은 말로 타이르고 이끌어서 반드시 끌어서 학문에 향하게 한다. 어린아이와 함께 거처할 때 마땅히 효제와 충신을 간곡하게 말해주어 착한 마음을 일으키게 해야한다. 이와 같이 하여 그치지 않는다면 마을의 풍속이 점차 변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공부에 매이게 되어 학문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이것은 또한 미루고 핑계대는 말이고 성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옛날 사람은 어버이를 봉양할 때 몸소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으며, 품팔이 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으며 쌀을 지고 나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무릇 몸소 밭을 갈고 품팔이 하러 다니고 쌀을 지고 나르는 때에 부지런히 애쓴 것이 심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책을 읽었겠는가? 오직 그 어버이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자임하여 이미 자식의 직분을 닦고서 여력이 있을 때 글을 배웠어도 또한 덕에 나아갈 수 있었다.
오늘의 선비 된 자는 부모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맡아 하기를 옛 사람같은 자는 보지 못하였고, 다만 이 과거 공부 하나의 일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에 바라는 것이라 하여, 이제 이미 공부함을 면치 못한다. 그렇다면 과거공부가 비록 이학 공부와 같지 않으나, 역시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이어서 그 몸소 밭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을 지는 것보다 편리함이 백 배일 뿐만이 아니다. 하물며 남은 힘이 있거든 성리의 책을 읽을 수 있음에랴? 다만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으레 성공과 실패에 동요한 바 되어, 마음이 항상 조급하고 다투니, 도리어 힘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 마음을 해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이 “공부에 방해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뜻을 빼앗길까 걱정한다.” 하였다. 만약 그 일을 하면서도 그 지킴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곧 과거 공부와 이학 공부가 함께 행해지더라도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