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 〈〈기욱(淇澳)〉에〉 이르길, “저 기수(淇水)의 물굽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아름답고 무성하구나. 문채(文彩) 있는 군자여! 자른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 놓은 듯하고 간 듯하구나!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드러나니, 문채 있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 하였으니, ‘자른 듯하고 간 듯하다.’ 한 것은 〈군자의〉 배움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고, ‘쪼아 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 한 것은 〈군자가〉 스스로 닦음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고, ‘엄밀하고 굳세다.’ 한 것은 〈군자가 스스로 실수할까〉 두려워함을 〈말한〉 것이고, ‘빛나고 드러난다.’ 한 것은 〈군자의〉 경외하여 본받을 만함을 〈말한〉 것이고, ‘문채 있는 군자를 끝내 잊을 수 없구나!’ 한 것은 〈그 군자의〉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을 백성들이 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5
此謂身不修면不可以齊其家니라<大學, 大學 傳>
이것을 ‘몸이 닦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6
孔子謂季氏하사되 八佾로 舞於庭하니 是可忍也온 孰不可忍也리오<論語, 八佾第三>
공자가 계씨를 평하였다. “팔일무를 뜰에서 추니 이 일을 차마 한다면 무엇을 차마 할 수 없겠는가?”
(정공이) 말하였다. “하나의 말을 하여 나라를 잃는다고 하니 (그런 것이) 있는가?”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말을 이처럼 그 (효과를) 기약할 수 없다. 남의 말에 나는 임금 노릇 하는 것에 즐거움이 없고, (즐거움은) 오직 그 말을 하면 나를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양화가〉 공자에게 일러 말하였다. “이리 오십시오. 내가 당신과 말하렵니다.” 〈양화가〉 말하였다. “그 보물을 품고서 그 나라를 헤매는 것이 어질다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일을 좇기를 좋아하면서도 자주 때를 잃는 것이 지혜롭다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양화가 말하였다.〉 “해와 달이 흘러가니,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장차 벼슬하겠습니다.”
자로가 말하였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가 없으니, 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다. 군신의 의를 어찌하여 (그것을) 폐하겠는가? 그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여 큰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군자가 벼슬함은 그 의를 행하는 것이다. 도가 행해지지 않음은 이미 (그것을) 알고있다.”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사귐을 묻자, 자장이 말하였다. “자하가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문인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자하가, ‘괜찮은 자는 (그와) 함께 하고 그 괜찮지 않은 자는 (그를) 거절하라.’라고 말하였다.” 자장이 말하였다. 내가 들었던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현인을 존경하고 대중을 포용하며, 잘하는 이를 아름답게 여기고 능숙하지 못하는 이를 불쌍히 여긴다. 내가 크게 어질다면 (생략) 남에 대해 누구인들 (생략) 용납하지 못할 것이며, 내가 어질지 못하다면 (생략) 남이 장차 나를 거절할 것이니 (그것을) 어찌하여 그렇게 남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숙손무숙이 중니를 헐뜯자, 자공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하지 마십시오. 중니는 헐뜯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 중에 현명한 자는 언덕〈과 같으〉니 그래도 넘을 수 있지만, 부자는 해와 달〈과 같으〉니 그것을 넘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끊고자 하 나 그 어찌 해와 달에 해치겠습니까? 다만 그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일 뿐입니다.”
농사의 시기를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으면, 물고기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도끼 자귀를 때로써 산림에 들이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니, 곡식과 물고기,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으로 하여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이를 초상 치름에 서운함이 없게 함이니, 산 이를 봉양하고 죽은 이를 초상 치름에 서운함이 없는 것이 왕도의 시작입니다.
추(鄒)나라가 노(魯)나라와 싸우자, 목공(穆公)이 물어 말하였다. “나의 유사(有司) 중에 죽은 자가 삼십 삽인인데, 백성은 죽은 사람이 없으니, 그들을 죽인다면 이루 다 죽일 수 없고 죽이지 않는다면 그 윗사람의 죽음을 곁눈질하면서도 구원하지 않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물어 말하였다. “등은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기더라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태왕(太王)이 빈 땅에 살 적에 적인(狄人)이 그곳을 침략하자, 가죽과 비단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개와 말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주옥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 기로(耆老)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고하여 말하길, ‘적인이 원하는 것은 나의 토지이다. 내 이에 관하여 들으니, 「군자는 그 사람을 기르는 것 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니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을까를 근심하는가? 나는 장차 빈 땅을 떠나겠소.’ 하고 빈 땅을 떠나 양산(耆老)을 넘어 기산(岐山)의 아래에 도읍을 정하여 그곳에 거주하셨습니다. 빈땅 사람들이 말하길, ‘어진 사람이다. 잃어서는 안된다.’ 하고 태왕을 따르는 자가 마치 저자로 모이는 듯 〈많았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어찌 이것을 말한 것이겠습니까? 증자가 말하길,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부유함은 미칠 수 없으나 저들이 자기의 부를 쓰면 나는 나의 인을 쓰고 저들이 자기의 벼슬을 쓰면 나는 나의 의를 쓸 것이니, 내가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하셨으니, 무릇 어찌 의롭지 않은 것인데 증자가 이렇게 말하였겠습니까? 이것도 하나의 도리입니다. 천하에서 공통으로 존중하는 것 셋이 있으니, 관작(官爵)이 하나이고 나이가 하나이고 덕(德)이 하나입니다. 조정에는 관작만 한 것이 없고, 고을에는 나이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에는 덕만 한 것이 없으니, 어찌 그 하나를 소유하고서 그 둘을 〈가진 사람을〉 업신여길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맹자를 찾아가 말하였다. “전날에 만나길 원해도 할 수 없다가, 모실 수 있어서 조정에 함께하는 자들이 매우 기뻤습니다.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니 알지 못하겠으나, 이번을 이어서 만날 기회를 얻을수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감히 청하지 못할 뿐이지 진실로 바라는 바입니다.”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날 적에 윤사(尹士)가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맹자가 우리〉 임금께서 탕왕과 무왕이 될 수 없음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것은 〈맹자가〉 현명하지 못한 것이고, 왕이 될 수 없음을 알았지만 불구하고 왔다면 이는 〈왕의〉 은택을 구한 것이다. 천 리를 〈찾아와〉서 왕을 알현하고 뜻이 맞지 않은 까닭에 떠나가되 사흘을 유숙한 뒤에 주(晝) 땅에서 나갔으니, 어째서 이리도 지체하였는가? 나(윤사)는 이것이 불쾌하다.”
〈세자가〉 연우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전에 일찍이 배우지 않고, 말을 달리고 검술 익히기를 좋아하였는데, 지금은 종친과 백관이 나에게 만족하지 않으니, 그 대사를 완수할 수 없을까 염려되니, 선생께서 저를 위해 맹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연우가 다시 추(鄒) 땅에 가서 맹자에게 물었는데,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다른 것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죽으면 총재를 따른다.’고 하셨으니, 〈세자가〉 죽을 먹고 얼굴이 심하게 어두워져 자리에 나아가서 곡하면, 백관과 유사가 감히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은 〈세자가〉 이 일을 솔선해서입니다.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이 반드시 그보다 더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공자께서〉 ‘군자의 덕(德)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 하였으니, 이번 일은 세자에게 달려있습니다.”
“곡식으로 기구와 바꾸는 것이 도공과 대장장이를 해침이 되지 않으니, 도공과 대장장이 또한 그 기구로 곡식을 바꾸는 것이 어찌 농부를 해침이 되겠는가? 게다가 허자는 어찌 도공과 대장장이가 되어 다만 모두 자기 집 안에서 기구를 구해서 쓰지 않는가? 어찌하여 번거롭게 온갖 장인과 교역하는가? 어찌 허자는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가?” 〈진상이〉 말하였다. “백공의 일은 진실로 농사지으며 함께 하는 것이 불가한 것입니다.”
옛날에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심상(心喪)〉 3년을 지내고 문인들이 짐을 꾸려 장차 돌아갈 적에 자공(子貢)에게 들어가서 읍하고 서로 마주 보고 곡하여 모두 목이 쉰 뒤에 돌아갔네. 자공은 〈묘소로〉 돌아와서 〈무덤 가〉 평지에 집을 짓고 홀로 3년을 머무른 뒤에 돌아갔다네. 다른 날 자하(子夏)와 자장(子張)과 자유(子游)는 유약(有若)이 성인(공자)과 비슷하다 여겨서 공자를 섬기던 방법으로 유약을 섬기고자 하여 증자(曾子)에게 강요하자, 증자가 말하길 ‘안 됩니다. 〈공자의 덕(德)은〉 강수와 한수로 (생략)씻고, 가을볕으로 (생략)말려서, 희고 깨끗하여! 더할 수 없습니다.’ 하였네.
옛날에 조간자(趙簡子)가 왕양에게 총애하는 신하인 해(奚)를 위하여 수레를 몰게 하였는데, 〈해는〉 하루를 다하도록 짐승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네. 총신 해가 보고하기를 ‘〈왕양은〉 천하의 쓸모없는 〈수레 몰이〉 솜씨입니다.’ 하였다네. 혹자가 이 일을 왕양에게 알리자, 왕양이 〈간자에게〉 말하길 ‘수레 몰이를 다시 하겠습니다.’ 하였네. 〈간자가 해에게〉 강요한 뒤에 〈해가〉 승낙하였는데, 〈이번에는〉 하루아침에 짐승 열 마리를 잡았네. 총신 해가 보고하기를 ‘천하의 훌륭한 〈수레 몰이〉 솜씨입니다.’ 하였네. 〈이에〉 간자가 말하길 ‘내가 너(해)를 위해 〈왕양에게〉 수레 모는 일을 담당하게 하겠다.’ 하고는 왕양에게 〈해의 수레몰이를 담당하도록〉 지시하였는데, 왕량은 불가하다며 말하길 ‘제가 그(해)를 위하여 저의 수레 모는 일을 규범대로 했더니 하루를 다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고, 그를 위하여 〈짐승과〉 속임수로 마주치게 했더니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았습니다. 《시경》 〈거공(車攻)〉에 이르길, 「〈운전수는〉 올바른 수레 모는 방법을 잃지 않고, 〈사수는〉 화살을 쏠 때마다 깨트리듯 하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소인(小人)을 위하여 수레 모는 일은 익숙하지 않으니 사양하겠습니다.’ 하였다네.
팽경(彭更)이 물어 말하였다. “뒤따르는 수레 수십 대와 따르는 사람 수백 명으로 제후에게 음식을 접대 받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알맞은 도가 아니라면 한 그릇의 밥이라도 남에게 받을 수 없지만, 만일 알맞은 도라면 순(舜)이 요(堯)임금의 천하를 받되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자네는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는가?”
맹자가 〈송(宋)의 신하〉 대불승(戴不勝)에게 일러 말하였다. “그대는 그대의 임금이 선(善)해지기를 바라십니까? 제가 분명하게 그대에게 말하겠습니다. 초(楚)나라 대부가 여기에 있는데, 자기 자식이 제나라 말을 〈하기를〉 바란다면, 제나라 사람에게 가르치게 하겠습니까? 초나라 사람에게 가르치게 하겠습니까?” 〈대불승이〉 말하였다. “제나라 사람에게 자식을 가르치게 하겠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한 명의 제나라 사람이 그를 가르치고, 여러 초나라 사람이 그에게 떠든다면 비록 날마다 때려서 그 제나라 말을 요구하더라도, 〈제나라 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끌어다가 〈제나라의 거리인〉 장악(莊嶽)의 사이에 몇 해를 둔다면, 비록 날마다 때려서 그 초나라 말을 요구하더라도 또한 〈초나라 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49
今有仁心仁聞이로되 而民이 不被其澤하여不可法於後世者는 不行先王之道也일새니라<孟子, 離婁上>
지금 어진 마음[仁心]과 어진 소문[仁聞]이 있는데도, 백성이 그 은택을 입지 못하며, 후세에 본보기가 될 수 없는 것은 선왕의 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이미 시력을 다 쓰고 그림쇠와 곱자와 수준기와 먹줄로 시력을 계승시키니, 네모와 원, 평평한 것과 곧은 것을 만드는 일에 이루 다 쓸 수 없었으며, 이미 청력을 다 쓰고 육률(六律)로 청력을 계승시키니, 오음(五音)을 바로잡는 데 이루 다 쓸 수 없었으며, 이미 사고력을 다 쓰고 남에게 차마하지 못하는 정사로 사고력을 계승시키니, 인(仁)이 천하에 두루 미쳤다.
《시경》 〈문왕(文王)〉에 이르길, ‘상(商)나라의 자손이 그 수가 수 억에 그치지 않았지만, 상제가 이미 명했는지라 이에 주나라에 복종하도다. 이에 주나라에 복종하니 천명이 일정하지 않도다. 은(殷)나라 선비 가운데 아름답고 민첩한 이들이 도성에서 강신제를 도왔다.’ 하였는데, 공자께서 말하길, ‘어진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으로 대적할 수 없으니, 무릇 나라의 군주가 인을 좋아하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52
太甲曰 天作孼은 猶可違어니와 自作孼은不可活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孟子, 離婁上>
《서경》 〈태갑(太甲)〉에 이르길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생존할 수 없다.’ 하니, 이것을 이른다.”
53
今天下之君이 有好仁者면 則諸侯皆爲之敺矣리니 雖欲無王이나不可得已니라<孟子, 離婁上>
지금 천하의 임금 중에 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후가 모두 백성을 위하여 몰아줄 것이니, 비록 왕 노릇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얻어서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것에 길이 있으니 친구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벗에게 미더운 길이 있으니 부모를 섬김에 기쁘게 하지 못하면 친구에게 미덥지 못할 것이다. 부모를 기쁘게 함에 길이 있으니 자신을 되돌아봐서 성실하지 못하면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성실하게 함에 길이 있으니 선에 밝지 않으면 그 자신을 성실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의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장차 자기에게 귀의하는데도, 천하가 기뻐하면서 자기에게 귀의하는 것을 보고도 초개를 〈보는 것과〉 같이한 것은 오직 순임금만이 그렇게 하였으니, 어버이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로써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어버이를 순응하게 하지 못하면 그로써 자식이라 할 수 없다.
정(鄭)나라 사람이 자탁유자(子濯孺子)로 하여금 위(衛)나라를 침략하게 하였는데, 위나라는 유공지사(庾公之斯)로 하여금 자탁유자를 추격하게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길, ‘오늘 나는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 없으니, 나는 죽겠구나.’ 하고, 자기 마부에게 묻기를 ‘나를 추격하는 자는 누구인가?’ 하였고, 그 마부가 말하길 ‘유공지사입니다.’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길, ‘나는 살것이다.’ 하였고, 그 마부가 말하길, ‘유공지사는 위나라의 활쏘기를 잘하는 사람인데, 부자가 「나는 살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길, ‘유공지사는 활쏘기를 윤공지타(尹公之他)에게 배웠고 윤공지타는 활쏘기를 나에게 배웠는데, 저 윤공지타는 바른 사람이다. 그가 벗을 가려 사귐이 반드시 바를 것이다.’ 하였다. 유공지사가 이르러 말하길, ‘선생은 무엇 때문에 활을 들지 않습니까?’ 하니, 〈자탁유자가〉 말하길, ‘오늘 내가 병이 나 서 활을 들을 수 없소.’ 하였다. 〈유공지사가〉 말하길, ‘소인은 활쏘기를 윤공지타에게 배웠고 윤공지타는 활쏘기를 선생(자탁유자)에게 배웠으니, 제가 선생의 기술로써 도리어 선생을 해치는 짓을 차마하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오늘의 일은 나랏일이니, 제가 감히 그만두지는 못합니다.’ 하고는 화살을 뽑아 수레바퀴에 두드려서 그 화살촉을 제거하고 네 발의 화살을 발사한 뒤에 돌아갔다.”
증자(曾子)가 무성(武城)에 살 때 월(越)나라의 약탈이 있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도적이 이르렀으니 어찌 떠나지 않습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내 집에 사람을 붙여두어 그 땔감과 나무를 훼손시키지 말라.” 도적이 물러가자 곧 〈증자가〉 말하였다. “나의 담장과 지붕을 보수하라. 나는 장차 돌아가겠다.” 도적이 물러가고 증자가 돌아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하였다. “선생을 대함이 이처럼 매우 충성하고 또 공경하였는데, 도적이 오자 곧 먼저 떠나서 백성의 본보기가 되시고, 도적이 물러가자 곧 돌아오니, 옳지 않은 일에 가깝습니다.” 심유행(沈猶行)이 말하였다. “이것은 너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심유씨 집안에 부추(負芻)의 반란이 있었는데, 선생을 따르는 자 칠십 명은 난에 함께한 자가 있지 않았다네.”
〈백리해는〉 우공이 간언할 수 없음을 알고서 떠나 진으로 가니, 〈이때의〉 나이가 이미 칠십이었네. 일찍이 소를 먹이는 것으로써 진나라 목공에게 간언하는 것이 더러운 일이 됨을 알지 못했다면,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간언할 수 없어서 간언하지 않았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공이 망하려는 것을 알고서 먼저 그곳을 떠났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네. 당시에 진나라에 등용되어 ‘목공은 함께 행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를 도왔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를 도와서 그 임금을 천하에 드러내어 후세에 전할 수 있게 하니, 현명하지 않고서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팔아서 그 임금을 만드는 것은 시골의 스스로를 아끼는 자들도 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백리해 같은〉 현명한 자가 ‘그일을 했다’고 이르겠는가?”
〈만장이〉 말하였다. “여쭙건데, 말로써 예물을 돌려보내지 않고, 마음으로써 예물을 돌려보내며 생각하길, ‘그가 백성에게 취한 것이 의롭지 못하다.’ 하고서, 다른 말로써 받지 않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 사귐이 도를 쓰고 그 대함이 예를 쓰면, 공자께서도 예물을 받았다네.”
만장이 말하였다. “지금 국도 성문의 밖에서 타인에게 강도질하는 자가 있는데, 그 사귐에는 도를 쓰고 그 〈물건을〉 주고받음에는 예를 쓴다면 강도질한 것을 받아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옳지 않네. 《서경》 〈강고〉에 이르길 ‘다른 사람에게 재물을 죽여서 강탈하여 억세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온 백성이 원망하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니, 이는 가르칠 것을 기다리지 않고서 죽일 자라네. 빼앗은 물건을 받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또 임금이 그를 만나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만장이〉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며, 그가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라면 천자도 스승을 부르지 않는데, 하물며 제후가 〈그를 부르〉겠는가? 그가 현명하기 때문이라면 나는 어진이를 만나고자 하여 어진이를 부르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네. 목공이 자사를 자주 만나서 말하길, ‘옛날에 천승의 나라를 〈가진 군주〉로서 선비와 벗하였으니, 어떠합니까?’ 하자, 자사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길, ‘옛사람이 말에 이르길, 「그를 섬겼다고 말할지언정 어찌 그와 벗하였다 말하겠습니까?」’ 하였으니, 자사가 기뻐하지 않은 것은 어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위로는 그대는 임금이고 나는 신하이니, 어찌 감히 임금과 벗하겠습니까? 덕으로는 그대는 나를 섬기는 자이니, 어찌 나와 벗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천승의 임금도 자사와 벗하기를 구해서 얻을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함부로〉 부를 수 있겠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할 것이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
전에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집[宮室]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그 일을 하며, 전에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처첩(妻妾)의 봉양을 위하여 그 일을 하며, 전에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내가〉 알던 바 궁핍한 사람이 나에게 고마워하게 하기 위하여 그 일을 하니, 이 또한 그만둘 수 없겠는가? 이것을 ‘그 본래 마음을 잃었다.’ 이른다.”
〈맹자가〉 말하였다. “〈개풍〉은 어버이의 과실이 작은 것이고 〈소반〉은 어버이의 과실이 큰 것이니, 어버이의 과실이 큰데 원망하지 않으면 이는 더욱 소원한 것이고 어버이의 과실이 작은데 원망하면 이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니, 더욱 소원해지는 것도 불효이고 거스를 수 없는 것도 불효라네.
〈맹자가〉 말하였다. “저는 그 자세한 것을 묻지 않으려 하고 그 취지를 듣기를 바라오니, 설득을 장차 어떻게 하려 하십니까?” 〈송경(宋牼)이〉 말하였다. “내가 장차 그 일의 이롭지 않음을 말하려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선생의 뜻은 크지만, 선생의 명분은 옳지 않습니다.
68
一戰勝齊하여 遂有南陽이라도 然且不可하니라<孟子, 告子下>
〈만약〉 한 번 싸워서 제나라를 이겨서 마침내 남양(南陽) 땅을 차지하더라도 그래도 옳지 않다.”
69
萬室之國에 一人이 陶則可乎아 曰 不可하니 器不足用也니이다<孟子, 告子下>
만 가구가 〈사는〉 나라에서 한 사람이 질그릇을 만들면 되겠소?” 〈백규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그릇이 쓰기에 부족합니다.”
70
陶以寡라도 且不可以爲國이온 況無君子乎아<孟子, 告子下>
질그릇이 너무 적어도 때문에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관리가 없어서는?
71
孟子曰 人不可以無恥니 無恥之恥면 無恥矣니라<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되니,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72
食之以時하며 用之以禮면 財不可勝用也니라<孟子, 盡心上>
먹기를 때로써 하고 쓰기를 예로써 하면, 재물을 이루 다 쓸 수 없다.
73
恭敬而無實이면 君子不可虛拘니라<孟子, 盡心上>
공경하되 〈공경의〉 실체가 없으면 군자는 헛되게 얽매일 수 없다.”
74
曰 是欲終之而不可得也라 雖加一日이나 愈於已하니 謂夫莫之禁而弗爲者也니라<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이것은 상기를 마치고자 하나 얻을 수 없는 것이니, 비록 하루를 더하더라도 그만두는 것보다 낫다네. 무릇 상기를 금하지 않았으나 지키지 않는 경우를 이른 것이네.”
맹자가 말하였다. “공자가 〈이르길〉 ‘중도(中道)의 선비를 얻어서 그 선비와 함께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광견한 자일 것이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니, 공자가 어찌 중도의 선비를 바라지 않았겠는가마는, 반드시 얻을 수는 없었네. 그러므로 그 다음을 생각하였다네.
80
狂者를 又不可得이어든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하시니 是獧也니 是又其次也니라<孟子, 盡心下>
광자(狂者)를 또 얻을 수 없다면 깨끗하지 않은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선비를 얻어서 그와 함께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견(獧)’이니, 이는 또한 그다음인 것이네.
〈맹자가〉 말하였다. “〈향원은〉 비난에 근거가 없으며 풍자에 풍자할 것이 없어서, 유속(流俗)과 동화하며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머무를 때는 진실하고 미더운 것 같으며 행동할 때는 청렴하고 결백한 것 같아서,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에 들어 갈 수 없다네. 그러므로 ‘덕의 적’이라 말한 것이라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감에, 백세의 가운데에 질병이 여기에 있으며, 노년기와 유년기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생각하여 먼저 베푸는 것이다. (생략) 친척이 이미 죽으면 비록 효도하고자 하더라도 누구를 위해 효도할 것이며, 나이가 이미 늙으면 비록 공경하고자 하더라도 누구를 위해서 공경하겠는가? 그러므로 ‘효도는 미치지 못함이 있으며, 공경은 때가 아님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이것을 말함일 것이다.
95
敖不可長이며 欲不可從이며 志不可滿이며 樂不可極이니라<小學, 敬身第三>
오만함을 키워서는 안되며, 욕심을 방종하게 해서는 안되며, 뜻을 자만하게 해서는 안되며, 즐거움을 극도로 해서는 안된다.
96
居處恭하며 執事敬하며 與人忠을 雖之夷狄이라도不可棄也니라<小學, 敬身第三>
거처함을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함을 공경히 하며, 남과 함께함에 성실히 함을 비록 오랑캐 (땅)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된다.
기자는 주왕의 친척이다. 주왕이 처음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저 사람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었으니, 반드시 옥 술잔을 만들 것이다. 옥 술잔을 만들면, 반드시 먼 곳의 진귀하고 괴이한 물건을 생각하여 (그것을) 사용할 것이니, 수레와 말과 궁실을 차츰 (사치함을) 이로부터 시작되어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나라와 예나라의 임금이 서로 함께 토지를 다투어 오래되도록 화평하지 못했다. 이에 서로 일러 말하였다. “서백은 어진 사람이니, 어찌 찾아가서 그에게서 바로잡지 않겠는가?” 이에 서로 함께 주나라로 조회를 갔다. 그 국경에 들어가니, 밭 가는 사람은 밭두둑을 양보하고,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였으며, 그 도읍에 들어가니, 남자와 여자가 길을 달리하고, 머리가 반백인 사람은 (짐을) 들지 않았으며, 그 조정에 들어가니, 사는 대부가 되기를 사양하고, 대부는 경이 되기를 사양하였다. 두 나라의 임금이 감동하여 서로 일러 말하였다. “우리는 소인이다. 이로서 군자의 조정을 밟을 수 없다.” 이에 서로 사양하여, 그 다투던 토지를 을 한전으로 삼고서 물러가니, 천하에서 듣고 (그에게) 귀의하는 자가 사십여 나라였다.
위후가 초나라에 있었는데, 북궁문자가 영윤인 위의 위의를 보고 위후에게 일러 말하였다. “영윤은 아마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시경에 이르길, ‘위의를 공경하고 삼가하므로, #백성의 법칙이 된다.’ 하였는데, 영윤은 위의가 없으니, 백성들이 그에게 본받을 것이 없다. 백성이 본받지 못할 바이면서 백성의 위에 있으니, 이로써 (좋게) 끝마칠 수 없을 것이다.
100
衛詩曰 威儀棣棣라不可選也라하니 言君臣上下父子兄弟內外大小皆有威儀也니이다<小學, 稽古第四>
위시에 말하였다. ‘위의가 익숙하니, 가릴 수 없다.’ 군신과 상하와 부자와 형제와 내외와 대소가 모두 위의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무릇 뜻을 세움이 높지 못하면 그 배움은 모두 보통 사람의 일이다. 말이 안자와 맹자에게 미치면 감히 감당하지 못하여, 그 마음에 반드시 〈다음과 같이〉 여길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이니, 어찌 감히 안자와 맹자를 배우겠는가?’ 이 사람은 그것으로 위의 것을 말해줄 수 없다. 선생과 어른이 그 비천하고 낮음을 보고 어찌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즐기겠는가? 선생과 어른이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즐기지 않으면 그가 더불어 말하는 바는 모두 낮은 등급의 사람이다. 말이 진실하고 미덥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행실이 독실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잘못하고서 뉘우칠 줄 알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뉘우치면서 고칠 줄 알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니, 낮은 등급의 말을 듣고 낮은 등급의 일을 행하면, 비유하건대 마치 방의 가운데에 앉아서 네 쪽이 모두 담벽인 것과 같으니, 비록 열어 밝게 하고자 하지만 얻을 수 없다.”
혹 명령한 바가 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갖추어 (그것을) 말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것을) 고치고, 만약 허락하지 않더라도 만약 일에 있어 큰 해가 없는 것이면, 또한 마땅히 굽혀 따라야 한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그르다 여겨 곧바로 자기의 뜻을 행하면, 비록 집행하는 바가 모두 옳더라도 오히려 순하지 못한 자식이 되니, 하물며 반드시 옳지 않음에 있어서랴.
만약 어버이의 옛 친구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힘을 다하여 초청하여 이르게 하며, 손님을 받들기를 마땅히 힘을 다하여 계획하고 장만하여 힘써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것으로 일삼고 집안의 있고 없고를 따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또 응당 (그가) 자신이 힘쓰고 힘써 애쓰고 수고로운 것을 알지 않게 해야 하니, 만약 그 함에 쉽지 않음을 보게 되면, 또한 편하지 않을 것이다.”
옛날의 예에 비록 20살이고서 관례를 한다고 했으나 그러나 세속의 폐단을 갑자기 바꿀 수 없으니, 만약 돈독하고 후하여 옛것을 좋아하는 군자가 그 아들의 나이가 열다섯 이상에 효경과 논어를 잘 통달하여 대략 예절과 의리의 방향을 알기를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를) 관례 하면, 이에 그 아름다울 것이다.”
무릇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 거하는 사람은 대상의 전에 모두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니, 만약 병이 있으면 잠시 모름지기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되, 병이 그치면 또한 마땅히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만일 고기 없는 음식이 목으로 잘 내려가지 않아서 오래되어 파리하고 여위어 병을 이룰까 염려되는 사람은 고기즙과 포와 젓갈이나 혹 고기 조금과 약간으로 그 입맛을 돋울 수 있을지언정 진귀한 음식, 성대한 음식을 마음대로 먹거나 및 남과 연회 하며 즐겨서는 안 되니, 이는 곧 비록 상복을 입었더라도 그 실제는 상례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50세 위로 혈기가 이미 쇠하여 반드시 술과 고기에 도움받아 받들어 봉양하는 사람은 곧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뿐이다.
호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유학하는 사람은 문장과 재주를 배워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는 마음을 옮겨서 그것으로 그 잃어버린 마음을 거두어서 그 몸을 아름답게 하면 어찌 옛사람에게 미칠 수 없겠는가? 아버지와 형이 문장과 재주로써 그 자식과 아우에게 명령하고, 벗과 친구가 벼슬에 나아가는 것으로 서로 불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이 비로소 거칠어져서 다스려지지 않아서 모든 일의 이룸이 모두 옛날 선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스스로 (그것을) 이르기를 ‘신묘함을 궁구하고 변화를 안다’고 하되 충분히 그것으로 인물을 개발하고 일을 이루지 못하며, ‘말과 행위가 두루 두루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되 실제는 윤리와 이치에서 벗어나며, ‘깊음을 다하고 은미함을 극진히 한다.’ 고 하되 그것으로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에 들어갈 수 없으니, 천하의 학문이 천하고 누추하며 고루하고 막힌 것이 아니면 반드시 이에 들어간다.
처음에 위나라 요동공 적흑자는 태무제에게 사랑을 받았다. 병주에 사신의 일을 받들고 가서 베 천 필을 받았다가 일이 발각되었다. 적흑자는 저작랑 고윤에게 의논하여 말하기를 “주상께서 나에게 물으시면 마땅히 진실로써 고해야 하는가? 마땅히 (그것을) 숨겨야 하겠는가?” 고윤이 말하였다. “공은 유악의 총애받는 신하이니, 죄가 있을 때 사실을 자수하면 다행히 혹 용서를 받을 수 있을 테니 속이는 일을 거듭해서는 안 됩니다.” 중서시랑 최감과 공손질이 말하였다. “만약 사실을 자수하면 죄를 예측할 수 없으니, 잠시 (그것을) 숨기는 것만 못합니다.” 흑자가 고윤을 원망하며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사람을 꾀어 죽을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가?" 하고 들어와 황제를 만나 사실로 대답하지 않았다. 황제가 노하여 (그를) 죽였다.
이군행 선생은 이름이 잠이니 건주사람이다. 경사에 들어갈 적에 사주에 이르러 머물러 있었는데 그 자제가 먼저 가기를 청하였다. 군행이 그 까닭을 묻자 말하기를 과거시험이 가까워졌으니, “바라건대 먼저 경사에 이르러서 개봉부에 호적을 올려 응시하려 합니다.” 군행이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너는 건주 사람이거늘 개봉부에 호적을 올려 임금을 섬기기를 구하고자 하면서 먼저 임금을 속이니 옳은가? 차라리 몇 년을 더디고 느리게 가더라도 가서는 안 된다.”
진나라 우복야 등유가 영가 말년에 석륵에게 패몰되어 사수를 지났는데, 등유는 소와 말에 아내와 아이를 업히고 도망가다가 또 만나 도적을 그 소와 말을 빼앗겨 걸어서 달아나면서 그의 아이와 및 그의 동생의 자식인 유를 업고 갔다. 둘 다 온전하게 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서 이에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우리 동생은 일찍 죽어서 오직 한 명의 자식이 있을 뿐이니, 도리상 (동생의 후사를) 끊을 수 없다. 다만 마땅히 스스로 우리 아이를 버려야 할 뿐이다. 다행하여 (우리가) 살아있다면 우리는 나중에 마땅히 자식이 있을 것이다. 아내가 울면서 (그 말을) 따랐다. 이에 그 아이를 버리고 (그를) 떠났는데 마침내 이로써 후사가 없었다.
항상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대우는 성인인데도 이에 한 촌의 시간도 아꼈는데, 보통 사람에게 이르러서 마땅히 한 푼의 시간도 아껴야 하거늘, 어찌 편안하게 놀고 크게 취하여 살아서는 당시에 보탬이 없고, 죽어서는 후세에 알려짐이 없을 수 있는가? 이는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여러 참좌들이 혹 잡담으로 일을 폐할 때에는 이에 명을 내려 그 술그릇과 포박의 도구를 가져다가 모두 (그것을) 강에 던졌으며, 아전과 장수의 경우에는 편복을 가하며 말하기를 “저포라는 것은 돼지를 기르는 노비의 놀이일 뿐이고, 노장의 부화함은 선왕의 법언이 아니니 행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마땅히 그 의관을 바로잡으며 그 위의를 잡아야 하니, 어찌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명망을 기른다고 하여 스스로 크게 통달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112
司馬溫公이 嘗言吾無過人者어니와 但平生所爲 未嘗有不可對人言者耳라하니라<小學, 善行第六>
사마온공이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남보다 나은 점이 없다. 다만 평생 행한 것이 일찍이 남을 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지 않을 뿐이다." 하였다.
온공이 말하였다. “우리 집은 본래 한미한 가문이라서, 대대로 청백으로 서로 계승하였고, 나의 성품이 화려하고 사치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장자가 금, 은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더해주면 그때마다 부끄럽고 얼굴 붉히며 (그것을) 버렸다. 나이 20살에 과거 급제의 명예[科名]를 더럽히자, 문희연에서 홀로 꽃을 꽂지 않으니 동년생이 말하기를 ‘임금이 주신 것이니, 어겨서는 안 된다.’ 하기에, 이에 한 송이의 꽃을 꽂았다. 평생 옷은 추위를 가릴 정도만 취하고 음식은 배를 채울 정도만 취하였으며, 또 감히 때가 끼고 해진 것을 입어서 풍속과 다르게 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다만 나의 성품을 따를 뿐이었다.”
114
汝素蓄兇心이라가 自陷刑辟이라 法者天下之公이니不可私撓라<[新編]明心寶鑑, 韓國篇>
네가 평소 흉악한 마음을 쌓아두고 있다가, 스스로 형벌에 빠진 것이다. 법이라는 것은 천하의 공평한 것이니 사사로이 어지럽게 할 수는 없다.
첫째. 뜻을 세우는 것에 대한 글: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이 될 것으로 스스로 기약하여, 한 가닥의 털 만큼도 스스로 작다 여기고 물러나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대체로 중인과 성인이 그 본성은 한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섞임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나, 만약 참되게 알고 실천할 수 있어서 그 옛날에 물든 것을 버리고 그 본성의 처음을 회복한다면, 털끝만큼을 보태지 않더라도 온갖 선이 두루 갖추어질 것이니, 중인들이 어찌 성인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는 ‘〈인간은〉 본성이 선(善)하다’고 말하되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어서 그것을 실증하며 말하길 ‘사람은 모두 그 때문에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시니,〉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바꾸어 예쁘게 할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바꾸어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할 수 없다. 이것들은 이미 결정된 분수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심지는 그로써 어리석음을 바꾸어 슬기롭게 만들고 불초한 것을 바꾸어 어질게 만들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의 허령이 타고난 기질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슬기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어짊보다 귀한 것이 없거늘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을 실천하지 않고서 하늘이 부여한 바의 본성을 훼손하는가? 사람들이 이 뜻을 보존하여 견고하게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부모이면서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식이면서 제 부모를 부모로 대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무엇으로써) 세상에 서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는 없다. 부모가 비록 〈자식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그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학문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도를 향하여 외부의 사물이 이기는 바가 되어선 안 되니, 외부의 사물이 바르지 못한 것을 응당 일체 마음에 머물게 하지 말아서 마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 만일 장기, 바둑, 주사위 놀이 등의 놀이를 벌여 놓았으면 응당 눈을 붙이지 말아서 뒷걸음질 쳐서 (몸을) 이끌어 물러나고, 만일 광대와 기생이 노래와 춤을 하는 것을 만나면 반드시 모름지기 피하여 떠나야 하고, 만일 마을 안의 큰 모임을 만나 혹시 존귀하고 나이 많은 이가 억지로 만류하여 피하고 물러갈 수 없으면 비록 자리에 있더라도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사한 소리와 음란한 색이 나를 침범함이 있게 안 된다.
잔치를 당해서 술을 마실 적에는 빠지도록 취해선 안 되고, (술기운에) 무젖으면 그치는 것이 옳다. 모든 음료와 먹을 것은 마땅히 중도에 알맞게 먹어야 하니, 뜻에 쾌하여 기를 상함이 있게 해선 안 되며, 말과 웃음은 응당 간략하고 신중히 해야 하니, 떠들어대서 그 절도를 넘어선 안 되며, 움직이고 그침은 응당 안정되고 분명하게 해야 하니, 거칠고 경솔하여 그 위의를 잃어선 안 된다.
대개 태극이 처음 갈라져 음양(陰陽)이 비로소 나뉘게 된 때부터 오행이 상행하기 앞서 이기(理氣)가 있었다. 사람과 만물의 생성된 것이 많았으니, 이때에 성인(聖人)이 먼저 나타나서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표준을 세우셨다.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유소씨(有巢氏)·수인씨(燧人氏) 때를 태고(太古)라 하는데, 〈이때는〉 서계(書契)가 있기 전이라서 상고(上考)할 수 없다.
사람은 같은 또래에게도 오히려 서로 넘을 수 없거늘, 하물며 연배가 나보다 높고, 벼슬이 나보다 귀하며, 도가 나보다 높은 사람에서야! 그러므로 시골 무리에 있어서는 곧 그 나이를 공경하고, 조정에 있어서는 곧 그 벼슬을 공경하며, 그 도를 높이고 그 덕을 공경하는 것, 이것이 예이다.
부모의 뜻이 만약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마땅히 〈부모의〉 뜻을 미리 〈알아〉 받들어 따라 작은 것이라도 어겨서는 안 되고, 만약 그 이치에 해로운 것이라면 기운을 온화하게 하고 얼굴빛을 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간하여, 반복하고 개진하여 반드시 들어 따라줄 것을 기약한다.
상과 제 두 예는 가장 자식이 정성을 다할 곳이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를 쫓아 봉양할 수 없으니 만약 상례에서 그 예를 다하고, 제사에서 그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끝나는 애통함을 붙일 만한 일이 없고, 쏟아낼 만한 때가 없으니, 자식의 마음에 마땅히 어떻겠는가? 증자가 말하였다. “(근친이) 죽음에 삼가고 선조를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는) 자식 된 자가 마땅히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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冠婚之制는 當依家禮요不可苟且從俗이니라<[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관례와 혼례의 제도는 마땅히 (주자) 가례를 의거해야 하고, 구차하게 세속을 따라서는 안된다.
형제는 부모가 남겨준 몸을 함께 받아서 나와는 한 몸과 같다. (그를) 볼 때 마땅히 서로의 간격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이 있고 없음을 모두 마땅히 (생략) 함께 해야 한다. 가령 형은 굶으나 동생은 배부르고, 동생은 추우나 형은 따뜻하다면 곧 이는 한 몸의 가운데 지체가 혹 병들고 혹 건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생략) 때문이다. 만약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생략)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약 좋지 못한 행실이 있다면 (생략) 마땅히 정성을 쌓아 진실스럽게 충고해서 점차 도리로서 깨우쳐 감동하여 깨닫기를 기약해야 하니, 대뜸 사나운 낯빛과 거슬리는 말을 가하여서 그 부드러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자식을 낳으면 (자식이) 약간 지식이 생길 때부터 마땅히 (그를) 선으로 인도해야 하니,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미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곧 나쁜 것을 익히고 마음을 풀어놓아 (그를) 가르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를) 가르치는 순서는 마땅히 소학을 따라야 한다. 무릇 한 집안의 안에 예법이 흥행하고 편지, 책, 글씨 쓰기(생략) 외에 다른 잡기가 없으면 (생략) 자제들 또한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 배움을 저버리는 근심이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은 나의 자식과 같다. 그 (조카를) 사랑하고 그 (조카를) 가르치는 것을 마땅히 균일하게 해야 하고, 가볍게 하거나 중하게 하고, 후하게 하거나 박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집안을 다스릴 때 마땅히 예법으로 안과 밖을 구별하여 비록 하인이라도 남자와 여자를 섞어 살아서는 안 된다. 남자 하인은 시키는 것이 있지 않으면 (생략) 쉽게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여자 하인은 모두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정해진 남편이 있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음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음란함을 그치지 않는 자라면 (생략) 마땅히 내쫓아서 (그들로) 하여금 따로 살도록 해야 하고 (그들로) 하여금 가풍을 더럽히게 해서는 안 된다. 하인은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화목하게 하여 만약 다투고 떠드는 자가 있으면 (생략) 마땅히 금지와 제재를 통렬히 가해야 한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마땅히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함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 할 뿐이고, 쌓아두고 풍족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생략)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 사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김을 매는 사람이 있으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부유함과 귀함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비교하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략) 어찌 마음의 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모름지기 부유함과 귀함을 가볍게 여기고 가난함과 천함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집에서 생활할 때 가난하면 (생략) 반드시 가난에 곤궁한 바 되어서 그 지키는 (생략) 것을 잃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바로 마땅히 이곳에서 노력해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였다. “곤궁할 때 그가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난할 때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본다.” 공자가 “소인은 가난하면 넘친다” 라고 하였다. 만약 가난함에 움직여서 의를 행할 수 없다면, (생략)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무릇 사양하고 받고 가지고 주는 사이에 반드시 의인지와 의가 아닌지를 정밀하게 생각하여 의라면 (그것을) 가지고, 의가 아니라면 가지지 않아서 터럭만큼도 그대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
친구의 경우는 곧 재물을 통하는 의가 있으니, 주는 것을 모두 마땅히 받는다. 다만 내가 궁핍하지 않은데도 쌀과 베를 준다면 (생략) 받아서는 안 된다. 기타 서로 아는 사람은 (생략) 다만 그 명분이 있는 선물을 받고, 명분이 없으면 받아서는 안 된다. 이른바 명분이 있다는 것은 상례에 부의하고, 여행에 노자를 주고, 혼례에 부조하고, 가난에 도와주는 종류가 이것이다.
만약 (생략) 대단한 악인이어서 (나의) 마음에 비루하고 악하다고 여기는 바의 사람이라면, 곧 그의 선물이 비록 명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받으면 마음이 반드시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면, 억지로 하여 (그것을) 받아서는 안된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며, 그 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의를 행하는 방법이다.
중국은 여러 읍의 관리에게 사사로운 녹봉이 있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를 미루어서 이로써 남의 위급함을 도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령에게 따로 사사로운 녹봉이 없다. 다만 공곡으로 일상생활의 비용에 응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사사로이 다른 사람에게 준다면 곧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벌과 꾸짖음이 있다. 심하면 장물죄를 범하는 것에 이르고, 받은 사람 또한 그러하다. 선비가 되어 수령의 선물을 받으면 곧 이는 바로 금령을 범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의) 금령을 물었으니, 그렇다면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어찌 금령을 범할 수 있겠는가? 수령의 선물은 대개 받기가 어려운 것이니, 만약 사사롭게 국고의 곡식을 준다면 곧 사람이 친한지 소원한지와 명분이 있고 없는지와 물건이 많고 적은지를 따지지 않고 모두 받아서는 안 된다.
접인장 제 9권무릇 사람을 접할 때는 마땅히 온화하고 공경함을 힘써야 하니, (나보다) 나이가 곱절이 많으면 (그를) 아버지처럼 섬기고 십 년이 많으면 (그를) 형처럼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의 공경을 가할 것이니, 학문을 믿고서 스스로 높은 체하며, 기운을 숭상하여서 남을 업신여기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친구를 고를 때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선을 좋아하고 바르고 엄하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취하여 () 와 같이 지내면서 타이름과 경계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이로써 나의 결점을 다스려야 한다. 만약 그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며 유약하고 아첨하며 바르지 못한 사람이라면, (생략) 사귀어서는 안 된다.
향인 중에 선한 사람은 곧 반드시 모름지기 친근하게 하여 정을 통하고, 향인 중에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또한 나쁜 말로 그의 비루한 행실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를) 범연하게 대하여서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만약 전날에 서로 아는 사람이라면 (생략) 서로 만났을 때 다만 안부만 묻고 다른 말은 주고받지 않는다면 곧 자연히 마땅히 점차 소원해져 또한 원망하고 노여워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무릇 절을 하고 읍하는 예는 미리 정할 수 없다. 대개 아버지의 친구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마을 안에 15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벼슬의 품계가 당상이고 나보다 10년 이상 많은 사람이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마을 사람 중에 20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은 마땅히 절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높이고 낮추는 곡절은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함에 달린 것이고, 또한 반드시 이 예에 구애될 것이 없다. 다만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생각을 마음속에 두는 것이 옳다. 시경에서 ‘온순하고 공손한 사람, 오직 덕의 기반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선생과 어른을 모실 때는 마땅히 의리를 깨닫기 어려운 곳을 질문하여 그 학문을 밝혀야 하고, 향당의 모실 때는 장로를 마땅히 조심하고 공손하고 삼가하여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아서 묻는 것이 있으면 사실로써 공손하게 대답한다. 친구와 함께 지낼 때는 마땅히 도의를 강의하고 연마하여 다만 문자와 의리만을 이야기 할 뿐이고 세속의 비루한 말과 및 시정의 득실과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다른 사람의 잘못과 악행을 일체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마을 사람과 함께 거처할 때 비록 물음에 따라 대답하면서도 끝내 비루하고 더러운 말을 해서는 안된다. 비록 엄숙하고 삼가서 스스로 (몸가짐을) 지키더라도 절대로 자랑하고 높은 체 하는 기색을 두지 않는다. 오직 마땅히 좋은 말로 타이르고 이끌어서 반드시 끌어서 학문에 향하게 한다. 어린아이와 함께 거처할 때 마땅히 효제와 충신을 간곡하게 말해주어 착한 마음을 일으키게 해야한다. 이와 같이 하여 그치지 않는다면 마을의 풍속이 점차 변할 수 있다.
항상 온순하고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남을 구제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 남을 침노하고 남을 해치는 일의 경우는 곧 한 터럭이라도 마음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무릇 사람은 자기를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는 것에 이른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먼저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끊어낸 연후에 인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선비는 공적인 일이나 예의상 만나는 일 및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곧 관청을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 고을의 수령이 비록 지극히 친하더라도 또한 자주 가서 만나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친구 관계가 아닌 경우 에랴? 의롭지 않은 간청과 같은 것은 곧 마땅히 일절 하지 말아야 한다.
열째 〈처세장〉: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나 배움이 이루어지면 윗 사람이 천거하여 그 사람을 등용하였으니, 대체로 벼슬[仕]이란 남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 과거로 사람을 뽑아 비록 천리를 통달한 학문과 남들을 뛰어넘는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자신이 배운〉 도를 행하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그 자식에게 〈과거공부를〉 하게 하고 형은 그 아우에게 〈과거공부를〉 권면하여 과거의 〈공부〉 이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속이 경박한 것은 오로지 이러한 까닭이다. 다만 지금 선비된 자가 대부분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계책을 때문에 과거 공부하는 것을 벋어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실력을 연마하여 그 때를 기다려 얻음과 잃음을 하늘의 운수에 맡겨야 하며, 출세에 급급하고 열중해서 그 뜻을 잃어서는 안된다.
사람이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히 여기고 이미 벼슬한 뒤에는 다시 벼슬을 잃을까 염려한다. 이처럼 골몰하다가 그 본심을 잃은 사람이 많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은 도를 행하는 일을 중심으로 해야 하니, 도가 행해질 수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 만약 집안이 가난하여 녹을 받는 벼슬아치에서 벋어날 수 없다면, 반드시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에 나아가며, 높은 지위는 사양하고 낮은 벼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위한 벼슬이라고 하지만,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힘써서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하고, 관직을 버려두고서 먹고 마시기만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