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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可 A
동의 : AB ; A ; A 得以 B ; A ; 可得 A ; A ; A ; A 可以 B ; A 足用 B ; A 足以 B ; A 不可 B ; A 不足以 B ; A ; 莫能 A ; A ; 不可 A ; 不能 A ; 不得 A ; 不足 A ; A 不可以 B ; 未可 ; 不可 A ; A 可也 ; A 可矣 ; A ; A 可以 B ; 可得而 A ; 得而 A ; 難得而 A ; 不得而 A ; A ; 須是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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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鼠以一猫夜獵之故 不死則皆遠避하니患遂絶이로되 人以爲他猫之功하야 遂笞其一猫而放之 鼠乃相率而來하니 復禁 使知者擇之 寧畜其一猫耶 將畜其餘猫耶 <文學독해첩경, 論辨類>  
2 馬之千里者 一食 或盡粟一石이어늘 食馬者 不知其能千里而食也하니 是馬雖有千里之能이나 食不飽하고 力不足하여 才美不外見하니 且欲與常馬等이나 이니 安求其能千里也리오 <文學독해첩경, 論辨類>  
3 文德出軍하여 四面擊之하니 述等且戰且行이라 至薩水하여 軍半濟한데 文德進軍하여 擊其後軍하고 殺右屯衛將軍辛世雄이라 於是 諸軍俱潰 禁止이라 九軍將士奔還한데 一日一夜 至鴨水하니 行四百五十里 初度遼 九軍三十萬五千人이어늘 及還至遼東城 唯二千七百人이러라 <漢文讀解捷經 史學篇, 韓國篇>  
4 詩云 瞻彼淇澳혼대 菉竹猗猗로다 有斐君子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로다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諠兮라하니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終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니라 <大學, 傳>  
《시경》 〈〈기욱(淇澳)〉에〉 이르길, “저 기수(淇水)의 물굽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아름답고 무성하구나. 문채(文彩) 있는 군자여! 자른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 놓은 듯하고 간 듯하구나!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드러나니, 문채 있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 하였으니, ‘자른 듯하고 간 듯하다.’ 한 것은 〈군자의〉 배움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고, ‘쪼아 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 한 것은 〈군자가〉 스스로 닦음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고, ‘엄밀하고 굳세다.’ 한 것은 〈군자가 스스로 실수할까〉 두려워함을 〈말한〉 것이고, ‘빛나고 드러난다.’ 한 것은 〈군자의〉 경외하여 본받을 만함을 〈말한〉 것이고, ‘문채 있는 군자를 끝내 잊을 수 없구나!’ 한 것은 〈그 군자의〉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을 백성들이 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5 此謂身不修 以齊其家니라 <大學, 大學 傳>  
이것을 ‘몸이 닦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6 孔子謂季氏하사되 八佾 舞於庭하니 是可忍也 孰不忍也리오 <論語, 八佾第三>  
공자가 계씨를 평하였다. “팔일무를 뜰에서 추니 이 일을 차마 한다면 무엇을 차마 할 수 없겠는가?”
7 子曰 不仁者 以久處約이며 以長處樂이니 仁者 安仁하고 知者 利仁이니라 <論語, 里仁第四>  
공자가 말하였다. “불인자(不仁者)는 〈불인함〉 때문에 오래도록 빈곤 속에 살아갈 수 없고, 〈불인함〉 때문에 오래도록 안락함 속에 살아갈 수 없으니, 인자(仁者)는 인(仁)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智者)는 인(仁)을 이롭게 여긴다.”
8 宰予晝寢이어늘 子曰 朽木 雕也 糞土之墻 杇也 於予與 何誅리오 <論語, 公冶長第五>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니, 공자가 말하였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된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 없으니, 재여에게 무엇을 나무라겠는가?”
9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어니와 夫子之言性與天道 得而聞也니라 <論語, 公冶長第五>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선생님의 문장은 얻어서 들을 수 있으나, 선생님이 성과 천도를 말한 것은 얻어서 들을 수 없다.”
10 子曰 富而可求也인댄 雖執鞭之士라도 吾亦爲之어니와인댄 從吾所好호리라 <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부(富)를 구해서 되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잡는 사람이라도 나 역시 그것을 하겠지만, 만약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
11 曾子曰 可以託六尺之孤하며 可以寄百里之命이요 臨大節而奪也 君子人與 君子人也니라 <論語, 泰伯第八>  
증자(曾子)가 말하였다. “어린 임금을 맡기는 것이 가능하며, 제후국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가능하고, 큰일에 맞닥뜨려서 〈절개를〉 빼앗을 수 없다면, 군자다운 사람인가? 군자다운 사람이다.”
12 子曰 民 可使由之 使知之니라 <論語, 泰伯第八>  
공자가 말하였다. “백성은 도리를 따르게 할 수 있지만, 원리를 알게 할 수는 없다.”
13 子曰 三軍 可奪帥也어니와 匹夫 奪志也니라 <論語, 子罕第九>  
공자가 말하였다. “삼군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14 子曰 才不才 亦各言其子也 鯉也死어늘 有棺而無椁호니 吾不徒行하여 以爲之椁 以吾從大夫之後 徒行也일새니라 <論語, 先進第十一>  
공자가 말하였다. “재주가 있거나 재주가 있지 않거나 또한 각각 그 자식이라고 말한다. 리가 죽었을 때 관은 있으나 덧널은 없었으니 내가 도보로 걸으면서 그것으로 덧널을 만들지 못한 것은, 내가 대부의 뒤를 따르기에, 한갓 걸어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15 所謂大臣者 以道事君하다가 則止하나니 <論語, 先進第十一>  
이른바 대신은 도로 임금을 섬기다가 불가하면 그치는 것이다.
16 定公 問 一言而可以興邦이라하니 有諸잇가 孔子對曰 言以若是其幾也어니와 <論語, 子路第十三>  
정공이 물었다. “말을 한 번 해서 그것으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 하니, 그런 일이 있는가?”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말로 이처럼 그 (효과를) 기약할 수 없다.
17 曰 一言而喪邦이라하니 有諸잇가 孔子對曰 言以若是其幾也어니와 人之言曰 予無樂乎爲君이요 唯其言而莫予違也라하나니 <論語, 子路第十三>  
(정공이) 말하였다. “하나의 말을 하여 나라를 잃는다고 하니 (그런 것이) 있는가?”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말을 이처럼 그 (효과를) 기약할 수 없다. 남의 말에 나는 임금 노릇 하는 것에 즐거움이 없고, (즐거움은) 오직 그 말을 하면 나를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18 樊遲問仁한대 子曰 居處恭하며 執事敬하며 與人忠 雖之夷狄이라도 棄也니라 <論語, 子路第十三>  
번지가 인을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거처할 때 공손하며, 일을 집행할 때 공경하며, 남과 함께할 때 마음을 다하는 것을, 비록 이적에 가더라도 버릴 수 없다.”
19 子曰 南人 有言曰 人而無恒이면 以作巫醫라하니 善夫 <論語, 子路第十三>  
공자가 말하였다. “남쪽 사람에게 전하는 말에 이르길 ‘사람이 만약 항심이 없으면 무당이나 의원이 되는 것이 불가하다.’ 〈하니〉 〈그 말이〉 훌륭하구나!”
20 子曰 孟公綽 爲趙魏老則優어니와 以爲滕薛大夫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맹공작이 조나라와 위나라의 가노가 되는 것은 충분하지만 등나라와 설나라의 대부가 될 수는 없다.”
21 之三子하여하신대 라하여늘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세 사람에게 가서 고하였는데 할 수 없다고 하니,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대부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22 子路宿於石門이러니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로라 曰 是知其而爲之者與 <論語, 憲問第十四>  
자로가 석문에서 유숙하였는데, 신문이 말하였다. “어디에서 왔는가?“ 자로가 말하였다. “공씨에게서 왔다.” (신문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그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하는 사람인가?”
23 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이면 失人이요 與言而與之言이면 失言이니 知者 不失人하며 亦不失言이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공자가 말하였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 그와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그와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 않고 또한 말을 잃지 않는다.”
24 子曰 君子 小知而可大受也 小人 大受而可小知也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작은 것으로 알 수 없으나 큰 것을 받을 수 있고, 소인은 큰 것을 받을 수 없으나 작은 것으로 알 수 있다.”
25 謂孔子曰 來하라 予與爾言호리라 曰 懷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하다 好從事而亟失時 可謂知乎하다 日月 逝矣 歲不我與니라 孔子曰 諾 吾將仕矣로리라 <論語, 陽貨第十七>  
〈양화가〉 공자에게 일러 말하였다. “이리 오십시오. 내가 당신과 말하렵니다.” 〈양화가〉 말하였다. “그 보물을 품고서 그 나라를 헤매는 것이 어질다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일을 좇기를 좋아하면서도 자주 때를 잃는 것이 지혜롭다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양화가 말하였다.〉 “해와 달이 흘러가니,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장차 벼슬하겠습니다.”
26 楚狂接輿 歌而過孔子曰 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 이어니와 來者 猶可追 已而已而어다 今之從政者 殆而니라 <論語, 微子第十八>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가 노래하며 공자를 지나가며 말하였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지난 것은 간할 수 없거니와 올 것을 오히려 따를 수 있다. 그만두자! 그만두자! 지금의 정사에 종사하는 사람은 위태롭구나!”
27 子路行하여 以告한대 夫子憮然曰 鳥獸 與同群이니 吾非斯人之徒 而誰與리오 天下有道 丘不與易也니라 <論語, 微子第十八>  
자로가 돌아가 그 말을 고하자, 부자가 실망하며 말하였다. “새와 짐승은 더불어 함께 무리 지을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의 무리와 함께하지 않고서,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더불어 바꾸지 않을 것이다.”
28 子路曰 不仕無義하니 長幼之節 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리오 欲潔其身而亂大倫이로다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시니라 <論語, 微子第十八>  
자로가 말하였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가 없으니, 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다. 군신의 의를 어찌하여 (그것을) 폐하겠는가? 그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여 큰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군자가 벼슬함은 그 의를 행하는 것이다. 도가 행해지지 않음은 이미 (그것을) 알고있다.”
29 我則異於是하여 無可無호라 <論語, 微子第十八>  
나는 곧 이것과 다르니,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
30 子夏之門人 問交於子張한대 子張曰 子夏云何 對曰 子夏曰 可者 與之하고 拒之라하더이다 子張曰 異乎吾所聞이로다 君子 尊賢而容衆하며 嘉善而矜不能이니 我之大賢與인댄 於人 何所不容이며 我之不賢與인댄 人將拒我 如之何其拒人也리오 <論語, 子張第十九>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사귐을 묻자, 자장이 말하였다. “자하가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문인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자하가, ‘괜찮은 자는 (그와) 함께 하고 그 괜찮지 않은 자는 (그를) 거절하라.’라고 말하였다.” 자장이 말하였다. 내가 들었던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현인을 존경하고 대중을 포용하며, 잘하는 이를 아름답게 여기고 능숙하지 못하는 이를 불쌍히 여긴다. 내가 크게 어질다면 (생략) 남에 대해 누구인들 (생략) 용납하지 못할 것이며, 내가 어질지 못하다면 (생략) 남이 장차 나를 거절할 것이니 (그것을) 어찌하여 그렇게 남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31 叔孫武叔 毁仲尼어늘 子貢曰 無以爲也하라 仲尼 毁也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어니와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이니 人雖欲自絶이나 其何傷於日月乎리오 多見其不知量也로다 <論語, 子張第十九>  
숙손무숙이 중니를 헐뜯자, 자공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하지 마십시오. 중니는 헐뜯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 중에 현명한 자는 언덕〈과 같으〉니 그래도 넘을 수 있지만, 부자는 해와 달〈과 같으〉니 그것을 넘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끊고자 하 나 그 어찌 해와 달에 해치겠습니까? 다만 그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일 뿐입니다.”
32 夫子之及也 猶天之階而升也니라 <論語, 子張第十九>  
부자에 미칠 수 없는 것은 하늘에 사다리를 놓고서 오를 수 없는 것과 같다.
33 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 數罟 不入洿池 魚鼈 不可勝食也 斧斤 以時入山林이면 材木 勝用也 穀與魚鼈 勝食하며 材木 勝用이면 使民養生喪死 無憾也 養生喪死 無憾 王道之始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농사의 시기를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으면, 물고기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도끼 자귀를 때로써 산림에 들이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니, 곡식과 물고기,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으로 하여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이를 초상 치름에 서운함이 없게 함이니, 산 이를 봉양하고 죽은 이를 초상 치름에 서운함이 없는 것이 왕도의 시작입니다.
34 鄒與魯鬨이러니 穆公 問曰 吾有司死者 三十三人이로되 而民 莫之死也하니 誅之則勝誅 不誅則疾視其長上之死而不救하니 如之何則可也잇고 <孟子, 梁惠王下>  
추(鄒)나라가 노(魯)나라와 싸우자, 목공(穆公)이 물어 말하였다. “나의 유사(有司) 중에 죽은 자가 삼십 삽인인데, 백성은 죽은 사람이 없으니, 그들을 죽인다면 이루 다 죽일 수 없고 죽이지 않는다면 그 윗사람의 죽음을 곁눈질하면서도 구원하지 않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35 滕文公 問曰 滕 小國也 竭力以事大國이라도 則不得免焉이로소니 如之何則可잇고 孟子對曰 昔者 大王 居邠하실새 狄人 侵之어늘 事之以皮幣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犬馬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珠玉이라도 不得免焉하여 乃屬其耆老而告之曰 狄人之所欲者 吾土地也 吾聞之也호니 君子 不以其所以養人者 害人이라하니 二三子 何患乎無君이리오 我將去之호리라하시고 去邠하시고 踰梁山하사 邑于岐山之下하여 居焉하신대 邠人曰 仁人也 失也라하고 從之者如歸市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물어 말하였다. “등은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기더라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태왕(太王)이 빈 땅에 살 적에 적인(狄人)이 그곳을 침략하자, 가죽과 비단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개와 말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주옥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 기로(耆老)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고하여 말하길, ‘적인이 원하는 것은 나의 토지이다. 내 이에 관하여 들으니, 「군자는 그 사람을 기르는 것 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니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을까를 근심하는가? 나는 장차 빈 땅을 떠나겠소.’ 하고 빈 땅을 떠나 양산(耆老)을 넘어 기산(岐山)의 아래에 도읍을 정하여 그곳에 거주하셨습니다. 빈땅 사람들이 말하길, ‘어진 사람이다. 잃어서는 안된다.’ 하고 태왕을 따르는 자가 마치 저자로 모이는 듯 〈많았습니다〉.
36 曰 豈謂是與리오 曾子曰 晉楚之富 及也 彼以其富어든 我以吾仁이요 彼以其爵이어든 我以吾義 吾何慊乎哉리오하시니 夫豈不義 而曾子言之시리오 是或一道也니라 天下 有達尊이니 爵一齒一德一이니 朝廷 莫如爵이요 鄕黨 莫如齒 輔世長民 莫如德이니 惡得有其一하여 以慢其二哉리오 <孟子, 公孫丑下>  
〈맹자가〉 말하였다. “어찌 이것을 말한 것이겠습니까? 증자가 말하길,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부유함은 미칠 수 없으나 저들이 자기의 부를 쓰면 나는 나의 인을 쓰고 저들이 자기의 벼슬을 쓰면 나는 나의 의를 쓸 것이니, 내가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하셨으니, 무릇 어찌 의롭지 않은 것인데 증자가 이렇게 말하였겠습니까? 이것도 하나의 도리입니다. 천하에서 공통으로 존중하는 것 셋이 있으니, 관작(官爵)이 하나이고 나이가 하나이고 덕(德)이 하나입니다. 조정에는 관작만 한 것이 없고, 고을에는 나이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에는 덕만 한 것이 없으니, 어찌 그 하나를 소유하고서 그 둘을 〈가진 사람을〉 업신여길 수 있겠습니까?
37 湯之於伊伊 桓公之於管仲 則不敢召 管仲 且猶하니 而況不爲管仲者乎 <孟子, 公孫丑下>  
탕왕이 이윤에게 환공이 관중에게는 감히 부르지 못하였습니다. 관중도 오히려 부를 수 없었는데 하물며 관중을 본받지 않는 사람이겠습니까?
38 不得이란 以爲悅이며 無財 以爲悅이니 得之爲有財하여는 古之人 皆用之하니 吾何爲獨不然이리오 <孟子, 公孫丑下>  
〈법제에〉 할 수 없는 것이면 그 때문에 기뻐할 수 없으며, 〈마련할〉 재력이 없으면 그 때문에 기뻐할 수 없네. 〈법제에〉 관곽을 할 수 있고 재력도 있으면 옛날의 사람이 모두 관곽을 썼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홀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39 就見孟子曰 前日 願見而이라가 得侍하여는 同朝甚喜러니 今又棄寡人而歸하시니 不識케이다 可以繼此而得見乎잇가 對曰 不敢請耳언정 固所願也니이다 <孟子, 公孫丑下>  
왕이 맹자를 찾아가 말하였다. “전날에 만나길 원해도 할 수 없다가, 모실 수 있어서 조정에 함께하는 자들이 매우 기뻤습니다.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니 알지 못하겠으나, 이번을 이어서 만날 기회를 얻을수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감히 청하지 못할 뿐이지 진실로 바라는 바입니다.”
40 孟子去齊하실새 尹士語人曰 不識王之以爲湯武 則是不明也 識其 然且至 則是干澤也 千里而見王하여 不遇故호되 三宿而後 出晝하니 是何濡滯也 士則玆不悅하노라 <孟子, 公孫丑下>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날 적에 윤사(尹士)가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맹자가 우리〉 임금께서 탕왕과 무왕이 될 수 없음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것은 〈맹자가〉 현명하지 못한 것이고, 왕이 될 수 없음을 알았지만 불구하고 왔다면 이는 〈왕의〉 은택을 구한 것이다. 천 리를 〈찾아와〉서 왕을 알현하고 뜻이 맞지 않은 까닭에 떠나가되 사흘을 유숙한 뒤에 주(晝) 땅에서 나갔으니, 어째서 이리도 지체하였는가? 나(윤사)는 이것이 불쾌하다.”
41 謂然友曰 吾他日 未嘗學問이요 好馳馬試劍하더니 今也 父兄百官 不我足也하니 恐其不能盡於大事하노니 子爲我問孟子하라 然友復之鄒하여 問孟子한대 孟子曰 然하다 以他求者也 孔子曰 君薨커시든 聽於冢宰하나니 歠粥하고 面深墨하여 卽位而哭이어든 百官有司 莫敢不哀 先之也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尙之風이면 必偃이라하시니 是在世子하니라 <孟子, 滕文公上>  
〈세자가〉 연우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전에 일찍이 배우지 않고, 말을 달리고 검술 익히기를 좋아하였는데, 지금은 종친과 백관이 나에게 만족하지 않으니, 그 대사를 완수할 수 없을까 염려되니, 선생께서 저를 위해 맹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연우가 다시 추(鄒) 땅에 가서 맹자에게 물었는데,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다른 것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죽으면 총재를 따른다.’고 하셨으니, 〈세자가〉 죽을 먹고 얼굴이 심하게 어두워져 자리에 나아가서 곡하면, 백관과 유사가 감히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은 〈세자가〉 이 일을 솔선해서입니다.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이 반드시 그보다 더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공자께서〉 ‘군자의 덕(德)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 하였으니, 이번 일은 세자에게 달려있습니다.”
42 孟子曰 民事 緩也 詩云 晝爾于茅 宵爾索綯하여 亟其乘屋이오사 其始播百穀이라하니이다 <孟子, 滕文公上>  
맹자가 말하였다. “농사일은 소홀할 수 없습니다. 《시경》 〈칠월(七月)〉에 이르길 ‘낮에는 띠풀을 가져오고 저녁에는 새끼를 꼬아서 서둘러 그 지붕에 올려야 그제야 비로소 온갖 곡식을 파종한다.’하였습니다.
43 以粟易械器者 不爲厲陶冶 陶冶亦以其械器易粟者 豈爲厲農夫哉리오 且許子 何不爲陶冶하여 舍皆取諸其宮中而用之하고 何爲紛紛然與百工交易 何許子之不憚煩 曰 百工之事耕且爲也니라 <孟子, 滕文公上>  
“곡식으로 기구와 바꾸는 것이 도공과 대장장이를 해침이 되지 않으니, 도공과 대장장이 또한 그 기구로 곡식을 바꾸는 것이 어찌 농부를 해침이 되겠는가? 게다가 허자는 어찌 도공과 대장장이가 되어 다만 모두 자기 집 안에서 기구를 구해서 쓰지 않는가? 어찌하여 번거롭게 온갖 장인과 교역하는가? 어찌 허자는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가?” 〈진상이〉 말하였다. “백공의 일은 진실로 농사지으며 함께 하는 것이 불가한 것입니다.”
44 昔者 孔子沒커시늘 三年之外 門人 治任將歸할새 入揖於子貢하고 相嚮而哭하여 皆失聲然後어늘 子貢하여 築室於場하여 獨居三年然後하니라 他日 子夏子張子游 以有若似聖人이라하여 欲以所事孔子 事之하여 彊曾子한대 曾子曰 하니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尙已라하시니라 <孟子, 滕文公上>  
옛날에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심상(心喪)〉 3년을 지내고 문인들이 짐을 꾸려 장차 돌아갈 적에 자공(子貢)에게 들어가서 읍하고 서로 마주 보고 곡하여 모두 목이 쉰 뒤에 돌아갔네. 자공은 〈묘소로〉 돌아와서 〈무덤 가〉 평지에 집을 짓고 홀로 3년을 머무른 뒤에 돌아갔다네. 다른 날 자하(子夏)와 자장(子張)과 자유(子游)는 유약(有若)이 성인(공자)과 비슷하다 여겨서 공자를 섬기던 방법으로 유약을 섬기고자 하여 증자(曾子)에게 강요하자, 증자가 말하길 ‘안 됩니다. 〈공자의 덕(德)은〉 강수와 한수로 (생략)씻고, 가을볕으로 (생략)말려서, 희고 깨끗하여! 더할 수 없습니다.’ 하였네.
45 昔者 趙簡子使王良으로 與嬖奚乘한대 終日而不獲一禽하고 嬖奚反命曰 天下之賤工也러이다 或以告王良한대 良曰 請復之호리라 彊而後라하여늘 一朝而獲十禽하고 嬖奚反命曰 天下之良工也러이다 簡子曰 我使掌與女乘호리라하고 謂王良한대 曰 吾爲之範我馳驅호니 終日不獲一하고 爲之詭遇호니 一朝而獲十하니 詩云 不失其馳어늘 舍矢如破라하니 不貫與小人乘호니 請辭라하니라 <孟子, 滕文公下>  
옛날에 조간자(趙簡子)가 왕양에게 총애하는 신하인 해(奚)를 위하여 수레를 몰게 하였는데, 〈해는〉 하루를 다하도록 짐승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네. 총신 해가 보고하기를 ‘〈왕양은〉 천하의 쓸모없는 〈수레 몰이〉 솜씨입니다.’ 하였다네. 혹자가 이 일을 왕양에게 알리자, 왕양이 〈간자에게〉 말하길 ‘수레 몰이를 다시 하겠습니다.’ 하였네. 〈간자가 해에게〉 강요한 뒤에 〈해가〉 승낙하였는데, 〈이번에는〉 하루아침에 짐승 열 마리를 잡았네. 총신 해가 보고하기를 ‘천하의 훌륭한 〈수레 몰이〉 솜씨입니다.’ 하였네. 〈이에〉 간자가 말하길 ‘내가 너(해)를 위해 〈왕양에게〉 수레 모는 일을 담당하게 하겠다.’ 하고는 왕양에게 〈해의 수레몰이를 담당하도록〉 지시하였는데, 왕량은 불가하다며 말하길 ‘제가 그(해)를 위하여 저의 수레 모는 일을 규범대로 했더니 하루를 다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고, 그를 위하여 〈짐승과〉 속임수로 마주치게 했더니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았습니다. 《시경》 〈거공(車攻)〉에 이르길, 「〈운전수는〉 올바른 수레 모는 방법을 잃지 않고, 〈사수는〉 화살을 쏠 때마다 깨트리듯 하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소인(小人)을 위하여 수레 모는 일은 익숙하지 않으니 사양하겠습니다.’ 하였다네.
46 彭更 問曰 後車數十乘 從者數百人으로 以傳食於諸侯 不以泰乎잇가 孟子曰 非其道인댄 則一簞食라도 受於人이어니와 如其道인댄 則舜受堯之天下하사되 不以爲泰하시니 子以爲泰乎 <孟子, 滕文公下>  
팽경(彭更)이 물어 말하였다. “뒤따르는 수레 수십 대와 따르는 사람 수백 명으로 제후에게 음식을 접대 받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알맞은 도가 아니라면 한 그릇의 밥이라도 남에게 받을 수 없지만, 만일 알맞은 도라면 순(舜)이 요(堯)임금의 천하를 받되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자네는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는가?”
47 曰 否 士無事而食 니이다 <孟子, 滕文公下>  
〈팽경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선비가 일이 없으면서 먹는 것이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48 孟子謂戴不勝曰 子欲子之王之善與 我明告子호리라 有楚大夫於此하니 欲其子之齊語也인댄 則使齊人傅諸 使楚人傅諸 曰 使齊人傅之니이다 曰 一齊人 傅之어든 衆楚人 咻之 雖日撻而求其齊也라도 得矣어니와 引而置之莊嶽之間數年이면 雖日撻而求其楚라도得矣리라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송(宋)의 신하〉 대불승(戴不勝)에게 일러 말하였다. “그대는 그대의 임금이 선(善)해지기를 바라십니까? 제가 분명하게 그대에게 말하겠습니다. 초(楚)나라 대부가 여기에 있는데, 자기 자식이 제나라 말을 〈하기를〉 바란다면, 제나라 사람에게 가르치게 하겠습니까? 초나라 사람에게 가르치게 하겠습니까?” 〈대불승이〉 말하였다. “제나라 사람에게 자식을 가르치게 하겠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한 명의 제나라 사람이 그를 가르치고, 여러 초나라 사람이 그에게 떠든다면 비록 날마다 때려서 그 제나라 말을 요구하더라도, 〈제나라 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끌어다가 〈제나라의 거리인〉 장악(莊嶽)의 사이에 몇 해를 둔다면, 비록 날마다 때려서 그 초나라 말을 요구하더라도 또한 〈초나라 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49 今有仁心仁聞이로되 而民 不被其澤하여 法於後世者 不行先王之道也일새니라 <孟子, 離婁上>  
지금 어진 마음[仁心]과 어진 소문[仁聞]이 있는데도, 백성이 그 은택을 입지 못하며, 후세에 본보기가 될 수 없는 것은 선왕의 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0 聖人 旣竭目力焉하시고 繼之以規矩準繩하시니 以爲方員平直 勝用也 旣竭耳力焉하시고 繼之以六律하시니 正五音 勝用也 旣竭心思焉하시고 繼之以不忍人之政하시니 而仁覆天下矣시니라 <孟子, 離婁上>  
성인이 이미 시력을 다 쓰고 그림쇠와 곱자와 수준기와 먹줄로 시력을 계승시키니, 네모와 원, 평평한 것과 곧은 것을 만드는 일에 이루 다 쓸 수 없었으며, 이미 청력을 다 쓰고 육률(六律)로 청력을 계승시키니, 오음(五音)을 바로잡는 데 이루 다 쓸 수 없었으며, 이미 사고력을 다 쓰고 남에게 차마하지 못하는 정사로 사고력을 계승시키니, 인(仁)이 천하에 두루 미쳤다.
51 詩云 商之孫子 其麗不億이언마는 上帝旣命이라 侯于周服이로다 侯服于周하니 天命靡常이라 殷士膚敏 祼將于京이라하여늘 孔子曰 仁爲衆也 夫國君 好仁이면 天下無敵이라하시니라 <孟子, 離婁上>  
《시경》 〈문왕(文王)〉에 이르길, ‘상(商)나라의 자손이 그 수가 수 억에 그치지 않았지만, 상제가 이미 명했는지라 이에 주나라에 복종하도다. 이에 주나라에 복종하니 천명이 일정하지 않도다. 은(殷)나라 선비 가운데 아름답고 민첩한 이들이 도성에서 강신제를 도왔다.’ 하였는데, 공자께서 말하길, ‘어진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으로 대적할 수 없으니, 무릇 나라의 군주가 인을 좋아하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52 太甲曰 天作孼 猶可違어니와 自作孼 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孟子, 離婁上>  
《서경》 〈태갑(太甲)〉에 이르길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생존할 수 없다.’ 하니, 이것을 이른다.”
53 今天下之君 有好仁者 則諸侯皆爲之敺矣리니 雖欲無王이나 得已니라 <孟子, 離婁上>  
지금 천하의 임금 중에 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후가 모두 백성을 위하여 몰아줄 것이니, 비록 왕 노릇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54 孟子曰 自暴者 與有言也 自棄者 與有爲也 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니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스스로 해치는 사람은 함께 말을 할 수 없고, 스스로 버리는 사람은 함께 일을 할 수 없으니, 말을 함에 예의를 비방하는 것 그것을 자포(自暴)라 이르고, 나 자신은 인에 머무르거나 의를 따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자기(自棄)라 이른다.
55 孟子曰 居下位而不獲於上이면得而治也리라 獲於上 有道하니 不信於友 弗獲於上矣리라 信於友有道하니 事親弗悅이면 弗信於友矣리라 悅親 有道하니 反身不誠이면 不悅於親矣리라 誠身 有道하니 不明乎善이면 不誠其身矣리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얻어서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것에 길이 있으니 친구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벗에게 미더운 길이 있으니 부모를 섬김에 기쁘게 하지 못하면 친구에게 미덥지 못할 것이다. 부모를 기쁘게 함에 길이 있으니 자신을 되돌아봐서 성실하지 못하면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성실하게 함에 길이 있으니 선에 밝지 않으면 그 자신을 성실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56 孟子曰 天下大悅而將歸己어늘 視天下悅而歸己호되 猶草芥也 惟舜 爲然하시니 不得乎親이면 以爲人이요 不順乎親이면 以爲子러시다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의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장차 자기에게 귀의하는데도, 천하가 기뻐하면서 자기에게 귀의하는 것을 보고도 초개를 〈보는 것과〉 같이한 것은 오직 순임금만이 그렇게 하였으니, 어버이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로써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어버이를 순응하게 하지 못하면 그로써 자식이라 할 수 없다.
57 鄭人 使子濯孺子 侵衛어늘 衛使庾公之斯 追之러니 子濯孺子曰 今日 我疾作이라 不可以執弓이로소니 吾死矣夫인저하고 問其僕曰 追我者 誰也 其僕曰 庾公之斯也로소이다 曰 吾生矣로다 其僕曰 庾公之斯 衛之善射者也어늘 夫子曰吾生 何謂也잇고 曰 庾公之斯 學射於尹公之他하고 尹公之他 學射於我하니 夫尹公之他 端人也 其取友必端矣리라 庾公之斯至하여 曰 夫子 何爲不執弓 曰 今日 我疾作이라 以執弓이로라 曰 小人 學射於尹公之他하고 尹公之他 學射於夫子하니 我不忍以夫子之道 反害夫子하노라 雖然이나 今日之事 君事也 我不敢廢라하고 抽矢扣輪하여 去其金하고 發乘矢而後하니라 <孟子, 離婁下>  
정(鄭)나라 사람이 자탁유자(子濯孺子)로 하여금 위(衛)나라를 침략하게 하였는데, 위나라는 유공지사(庾公之斯)로 하여금 자탁유자를 추격하게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길, ‘오늘 나는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 없으니, 나는 죽겠구나.’ 하고, 자기 마부에게 묻기를 ‘나를 추격하는 자는 누구인가?’ 하였고, 그 마부가 말하길 ‘유공지사입니다.’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길, ‘나는 살것이다.’ 하였고, 그 마부가 말하길, ‘유공지사는 위나라의 활쏘기를 잘하는 사람인데, 부자가 「나는 살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길, ‘유공지사는 활쏘기를 윤공지타(尹公之他)에게 배웠고 윤공지타는 활쏘기를 나에게 배웠는데, 저 윤공지타는 바른 사람이다. 그가 벗을 가려 사귐이 반드시 바를 것이다.’ 하였다. 유공지사가 이르러 말하길, ‘선생은 무엇 때문에 활을 들지 않습니까?’ 하니, 〈자탁유자가〉 말하길, ‘오늘 내가 병이 나 서 활을 들을 수 없소.’ 하였다. 〈유공지사가〉 말하길, ‘소인은 활쏘기를 윤공지타에게 배웠고 윤공지타는 활쏘기를 선생(자탁유자)에게 배웠으니, 제가 선생의 기술로써 도리어 선생을 해치는 짓을 차마하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오늘의 일은 나랏일이니, 제가 감히 그만두지는 못합니다.’ 하고는 화살을 뽑아 수레바퀴에 두드려서 그 화살촉을 제거하고 네 발의 화살을 발사한 뒤에 돌아갔다.”
58 曾子居武城하실새 有越寇러니 或曰 寇至하나니 盍去諸리오 曰 無寓人於我室하여 毁傷其薪木하라 寇退則曰 修我牆屋하라 我將反호리라 寇退어늘 曾子反하신대 左右曰 待先生 如此其忠且敬也어늘 寇至則先去하여 以爲民望하시고 寇退則反하시니 殆於로소이다 沈猶行曰 是 非汝所知也 沈猶有負芻之禍어늘 從先生者七十人 未有與焉이라하니라 <孟子, 離婁下>  
증자(曾子)가 무성(武城)에 살 때 월(越)나라의 약탈이 있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도적이 이르렀으니 어찌 떠나지 않습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내 집에 사람을 붙여두어 그 땔감과 나무를 훼손시키지 말라.” 도적이 물러가자 곧 〈증자가〉 말하였다. “나의 담장과 지붕을 보수하라. 나는 장차 돌아가겠다.” 도적이 물러가고 증자가 돌아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하였다. “선생을 대함이 이처럼 매우 충성하고 또 공경하였는데, 도적이 오자 곧 먼저 떠나서 백성의 본보기가 되시고, 도적이 물러가자 곧 돌아오니, 옳지 않은 일에 가깝습니다.” 심유행(沈猶行)이 말하였다. “이것은 너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심유씨 집안에 부추(負芻)의 반란이 있었는데, 선생을 따르는 자 칠십 명은 난에 함께한 자가 있지 않았다네.”
59 知虞公之諫而去之秦하니 年已七十矣 曾不知以食牛 干秦穆公之爲汚也 可謂智乎 諫而不諫하니 可謂不智乎 知虞公之將亡而先去之하니 謂不智也니라 時擧於秦하여 知穆公之可與有行也而相之하니 可謂不智乎 相秦而顯其君於天下하여 可傳於後世하니 不賢而能之乎 自鬻以成其君 鄕黨自好者 不爲 而謂賢者爲之乎 <孟子, 萬章上>  
〈백리해는〉 우공이 간언할 수 없음을 알고서 떠나 진으로 가니, 〈이때의〉 나이가 이미 칠십이었네. 일찍이 소를 먹이는 것으로써 진나라 목공에게 간언하는 것이 더러운 일이 됨을 알지 못했다면,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간언할 수 없어서 간언하지 않았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공이 망하려는 것을 알고서 먼저 그곳을 떠났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네. 당시에 진나라에 등용되어 ‘목공은 함께 행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를 도왔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를 도와서 그 임금을 천하에 드러내어 후세에 전할 수 있게 하니, 현명하지 않고서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팔아서 그 임금을 만드는 것은 시골의 스스로를 아끼는 자들도 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백리해 같은〉 현명한 자가 ‘그일을 했다’고 이르겠는가?”
60 萬章 問曰 敢問友하노이다 孟子曰 不挾長하며 不挾貴하며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以有挾也니라 <孟子, 萬章下>  
만장이 물어 말하였다. “감히 벗에 대해 묻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나이가 많음에 기대지 않고, 신분의 귀함에 기대지 않고, 형제간을 기대지 않고 벗하는 것이네. 벗이란 그 사람의 덕을 벗하는 것이니, 기대는 점이 있는 것은 안 되네.
61 曰 請無以辭卻之 以心卻之曰 其取諸民之不義也라하고 而以他辭 無受 잇가 曰 其交也以道 其接也以禮 孔子 受之矣시니라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여쭙건데, 말로써 예물을 돌려보내지 않고, 마음으로써 예물을 돌려보내며 생각하길, ‘그가 백성에게 취한 것이 의롭지 못하다.’ 하고서, 다른 말로써 받지 않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 사귐이 도를 쓰고 그 대함이 예를 쓰면, 공자께서도 예물을 받았다네.”
62 萬章曰 今有禦人於國門之外者 其交也以道 其餽也以禮 斯可受禦與잇가하니 康誥曰 殺越人于貨하여 閔不畏死 凡民 罔不譈라하니 不待敎而誅者也 [殷受夏 周受殷 所不辭也 於今爲烈] 如之何其受之리오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지금 국도 성문의 밖에서 타인에게 강도질하는 자가 있는데, 그 사귐에는 도를 쓰고 그 〈물건을〉 주고받음에는 예를 쓴다면 강도질한 것을 받아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옳지 않네. 《서경》 〈강고〉에 이르길 ‘다른 사람에게 재물을 죽여서 강탈하여 억세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온 백성이 원망하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니, 이는 가르칠 것을 기다리지 않고서 죽일 자라네. 빼앗은 물건을 받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63 且君之欲見之也 何爲也哉 曰 爲其多聞也 爲其賢也니이다 曰 爲其多聞也인댄 則天子 不召師 而況諸侯乎 爲其賢也인댄 則吾未聞欲見賢而召之也로라 繆公 亟見於子思하고 曰 古 千乘之國 以友士하니 何如하니잇고 子思不悅曰 古之人 有言曰 事之云乎언정 豈曰友之云乎리오하시니 子思之不悅也 豈不曰 以位則子 君也 臣也 何敢與君友也 以德則子 事我者也 奚可以與我友리오 千乘之君 求與之友로되得也 而況可召與 <孟子, 萬章下>  
또 임금이 그를 만나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만장이〉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며, 그가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라면 천자도 스승을 부르지 않는데, 하물며 제후가 〈그를 부르〉겠는가? 그가 현명하기 때문이라면 나는 어진이를 만나고자 하여 어진이를 부르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네. 목공이 자사를 자주 만나서 말하길, ‘옛날에 천승의 나라를 〈가진 군주〉로서 선비와 벗하였으니, 어떠합니까?’ 하자, 자사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길, ‘옛사람이 말에 이르길, 「그를 섬겼다고 말할지언정 어찌 그와 벗하였다 말하겠습니까?」’ 하였으니, 자사가 기뻐하지 않은 것은 어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위로는 그대는 임금이고 나는 신하이니, 어찌 감히 임금과 벗하겠습니까? 덕으로는 그대는 나를 섬기는 자이니, 어찌 나와 벗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천승의 임금도 자사와 벗하기를 구해서 얻을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함부로〉 부를 수 있겠는가?
64 孟子曰 魚 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언마는 二者 得兼인댄 舍魚而取熊掌者也로리라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언마는 二者 得兼인댄 舍生而取義者也로리라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할 것이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
65 鄕爲身 死而不受라가 今爲宮室之美하여 爲之하며 鄕爲身 死而不受라가 今爲妻妾之奉하여 爲之하며 鄕爲身 死而不受라가 今爲所識窮乏者得我而爲之하나니 是亦以已乎 此之謂失其本心이니라 <孟子, 告子上>  
전에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집[宮室]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그 일을 하며, 전에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처첩(妻妾)의 봉양을 위하여 그 일을 하며, 전에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내가〉 알던 바 궁핍한 사람이 나에게 고마워하게 하기 위하여 그 일을 하니, 이 또한 그만둘 수 없겠는가? 이것을 ‘그 본래 마음을 잃었다.’ 이른다.”
66 曰 凱風 親之過 小者也 小弁 親之過 大者也 親之過 大而不怨이면 愈疏也 親之過 小而怨이면 磯也 愈疏 不孝也 亦不孝也니라 <孟子, 告子下>  
〈맹자가〉 말하였다. “〈개풍〉은 어버이의 과실이 작은 것이고 〈소반〉은 어버이의 과실이 큰 것이니, 어버이의 과실이 큰데 원망하지 않으면 이는 더욱 소원한 것이고 어버이의 과실이 작은데 원망하면 이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니, 더욱 소원해지는 것도 불효이고 거스를 수 없는 것도 불효라네.
67 曰 軻也 請無問其詳이요 願聞其指하노니 說之將如何 曰 我將言其不利也호리라 曰 先生之志則大矣어니와 先生之號則하다 <孟子, 告子下>  
〈맹자가〉 말하였다. “저는 그 자세한 것을 묻지 않으려 하고 그 취지를 듣기를 바라오니, 설득을 장차 어떻게 하려 하십니까?” 〈송경(宋牼)이〉 말하였다. “내가 장차 그 일의 이롭지 않음을 말하려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선생의 뜻은 크지만, 선생의 명분은 옳지 않습니다.
68 一戰勝齊하여 遂有南陽이라도 然且하니라 <孟子, 告子下>  
〈만약〉 한 번 싸워서 제나라를 이겨서 마침내 남양(南陽) 땅을 차지하더라도 그래도 옳지 않다.”
69 萬室之國 一人 陶則可乎하니 器不足用也니이다 <孟子, 告子下>  
만 가구가 〈사는〉 나라에서 한 사람이 질그릇을 만들면 되겠소?” 〈백규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그릇이 쓰기에 부족합니다.”
70 陶以寡라도以爲國이온 況無君子乎 <孟子, 告子下>  
질그릇이 너무 적어도 때문에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관리가 없어서는?
71 孟子曰 人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니라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되니,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72 食之以時하며 用之以禮勝用也니라 <孟子, 盡心上>  
먹기를 때로써 하고 쓰기를 예로써 하면, 재물을 이루 다 쓸 수 없다.
73 恭敬而無實이면 君子虛拘니라 <孟子, 盡心上>  
공경하되 〈공경의〉 실체가 없으면 군자는 헛되게 얽매일 수 없다.”
74 曰 是欲終之而得也 雖加一日이나 愈於已하니 謂夫莫之禁而弗爲者也니라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이것은 상기를 마치고자 하나 얻을 수 없는 것이니, 비록 하루를 더하더라도 그만두는 것보다 낫다네. 무릇 상기를 금하지 않았으나 지키지 않는 경우를 이른 것이네.”
75 公孫丑曰 道則高矣美矣 宜若登天然이라及也 何不使彼 爲可幾及而日孶孶也잇고 <孟子, 盡心上>  
공손추가 말하였다. “도는 높고 아름답지만 아마도 마치 하늘에 오르는 듯하여 미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찌 저들에게 거의 미칠 수 있다 여겨서 날마다 부지런히 힘쓰게 하지 않습니까?”
76 齊饑어늘 陳臻曰 國人 皆以夫子 將復爲發棠이라하니로소이다 <孟子, 盡心下>  
제(齊)나라에 흉년이 들자, 진진(陳臻)이 말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선생으로 인하여 ‘장차 다시 당읍(棠邑)의 창고를 열게 할 것이다.’ 하니, 아마 다시 할 수 없을 듯합니다.”
77 聖而知之之謂神이니 <孟子, 盡心下>  
성(聖)스러워서 (그것을)알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이르니,
78 人能充無欲害人之心이면 而仁 勝用也 人能充無穿踰之心이면 而義 勝用也니라 <孟子, 盡心下>  
사람이 남을 해치고자 하지 않는 마음을 확충할 수 있다면 인(仁)을 이루 다 쓸 수 없고, 사람들이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확충할 수 있다면 의(義)를 이루 다 쓸 수 없다.
79 孟子曰 孔子不得中道而與之인댄 必也狂獧乎인저 狂者 進取 獧者 有所不爲也라하시니 孔子豈不欲中道哉시리오마는 必得이라 思其次也시니라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공자가 〈이르길〉 ‘중도(中道)의 선비를 얻어서 그 선비와 함께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광견한 자일 것이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니, 공자가 어찌 중도의 선비를 바라지 않았겠는가마는, 반드시 얻을 수는 없었네. 그러므로 그 다음을 생각하였다네.
80 狂者이어든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하시니 是獧也 是又其次也니라 <孟子, 盡心下>  
광자(狂者)를 또 얻을 수 없다면 깨끗하지 않은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선비를 얻어서 그와 함께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견(獧)’이니, 이는 또한 그다음인 것이네.
81 曰 非之無擧也하며 刺之無刺也하고 同乎流俗하며 合乎汚世하여 居之似忠信하며 行之似廉潔하여 衆皆悅之어든 自以爲是而與入堯舜之道 曰 德之賊也라하시니라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향원은〉 비난에 근거가 없으며 풍자에 풍자할 것이 없어서, 유속(流俗)과 동화하며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머무를 때는 진실하고 미더운 것 같으며 행동할 때는 청렴하고 결백한 것 같아서,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에 들어 갈 수 없다네. 그러므로 ‘덕의 적’이라 말한 것이라네.
82 道也者 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睹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中庸, 中庸>  
도(道)라는 것은 잠시[須臾]도 벗어날 수 없으니, 벗어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자기가 보지 못하는 것에 경계하여 삼가며, 자기가 듣지 못하는 것에 두려워한다.
83 子曰 天下國家 可均也 爵祿 可辭也 白刃 可蹈也로되 中庸 能也니라 <中庸, 中庸>  
공자가 말했다. “천하와 국가를 균평히 할 수 있으며 벼슬과 녹을 사양할 수 있으며 흰 칼날을 밟을 수 있으나 중용은 할 수 없다.”
84 子曰 道不遠人하니 人之爲道而遠人이면 以爲道니라 <中庸, 中庸>  
공자가 말했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으니 사람이 도를 행하면서도 사람을 멀리하면 그것을 도라고 할 수 없다.”
85 在下位하여 不獲乎上이면得而治矣리라 <中庸, 中庸>  
아래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얻어서 다스릴 수 없다.
86 詩云 潛雖伏矣 亦孔之昭라하니 君子 內省不疚하여 無惡於志하나니 君子之所及者 其唯人之所不見乎인저 <中庸, 中庸>  
《시경》에 이르길, ‘잠긴 것이 비록 엎드려 있으나, 역시 매우 (생략) 밝다.’ 하니, 그러므로 군자는 안으로 살펴 병폐가 없어서 마음에 부끄럼이 없으니, 군자를 따를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오직 남들이 보지 못하는 바일 것이다.
87 今其全書이나 而雜出於傳記者亦多언마는 讀者往往 直以古今異宜 而莫之行하나니 殊不知其無古今之異者 固未始行也니라 <小學, 小學書題>  
지금 그 온전한 책을 비록 볼 수 없으나, 전기에 섞여 나온 것이 또한 많은데도, 읽는 자가 종종 단지 예와 지금의 마땅함이 다르다 여기고서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니, 그 예나 지금의 다름이 없는 것이 본디 처음부터 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님을 전혀 알지 못해서이다.
88 四十 始仕하여 方物出謀發慮하여 道合則服從하고 則去니라 <小學, 立敎第一>  
마흔 살에 비로소 벼슬하여, 사물에 대하여 계책을 내고 생각을 내어서 도에 부합하면 복종하고, 가능하지 않으면 떠난다.
89 樂記曰 禮樂 斯須去身이니라 <小學, 立敎第一>  
《악기》에 말하였다. 예와 음악은 잠시라도 몸을 떠날 수 없다.
90 大臣 以道事君하다가 則止니라 <小學, 明倫第二>  
대신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할 수 없으면 그만 둔다.
91 子貢 問友한대 孔子曰 忠告而善道之하되 則止하여 毋自辱焉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자공이 벗을 사귐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진심을 다하여 말해주고 선으로써 (그를) 인도하되, 할 수 없으면 그만두어서 스스로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92 孟子曰 不挾長하며 不挾貴하며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以有挾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맹자가 말하였다. 나이 많음을 믿지 말며, 존귀함을 믿지 말며, 형제를 믿지 말고 벗해야 하니, 벗이란 그 덕을 벗하는 것이니, 세 가지로써 믿는 것을 두어 (벗해서는) 안 된다.
93 當不義 則子以弗爭於父以弗爭於君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그러므로 의롭지 않음을 당하면 자식은 그로써 아버지에게 조언드리지 않을 수 없고, 신하는 그로써 임금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다.
94 人之生也 百歲之中 有疾病焉하며 有老幼焉하니 君子思其復者而先施焉하나니 親戚 旣沒이면 雖欲孝 誰爲孝 年旣耆艾 雖欲悌 誰爲悌리오 孝有不及하며 悌有不時라하니 其此之謂歟인저 <小學, 明倫第二>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감에, 백세의 가운데에 질병이 여기에 있으며, 노년기와 유년기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생각하여 먼저 베푸는 것이다. (생략) 친척이 이미 죽으면 비록 효도하고자 하더라도 누구를 위해 효도할 것이며, 나이가 이미 늙으면 비록 공경하고자 하더라도 누구를 위해서 공경하겠는가? 그러므로 ‘효도는 미치지 못함이 있으며, 공경은 때가 아님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이것을 말함일 것이다.
95 이며이며滿이며이니라 <小學, 敬身第三>  
오만함을 키워서는 안되며, 욕심을 방종하게 해서는 안되며, 뜻을 자만하게 해서는 안되며, 즐거움을 극도로 해서는 안된다.
96 居處恭하며 執事敬하며 與人忠 雖之夷狄이라도 棄也니라 <小學, 敬身第三>  
거처함을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함을 공경히 하며, 남과 함께함에 성실히 함을 비록 오랑캐 (땅)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된다.
97 箕子者 親戚也 紂始爲象箸어늘 箕子嘆曰 彼爲象箸하니 必爲玉杯로다 爲玉杯 則必思遠方珍怪之物而御之矣리니 輿馬宮室之漸 自此始하여 振也로다 <小學, 稽古第四>  
기자는 주왕의 친척이다. 주왕이 처음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저 사람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었으니, 반드시 옥 술잔을 만들 것이다. 옥 술잔을 만들면, 반드시 먼 곳의 진귀하고 괴이한 물건을 생각하여 (그것을) 사용할 것이니, 수레와 말과 궁실을 차츰 (사치함을) 이로부터 시작되어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98 虞芮之君 相與爭田하여 久而不平이러니 乃相謂曰 西伯 仁人也 盍往質焉이리오하고 乃相與朝周할새 入其境하니 則耕者讓畔하고 行者讓路하며 入其邑하니 男女異路하고 班白 不提挈하며 入其朝하니 士讓爲大夫하고 大夫讓爲卿이어늘 二國之君 感而相謂曰 我等 小人이라 以履君子之庭이라하고 乃相讓하여 以其所爭田으로 爲閒田而退하니 天下聞而歸之者四十餘國이러라 <小學, 稽古第四>  
우나라와 예나라의 임금이 서로 함께 토지를 다투어 오래되도록 화평하지 못했다. 이에 서로 일러 말하였다. “서백은 어진 사람이니, 어찌 찾아가서 그에게서 바로잡지 않겠는가?” 이에 서로 함께 주나라로 조회를 갔다. 그 국경에 들어가니, 밭 가는 사람은 밭두둑을 양보하고,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였으며, 그 도읍에 들어가니, 남자와 여자가 길을 달리하고, 머리가 반백인 사람은 (짐을) 들지 않았으며, 그 조정에 들어가니, 사는 대부가 되기를 사양하고, 대부는 경이 되기를 사양하였다. 두 나라의 임금이 감동하여 서로 일러 말하였다. “우리는 소인이다. 이로서 군자의 조정을 밟을 수 없다.” 이에 서로 사양하여, 그 다투던 토지를 을 한전으로 삼고서 물러가니, 천하에서 듣고 (그에게) 귀의하는 자가 사십여 나라였다.
99 衛侯在楚러니 北宮文子見令尹圍之威儀하고 言於衛侯曰令尹 其將不免이러이다 詩云 敬愼威儀 維民之則이라하니 令尹 無威儀하니 民無則焉이라 民所不則이요 以在民上하니 以終이니이다 <小學, 稽古第四>  
위후가 초나라에 있었는데, 북궁문자가 영윤인 위의 위의를 보고 위후에게 일러 말하였다. “영윤은 아마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시경에 이르길, ‘위의를 공경하고 삼가하므로, #백성의 법칙이 된다.’ 하였는데, 영윤은 위의가 없으니, 백성들이 그에게 본받을 것이 없다. 백성이 본받지 못할 바이면서 백성의 위에 있으니, 이로써 (좋게) 끝마칠 수 없을 것이다.
100 衛詩曰 威儀棣棣 選也라하니 言君臣上下父子兄弟內外大小皆有威儀也니이다 <小學, 稽古第四>  
위시에 말하였다. ‘위의가 익숙하니, 가릴 수 없다.’ 군신과 상하와 부자와 형제와 내외와 대소가 모두 위의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101 若夫立志不高 則其學 皆常人之事 語及顔孟이면 則不敢當也하여 其心 必曰 我爲孩童이어니 豈敢學顔孟哉리오하리니 此人 以語上矣니라 先生長者 見其卑下하고 豈肯與之語哉리오 先生長者 不肯與之語하면 則其所與語 皆下等人也 言不忠信 下等人也 行不篤敬 下等人也 過而不知悔 下等人也 悔而不知改 下等人也 聞下等之語하고 爲下等之事하면 譬如坐於房舍之中하여 四面 皆墻壁也 雖欲開明이나 得矣리라 <小學, 嘉言第五>  
만약 무릇 뜻을 세움이 높지 못하면 그 배움은 모두 보통 사람의 일이다. 말이 안자와 맹자에게 미치면 감히 감당하지 못하여, 그 마음에 반드시 〈다음과 같이〉 여길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이니, 어찌 감히 안자와 맹자를 배우겠는가?’ 이 사람은 그것으로 위의 것을 말해줄 수 없다. 선생과 어른이 그 비천하고 낮음을 보고 어찌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즐기겠는가? 선생과 어른이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즐기지 않으면 그가 더불어 말하는 바는 모두 낮은 등급의 사람이다. 말이 진실하고 미덥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행실이 독실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잘못하고서 뉘우칠 줄 알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뉘우치면서 고칠 줄 알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니, 낮은 등급의 말을 듣고 낮은 등급의 일을 행하면, 비유하건대 마치 방의 가운데에 앉아서 네 쪽이 모두 담벽인 것과 같으니, 비록 열어 밝게 하고자 하지만 얻을 수 없다.”
102 或所命行者어든 則和色柔聲하여 具是非利害而白之하여 待父母之許然後 改之하고 若不許라도 苟於事 無大害者어든 亦當曲從이니 若以父母之命 爲非하여 而直行己志하면 雖所執 皆是라도 猶爲不順之子 況未必是乎 <小學, 嘉言第五>  
혹 명령한 바가 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갖추어 (그것을) 말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것을) 고치고, 만약 허락하지 않더라도 만약 일에 있어 큰 해가 없는 것이면, 또한 마땅히 굽혀 따라야 한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그르다 여겨 곧바로 자기의 뜻을 행하면, 비록 집행하는 바가 모두 옳더라도 오히려 순하지 못한 자식이 되니, 하물며 반드시 옳지 않음에 있어서랴.
103 若親之故舊所喜 當極力招致하며 賓客之奉 當極力營辦하여 務以悅親爲事 計家之有無니라이나 又須使之不知其勉强勞苦 苟使見其爲而不易 則亦不安矣시리라 <小學, 嘉言第五>  
만약 어버이의 옛 친구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힘을 다하여 초청하여 이르게 하며, 손님을 받들기를 마땅히 힘을 다하여 계획하고 장만하여 힘써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것으로 일삼고 집안의 있고 없고를 따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또 응당 (그가) 자신이 힘쓰고 힘써 애쓰고 수고로운 것을 알지 않게 해야 하니, 만약 그 함에 쉽지 않음을 보게 되면, 또한 편하지 않을 것이다.”
104 古禮 雖稱二十而冠하나 然世俗之弊 猝變이니 若敦厚好古之君子 俟其子年十五以上 能通孝經論語하여 粗知禮義之方然後 冠之 斯其美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옛날의 예에 비록 20살이고서 관례를 한다고 했으나 그러나 세속의 폐단을 갑자기 바꿀 수 없으니, 만약 돈독하고 후하여 옛것을 좋아하는 군자가 그 아들의 나이가 열다섯 이상에 효경과 논어를 잘 통달하여 대략 예절과 의리의 방향을 알기를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를) 관례 하면, 이에 그 아름다울 것이다.”
105 凡居父母之喪者 大祥之前 皆未可飮酒食肉이니 若有疾이어든 暫須食飮하되 疾止어든 亦當復初니라 必若素食 不能下咽하여 久而羸憊하여 恐成疾者 可以肉汁及脯醢或肉少許 助其滋味언정 恣食珍羞盛饌及與人燕樂이니 是則雖被衰麻 其實 不行喪也니라 唯五十以上 血氣旣衰하여 必資酒肉扶養者 則不必然耳니라 <小學, 嘉言第五>  
무릇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 거하는 사람은 대상의 전에 모두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니, 만약 병이 있으면 잠시 모름지기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되, 병이 그치면 또한 마땅히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만일 고기 없는 음식이 목으로 잘 내려가지 않아서 오래되어 파리하고 여위어 병을 이룰까 염려되는 사람은 고기즙과 포와 젓갈이나 혹 고기 조금과 약간으로 그 입맛을 돋울 수 있을지언정 진귀한 음식, 성대한 음식을 마음대로 먹거나 및 남과 연회 하며 즐겨서는 안 되니, 이는 곧 비록 상복을 입었더라도 그 실제는 상례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50세 위로 혈기가 이미 쇠하여 반드시 술과 고기에 도움받아 받들어 봉양하는 사람은 곧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뿐이다.
106 胡子曰 今之儒者 移學文藝干仕進之心하여 以收其放心而美其身이면 則何古人之及哉리오 父兄 以文藝令其子弟하고 朋友以仕進相招하여 往而不返하면 則心始荒而不治하여 萬事之成 咸不逮古先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호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유학하는 사람은 문장과 재주를 배워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는 마음을 옮겨서 그것으로 그 잃어버린 마음을 거두어서 그 몸을 아름답게 하면 어찌 옛사람에게 미칠 수 없겠는가? 아버지와 형이 문장과 재주로써 그 자식과 아우에게 명령하고, 벗과 친구가 벼슬에 나아가는 것으로 서로 불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이 비로소 거칠어져서 다스려지지 않아서 모든 일의 이룸이 모두 옛날 선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107 自謂之窮神知化호되 而不足以開物成務하며 言爲無不周徧호되 實則外於倫理하며 窮深極微호되以入堯舜之道 天下之學 非淺陋固滯 則必入於此니라 <小學, 嘉言第五>  
(불교에서) 스스로 (그것을) 이르기를 ‘신묘함을 궁구하고 변화를 안다’고 하되 충분히 그것으로 인물을 개발하고 일을 이루지 못하며, ‘말과 행위가 두루 두루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되 실제는 윤리와 이치에서 벗어나며, ‘깊음을 다하고 은미함을 극진히 한다.’ 고 하되 그것으로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에 들어갈 수 없으니, 천하의 학문이 천하고 누추하며 고루하고 막힌 것이 아니면 반드시 이에 들어간다.
108 魏遼東公翟黑子 有寵於太武하더니 奉使幷州하여 受布千疋이라가 事覺이어늘 黑子謀於著作郞高允曰 主上 問我어시든 當以實告 爲當諱之 允曰 公 帷幄寵臣이니 有罪首實이면 庶或見原이니 重爲欺罔也니라 中書侍郞崔鑒公孫質曰 若首實이면이니 不如姑諱之니라 黑子怨允曰君 奈何誘人就死地오하고 入見帝하여 不以實對한대 帝怒하여 殺之하다 <小學, 善行第六>  
처음에 위나라 요동공 적흑자는 태무제에게 사랑을 받았다. 병주에 사신의 일을 받들고 가서 베 천 필을 받았다가 일이 발각되었다. 적흑자는 저작랑 고윤에게 의논하여 말하기를 “주상께서 나에게 물으시면 마땅히 진실로써 고해야 하는가? 마땅히 (그것을) 숨겨야 하겠는가?” 고윤이 말하였다. “공은 유악의 총애받는 신하이니, 죄가 있을 때 사실을 자수하면 다행히 혹 용서를 받을 수 있을 테니 속이는 일을 거듭해서는 안 됩니다.” 중서시랑 최감과 공손질이 말하였다. “만약 사실을 자수하면 죄를 예측할 수 없으니, 잠시 (그것을) 숨기는 것만 못합니다.” 흑자가 고윤을 원망하며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사람을 꾀어 죽을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가?" 하고 들어와 황제를 만나 사실로 대답하지 않았다. 황제가 노하여 (그를) 죽였다.
109 李君行先生 名潛이니 虔州人이라 入京師할새 至泗州하여 留止러니 其子弟請先往이어늘 君行 問其故한대 曰 科場하니 欲先至京師하여 貫開封戶籍하여 取應하노이다 君行 不許曰汝虔州人이어늘 而貫開封戶籍이면 欲求事君而先欺君이니 可乎 寧遲緩數年이언정 行也니라 <小學, 善行第六>  
이군행 선생은 이름이 잠이니 건주사람이다. 경사에 들어갈 적에 사주에 이르러 머물러 있었는데 그 자제가 먼저 가기를 청하였다. 군행이 그 까닭을 묻자 말하기를 과거시험이 가까워졌으니, “바라건대 먼저 경사에 이르러서 개봉부에 호적을 올려 응시하려 합니다.” 군행이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너는 건주 사람이거늘 개봉부에 호적을 올려 임금을 섬기기를 구하고자 하면서 먼저 임금을 속이니 옳은가? 차라리 몇 년을 더디고 느리게 가더라도 가서는 안 된다.”
110 晉右僕射鄧攸 永嘉末 沒于石勒하여 過泗水할새 攸以牛馬 負妻子而逃하다가 又遇賊하여 掠其牛馬하고 步走하여 擔其兒及其弟子綏러니 度不能兩全하고 乃謂其妻曰 吾弟早亡하고 唯有一息하니이라 止應自棄我兒耳로다 幸而得存하면 後當有子인저 妻泣而從之어늘 乃棄其子而去之러니 卒以無嗣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진나라 우복야 등유가 영가 말년에 석륵에게 패몰되어 사수를 지났는데, 등유는 소와 말에 아내와 아이를 업히고 도망가다가 또 만나 도적을 그 소와 말을 빼앗겨 걸어서 달아나면서 그의 아이와 및 그의 동생의 자식인 유를 업고 갔다. 둘 다 온전하게 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서 이에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우리 동생은 일찍 죽어서 오직 한 명의 자식이 있을 뿐이니, 도리상 (동생의 후사를) 끊을 수 없다. 다만 마땅히 스스로 우리 아이를 버려야 할 뿐이다. 다행하여 (우리가) 살아있다면 우리는 나중에 마땅히 자식이 있을 것이다. 아내가 울면서 (그 말을) 따랐다. 이에 그 아이를 버리고 (그를) 떠났는데 마침내 이로써 후사가 없었다.
111 常語人曰 大禹 聖人이시되 乃惜寸陰하시니 至於衆人하여는 當惜分陰이니 豈可逸遊荒醉하여 生無益於時하고 死無聞於後리오 是自棄也니라 諸參佐或以談戲廢事者어든 乃命取其酒器蒱博之具하여 悉投之于江하며 吏將則加鞭扑曰 樗蒱者 牧猪奴戲耳 老莊浮華 非先王之法言이니 行也 君子 當正其衣冠하며 攝其威儀 何有亂頭養望하여 自謂弘達耶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항상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대우는 성인인데도 이에 한 촌의 시간도 아꼈는데, 보통 사람에게 이르러서 마땅히 한 푼의 시간도 아껴야 하거늘, 어찌 편안하게 놀고 크게 취하여 살아서는 당시에 보탬이 없고, 죽어서는 후세에 알려짐이 없을 수 있는가? 이는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여러 참좌들이 혹 잡담으로 일을 폐할 때에는 이에 명을 내려 그 술그릇과 포박의 도구를 가져다가 모두 (그것을) 강에 던졌으며, 아전과 장수의 경우에는 편복을 가하며 말하기를 “저포라는 것은 돼지를 기르는 노비의 놀이일 뿐이고, 노장의 부화함은 선왕의 법언이 아니니 행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마땅히 그 의관을 바로잡으며 그 위의를 잡아야 하니, 어찌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명망을 기른다고 하여 스스로 크게 통달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112 司馬溫公 嘗言吾無過人者어니와 但平生所爲 未嘗有對人言者耳라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사마온공이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남보다 나은 점이 없다. 다만 평생 행한 것이 일찍이 남을 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지 않을 뿐이다." 하였다.
113 溫公曰 吾家本寒族이라 世以淸白相承하고 吾性 不喜華靡하여 自爲乳兒時 長者加以金銀華美之服이어든 輒羞赧棄去之하더니 年二十 忝科名하여 聞喜宴 獨不戴花하니 同年曰君賜 違也라하여늘 乃簪一花로라 平生 衣取蔽寒하고 食取充腹하며 亦不敢服垢弊하여 以矯俗干名이요 但順吾性而已로라 <小學, 善行第六>  
온공이 말하였다. “우리 집은 본래 한미한 가문이라서, 대대로 청백으로 서로 계승하였고, 나의 성품이 화려하고 사치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장자가 금, 은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더해주면 그때마다 부끄럽고 얼굴 붉히며 (그것을) 버렸다. 나이 20살에 과거 급제의 명예[科名]를 더럽히자, 문희연에서 홀로 꽃을 꽂지 않으니 동년생이 말하기를 ‘임금이 주신 것이니, 어겨서는 안 된다.’ 하기에, 이에 한 송이의 꽃을 꽂았다. 평생 옷은 추위를 가릴 정도만 취하고 음식은 배를 채울 정도만 취하였으며, 또 감히 때가 끼고 해진 것을 입어서 풍속과 다르게 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다만 나의 성품을 따를 뿐이었다.”
114 汝素蓄兇心이라가 自陷刑辟이라 法者天下之公이니 私撓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네가 평소 흉악한 마음을 쌓아두고 있다가, 스스로 형벌에 빠진 것이다. 법이라는 것은 천하의 공평한 것이니 사사로이 어지럽게 할 수는 없다.
115 立志章 第一: 初學 先須立志하되 必以聖人自期하여 有一毫自小退託之念이니라 蓋衆人與聖人 其本性則一也 雖氣質 不能無淸濁粹駁之異 而苟能眞知實踐하여 去其舊染而復其性初 則不增毫末而萬善具足矣리니 衆人 豈可不以聖人自期乎 孟子道性善하시되 而必稱堯舜以實之曰 人皆可以爲堯舜이라하시니 豈欺我哉시리오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첫째. 뜻을 세우는 것에 대한 글: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이 될 것으로 스스로 기약하여, 한 가닥의 털 만큼도 스스로 작다 여기고 물러나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대체로 중인과 성인이 그 본성은 한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섞임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나, 만약 참되게 알고 실천할 수 있어서 그 옛날에 물든 것을 버리고 그 본성의 처음을 회복한다면, 털끝만큼을 보태지 않더라도 온갖 선이 두루 갖추어질 것이니, 중인들이 어찌 성인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는 ‘〈인간은〉 본성이 선(善)하다’고 말하되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어서 그것을 실증하며 말하길 ‘사람은 모두 그 때문에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시니,〉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116 人之容貌 變醜爲姸이며 膂力 變弱爲强이며 身體 變短爲長이니 此則已定之分이라 改也어니와 惟有心志 則可以變愚爲智하며 變不肖爲賢이니 此則心之虛靈 不拘於稟受故也 莫美於智하며 莫貴於賢이어늘 何苦而不爲賢智하여 以虧損天所賦之本性乎 人存此志하여 堅固不退 則庶幾乎道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바꾸어 예쁘게 할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바꾸어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할 수 없다. 이것들은 이미 결정된 분수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심지는 그로써 어리석음을 바꾸어 슬기롭게 만들고 불초한 것을 바꾸어 어질게 만들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의 허령이 타고난 기질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슬기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어짊보다 귀한 것이 없거늘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을 실천하지 않고서 하늘이 부여한 바의 본성을 훼손하는가? 사람들이 이 뜻을 보존하여 견고하게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117 苟或父而不子其子하며 子而不父其父하면 其何以立於世乎리오 雖然이나 天下 無不是底父母 父雖不慈以不孝 <童蒙先習, 父子有親>  
만약 혹시라도 부모이면서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식이면서 제 부모를 부모로 대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무엇으로써) 세상에 서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는 없다. 부모가 비록 〈자식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그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118 常須夙興夜寐하여 衣冠必正하고 容色必肅하여 拱手危坐하고 行步安詳하며 言語愼重하여 一動一靜 輕忽苟且放過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항상 모름지기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의관을 반드시 바르게 하고, 얼굴빛을 반드시 엄숙하게 하여, 손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으며, 걸음걸이를 침착하게 하며, 언어를 삼가고 중후하게 하여, 한 번의 움직임과 한 번의 멈춤을 경솔하고 구차하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119 苟或君而不能盡君道하며 臣而不能修臣職이면 與共治天下國家也니라 雖然이나 吾君不能 謂之賊이니 <童蒙先習, 君臣有義>  
120 爲學者一味向道하여 爲外物所勝이니 外物之不正者 當一切不留於心하여 鄕人會處 若設博奕樗蒲等戲어든 則當不寓目하여 逡巡引退하고 若遇倡妓作歌舞어든 則必須避去 如値鄕中大會하여 或尊長强留하여 不能避退어든 則雖在座 而整容淸心하여 不可使奸聲亂色으로 有干於我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학문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도를 향하여 외부의 사물이 이기는 바가 되어선 안 되니, 외부의 사물이 바르지 못한 것을 응당 일체 마음에 머물게 하지 말아서 마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 만일 장기, 바둑, 주사위 놀이 등의 놀이를 벌여 놓았으면 응당 눈을 붙이지 말아서 뒷걸음질 쳐서 (몸을) 이끌어 물러나고, 만일 광대와 기생이 노래와 춤을 하는 것을 만나면 반드시 모름지기 피하여 떠나야 하고, 만일 마을 안의 큰 모임을 만나 혹시 존귀하고 나이 많은 이가 억지로 만류하여 피하고 물러갈 수 없으면 비록 자리에 있더라도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사한 소리와 음란한 색이 나를 침범함이 있게 안 된다.
121 當宴飮酒 不可沈醉 浹洽而止 可也니라 凡飮食 當適中이니 快意有傷乎氣 言笑 當簡重이니 喧譁以過其節이며 動止 當安詳이니 粗率以失其儀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잔치를 당해서 술을 마실 적에는 빠지도록 취해선 안 되고, (술기운에) 무젖으면 그치는 것이 옳다. 모든 음료와 먹을 것은 마땅히 중도에 알맞게 먹어야 하니, 뜻에 쾌하여 기를 상함이 있게 해선 안 되며, 말과 웃음은 응당 간략하고 신중히 해야 하니, 떠들어대서 그 절도를 넘어선 안 되며, 움직이고 그침은 응당 안정되고 분명하게 해야 하니, 거칠고 경솔하여 그 위의를 잃어선 안 된다.
122 思無邪 毋不敬只此二句 一生受用이라도 不盡이니 當揭諸壁上하여 須臾忘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와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라는 오직 이 두 구절은 한평생 받아 써도 다하지 않으니, 응당 벽 위에 걸어서 잠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123 蓋自太極肇判하여 陰陽始分으로 五行 相生 先有理氣 人物之生 林林總總하더니 於是 聖人 首出하사 繼天立極하시니 天皇氏 地皇氏 人皇氏 有巢氏 燧人氏 是爲太古 在書契以前이라 로다 <童蒙先習, 總論>  
대개 태극이 처음 갈라져 음양(陰陽)이 비로소 나뉘게 된 때부터 오행이 상행하기 앞서 이기(理氣)가 있었다. 사람과 만물의 생성된 것이 많았으니, 이때에 성인(聖人)이 먼저 나타나서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표준을 세우셨다.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유소씨(有巢氏)·수인씨(燧人氏) 때를 태고(太古)라 하는데, 〈이때는〉 서계(書契)가 있기 전이라서 상고(上考)할 수 없다.
124 人於等輩相踰어늘 況年高於我하고 官貴於我하고 道尊於我者乎 在鄕黨則敬其齒하고 在朝廷則敬其爵하며 尊其道而敬其德 是禮也 <啓蒙篇, 人篇>  
사람은 같은 또래에게도 오히려 서로 넘을 수 없거늘, 하물며 연배가 나보다 높고, 벼슬이 나보다 귀하며, 도가 나보다 높은 사람에서야! 그러므로 시골 무리에 있어서는 곧 그 나이를 공경하고, 조정에 있어서는 곧 그 벼슬을 공경하며, 그 도를 높이고 그 덕을 공경하는 것, 이것이 예이다.
125 凡人稟性하여 愛親敬兄忠君弟長之道 皆已具於吾心之中하니求之於外面이요 而惟在我力行而不已也니라 <啓蒙篇, 人篇>  
모든 사람의 품성은 처음에 선하지 않음이 없어,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며, 어른에게 공손히 하는 도를 모두 이미 내 마음의 속에 갖추었으니, 진실로 그것을 외면에서 구할 수 없고, 오직 내가 힘써 행하고서 그치지 않는 데에 있을 뿐이다.
126 父母之志 若非害於義理어든 則當先意承順하여 毫忽 若其害理者 則和氣怡色柔聲以諫하여 反覆開陳하여 必期於聽從이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부모의 뜻이 만약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마땅히 〈부모의〉 뜻을 미리 〈알아〉 받들어 따라 작은 것이라도 어겨서는 안 되고, 만약 그 이치에 해로운 것이라면 기운을 온화하게 하고 얼굴빛을 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간하여, 반복하고 개진하여 반드시 들어 따라줄 것을 기약한다.
127 復時 俗例必呼小字하니 非禮也 少者則猶可呼名이어니와 長者則呼名이요 隨生時所稱 可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혼을 부르는) 복을 할 때 세속의 관례에 반드시 어릴 때 이름을 부르니, 예가 아니다. 어린아이면 그래도 이름을 부을 수 있으나 어른이라면 이름을 부을 수 없고 살았을 때 부르던 바를 따르는 것이 옳다.
128 衰絰 非疾病服役이면脫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상복과 수질이나 요질은 질병이나 일하는 경우가 아니면 벗을 안된다.
129 喪祭二禮 最是人子致誠處也 已沒之親 追養이니 若非喪盡其禮 祭盡其誠이면 則終天之痛 無事可寓 無時可洩也 於人子之情 當如何哉 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歸厚矣라하시니 爲人子者 所當深念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상과 제 두 예는 가장 자식이 정성을 다할 곳이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를 쫓아 봉양할 수 없으니 만약 상례에서 그 예를 다하고, 제사에서 그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끝나는 애통함을 붙일 만한 일이 없고, 쏟아낼 만한 때가 없으니, 자식의 마음에 마땅히 어떻겠는가? 증자가 말하였다. “(근친이) 죽음에 삼가고 선조를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는) 자식 된 자가 마땅히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130 冠婚之制 當依家禮 苟且從俗이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관례와 혼례의 제도는 마땅히 (주자) 가례를 의거해야 하고, 구차하게 세속을 따라서는 안된다.
131 兄弟 同受父母遺體하여 與我如一身하니 視之 當無彼我之間하여 飮食衣服有無 皆當共之니라 設使兄飢而弟飽하고 弟寒而兄溫이면 則是一身之中 肢體或病或健也 身心 豈得偏安乎 今人 兄弟不相愛者 皆緣不愛父母故也 若有愛父母之心이면 則豈可不愛父母之子乎 兄弟 若有不善之行이면 則當積誠忠諫하여 漸喩以理하여 期於感悟 遽加 厲色拂言하여 以失其和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형제는 부모가 남겨준 몸을 함께 받아서 나와는 한 몸과 같다. (그를) 볼 때 마땅히 서로의 간격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이 있고 없음을 모두 마땅히 (생략) 함께 해야 한다. 가령 형은 굶으나 동생은 배부르고, 동생은 추우나 형은 따뜻하다면 곧 이는 한 몸의 가운데 지체가 혹 병들고 혹 건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생략) 때문이다. 만약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생략)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약 좋지 못한 행실이 있다면 (생략) 마땅히 정성을 쌓아 진실스럽게 충고해서 점차 도리로서 깨우쳐 감동하여 깨닫기를 기약해야 하니, 대뜸 사나운 낯빛과 거슬리는 말을 가하여서 그 부드러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132 生子 自稍有知識時 當導之以善이니 若幼而不敎하여 至於旣長이면 則習非放心하여 敎之甚難이니 敎之之序 當依小學이니라 大抵一家之內 禮法興行하고 簡編筆墨之外 無他雜技 則子弟亦無外馳畔學之患矣리라 兄弟之子 猶我子也 其愛之 其敎之 當均一이요 有輕重厚薄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자식을 낳으면 (자식이) 약간 지식이 생길 때부터 마땅히 (그를) 선으로 인도해야 하니,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미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곧 나쁜 것을 익히고 마음을 풀어놓아 (그를) 가르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를) 가르치는 순서는 마땅히 소학을 따라야 한다. 무릇 한 집안의 안에 예법이 흥행하고 편지, 책, 글씨 쓰기(생략) 외에 다른 잡기가 없으면 (생략) 자제들 또한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 배움을 저버리는 근심이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은 나의 자식과 같다. 그 (조카를) 사랑하고 그 (조카를) 가르치는 것을 마땅히 균일하게 해야 하고, 가볍게 하거나 중하게 하고, 후하게 하거나 박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133 治家 當以禮法으로 辨別內外하여 雖婢僕이라도 男女混處 男僕 非有所使令이면 則不可輒入內하고 女僕 皆當使有定夫하여 使淫亂이니 若淫亂不止者 則當黜使別居하여 毋令汚穢家風이니라 婢僕 當令和睦이니 若有鬪䦧喧噪者어든 則當痛加禁制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집안을 다스릴 때 마땅히 예법으로 안과 밖을 구별하여 비록 하인이라도 남자와 여자를 섞어 살아서는 안 된다. 남자 하인은 시키는 것이 있지 않으면 (생략) 쉽게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여자 하인은 모두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정해진 남편이 있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음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음란함을 그치지 않는 자라면 (생략) 마땅히 내쫓아서 (그들로) 하여금 따로 살도록 해야 하고 (그들로) 하여금 가풍을 더럽히게 해서는 안 된다. 하인은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화목하게 하여 만약 다투고 떠드는 자가 있으면 (생략) 마땅히 금지와 제재를 통렬히 가해야 한다.
134 君子憂道 不當憂貧이니 但家貧하여 無以資生이면 則雖當思救窮之策이나 亦只可免飢寒而已 存居積豊足之念이며以世間鄙事 留滯于心胸之間이니라 古之隱者 有織屨而食者 樵漁而活者 植杖而耘者하니 此等人 富貴不能動其心이라 能安於此하니 若有較利害計豊約之念이면 則豈不爲心術之害哉 學者 要須以輕富貴守貧賤爲心이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마땅히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함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 할 뿐이고, 쌓아두고 풍족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생략)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 사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김을 매는 사람이 있으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부유함과 귀함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비교하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략) 어찌 마음의 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모름지기 부유함과 귀함을 가볍게 여기고 가난함과 천함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135 居家 貧窶 則必爲貧窶所困하여 失其所守者多矣 學者 正當於此處用功이니 古人曰 窮視其所不爲하며 貧視其所不取라하고 孔子曰 小人 窮斯濫矣라하시니 若動於貧窶하여 而不能行義 則焉用學問爲哉리오 凡辭受取與之際 必精思義與非義하여 義則取之하고 不義則不取하여 毫髮放過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집에서 생활할 때 가난하면 (생략) 반드시 가난에 곤궁한 바 되어서 그 지키는 (생략) 것을 잃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바로 마땅히 이곳에서 노력해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였다. “곤궁할 때 그가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난할 때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본다.” 공자가 “소인은 가난하면 넘친다” 라고 하였다. 만약 가난함에 움직여서 의를 행할 수 없다면, (생략)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무릇 사양하고 받고 가지고 주는 사이에 반드시 의인지와 의가 아닌지를 정밀하게 생각하여 의라면 (그것을) 가지고, 의가 아니라면 가지지 않아서 터럭만큼도 그대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
136 若朋友 則有通財之義하니 所遺 皆當受로되 但我非乏而遺以米布受也니라 其他相識者 則只受其有名之饋하고 而無名則受也 所謂有名者 賻喪 贐行 助婚禮 周飢乏之類 是也 <擊蒙要訣, 擊蒙要訣>  
친구의 경우는 곧 재물을 통하는 의가 있으니, 주는 것을 모두 마땅히 받는다. 다만 내가 궁핍하지 않은데도 쌀과 베를 준다면 (생략) 받아서는 안 된다. 기타 서로 아는 사람은 (생략) 다만 그 명분이 있는 선물을 받고, 명분이 없으면 받아서는 안 된다. 이른바 명분이 있다는 것은 상례에 부의하고, 여행에 노자를 주고, 혼례에 부조하고, 가난에 도와주는 종류가 이것이다.
137 若是大段惡人心所鄙惡者 則其饋雖有名이나 受之 心必不安이리니 心不安이면抑而受之也니라 孟子曰 無爲其所不爲하며 無欲其所不欲이라하시니 此是行義之法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만약 (생략) 대단한 악인이어서 (나의) 마음에 비루하고 악하다고 여기는 바의 사람이라면, 곧 그의 선물이 비록 명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받으면 마음이 반드시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면, 억지로 하여 (그것을) 받아서는 안된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며, 그 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의를 행하는 방법이다.
138 中朝則列邑之宰 有私俸이라 推其餘하여 可以周人之急矣어니와 我國則守令 別無私俸하고 只以公穀으로 應日用之需어늘 而若私與他人이면 則不論多少하고 皆有罪譴하여 甚則至於犯贓하고 受者亦然하니 爲士而受守令之饋 則是乃犯禁也 古者 入國而問禁하니 則居其國者 豈可犯禁乎 守令之饋 大抵難受하니 若私與官庫之穀이면 則不論人之親疏名之有無物之多寡하고受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중국은 여러 읍의 관리에게 사사로운 녹봉이 있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를 미루어서 이로써 남의 위급함을 도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령에게 따로 사사로운 녹봉이 없다. 다만 공곡으로 일상생활의 비용에 응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사사로이 다른 사람에게 준다면 곧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벌과 꾸짖음이 있다. 심하면 장물죄를 범하는 것에 이르고, 받은 사람 또한 그러하다. 선비가 되어 수령의 선물을 받으면 곧 이는 바로 금령을 범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의) 금령을 물었으니, 그렇다면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어찌 금령을 범할 수 있겠는가? 수령의 선물은 대개 받기가 어려운 것이니, 만약 사사롭게 국고의 곡식을 준다면 곧 사람이 친한지 소원한지와 명분이 있고 없는지와 물건이 많고 적은지를 따지지 않고 모두 받아서는 안 된다.
139 接人章 第九: 凡接人 當務和敬이니 年長以倍어든 則父事之하고 十年以長이어든 則兄事之하고 五年以長이어든 亦稍加敬이니恃學自高尙氣陵人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접인장 제 9권무릇 사람을 접할 때는 마땅히 온화하고 공경함을 힘써야 하니, (나보다) 나이가 곱절이 많으면 (그를) 아버지처럼 섬기고 십 년이 많으면 (그를) 형처럼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의 공경을 가할 것이니, 학문을 믿고서 스스로 높은 체하며, 기운을 숭상하여서 남을 업신여기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140 擇友 必取好學好善方嚴直諒之人하여 與之同處하여 虛受規戒하여 以攻吾闕하고 若其怠惰好嬉柔佞不直者 則交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친구를 고를 때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선을 좋아하고 바르고 엄하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취하여 () 와 같이 지내면서 타이름과 경계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이로써 나의 결점을 다스려야 한다. 만약 그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며 유약하고 아첨하며 바르지 못한 사람이라면, (생략) 사귀어서는 안 된다.
141 鄕人之善者 則必須親近通情하고 而鄕人之不善者惡言揚其陋行이요 但待之泛然하여 不相往來 若前日相知者 則相見 只敍寒暄하고 不交他語 則自當漸疎하여 亦不至於怨怒矣리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향인 중에 선한 사람은 곧 반드시 모름지기 친근하게 하여 정을 통하고, 향인 중에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또한 나쁜 말로 그의 비루한 행실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를) 범연하게 대하여서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만약 전날에 서로 아는 사람이라면 (생략) 서로 만났을 때 다만 안부만 묻고 다른 말은 주고받지 않는다면 곧 자연히 마땅히 점차 소원해져 또한 원망하고 노여워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142 凡拜揖之禮 預定이니 大抵父之執友 則當拜 洞內年長十五歲以上者 當拜 爵階堂上而長於我十年以上者 當拜 鄕人年長二十歲以上者 當拜로되 而其間高下曲折 在隨時節中이요 亦不必拘於此例 但常以自卑尊人底意思 存諸胸中 可也니라 詩曰 溫溫恭人 惟德之基라하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절을 하고 읍하는 예는 미리 정할 수 없다. 대개 아버지의 친구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마을 안에 15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벼슬의 품계가 당상이고 나보다 10년 이상 많은 사람이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마을 사람 중에 20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은 마땅히 절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높이고 낮추는 곡절은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함에 달린 것이고, 또한 반드시 이 예에 구애될 것이 없다. 다만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생각을 마음속에 두는 것이 옳다. 시경에서 ‘온순하고 공손한 사람, 오직 덕의 기반이다.’라고 하였다.
143 凡侍先生長者 當質問義理難曉處하여 以明其學하고 侍鄕黨長老 當小心恭謹하여 不放言語하여 有問則敬對以實하고 與朋友處 當以道義講磨하여 只談文字義理而已 世俗鄙俚之說 及時政得失守令賢否他人過惡 一切掛口하고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선생과 어른을 모실 때는 마땅히 의리를 깨닫기 어려운 곳을 질문하여 그 학문을 밝혀야 하고, 향당의 모실 때는 장로를 마땅히 조심하고 공손하고 삼가하여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아서 묻는 것이 있으면 사실로써 공손하게 대답한다. 친구와 함께 지낼 때는 마땅히 도의를 강의하고 연마하여 다만 문자와 의리만을 이야기 할 뿐이고 세속의 비루한 말과 및 시정의 득실과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다른 사람의 잘못과 악행을 일체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144 與鄕人處 雖隨問應答이나 而終發鄙褻之言하며 雖莊栗自持 而切存矜高之色이요 惟當以善言誘掖하여 必欲引而向學하고 與幼者處 當諄諄言孝悌忠信하여 使發善心이니 若此不已 則鄕俗 漸可變也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마을 사람과 함께 거처할 때 비록 물음에 따라 대답하면서도 끝내 비루하고 더러운 말을 해서는 안된다. 비록 엄숙하고 삼가서 스스로 (몸가짐을) 지키더라도 절대로 자랑하고 높은 체 하는 기색을 두지 않는다. 오직 마땅히 좋은 말로 타이르고 이끌어서 반드시 끌어서 학문에 향하게 한다. 어린아이와 함께 거처할 때 마땅히 효제와 충신을 간곡하게 말해주어 착한 마음을 일으키게 해야한다. 이와 같이 하여 그치지 않는다면 마을의 풍속이 점차 변할 수 있다.
145 常以溫恭慈愛惠人濟物爲心이니 若其侵人害物之事 則一毫留於心曲이니라 凡人 欲利於己인댄 必至侵害人物이라 故學者先絶利心然後 可以學仁矣리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항상 온순하고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남을 구제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 남을 침노하고 남을 해치는 일의 경우는 곧 한 터럭이라도 마음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무릇 사람은 자기를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는 것에 이른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먼저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끊어낸 연후에 인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146 居鄕之士 非公事禮見及不得已之故出入官府 邑宰雖至親이라도數數往見이어든 況非親舊乎 若非義干請 則當一切勿爲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지방에 거주하는 선비는 공적인 일이나 예의상 만나는 일 및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곧 관청을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 고을의 수령이 비록 지극히 친하더라도 또한 자주 가서 만나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친구 관계가 아닌 경우 에랴? 의롭지 않은 간청과 같은 것은 곧 마땅히 일절 하지 말아야 한다.
147 處世章 第十: 古之學者 未嘗求仕로되 學成則爲上者 擧而用之하니 蓋仕者 爲人이요 非爲己也 今世則不然하여 以科擧取人하여 雖有通天之學 絶人之行이라도 非科擧 無由進於行道之位 父敎其子하고 兄勉其弟하여 科擧之外 更無他術하니 士習之偸 職此之由 第今爲士者 多爲父母之望 門戶之計하여 不免做科業이나 亦當利其器 俟其時하여 得失 付之天命이요 貪躁熱中하여 以喪其志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열째 〈처세장〉: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나 배움이 이루어지면 윗 사람이 천거하여 그 사람을 등용하였으니, 대체로 벼슬[仕]이란 남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 과거로 사람을 뽑아 비록 천리를 통달한 학문과 남들을 뛰어넘는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자신이 배운〉 도를 행하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그 자식에게 〈과거공부를〉 하게 하고 형은 그 아우에게 〈과거공부를〉 권면하여 과거의 〈공부〉 이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속이 경박한 것은 오로지 이러한 까닭이다. 다만 지금 선비된 자가 대부분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계책을 때문에 과거 공부하는 것을 벋어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실력을 연마하여 그 때를 기다려 얻음과 잃음을 하늘의 운수에 맡겨야 하며, 출세에 급급하고 열중해서 그 뜻을 잃어서는 안된다.
148 人於未仕時 惟仕是急하고 旣仕後 又恐失之하나니 如是汨沒하여 喪其本心者 多矣 豈不可懼哉 位高者 主於行道하니이면 則可以退矣 若家貧하여 未免祿仕 則須辭內就外하고 辭尊居卑하여 以免飢寒而已 雖曰祿仕 亦當廉勤奉公하여 盡其職務 曠官而餔啜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사람이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히 여기고 이미 벼슬한 뒤에는 다시 벼슬을 잃을까 염려한다. 이처럼 골몰하다가 그 본심을 잃은 사람이 많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은 도를 행하는 일을 중심으로 해야 하니, 도가 행해질 수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 만약 집안이 가난하여 녹을 받는 벼슬아치에서 벋어날 수 없다면, 반드시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에 나아가며, 높은 지위는 사양하고 낮은 벼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위한 벼슬이라고 하지만,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힘써서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하고, 관직을 버려두고서 먹고 마시기만 해서는 안된다.
149 家富良馬하니 其子好騎하여 墮而折其髀하니 人皆弔之한대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아하다 居一年 胡人大入塞하니 丁壯者引弦而戰이라 近塞之人으로 死者十九인대 此獨以跛之故 父子相保 故福之爲禍하고 禍之爲福하니이요測也 <原文故事成語, 處世>  
150 脣亡齒寒: 晉侯復假道於虞하여 以伐虢이라 宮之奇諫曰 虢 虞之表也 虢亡하면 虞必從之리이다 寇不可翫이니이다 一之謂甚한대 其可再乎 諺所謂輔車相依하고 脣亡齒寒者 其虞虢之謂也니이다하니 公曰 晉 吾宗也인대 豈害我哉리오하다 …… 弗聽하고 許晉使 <原文故事成語, 形勢>  
151 河曲智叟笑而止之曰 甚矣로다 汝之不惠 以殘年餘力으론 曾不能毁山之一毛한대 其如土石何오하니 北山愚公長息曰 汝心之固하여하니 曾不若孀妻弱子 雖我之死라도 有子存焉이라 子又生孫하고 孫又生子 子又有子하고 子又有孫이라 子子孫孫無窮匱也 而山不加增하니 何苦而不平이리오하다 河曲智叟亡以應이라 <原文故事成語, 努力>  
남은 목숨과 남은 힘으로는 일찌기 산의 한 터럭도허물 수가 없는데, 그 흙과 돌을 어찌 하려는가?
152 三顧草廬: 時先主屯新野 徐庶見先主한대 先主器之하니 謂先主曰 諸葛孔明者 卧龍也 將軍豈願見之乎아하니 先主曰 君與俱來하라하다 庶曰 此人可就見이나 屈致也니이다 將軍宜枉駕顧之라하다 由是先主遂詣亮하고 凡三往乃見이라 <原文故事成語, 努力>  
153 守株待兎: 宋人 有耕田者 田中有株한대 兎走觸株하여 折頸而死 因釋其耒而守株하며 冀復得兎復得하고 而身爲宋國笑 <原文故事成語, 愚鈍>  
154 矛盾: 楚人 有鬻盾與矛者 譽之曰 吾盾之堅하여 莫能陷也라하고 又譽其矛曰 吾矛之利하여 於物無不陷也라하니 或曰 以子之矛 陷子之盾이면 何如오하니 其人不能應也陷之盾與無不陷之矛 同世而立이라 <原文故事成語, 愚鈍>  
내 창의 날카로움으로는 물건 중에 뚫지 못함이 없다.
155 又漆身爲癩하고 呑炭爲啞하여 使形狀 伏於橋下한대 襄子至橋하여 馬驚하니 曰 此必豫讓이라하다 問曰 子事范中行氏한대 智伯滅之 不爲報讐하고 而反臣智伯이라 智伯已死한대 獨何報讐之深고하니 對曰 臣事范中行氏 衆人遇我하여 我故衆人報之 智伯國士遇我하여 我故國士報之라하다 <原文故事成語, 信義>  
156 後引見 帝令主坐屛風後하고 因謂弘曰 諺言 貴易交하고 富易妻라하니 人情乎아하니 弘曰 吾聞貧賤之交이요 糟糠之妻不下堂이니이다하다 帝顧謂主曰 事不諧矣라하다 所得租奉 分贍九族하여 家無資産하니 以淸行致稱이라 所推進賢士桓梁三十餘人인대 或相及爲公卿者 <原文故事成語, 慾心>  
가난하고 천했을 때의 사귐은 잊어서는 안된다.
157 馬之千里者 一食 或盡粟一石이어늘 食馬者不知其能千里而食也하니 是馬雖有千里之能이나 食不飽하여 力不足하여 才美不外見하니 且欲與常馬等이나 이니 安求其能千里也리오 <古文眞寶後集, 卷之四 >  
158 宰予晝寢이어늘 子曰 朽木 雕也 糞土之墻 杇也니라 <原本明心寶鑑, 正己篇第五 >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하길,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된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 하였다.
159 景行錄云 人性 如水하여 水一傾則이요 性一縱則이니 制水者 必以堤防하고 制性者 必以禮法이니라 <原本明心寶鑑, 戒性篇第八 >  
《경행록》에 말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아서, 물은 한 번 엎질러지면 다시 담을 수 없고, 성품은 한 번 방종해지면 되돌릴 수 없다. 물을 제어하는 자는 반드시 제방으로써 하며, 성품을 제어하는 자는 반드시 예와 법으로써 해야 한다.”
160 景行錄云 明朝之事 薄暮 이요 薄暮之事 晡時 이니라 <原本明心寶鑑, 省心篇第十一 >  
《경행록》에 말하였다. “내일 아침의 일은 해질녘에 단정할 수 없고, 해질녘의 일은 오후에 장담할 수 없다.”
161 諷諫云 水底魚天邊雁 高可射兮低可釣어니와 惟有人心咫尺間이나 咫尺人心니라 <原本明心寶鑑, 省心篇第十一 >  
《풍간》에 말하였다. 물 밑의 고기와 하늘가의 기러기는 높아도 쏠 수 있고, 낮아도 낚을 수 있지만, 오직 사람의 마음은 지척의 사이에 있음에도 지척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162 此四德者 是婦人之所缺者 爲之甚易하고 務之在正하니 依此而行이면 是爲婦節이니라 <原本明心寶鑑, 婦行篇第二十 >  
이 네 가지 덕은 이는 부인이 빼놓을 수 없는 바의 것이다. (그것을) 행하기가 매우 쉽고 (그것을) 힘씀이 바른 데 있으니, 이에 의거 하여 행하면 이는 부인의 예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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