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이 감히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이 감히 복종하지 않음이 없고, 윗사람이 신을 좋아하면 백성이 감히 실정을 쓰지 않음이 없으니, 무릇 이와 같다면 사방의 백성이 제 아이를 강보에 업고서 이를 것이니, 어디에 농사일을 쓰겠는가?”
〈맹자는〉 부득이하게 경추 씨(景丑氏)에게 가서 그 집에서 묵었는데,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안에서는 부자(父子)의 관계, 밖에서는 군신(君臣)의 관계가 사람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 사이에는 은혜를 위주로 하고 군신 사이에는 공경을 위주로 합니다. 저(경추)는 왕이 그대를 공경하는 것은 보았고 〈그대가〉 왕을 공경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제나라 사람 중에 인의(仁義)를 왕과 말하는 자가 없는 것이 어찌 인의를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서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어찌 함께 인과 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해서일 뿐이니 그렇다면 〈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저(맹자)는 요순(堯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그것을 왕 앞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 중에 나처럼 왕을 공경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후직(后稷)이 백성에게 농사를 가르쳐서 오곡(五穀)을 심어서 가꾸게 하니, 오곡이 익고 백성이 〈자식을 낳아〉 기르게 되었네. 사람의 됨됨이는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하게 거처하면서 가르침이 없다면 곧 금수에 가까우니, 성인(堯)이 또 이점을 근심하여 설(契)을 사도(司徒)로 삼아서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하니,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함이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이 있으며,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으며, 벗의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네. 방훈(放勳,堯)이 말씀하시기를, ‘수고로운 자를 위로하고 먼 곳에 있는 자를 오게 하며, 그른 자를 바로잡고 굽은 자를 곧게 하며, 뜻을 세우도록 돕고 인륜의 실천을 도와줘서, 저들로 하여금 스스로 본성을 얻게 하고 또 그들을 이어서 이끌어 은혜를 베풀라.’ 하였으니, 성인이 백성을 근심함이 이와 같았네. 어느 겨를에 농사를 짓겠는가?
〈진상(陳相)이 말하였다.〉 “허자(허행)의 도를 따르면, 시장의 가격이 다르지 않아서 나라 안에 속임이 없어져서, 비록 5척의 어린아이를 시장에 가게 하여도 값을 혹 속일 수 없을 것입니다. 포백의 길이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삼실과 풀솜의 무게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오곡의 양이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신발의 크기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습니다.”
주소(周霄)가 물었다. “옛날의 군자는 벼슬하였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벼슬하였습니다. 전(傳)에서 이르길 ‘공자는 3개월 동안 〈섬길〉 임금이 없으면 불안한 듯하여, 〈그래서〉 국경을 나갈 때 반드시 폐백을 싣고 갔다.’ 하였고,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길 ‘옛날의 사람은 석 달 동안 〈섬길〉 임금이 없으면 위로하였다.’ 하였습니다.”
20
三月無君則弔 不以急乎잇가<孟子, 滕文公下>
〈주소가 말하였다.〉 “3개월 〈섬기는〉 군주가 없으면 위로하는 것은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사(士)가 지위를 잃는 것은 제후가 국가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예(禮)》에 이르기를 ‘제후가 밭을 갈면 〈백성이 농사를〉 도와서 자성(粢盛)을 바치고 부인은 누에를 치고 고치를 켜서 〈제사용〉 옷을 만든다. 희생(犧牲)이 자라지 않으며 자성이 깨끗하지 못하며 〈제사용〉 의복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감히 이 때문에 제사 지내지 못한다. 그리고 선비는 〈섬기는 군주가 없어서〉 제전(祭田)이 없으면 또한 제사 지내지 못한다.’ 하니, 희생과 제기와 제복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감히 이 때문에 제사 지내지 못하면 감히 이 때문에 연회를 열지 못하니, 또한 위로하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벼슬하는 것은, 농부가 밭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가 어찌 국경을 나가기 위하여 자기의 쟁기와 보습을 버리겠습니까?” 〈주소가〉 말하였다. “진(晉)나라 또한 벼슬할 만한 나라입니다만, 일찍이 벼슬하는 것이 이처럼 매우 조급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벼슬하는 것이 이처럼 매우 조급하다면, 군자가 벼슬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부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아내가 있기를 원하고, 여자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시댁이 있기를 원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모두 그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의 명과 매파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을 뚫어서 서로 엿보고 담장을 넘어 서로 따른다면, 부모와 나라 사람이 모두 그들을 천시할 것입니다. 옛날의 사람들이 일찍이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또한,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미워하였으니, 올바른 길을 통하지 않고서 가는 것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은 부류입니다.”
팽경(彭更)이 물어 말하였다. “뒤따르는 수레 수십 대와 따르는 사람 수백 명으로 제후에게 음식을 접대 받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알맞은 도가 아니라면 한 그릇의 밥이라도 남에게 받을 수 없지만, 만일 알맞은 도라면 순(舜)이 요(堯)임금의 천하를 받되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자네는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자네가 공인이 〈만든 물건을〉 유통시켜 일의 〈결과물을〉 바꾸어서 남는 것을 부족한 곳에 보충하지 않는다면, 농부는 남는 곡식이 있고 여자는 남은 베가 있을 것이네. 자네가 만일 남는 것을 유통하면, 목공과 수레공이 모두 자네에게 음식을 얻게 될 것이네. 여기에 사람이 있는데, 들어가면 효도하고 나오면 공경하여 선왕의 도를 지켜서 훗날의 학자를 기다리면, 자네에게 음식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니, 자네는 어찌 목공과 수레공을 높이면서 인의(仁義)를 행하는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기와를 훼손하며 벽에 낙서하고 그 뜻이 장차 그것으로 녹봉을 구하려 한다면, 자네는 그에게 녹을 주겠는가?” 〈팽경이〉 말하였다. “안줍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자네는 뜻을 〈보고〉 녹을 주는 것이 아니네. 공을 〈보고〉 녹을 주는 것이네.”
양화(陽貨)는 〈먼저 찾아와 준〉 공자와 만나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찾지 않아〉 무례하다는 〈평은 듣기〉 싫어했네. 〈예(禮)에 이르길〉 ‘대부가 사(士)에게 하사한 것이 있는데 〈사가〉 자신의 집에서 받을 수 없다면 대부의 문에 가서 절한다.’ 하였으니, 양화는 〈일부러〉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엿보아서 공자에게 삶은 새끼돼지를 보냈는데, 공자 역시 양화가 집에 없는 틈을 엿보아서 양화의 대문에 가서 절하였다네. 그 당시에 양화가 〈예를〉 먼저 갖췄다면 어찌 만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성왕(聖王)이 나오지 않으니 제후들이 방자하고 처사(處士)들이 제멋대로 의논하여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여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몰리지 않으면 묵적에게 몰렸네. 양씨는 ‘위아설’을 주장하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고, 묵씨는 ‘겸애설’을 주장하니 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네.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것, 이것이 금수라네. 공명의가 말하길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진 말이 있는데도 백성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주려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고서 사람을 먹는 것이다.’ 하니, 양주와 묵적의 도가 사라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바르지 않은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과 의를 막는 것이네. 인과 의가 막히면,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하다가 사람이 장차 서로 먹게 될 것이네.
어머니가 〈준〉 경우에는 〈의롭지 않다 여겨〉 먹지 않고, 아내가 〈준〉 경우에는 그것을 먹으며, 형의 집에 〈사는〉 경우에는 〈의롭지 않다 여겨〉 살지 않고, 오릉에 〈사는〉 경우에는 그곳에 살았으니, 이런데도 오히려 그 〈지조의〉 유를 채울 수 있다 하겠는가? 중자와 같은 자는 지렁이가 〈된〉 뒤에야 그 지조를 채울 자라네.”
32
事君無義하며 進退無禮하고 言則非先王之道者 猶沓沓也니라<孟子, 離婁上>
임금을 섬김에 의(義)가 없으며 나아가고 물러남에 예(禮)가 없고, 말만하면 선왕의 도를 비난하는 것이 답답(沓沓)과 같은 것이다.
순우곤(淳于髡)이 말하였다. “남녀가 주고받을 때 직접 하지 않는 것이 예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예입니다.” 〈순우곤이〉 말하였다.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형수를 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 구하지 않으면 이는 승냥이와 이리입니다. 남녀가 주고받을 때 직접 하지 않는 것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 손으로 형수를 구하는 것은 권도(權道)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형편상 행할 수 없어서라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정도(正道)로써 〈가르치니〉 정도로써 〈가르쳐〉 행해지지 않으면 노여움으로 정도를 뒤따르게 하고, 노여움으로 정도를 뒤따르게 하면, 도리어 〈부자의 의(義)가〉 상하니, ‘아버지[夫子]가 나를 정도로써 가르치면서, 아버지의 〈행동도〉 정도에서 나오지 않는구나.’ 하면,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의가〉 상하는 것이니,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의가〉 상하면 나쁜 것이네.
39
父子之間은 不責善이니 責善則離하나니 離則不祥이 莫大焉이니라<孟子, 離婁上>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에는 선(善)을 요구하지 않으니, 선을 요구하면 〈부자의 정이〉 떨어지니, 〈정이〉 떨어지면 상서롭지 못한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네.”
증자(曾子)가 증석(曾晳)을 봉양할 때 반드시 술과 고기를 올렸는데, 장차 치우려 할 때 반드시 〈증석에게〉 줄 곳을 물었으며, 남은 것이 있는지 물으면 반드시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증석이 죽자, 증원(曾元)이 증자를 봉양할 때 반드시 술과 고기를 올렸는데, 장차 치우려 할 때 〈증자에게〉 줄 곳을 묻지 않았으며, 남은 것이 있는지 물으면 ‘없습니다.’라고 답하였으니, 장차 남은 것을 〈증자에게〉 다시 올리려는 것이었다. 이는, 이른바 ‘〈어버이의〉 입과 몸을 봉양하는 것’이니, 증자처럼 한다면 ‘〈어버이의〉 뜻을 봉양했다.’고 이를 만하다.
악정자(樂正子)가 맹자를 뵙자,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도 나를 찾아와 만나는가?” 〈악정자가〉 말하였다. “선생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십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자네가 〈이곳에〉 온 것이 며칠인가?” 〈악정자가〉 말하였다. “어제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어제 〈왔다〉면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악정자가〉 말하였다. “객사가 정해지지 않않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자네는 그리 들었는가? 객사가 정해진 뒤에 장자를 찾아뵙는다고?”
지(智)의 실제는 〈인의〉 이 두 가지를 알고서 떠나지 않는 것이 그것이고, 예(禮)의 실제는 〈인의〉 이 두 가지를 절도에 맞추고 꾸미는 것이 그것이고, 음악의 실제는 〈인의〉 이 두 가지를 즐거워하는 것이니, 즐거워하면 〈인과 의가〉 생겨날 것이니, 〈인의가〉 생겨난다면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어찌 그만둘 수 있는가?’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발은 구르고 손은 춤출 것이다.”
증자(曾子)가 무성(武城)에 살 때 월(越)나라의 약탈이 있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도적이 이르렀으니 어찌 떠나지 않습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내 집에 사람을 붙여두어 그 땔감과 나무를 훼손시키지 말라.” 도적이 물러가자 곧 〈증자가〉 말하였다. “나의 담장과 지붕을 보수하라. 나는 장차 돌아가겠다.” 도적이 물러가고 증자가 돌아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하였다. “선생을 대함이 이처럼 매우 충성하고 또 공경하였는데, 도적이 오자 곧 먼저 떠나서 백성의 본보기가 되시고, 도적이 물러가자 곧 돌아오니, 옳지 않은 일에 가깝습니다.” 심유행(沈猶行)이 말하였다. “이것은 너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심유씨 집안에 부추(負芻)의 반란이 있었는데, 선생을 따르는 자 칠십 명은 난에 함께한 자가 있지 않았다네.”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의 어진 왕들이 선을 좋아하여 〈자기〉 세력을 잊었는데 옛날의 어진 선비들이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도를 즐거워하고 남의 세력을 잊었다. 그러므로 왕과 공이라도 공경을 다하고 예를 다하지 않으면 어진 선비를 자주 만날 수 없었으니 만나는 것도 오히려 자주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얻어서 어진 선비를 신하로 삼는 것에서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을 (가진 사람이라야) 그 성을 다할 수 있으니 그 성을 다 할 수 있다면 사람의 성을 다 할 수 있을 것이오, 사람의 성을 다 할 수 있다면 물건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며, 물건의 성을 다할 수 있다면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면 천지와 더불어 참여할 수 있다.
맹자가 성의 선함을 말하면서, 말마다 반드시 요와 순을 일컬었다. 그 말씀에 말하였다. “순은 천하에 법이 되어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향인이 됨을 면치 못하니, 이것은 근심할 만한 하다. (그것을) 근심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순과 같이할 뿐이다.” 지나간 행적을 뽑고 지난 말씀을 실증하여, 이 편을 지어 읽는 자들에게 흥기하는 바가 있게 한다.
횡거장 선생이 말하였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되 먼저 안정되고 상세하며 공손하고 공경함을 요구하니, 지금 세상에는 학문을 강론하지 않아서 남자와 여자가 어려서부터 곧 교만하고 게을러 망가져서 장성함에 이르러 더욱 포악하고 사나워지니, 다만 일찍이 자식과 아우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그 부모에게 이미 남과 내가 있어서 (자신을) 굽혀 낮추기를 즐기지 않아서 병의 근원이 항상 있어 또 거처하는 바를 따라서 자라나, 죽음에 이르도록 다만 옛것을 따른다.
형과 동생은 형체를 나누고 기를 이은 사람이니, 한창 그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왼쪽에서 잡아주고 오른쪽에서 이끌어주며, 앞에서 옷깃을 당기고 뒤에서 옷섶을 잡아주어, 먹을 적엔 밥상을 함께하고 입을 적엔 옷을 물려주고 배울 적엔 학업을 이어주고 놀 적엔 장소를 같이 하니, 비록 어긋나고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유개 중도가 말하였다. “선친이 집안을 다스리되 효성스럽고 또 엄격하였다. 초하루와 보름에 자제와 며느리 무리가 대청 아래에서 절하고서 마치고는 곧 손을 들고 얼굴을 숙이고서 우리 선친의 가르침과 훈계를 들었는데 말하였다. ‘사람의 집에 형과 동생이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모두 아내를 맞이하여 집안에 들임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이 서로 모여 장점을 다투고 단점을 다투어 점차 (참소가) 젖어 들고 날로 (참소가) 들리며, 편벽되이 사랑하고 사사로이 저축하여 그것으로 등지고 어긋남에 이르러 집안을 나누고 집안을 쪼개어 근심하기를 도적과 원수처럼 여기니, 모두 너희 부인 된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남자로서 심장이 강한 사람 몇 사람이 부인 된 사람의 말에 미혹되는 바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본 것이 많으니, 너희들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제와 며느리가) 물러나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효성스럽지 않은 일 함을 한 마디도 내지 못하니, 유개 무리가 지금에 이르도록 (그것에) 힘입어 그 집안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
53
伊川先生曰 只整齊嚴肅이면則心便一이니 一則自無非辟之干이니라<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다만 단정히 하고 가지런히 하며 엄하고 엄숙하게 하면 마음이 곧 전일해지니, 전일하면 저절로 잘못되고 사악함의 범함이 없게 된다.
그 말하는 것에 대한 경계에서 말하였다. ‘사람 마음의 움직임은 말을 인하여 펴지니, 말할 적에 조급하고 망령됨을 금해야 안이 이에 고요하고 전일해진다. 하물며 이는 지도리와 기틀이니,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호를 내기도 하니, 길함과 흉함과 영화와 치욕은 오직 그것이 부르는 바이다. 쉽게 함에 손상되면 허탄해지고, 번다함에 손상되면 지리해지며, 자신이 함부로 하면 남이 거스르고, 나가는 것이 어그러지면 오는 것이 어긋나니, 법도가 아니면 말하지 말아 훈계한 말을 공경하라!’
하루는 심하여 (장손부인의) 병이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였는데, (장손부인이) 선언하기를 “이로써 신부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다. 신부는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으니, 모두 신부처럼 효도하고 공경할 수 있기를 바라노니, 곧 최씨의 집안이 어찌 번창하고 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57
伊川先生曰 安定之門人이 往往에 知稽古愛民矣니則於爲政也에 何有리오<小學, 善行第六>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안정의 문인이 왕왕 옛날을 고찰하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알았으니, 곧 정사를 하는 것에는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양파의 가문은 대대로 순후하여 모두 의리와 겸양을 돈독히 하여 형제가 서로 섬기기를 부자 같음이 있었다. 양춘과 양진은 공손하고 겸손하여 형제가 아침에 곧 대청에 모여서 날을 마치도록 서로 마주하여 일찍이 안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한 가지라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형제들이) 모이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대청 사이에 왕왕 휘장으로 사이를 막아 자거나 쉬는 곳으로 삼고는 때로 나아가 쉬고 누우며 돌아와 함께 담소하곤 하였다.
사마온공은 그 형 백강과 우애가 특별히 돈독하였다. 백강이 나이가 장차 80이 되려는데, 온공이 (그를) 엄한 아버지처럼 받들었고 (그를) 어린아이처럼 돌보아서 매양 밥을 먹고 조금 지나서 곧 물어 말하기를 “배고픔이 없습니까? 하고 날씨가 조금 추워지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옷이 얇지는 않습니까?
들에서 밭 가는 사람은 임금의 토지에서 먹고, 조정에 선 사람은 임금의 녹을 먹으니, 사람은 진실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또한 임금이 아니면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하가 임금 섬기기를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이해서, 오직 의리가 있는 곳에는 곧 목숨을 바치고 충성을 바친다.
다섯 책과 다섯 경전을 돌려가며 익숙히 읽어 이해하기를 그치지 않아서 의리가 날로 밝아지게 하고 송나라의 선대 바른 사람들이 지은 바의 책에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전서, 어류 및 기타 성리학의 내용같은 것을 의당 틈틈이 정밀히 읽어서 의리가 항상 내 마음에 젖어 들어 때마다 끊김이 없게 하고, 남은 여가에 또한 역사책을 읽어 옛날과 지금의 일에 통하고 일의 변화에 통달하여 식견을 신장시켜야 한다. 이단잡류의 바르지 못한 책 같은 것은 잠시라도 펼쳐 열어보아선 안 된다.
아! 끊임없이 이어서 거듭 빛내고 어려번 젖어듬은 진실로 이는 지극하고 어진 성덕과 깊고 높은 은혜를 수유후곤 한 것에 이르니 체통을 이어갈 군주가 몸소 지극한 덕을 본받아 긍긍업업 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조제하여 평탄함에 이르며진실된 마음으로 백성들을 사랑하여 모든 백성을 길이 보호한다면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며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다.
형제는 부모가 남겨준 몸을 함께 받아서 나와는 한 몸과 같다. (그를) 볼 때 마땅히 서로의 간격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이 있고 없음을 모두 마땅히 (생략) 함께 해야 한다. 가령 형은 굶으나 동생은 배부르고, 동생은 추우나 형은 따뜻하다면 곧 이는 한 몸의 가운데 지체가 혹 병들고 혹 건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생략) 때문이다. 만약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생략)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약 좋지 못한 행실이 있다면 (생략) 마땅히 정성을 쌓아 진실스럽게 충고해서 점차 도리로서 깨우쳐 감동하여 깨닫기를 기약해야 하니, 대뜸 사나운 낯빛과 거슬리는 말을 가하여서 그 부드러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자식을 낳으면 (자식이) 약간 지식이 생길 때부터 마땅히 (그를) 선으로 인도해야 하니,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미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곧 나쁜 것을 익히고 마음을 풀어놓아 (그를) 가르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를) 가르치는 순서는 마땅히 소학을 따라야 한다. 무릇 한 집안의 안에 예법이 흥행하고 편지, 책, 글씨 쓰기(생략) 외에 다른 잡기가 없으면 (생략) 자제들 또한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 배움을 저버리는 근심이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은 나의 자식과 같다. 그 (조카를) 사랑하고 그 (조카를) 가르치는 것을 마땅히 균일하게 해야 하고, 가볍게 하거나 중하게 하고, 후하게 하거나 박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인은 나의 수고를 대신해주니, 마땅히 은혜를 먼저하고 위엄을 뒤로 하면 해야만 이에 그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임금이 백성에 대해서와 주인이 하인에 대해서는 그 이치가 하나이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지니,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며, 주인이 하인을 돌보지 않으면 하인이 흩어진다. 하인이 흩어지면 집안이 패망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 하인에 대하여 반드시 (생략) (그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 것을 깊이 염려하여 옷과 음식을 공급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알맞은 곳을 얻게 하고, 허물과 악행이 있으면 (생략) 먼저 반드시 부지런히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 을 고치게 하고 (그를) 가르쳐도 고치지 않은 뒤에 이에 회초리질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마음에 그 주인의 회초리질이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고, 미워하기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러한 뒤에야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고치고 얼굴을 고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마땅히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함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 할 뿐이고, 쌓아두고 풍족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생략)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 사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김을 매는 사람이 있으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부유함과 귀함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비교하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략) 어찌 마음의 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모름지기 부유함과 귀함을 가볍게 여기고 가난함과 천함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집에서 생활할 때 가난하면 (생략) 반드시 가난에 곤궁한 바 되어서 그 지키는 (생략) 것을 잃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바로 마땅히 이곳에서 노력해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였다. “곤궁할 때 그가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난할 때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본다.” 공자가 “소인은 가난하면 넘친다” 라고 하였다. 만약 가난함에 움직여서 의를 행할 수 없다면, (생략)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무릇 사양하고 받고 가지고 주는 사이에 반드시 의인지와 의가 아닌지를 정밀하게 생각하여 의라면 (그것을) 가지고, 의가 아니라면 가지지 않아서 터럭만큼도 그대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
친구의 경우는 곧 재물을 통하는 의가 있으니, 주는 것을 모두 마땅히 받는다. 다만 내가 궁핍하지 않은데도 쌀과 베를 준다면 (생략) 받아서는 안 된다. 기타 서로 아는 사람은 (생략) 다만 그 명분이 있는 선물을 받고, 명분이 없으면 받아서는 안 된다. 이른바 명분이 있다는 것은 상례에 부의하고, 여행에 노자를 주고, 혼례에 부조하고, 가난에 도와주는 종류가 이것이다.
만약 (생략) 대단한 악인이어서 (나의) 마음에 비루하고 악하다고 여기는 바의 사람이라면, 곧 그의 선물이 비록 명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받으면 마음이 반드시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면, 억지로 하여 (그것을) 받아서는 안된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며, 그 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의를 행하는 방법이다.
중국은 여러 읍의 관리에게 사사로운 녹봉이 있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를 미루어서 이로써 남의 위급함을 도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령에게 따로 사사로운 녹봉이 없다. 다만 공곡으로 일상생활의 비용에 응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사사로이 다른 사람에게 준다면 곧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벌과 꾸짖음이 있다. 심하면 장물죄를 범하는 것에 이르고, 받은 사람 또한 그러하다. 선비가 되어 수령의 선물을 받으면 곧 이는 바로 금령을 범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의) 금령을 물었으니, 그렇다면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어찌 금령을 범할 수 있겠는가? 수령의 선물은 대개 받기가 어려운 것이니, 만약 사사롭게 국고의 곡식을 준다면 곧 사람이 친한지 소원한지와 명분이 있고 없는지와 물건이 많고 적은지를 따지지 않고 모두 받아서는 안 된다.
접인장 제 9권무릇 사람을 접할 때는 마땅히 온화하고 공경함을 힘써야 하니, (나보다) 나이가 곱절이 많으면 (그를) 아버지처럼 섬기고 십 년이 많으면 (그를) 형처럼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의 공경을 가할 것이니, 학문을 믿고서 스스로 높은 체하며, 기운을 숭상하여서 남을 업신여기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향인 중에 선한 사람은 곧 반드시 모름지기 친근하게 하여 정을 통하고, 향인 중에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또한 나쁜 말로 그의 비루한 행실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를) 범연하게 대하여서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만약 전날에 서로 아는 사람이라면 (생략) 서로 만났을 때 다만 안부만 묻고 다른 말은 주고받지 않는다면 곧 자연히 마땅히 점차 소원해져 또한 원망하고 노여워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무릇 절을 하고 읍하는 예는 미리 정할 수 없다. 대개 아버지의 친구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마을 안에 15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벼슬의 품계가 당상이고 나보다 10년 이상 많은 사람이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마을 사람 중에 20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은 마땅히 절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높이고 낮추는 곡절은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함에 달린 것이고, 또한 반드시 이 예에 구애될 것이 없다. 다만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생각을 마음속에 두는 것이 옳다. 시경에서 ‘온순하고 공손한 사람, 오직 덕의 기반이다.’라고 하였다.
사람 중에 나를 헐뜯고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서 스스로 살펴야 한다. 만약 나에게 실제로 헐뜯을 만 한 는 행실이 있다면, 스스로 꾸짖고 안으로 책하여 잘못 고치지를 꺼리지 않는다. 만약 나의 잘못이 매우 작은데도 더하고 넓히고 보태어 말한만약 다면 저 사람의 말이 비록 지나치지만, 나에게 실제로 비방을 받을만한 실마리가 있는 것이니, 또한 마땅히 전날의 잘못을 깎고 제거하여 털끝만큼도 남겨두지 않는다. 만약 나에게 본래 허물이 없는데도 거짓말을 날조했다면, 이것은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망령된 사람과 어찌 거짓과 진실을 따질 수 있겠는가? 또 저 사람의 거짓된 훼방은 바람이 귀를 지나가고 구름이 허공을 지나가는 것과 같으니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무릇 이와 같다면 곧 훼방이 올 때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쓴다면, 나에게 유익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만약 허물을 듣고서 스스로 변명하여 시끄럽게 떠들면서 내버려 두지 않고 반드시 허물이 없는 곳에 자신을 두고자 한다면 (생략) 그 허물은 더욱 깊어서 비방을 취하는 것이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비방을 그치는 방법을 물었다. 문중자가 “스스로 (행실을) 닦는 일 만한 것이 없다.” 라고 하였다. 더욱 (가르쳐주기를) 청하였다. (문중자가) "변명하지 말하라” 말하였다. 이 말은 배우는 사람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무릇 선생과 어른을 모실 때는 마땅히 의리를 깨닫기 어려운 곳을 질문하여 그 학문을 밝혀야 하고, 향당의 모실 때는 장로를 마땅히 조심하고 공손하고 삼가하여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아서 묻는 것이 있으면 사실로써 공손하게 대답한다. 친구와 함께 지낼 때는 마땅히 도의를 강의하고 연마하여 다만 문자와 의리만을 이야기 할 뿐이고 세속의 비루한 말과 및 시정의 득실과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다른 사람의 잘못과 악행을 일체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열째 〈처세장〉: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나 배움이 이루어지면 윗 사람이 천거하여 그 사람을 등용하였으니, 대체로 벼슬[仕]이란 남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 과거로 사람을 뽑아 비록 천리를 통달한 학문과 남들을 뛰어넘는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자신이 배운〉 도를 행하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그 자식에게 〈과거공부를〉 하게 하고 형은 그 아우에게 〈과거공부를〉 권면하여 과거의 〈공부〉 이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속이 경박한 것은 오로지 이러한 까닭이다. 다만 지금 선비된 자가 대부분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계책을 때문에 과거 공부하는 것을 벋어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실력을 연마하여 그 때를 기다려 얻음과 잃음을 하늘의 운수에 맡겨야 하며, 출세에 급급하고 열중해서 그 뜻을 잃어서는 안된다.
사람이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히 여기고 이미 벼슬한 뒤에는 다시 벼슬을 잃을까 염려한다. 이처럼 골몰하다가 그 본심을 잃은 사람이 많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은 도를 행하는 일을 중심으로 해야 하니, 도가 행해질 수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 만약 집안이 가난하여 녹을 받는 벼슬아치에서 벋어날 수 없다면, 반드시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에 나아가며, 높은 지위는 사양하고 낮은 벼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위한 벼슬이라고 하지만,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힘써서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하고, 관직을 버려두고서 먹고 마시기만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