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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 단정 AB A해서는 곧 B하다 ; A하니 곧 B하다
대표 : A 則 B
동의 : 假使 A ; A ; A ; A ; A ; A ; 苟或 A ; 使 A ; 設使 A ; A ; A ; A ; A ; A ; 如其 A ; 如令 A ; 如使 A ; 如使 A ; AB ; AB ; AB ; AB ; AB ; AB ; AB ;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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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勿憚改니라 <論語, 學而第一>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2 子曰 學而不思하고 思而不學니라 <論語, 爲政第二>  
공자가 말하였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3 子曰 奢不孫하고 與其不孫也 寧固니라 <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사치하면 불손하고 검소하면 고루하니, 그 불손하기 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
4 子曰 恭而無禮하고 愼而無禮하고 勇而無禮하고 直而無禮니라 <論語, 泰伯第八>  
공자가 말하였다. “공손하면서도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 삼가면서도 예가 없으면 두렵고, 용감하면서도 예가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강직하면서도 예가 없으면 급해진다.
5 君子篤於親이면 民興於仁하고 故舊 不遺 民不偸니라 <論語, 泰伯第八>  
군자가 친척에게 후하게 하면 백성이 인(仁)에서 떨쳐 일어나고,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이 야박해지지 않는다.”
6 子曰 出事公卿하고事父兄하며 喪事 不敢不勉하며 不爲酒困 何有於我哉 <論語, 子罕第九>  
공자가 말하였다. “나가면 공경(公卿)을 섬기고 들어오면 아버지와 형을 섬기며, 상사(喪事)에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술로 피곤하게 되지 않는 것이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7 不受命이요 而貨殖焉이나屢中이니라 <論語, 先進第十一>  
자공(子貢)은 천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물을 불렸으나, 억측하면 자주 들어맞았다.
8 所謂大臣者 以道事君하다가 不可하나니 <論語, 先進第十一>  
이른바 대신은 도로 임금을 섬기다가 안되면 그치는 것이네.
9 子貢 問友한대 子曰 忠告而善道之호되 不可하여 無自辱焉이니라 <論語, 顔淵第十二>  
자공이 사귐을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진심으로 말하고 (그를) 잘 인도하되, 할 수 없으면 그만두어서, 여기에서 스스로 욕보이지 말아야 한다.”
10 名不正 言不順하고 言不順 事不成하고 <論語, 子路第十三>  
명칭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않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11 事不成禮樂 不興하고 禮樂 不興刑罰 不中하고 刑罰 不中民無所措手足이니라 <論語, 子路第十三>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날 수 없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알맞을 수 없고, 형벌이 알맞지 않으면 백성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
12 好禮民莫敢不敬하고 好義民莫敢不服하고 好信民莫敢不用情이니 夫如是四方之民 襁負其子而至矣리니 焉用稼리오 <論語, 子路第十三>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이 감히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이 감히 복종하지 않음이 없고, 윗사람이 신을 좋아하면 백성이 감히 실정을 쓰지 않음이 없으니, 무릇 이와 같다면 사방의 백성이 제 아이를 강보에 업고서 이를 것이니, 어디에 농사일을 쓰겠는가?”
13 子夏爲莒父宰하여 問政한대 子曰 無欲速하며 無見小利 欲速不達하고 見小利大事不成이니라 <論語, 子路第十三>  
자하가 거보의 가신이 되어 정사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빨리하고자 하지 말며, 작은 이익을 보지 말아야 하니, 빨리하고자 하면 이르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14 孟子曰 仁하고 不仁하나니 惡辱而居不仁 是猶惡濕而居下也니라 <孟子, 公孫丑上>  
맹자가 말하였다. “어질면 영화롭고 어질지 않으면 치욕을 받으니, 지금 〈임금들은〉 치욕 당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어질지 않은 데 거처하니, 이는 습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낮은 곳에 거처하는 것과 같다.
15 不得已而之景丑氏하여 宿焉이러시니 景子曰 內則父子 外則君臣 人之大倫也 父子 主恩하고 君臣 主敬하니 丑見王之敬子也 未見所以敬王也니이다 曰 惡 是何言也 齊人 無以仁義與王言者 豈以仁義爲不美也리오 其心曰 是何足與言仁義也云爾 不敬 莫大乎是하니 非堯舜之道어든 不敢以陳於王前하노니 齊人 莫如我敬王也니라 <孟子, 公孫丑下>  
〈맹자는〉 부득이하게 경추 씨(景丑氏)에게 가서 그 집에서 묵었는데,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안에서는 부자(父子)의 관계, 밖에서는 군신(君臣)의 관계가 사람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 사이에는 은혜를 위주로 하고 군신 사이에는 공경을 위주로 합니다. 저(경추)는 왕이 그대를 공경하는 것은 보았고 〈그대가〉 왕을 공경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제나라 사람 중에 인의(仁義)를 왕과 말하는 자가 없는 것이 어찌 인의를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서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어찌 함께 인과 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해서일 뿐이니 그렇다면 〈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저(맹자)는 요순(堯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그것을 왕 앞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 중에 나처럼 왕을 공경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16 死徙 無出鄕이니 鄕田同井 出入 相友하며 守望 相助하며 疾病 相扶持하면 百姓 親睦하리라 <孟子, 滕文公上>  
〈항산이 있으면〉 장례나 이사에 마을을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정전(井田)을 함께 경작하는 8가구가 나가고 들어올 때 서로 짝하며, 지키고 망을 볼 때 서로 도우며, 병에 걸렸을 때 서로 붙들고 잡아준다면, 백성이 친목할 것입니다.
17 后稷 敎民稼穡하여 樹藝五穀한대 五穀熟而民人育하니 人之有道也 飽食煖衣하여 逸居而無敎 近於禽獸일새 聖人 有憂之하사 使契 爲司徒하여 敎以人倫하시니 父子有親이며 君臣有義 夫婦有別이며 長幼有序 朋友有信이니라 放勳曰 勞之來之하며 匡之直之하며 輔之翼之하여 使自得之하고 又從而振德之라하시니 聖人之憂民 如此하시니 而暇耕乎 <孟子, 滕文公上>  
후직(后稷)이 백성에게 농사를 가르쳐서 오곡(五穀)을 심어서 가꾸게 하니, 오곡이 익고 백성이 〈자식을 낳아〉 기르게 되었네. 사람의 됨됨이는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하게 거처하면서 가르침이 없다면 곧 금수에 가까우니, 성인(堯)이 또 이점을 근심하여 설(契)을 사도(司徒)로 삼아서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하니,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함이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이 있으며,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으며, 벗의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네. 방훈(放勳,堯)이 말씀하시기를, ‘수고로운 자를 위로하고 먼 곳에 있는 자를 오게 하며, 그른 자를 바로잡고 굽은 자를 곧게 하며, 뜻을 세우도록 돕고 인륜의 실천을 도와줘서, 저들로 하여금 스스로 본성을 얻게 하고 또 그들을 이어서 이끌어 은혜를 베풀라.’ 하였으니, 성인이 백성을 근심함이 이와 같았네. 어느 겨를에 농사를 짓겠는가?
18 從許子之道 市賈不貳하여 國中 無僞하여 雖使五尺之童으로 適市라도 莫之或欺 布帛長短同이면 賈相若하며 麻縷絲絮輕重同이면 賈相若하며 五穀多寡同이면 賈相若하며 屨大小同이면 賈相若이니라 <孟子, 滕文公上>  
〈진상(陳相)이 말하였다.〉 “허자(허행)의 도를 따르면, 시장의 가격이 다르지 않아서 나라 안에 속임이 없어져서, 비록 5척의 어린아이를 시장에 가게 하여도 값을 혹 속일 수 없을 것입니다. 포백의 길이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삼실과 풀솜의 무게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오곡의 양이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신발의 크기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습니다.”
19 周霄問曰 古之君子仕乎잇가 孟子曰 仕니라 傳曰 孔子三月無君皇皇如也하사 出疆 必載質라하고 公明儀曰 古之人 三月無君라하니라 <孟子, 滕文公下>  
주소(周霄)가 물었다. “옛날의 군자는 벼슬하였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벼슬하였습니다. 전(傳)에서 이르길 ‘공자는 3개월 동안 〈섬길〉 임금이 없으면 불안한 듯하여, 〈그래서〉 국경을 나갈 때 반드시 폐백을 싣고 갔다.’ 하였고,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길 ‘옛날의 사람은 석 달 동안 〈섬길〉 임금이 없으면 위로하였다.’ 하였습니다.”
20 三月無君弔 不以急乎잇가 <孟子, 滕文公下>  
〈주소가 말하였다.〉 “3개월 〈섬기는〉 군주가 없으면 위로하는 것은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21 曰 士之失位也 猶諸侯之失國家也 禮曰 諸侯耕助하여 以供粢盛하고 夫人蠶繅하여 以爲衣服하나니 犧牲 不成하며 粢盛 不潔하며 衣服 不備하면 不敢以祭하고 惟士無田이면 亦不祭라하니 牲殺器皿衣服 不備하여 不敢以祭 不敢以宴이니 亦不足弔乎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사(士)가 지위를 잃는 것은 제후가 국가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예(禮)》에 이르기를 ‘제후가 밭을 갈면 〈백성이 농사를〉 도와서 자성(粢盛)을 바치고 부인은 누에를 치고 고치를 켜서 〈제사용〉 옷을 만든다. 희생(犧牲)이 자라지 않으며 자성이 깨끗하지 못하며 〈제사용〉 의복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감히 이 때문에 제사 지내지 못한다. 그리고 선비는 〈섬기는 군주가 없어서〉 제전(祭田)이 없으면 또한 제사 지내지 못한다.’ 하니, 희생과 제기와 제복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감히 이 때문에 제사 지내지 못하면 감히 이 때문에 연회를 열지 못하니, 또한 위로하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22 曰 士之仕也 猶農夫之耕也 農夫豈爲出疆하여 舍其耒耜哉리오 曰 晉國 亦仕國也로되 未嘗聞仕如此其急호니 仕如此其急也인댄 君子之難仕 何也잇고 曰 丈夫生而願爲之有室하며 女子生而願爲之有家 父母之心이라 人皆有之언마는 不待父母之命 媒妁之言하고 鑽穴隙相窺하며 踰牆相從하면 父母國人 皆賤之하나니 古之人 未嘗不欲仕也언마는 又惡不由其道하니 不由其道而往者 與鑽穴隙之類也니라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벼슬하는 것은, 농부가 밭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가 어찌 국경을 나가기 위하여 자기의 쟁기와 보습을 버리겠습니까?” 〈주소가〉 말하였다. “진(晉)나라 또한 벼슬할 만한 나라입니다만, 일찍이 벼슬하는 것이 이처럼 매우 조급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벼슬하는 것이 이처럼 매우 조급하다면, 군자가 벼슬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부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아내가 있기를 원하고, 여자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시댁이 있기를 원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모두 그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의 명과 매파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을 뚫어서 서로 엿보고 담장을 넘어 서로 따른다면, 부모와 나라 사람이 모두 그들을 천시할 것입니다. 옛날의 사람들이 일찍이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또한,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미워하였으니, 올바른 길을 통하지 않고서 가는 것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은 부류입니다.”
23 彭更 問曰 後車數十乘 從者數百人으로 以傳食於諸侯 不以泰乎잇가 孟子曰 非其道인댄 一簞食라도 不可受於人이어니와 如其道인댄 則舜受堯之天下하사되 不以爲泰하시니 子以爲泰乎 <孟子, 滕文公下>  
팽경(彭更)이 물어 말하였다. “뒤따르는 수레 수십 대와 따르는 사람 수백 명으로 제후에게 음식을 접대 받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알맞은 도가 아니라면 한 그릇의 밥이라도 남에게 받을 수 없지만, 만일 알맞은 도라면 순(舜)이 요(堯)임금의 천하를 받되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자네는 그것을 지나치다고 여기는가?”
24 曰 子不通功易事하여 以羨補不足이면 農有餘粟하며 女有餘布어니와 子如通之 則梓匠輪輿 皆得食於子하리니 於此 有人焉하니하고하여 守先王之道하여 以待後之學者호되 而不得食於子하리니 子何尊梓匠輪輿而輕爲仁義者哉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자네가 공인이 〈만든 물건을〉 유통시켜 일의 〈결과물을〉 바꾸어서 남는 것을 부족한 곳에 보충하지 않는다면, 농부는 남는 곡식이 있고 여자는 남은 베가 있을 것이네. 자네가 만일 남는 것을 유통하면, 목공과 수레공이 모두 자네에게 음식을 얻게 될 것이네. 여기에 사람이 있는데, 들어가면 효도하고 나오면 공경하여 선왕의 도를 지켜서 훗날의 학자를 기다리면, 자네에게 음식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니, 자네는 어찌 목공과 수레공을 높이면서 인의(仁義)를 행하는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가?”
25 曰 有人於此하니 毁瓦畫墁이요 其志將以求食也 子食之乎 曰否니이다 曰 然子非食志也 食功也로다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기와를 훼손하며 벽에 낙서하고 그 뜻이 장차 그것으로 녹봉을 구하려 한다면, 자네는 그에게 녹을 주겠는가?” 〈팽경이〉 말하였다. “안줍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자네는 뜻을 〈보고〉 녹을 주는 것이 아니네. 공을 〈보고〉 녹을 주는 것이네.”
26 太誓曰 我武 惟揚하여 侵于之疆하여 取于殘하여 殺伐 用張하니 于湯 有光이라하니라 <孟子, 滕文公下>  
《서경》 〈태서(太誓)〉에 이르기를 ‘우리 〈주(周)나라의〉 무력을 드날려서 주왕(紂王)의 국경을 침략하여 곧 〈백성에게〉 포악한 자를 잡아들여 정벌의 〈공이〉 이로써 펼쳐지니 탕(湯)임금의 〈정벌〉보다 영광이 있다.’ 하였네.
27 陽貨欲見孔子而惡無禮하여 大夫有賜於士어든 不得受於其家 往拜其門일새 陽貨矙孔子之亡也하여 而饋孔子蒸豚한대 孔子亦矙其亡也하여 而往拜之하시니 當是時하여 陽貨先이면 豈得不見이시리오 <孟子, 滕文公下>  
양화(陽貨)는 〈먼저 찾아와 준〉 공자와 만나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찾지 않아〉 무례하다는 〈평은 듣기〉 싫어했네. 〈예(禮)에 이르길〉 ‘대부가 사(士)에게 하사한 것이 있는데 〈사가〉 자신의 집에서 받을 수 없다면 대부의 문에 가서 절한다.’ 하였으니, 양화는 〈일부러〉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엿보아서 공자에게 삶은 새끼돼지를 보냈는데, 공자 역시 양화가 집에 없는 틈을 엿보아서 양화의 대문에 가서 절하였다네. 그 당시에 양화가 〈예를〉 먼저 갖췄다면 어찌 만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28 聖王 不作하여 諸侯放恣하며 處士橫議하여 楊朱墨翟之言 盈天下하여 天下之言 不歸楊則歸墨하니 楊氏 爲我하니 是無君也 墨氏 兼愛하니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니라 公明儀曰 庖有肥肉하며 廐有肥馬하고 民有飢色하며 野有餓莩 率獸而食人也라하니 楊墨之道不息하면 孔子之道不著하리니 邪說 誣民하여 充塞仁義也 仁義充塞이면 率獸食人하다가 人將相食하리라 <孟子, 滕文公下>  
성왕(聖王)이 나오지 않으니 제후들이 방자하고 처사(處士)들이 제멋대로 의논하여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여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몰리지 않으면 묵적에게 몰렸네. 양씨는 ‘위아설’을 주장하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고, 묵씨는 ‘겸애설’을 주장하니 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네.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것, 이것이 금수라네. 공명의가 말하길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진 말이 있는데도 백성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주려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고서 사람을 먹는 것이다.’ 하니, 양주와 묵적의 도가 사라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바르지 않은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과 의를 막는 것이네. 인과 의가 막히면,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하다가 사람이 장차 서로 먹게 될 것이네.
29 詩云 戎狄是膺하니 荊舒是懲하여 莫我敢承이라하니 無父無君 是周公所膺也니라 <孟子, 滕文公下>  
《시경》 〈비궁(閟宮)〉에 이르길 ‘융(戎)과 적(狄)을 공격하니, 형(荊)과 서(舒)를 징계하여 곧 나를 감히 막는 이가 없었다.’ 하니,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것, 이것은 주공이 응징한 것이네.
30 孟子曰 於齊國之士 吾必以仲子 爲巨擘焉이어니와 雖然이나 仲子惡能廉이리오 充仲子之操 蚓而後 可者也니라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제(齊)나라의 선비 중에 나는 반드시 중자(仲子)를 거벽(巨擘)으로 여기네. 비록 그렇지만 중자를 어찌 청렴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자의 지조를 채우려면 지렁이인 뒤에야 가능할 것이네.
31 以母不食하고 以妻食之하며 以兄之室弗居하고 以於陵居之하니 是尙爲能充其類也乎 若仲子者 蚓而後充其操者也니라 <孟子, 滕文公下>  
어머니가 〈준〉 경우에는 〈의롭지 않다 여겨〉 먹지 않고, 아내가 〈준〉 경우에는 그것을 먹으며, 형의 집에 〈사는〉 경우에는 〈의롭지 않다 여겨〉 살지 않고, 오릉에 〈사는〉 경우에는 그곳에 살았으니, 이런데도 오히려 그 〈지조의〉 유를 채울 수 있다 하겠는가? 중자와 같은 자는 지렁이가 〈된〉 뒤에야 그 지조를 채울 자라네.”
32 事君無義하며 進退無禮하고非先王之道者 猶沓沓也니라 <孟子, 離婁上>  
임금을 섬김에 의(義)가 없으며 나아가고 물러남에 예(禮)가 없고, 말만하면 선왕의 도를 비난하는 것이 답답(沓沓)과 같은 것이다.
33 暴其民하면 身弑國亡하고 不甚하면 身危國削하나니 名之曰幽厲 雖孝子慈孫이라도 百世 不能改也니라 <孟子, 離婁上>  
제 백성에게 포학한 것이 심하면 자신은 시해되며 나라가 망하고, 심하지 않으면 자신은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줄어드니, 이름하기를 ‘유’, ‘려’라 하면 비록 효자와 자애로운 자손이라도 백세토록 바꿀 수 없을 것이다.
34 孟子曰 不仁者 可與言哉 安其危而利其菑하여 樂其所以亡者하나니 不仁而可與言이면 何亡國敗家之有리오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불인(不仁)한 사람과 더불어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의 위태로움을 편안하게 여기고 자신의 재앙을 이롭게 여겨서 그 망하는 원인을 즐기나니, 불인한데도 더불어 말할 수 있다면 어찌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무너트리는 일이 있겠는가?
35 今天下之君 有好仁者 諸侯皆爲之敺矣리니 雖欲無王이나 不可得已니라 <孟子, 離婁上>  
지금 천하의 임금 중에 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후가 모두 백성을 위하여 몰아줄 것이니, 비록 왕 노릇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36 孟子曰 存乎人者 莫良於眸子하니 眸子不能掩其惡하나니 胸中이면 眸子瞭焉하고 胸中 不正이면 眸子眊焉이니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에게 있는 것은 눈동자보다 좋은 것은 없으니, 눈동자가 자기의 악을 가릴 수 없다. 마음에 품은 것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에 품은 것이 바르지 않으면 눈동자가 흐리다.
37 淳于髡曰 男女授受不親 禮與잇가 孟子曰 禮也니라 曰 嫂溺이어든 援之以手乎잇가 曰 嫂溺不援이면 豺狼也 男女授受不親 禮也 嫂溺이어든 援之以手者 權也니라 <孟子, 離婁上>  
순우곤(淳于髡)이 말하였다. “남녀가 주고받을 때 직접 하지 않는 것이 예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예입니다.” 〈순우곤이〉 말하였다.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형수를 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 구하지 않으면 이는 승냥이와 이리입니다. 남녀가 주고받을 때 직접 하지 않는 것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 손으로 형수를 구하는 것은 권도(權道)입니다.”
38 孟子曰 勢不行也니라 敎者 必以正이니 以正不行이어든 繼之以怒하고 繼之以怒 反夷矣 夫子敎我以正하사되 夫子 未出於正也라하면 是父子相夷也 父子相夷 則惡矣니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형편상 행할 수 없어서라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정도(正道)로써 〈가르치니〉 정도로써 〈가르쳐〉 행해지지 않으면 노여움으로 정도를 뒤따르게 하고, 노여움으로 정도를 뒤따르게 하면, 도리어 〈부자의 의(義)가〉 상하니, ‘아버지[夫子]가 나를 정도로써 가르치면서, 아버지의 〈행동도〉 정도에서 나오지 않는구나.’ 하면,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의가〉 상하는 것이니,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의가〉 상하면 나쁜 것이네.
39 父子之間 不責善이니 責善하나니不祥 莫大焉이니라 <孟子, 離婁上>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에는 선(善)을 요구하지 않으니, 선을 요구하면 〈부자의 정이〉 떨어지니, 〈정이〉 떨어지면 상서롭지 못한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네.”
40 曾子養曾晳하사되 必有酒肉이러시니 將徹할새 必請所與하시며 問有餘어든 必曰有라하더시다 曾晳커늘 曾元 養曾子호되 必有酒肉하더니 將徹할새 不請所與하며 問有餘어시든 曰亡矣라하니 將以復進也 此所謂養口體者也 若曾子 可謂養志也니라 <孟子, 離婁上>  
증자(曾子)가 증석(曾晳)을 봉양할 때 반드시 술과 고기를 올렸는데, 장차 치우려 할 때 반드시 〈증석에게〉 줄 곳을 물었으며, 남은 것이 있는지 물으면 반드시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증석이 죽자, 증원(曾元)이 증자를 봉양할 때 반드시 술과 고기를 올렸는데, 장차 치우려 할 때 〈증자에게〉 줄 곳을 묻지 않았으며, 남은 것이 있는지 물으면 ‘없습니다.’라고 답하였으니, 장차 남은 것을 〈증자에게〉 다시 올리려는 것이었다. 이는, 이른바 ‘〈어버이의〉 입과 몸을 봉양하는 것’이니, 증자처럼 한다면 ‘〈어버이의〉 뜻을 봉양했다.’고 이를 만하다.
41 樂正子見孟子한대 孟子曰 子亦來見我乎 曰 先生 何爲出此言也시니잇고 曰 子來幾日矣 曰 昔者니이다 曰 昔者 我出此言也 不亦宜乎 曰 舍館 未定이러이다 曰 子聞之也 舍館 定然後 求見長者乎 <孟子, 離婁上>  
악정자(樂正子)가 맹자를 뵙자,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도 나를 찾아와 만나는가?” 〈악정자가〉 말하였다. “선생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십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자네가 〈이곳에〉 온 것이 며칠인가?” 〈악정자가〉 말하였다. “어제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어제 〈왔다〉면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악정자가〉 말하였다. “객사가 정해지지 않않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자네는 그리 들었는가? 객사가 정해진 뒤에 장자를 찾아뵙는다고?”
42 智之實 知斯二者하여 弗去 是也 禮之實 節文斯二者 是也 樂之實 樂斯二者生矣惡可已也리오 惡可已 不知足之蹈之하며 手之舞之니라 <孟子, 離婁上>  
지(智)의 실제는 〈인의〉 이 두 가지를 알고서 떠나지 않는 것이 그것이고, 예(禮)의 실제는 〈인의〉 이 두 가지를 절도에 맞추고 꾸미는 것이 그것이고, 음악의 실제는 〈인의〉 이 두 가지를 즐거워하는 것이니, 즐거워하면 〈인과 의가〉 생겨날 것이니, 〈인의가〉 생겨난다면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어찌 그만둘 수 있는가?’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발은 구르고 손은 춤출 것이다.”
43 曾子居武城하실새 有越寇러니 或曰 寇至하나니 盍去諸리오 曰 無寓人於我室하여 毁傷其薪木하라 寇退則曰 修我牆屋하라 我將反호리라 寇退어늘 曾子反하신대 左右曰 待先生 如此其忠且敬也어늘 寇至先去하여 以爲民望하시고 寇退하시니 殆於不可로소이다 沈猶行曰 是 非汝所知也 沈猶有負芻之禍어늘 從先生者七十人 未有與焉이라하니라 <孟子, 離婁下>  
증자(曾子)가 무성(武城)에 살 때 월(越)나라의 약탈이 있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도적이 이르렀으니 어찌 떠나지 않습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내 집에 사람을 붙여두어 그 땔감과 나무를 훼손시키지 말라.” 도적이 물러가자 곧 〈증자가〉 말하였다. “나의 담장과 지붕을 보수하라. 나는 장차 돌아가겠다.” 도적이 물러가고 증자가 돌아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하였다. “선생을 대함이 이처럼 매우 충성하고 또 공경하였는데, 도적이 오자 곧 먼저 떠나서 백성의 본보기가 되시고, 도적이 물러가자 곧 돌아오니, 옳지 않은 일에 가깝습니다.” 심유행(沈猶行)이 말하였다. “이것은 너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심유씨 집안에 부추(負芻)의 반란이 있었는데, 선생을 따르는 자 칠십 명은 난에 함께한 자가 있지 않았다네.”
44 曰 耆秦人之炙 無以異於耆吾炙하니 夫物 則亦有然者也耆炙 亦有外與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진나라 사람이 〈만든〉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이 내가 〈만든〉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대체로 물건이 또한 그러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 또한 외면에 있습니까.”
45 曰 虞不用百里奚而亡하고 秦穆公 用之而霸하니 不用賢이니 何可得與리오 <孟子, 告子下>  
〈맹자가〉 말하였다. “우(虞)나라는 백리해(百里奚)를 쓰지 않아서 망하였고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백리해를 써서 패자가 되었으니, 어진 이를 쓰지 않으면 망하니 〈나라가〉 줄어드는 것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46 奚爲喜而不寐시니잇고 <孟子, 告子下>  
〈공손추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기뻐서 잠들지 못했습니까?”
47 孟子曰 古之賢王 好善而忘勢하더니 古之賢士 何獨不然이리오 樂其道而忘人之勢 王公 不致敬盡禮 不得亟見之하니 見且猶不得亟 而況得而臣之乎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의 어진 왕들이 선을 좋아하여 〈자기〉 세력을 잊었는데 옛날의 어진 선비들이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도를 즐거워하고 남의 세력을 잊었다. 그러므로 왕과 공이라도 공경을 다하고 예를 다하지 않으면 어진 선비를 자주 만날 수 없었으니 만나는 것도 오히려 자주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얻어서 어진 선비를 신하로 삼는 것에서야?”
48 惟天下至誠이야 爲能盡其性이니 能盡其性이면 能盡人之性이요 能盡人之性이면 能盡物之性이요 能盡物之性이면 可以贊天地之化育이요 可以贊天地之化育이면 可以與天地參矣니라 <中庸, 中庸>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을 (가진 사람이라야) 그 성을 다할 수 있으니 그 성을 다 할 수 있다면 사람의 성을 다 할 수 있을 것이오, 사람의 성을 다 할 수 있다면 물건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며, 물건의 성을 다할 수 있다면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면 천지와 더불어 참여할 수 있다.
49 孟子道性善하시되 言必稱堯舜이러시니 其言曰 舜 爲法於天下하사 可傳於後世어시늘 猶未免爲鄕人也하니可憂也憂之如何 如舜而已矣라하시니 摭往行하며 實前言하여 述此篇하여 使讀者 有所興起하노라 <小學, 稽古第四>  
맹자가 성의 선함을 말하면서, 말마다 반드시 요와 순을 일컬었다. 그 말씀에 말하였다. “순은 천하에 법이 되어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향인이 됨을 면치 못하니, 이것은 근심할 만한 하다. (그것을) 근심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순과 같이할 뿐이다.” 지나간 행적을 뽑고 지난 말씀을 실증하여, 이 편을 지어 읽는 자들에게 흥기하는 바가 있게 한다.
50 橫渠張先生曰 敎小兒하되 先要安詳恭敬이니 今世 學不講하여 男女從幼便驕惰壞了하여 到長益凶狠하나니 只爲未嘗爲子弟之事 於其親 已有物我하여 不肯屈下하여 病根常在하여 又隨所居而長하여 至死只依舊하나니라 <小學, 嘉言第五>  
횡거장 선생이 말하였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되 먼저 안정되고 상세하며 공손하고 공경함을 요구하니, 지금 세상에는 학문을 강론하지 않아서 남자와 여자가 어려서부터 곧 교만하고 게을러 망가져서 장성함에 이르러 더욱 포악하고 사나워지니, 다만 일찍이 자식과 아우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그 부모에게 이미 남과 내가 있어서 (자신을) 굽혀 낮추기를 즐기지 않아서 병의 근원이 항상 있어 또 거처하는 바를 따라서 자라나, 죽음에 이르도록 다만 옛것을 따른다.
51 兄弟者 分形連氣之人也 方其幼也 父母左提右挈하며 前襟後裾하여同案하고傳服하며連業하고共方하니 雖有悖亂之人이라도 不能不相愛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형과 동생은 형체를 나누고 기를 이은 사람이니, 한창 그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왼쪽에서 잡아주고 오른쪽에서 이끌어주며, 앞에서 옷깃을 당기고 뒤에서 옷섶을 잡아주어, 먹을 적엔 밥상을 함께하고 입을 적엔 옷을 물려주고 배울 적엔 학업을 이어주고 놀 적엔 장소를 같이 하니, 비록 어긋나고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52 柳開仲塗曰 皇考治家하시되 孝且嚴이러시니 旦望 弟婦等 拜堂下畢하고 卽上手低面하여 聽我皇考訓誡하더니 曰 人家兄弟無不義者언마는 盡因娶婦入門하여 異姓 相聚하여 爭長競短하여 漸漬日聞하며 偏愛私藏하여 以致背戾하여 分門割戶하여 患若賊讐하나니 皆汝婦人所作이니라 男子剛腸者幾人 能不爲婦人言所惑 吾見 多矣 若等 寧有是耶리오하여시든 退惴惴하여 不敢出一語爲不孝事하니 開輩抵此賴之하여 得全其家云이로라 <小學, 嘉言第五>  
유개 중도가 말하였다. “선친이 집안을 다스리되 효성스럽고 또 엄격하였다. 초하루와 보름에 자제와 며느리 무리가 대청 아래에서 절하고서 마치고는 곧 손을 들고 얼굴을 숙이고서 우리 선친의 가르침과 훈계를 들었는데 말하였다. ‘사람의 집에 형과 동생이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모두 아내를 맞이하여 집안에 들임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이 서로 모여 장점을 다투고 단점을 다투어 점차 (참소가) 젖어 들고 날로 (참소가) 들리며, 편벽되이 사랑하고 사사로이 저축하여 그것으로 등지고 어긋남에 이르러 집안을 나누고 집안을 쪼개어 근심하기를 도적과 원수처럼 여기니, 모두 너희 부인 된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남자로서 심장이 강한 사람 몇 사람이 부인 된 사람의 말에 미혹되는 바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본 것이 많으니, 너희들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제와 며느리가) 물러나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효성스럽지 않은 일 함을 한 마디도 내지 못하니, 유개 무리가 지금에 이르도록 (그것에) 힘입어 그 집안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
53 伊川先生曰 只整齊嚴肅이면 心便一이니自無非辟之干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다만 단정히 하고 가지런히 하며 엄하고 엄숙하게 하면 마음이 곧 전일해지니, 전일하면 저절로 잘못되고 사악함의 범함이 없게 된다.
54 其言箴曰 人心之動 因言以宣하나니 發禁躁妄이라사 內斯靜專하나니라 矧是樞機 興戎出好하나니 吉凶榮辱 惟其所召니라 傷易이요 傷煩하며 己肆物忤하고 出悖來違하나니 非法不道하여 欽哉訓辭하라 <小學, 嘉言第五>  
그 말하는 것에 대한 경계에서 말하였다. ‘사람 마음의 움직임은 말을 인하여 펴지니, 말할 적에 조급하고 망령됨을 금해야 안이 이에 고요하고 전일해진다. 하물며 이는 지도리와 기틀이니,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호를 내기도 하니, 길함과 흉함과 영화와 치욕은 오직 그것이 부르는 바이다. 쉽게 함에 손상되면 허탄해지고, 번다함에 손상되면 지리해지며, 자신이 함부로 하면 남이 거스르고, 나가는 것이 어그러지면 오는 것이 어긋나니, 법도가 아니면 말하지 말아 훈계한 말을 공경하라!’
55 攻其惡이요 無攻人之惡이니 盖自攻其惡이면 日夜 且自點檢하여 絲毫不盡이라도 慊於心矣 豈有工夫點檢他人耶리오 <小學, 嘉言第五>  
자기의 악을 다스리고, 남의 악을 다스리지 말 것이니, 대개 스스로 자기의 악을 다스리면 낮과 밤으로 우선 스스로 점검하고 검사하여 실과 터럭만큼이라도 다하지 못하면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하니, 어찌 공부가 다른 사람을 점검하고 검사할 겨를이 있겠는가?
56 一日 疾病이어늘 長幼咸萃러니 宣言無以報新婦恩이로소니 願新婦 有子有孫 皆得如新婦 孝敬하노니 崔之門 安得不昌大乎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하루는 심하여 (장손부인의) 병이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였는데, (장손부인이) 선언하기를 “이로써 신부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다. 신부는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으니, 모두 신부처럼 효도하고 공경할 수 있기를 바라노니, 곧 최씨의 집안이 어찌 번창하고 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57 伊川先生曰 安定之門人 往往 知稽古愛民矣 於爲政也 何有리오 <小學, 善行第六>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안정의 문인이 왕왕 옛날을 고찰하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알았으니, 곧 정사를 하는 것에는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58 楊播家世純厚하여 竝敦義讓하여 昆季相事하되 有如父子하더니 椿津 恭謙하여 兄弟旦聚於廳堂하여 終日相對하여 未嘗入內하며 有一美味어든 不集不食하니라 廳堂間 往往幃幔隔障하여 爲寢息之所하여 時就休偃하고 還共談笑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양파의 가문은 대대로 순후하여 모두 의리와 겸양을 돈독히 하여 형제가 서로 섬기기를 부자 같음이 있었다. 양춘과 양진은 공손하고 겸손하여 형제가 아침에 곧 대청에 모여서 날을 마치도록 서로 마주하여 일찍이 안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한 가지라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형제들이) 모이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대청 사이에 왕왕 휘장으로 사이를 막아 자거나 쉬는 곳으로 삼고는 때로 나아가 쉬고 누우며 돌아와 함께 담소하곤 하였다.
59 司馬溫公 與其兄伯康으로 友愛尤篤이러니 伯康 年將八十이라 奉之如嚴父하며 保之如嬰兒하여 每食少頃이면 問曰 得無饑乎아하며 少冷이면 拊其背曰 衣得無薄乎아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사마온공은 그 형 백강과 우애가 특별히 돈독하였다. 백강이 나이가 장차 80이 되려는데, 온공이 (그를) 엄한 아버지처럼 받들었고 (그를) 어린아이처럼 돌보아서 매양 밥을 먹고 조금 지나서 곧 물어 말하기를 “배고픔이 없습니까? 하고 날씨가 조금 추워지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옷이 얇지는 않습니까?
60 日出於東方하여 入於西方하니 日出爲晝 日入爲夜月星 著見焉하나니라 <啓蒙篇, 天篇>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들어가니, 해가 나오면 낮이 되고, 해가 들어가면 밤이 되니, 밤이면 달과 별이 여기에 나타난다.
61 春三月盡이면 爲夏하고 夏三月盡이면 爲秋하고 秋三月盡이면 爲冬하고 冬三月盡이면 復爲春이니 四時相代而歲功成焉이니라 <啓蒙篇, 天篇>  
봄 석 달이 다하면 여름이 되고, 여름 석 달이 다하면 가을이 되며, 가을 석 달이 다하면 겨울이 되고, 겨울 석 달이 다하면 다시 봄이 되니, 사계절이 서로 번갈면서 한 해의 계절 변화가 거기에서 이루어진다.
62 天地生物之數 有萬其衆이로되 而若言其動植之物이면 草木禽獸蟲魚之屬 最其較著者也니라 <啓蒙篇, 物篇>  
천지의 생물의 수가 그 무리가 수 만 가지나 있는데, 만약 그 움직이고 서 있는 물건[動物 植物]을 말한다면 풀과 나무, 새와 짐승, 벌레와 물고기의 무리가 거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다.
63 耕於野者 食君之土하고 立於朝者 食君之祿이니 固非父母則不生이요 亦非君則不食이라 臣之事君 如子之事父하여 唯義所在 舍命效忠이니라 <啓蒙篇, 人篇>  
들에서 밭 가는 사람은 임금의 토지에서 먹고, 조정에 선 사람은 임금의 녹을 먹으니, 사람은 진실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또한 임금이 아니면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하가 임금 섬기기를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이해서, 오직 의리가 있는 곳에는 곧 목숨을 바치고 충성을 바친다.
64 五書五經 循環熟讀하여 理會不已하여 使義理日明하고 而宋之先正所著之書 如近思錄 家禮 心經 二程全書 朱子大全 語類 及他性理之說 宜間間精讀하여 使義理常常浸灌吾心하여 無時間斷하고 而餘力 亦讀史書하여 通古今 達事變하여 以長識見이니 若異端雜類不正之書 不可頃刻披閱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다섯 책과 다섯 경전을 돌려가며 익숙히 읽어 이해하기를 그치지 않아서 의리가 날로 밝아지게 하고 송나라의 선대 바른 사람들이 지은 바의 책에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전서, 어류 및 기타 성리학의 내용같은 것을 의당 틈틈이 정밀히 읽어서 의리가 항상 내 마음에 젖어 들어 때마다 끊김이 없게 하고, 남은 여가에 또한 역사책을 읽어 옛날과 지금의 일에 통하고 일의 변화에 통달하여 식견을 신장시켜야 한다. 이단잡류의 바르지 못한 책 같은 것은 잠시라도 펼쳐 열어보아선 안 된다.
65 或有水火盜賊이어든 先救祠堂하여 遷神主遺書하고 次及祭器하고 然後及家財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혹 수재, 화재가 생기거나 도둑이 들면 곧 먼저 사당을 구하여 신주와 유서를 옮기고, 다음으로는 제기에 이르고, 그러한 뒤에 가재에 이른다.
66 繼繼承承하사 重熙累洽 寔是至仁盛德 深恩隆惠 垂裕後昆之致시니 繼體之君 式體至德하야 兢兢業業하야 誠心調劑하야 蕩蕩하며 誠心愛民하야 永保元元이면 吾國 其庶幾也 吾國 其庶幾也인저 <童蒙先習, 御製童蒙先習序>  
아! 끊임없이 이어서 거듭 빛내고 어려번 젖어듬은 진실로 이는 지극하고 어진 성덕과 깊고 높은 은혜를 수유후곤 한 것에 이르니 체통을 이어갈 군주가 몸소 지극한 덕을 본받아 긍긍업업 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조제하여 평탄함에 이르며진실된 마음으로 백성들을 사랑하여 모든 백성을 길이 보호한다면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며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다.
67 凡祭 主於盡愛敬之誠而已稱家之有無하고量筋力而行之호되 財力可及者 自當如儀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제사는 사랑하고 공경하는 정성을 다하는 것을 위주로 할 뿐이다. 가난하면 집안의 (재산이) 있고 없음에 맞추어 하고, 병이 들면 근력을 헤아려서 (그것을) 행하면 된다. 재물과 힘이 미칠 수 있는 자는 스스로 마땅히 예법과 같이해야 한다.
68 兄弟 同受父母遺體하여 與我如一身하니 視之 當無彼我之間하여 飮食衣服有無 皆當共之니라 設使兄飢而弟飽하고 弟寒而兄溫이면 是一身之中 肢體或病或健也 身心 豈得偏安乎 今人 兄弟不相愛者 皆緣不愛父母故也 若有愛父母之心이면 則豈可不愛父母之子乎 兄弟 若有不善之行이면 則當積誠忠諫하여 漸喩以理하여 期於感悟 不可遽加 厲色拂言하여 以失其和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형제는 부모가 남겨준 몸을 함께 받아서 나와는 한 몸과 같다. (그를) 볼 때 마땅히 서로의 간격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이 있고 없음을 모두 마땅히 (생략) 함께 해야 한다. 가령 형은 굶으나 동생은 배부르고, 동생은 추우나 형은 따뜻하다면 곧 이는 한 몸의 가운데 지체가 혹 병들고 혹 건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생략) 때문이다. 만약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생략)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약 좋지 못한 행실이 있다면 (생략) 마땅히 정성을 쌓아 진실스럽게 충고해서 점차 도리로서 깨우쳐 감동하여 깨닫기를 기약해야 하니, 대뜸 사나운 낯빛과 거슬리는 말을 가하여서 그 부드러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69 生子 自稍有知識時 當導之以善이니 若幼而不敎하여 至於旣長이면 則習非放心하여 敎之甚難이니 敎之之序 當依小學이니라 大抵一家之內 禮法興行하고 簡編筆墨之外 無他雜技 子弟亦無外馳畔學之患矣리라 兄弟之子 猶我子也 其愛之 其敎之 當均一이요 不可有輕重厚薄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자식을 낳으면 (자식이) 약간 지식이 생길 때부터 마땅히 (그를) 선으로 인도해야 하니,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미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곧 나쁜 것을 익히고 마음을 풀어놓아 (그를) 가르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를) 가르치는 순서는 마땅히 소학을 따라야 한다. 무릇 한 집안의 안에 예법이 흥행하고 편지, 책, 글씨 쓰기(생략) 외에 다른 잡기가 없으면 (생략) 자제들 또한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 배움을 저버리는 근심이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은 나의 자식과 같다. 그 (조카를) 사랑하고 그 (조카를) 가르치는 것을 마땅히 균일하게 해야 하고, 가볍게 하거나 중하게 하고, 후하게 하거나 박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70 婢僕 代我之勞하니 當先恩而後威라야 乃得其心이니 君之於民 主之於僕 其理一也 君不恤民則民散이니 民散則國亡하고 主不恤僕則僕散이니 僕散則家敗 勢所必至 其於婢僕 必須軫念飢寒하여 資給衣食하여 使得其所하고 而有過惡이면 先須勤勤敎誨하여 使之改革하고 敎之不改然後 乃施楚撻하여 使其心으로 知厥主之楚撻 出於敎誨 而非所以憎嫉이니 然後 可使改心革面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하인은 나의 수고를 대신해주니, 마땅히 은혜를 먼저하고 위엄을 뒤로 하면 해야만 이에 그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임금이 백성에 대해서와 주인이 하인에 대해서는 그 이치가 하나이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지니,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며, 주인이 하인을 돌보지 않으면 하인이 흩어진다. 하인이 흩어지면 집안이 패망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 하인에 대하여 반드시 (생략) (그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 것을 깊이 염려하여 옷과 음식을 공급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알맞은 곳을 얻게 하고, 허물과 악행이 있으면 (생략) 먼저 반드시 부지런히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 을 고치게 하고 (그를) 가르쳐도 고치지 않은 뒤에 이에 회초리질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마음에 그 주인의 회초리질이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고, 미워하기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러한 뒤에야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고치고 얼굴을 고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71 君子憂道 不當憂貧이니 但家貧하여 無以資生이면 雖當思救窮之策이나 亦只可免飢寒而已 不可存居積豊足之念이며 且不可以世間鄙事 留滯于心胸之間이니라 古之隱者 有織屨而食者 樵漁而活者 植杖而耘者하니 此等人 富貴不能動其心이라 能安於此하니 若有較利害計豊約之念이면 則豈不爲心術之害哉 學者 要須以輕富貴守貧賤爲心이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마땅히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함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 할 뿐이고, 쌓아두고 풍족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생략)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 사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김을 매는 사람이 있으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부유함과 귀함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비교하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략) 어찌 마음의 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모름지기 부유함과 귀함을 가볍게 여기고 가난함과 천함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72 居家 貧窶 必爲貧窶所困하여 失其所守者多矣 學者 正當於此處用功이니 古人曰 窮視其所不爲하며 貧視其所不取라하고 孔子曰 小人 窮斯濫矣라하시니 若動於貧窶하여 而不能行義 則焉用學問爲哉리오 凡辭受取與之際 必精思義與非義하여取之하고 不義則不取하여 不可毫髮放過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집에서 생활할 때 가난하면 (생략) 반드시 가난에 곤궁한 바 되어서 그 지키는 (생략) 것을 잃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바로 마땅히 이곳에서 노력해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였다. “곤궁할 때 그가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난할 때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본다.” 공자가 “소인은 가난하면 넘친다” 라고 하였다. 만약 가난함에 움직여서 의를 행할 수 없다면, (생략)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무릇 사양하고 받고 가지고 주는 사이에 반드시 의인지와 의가 아닌지를 정밀하게 생각하여 의라면 (그것을) 가지고, 의가 아니라면 가지지 않아서 터럭만큼도 그대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
73 若朋友 則有通財之義하니 所遺 皆當受로되 但我非乏而遺以米布 不可受也니라 其他相識者 則只受其有名之饋하고 而無名不可受也 所謂有名者 賻喪 贐行 助婚禮 周飢乏之類 是也 <擊蒙要訣, 擊蒙要訣>  
친구의 경우는 곧 재물을 통하는 의가 있으니, 주는 것을 모두 마땅히 받는다. 다만 내가 궁핍하지 않은데도 쌀과 베를 준다면 (생략) 받아서는 안 된다. 기타 서로 아는 사람은 (생략) 다만 그 명분이 있는 선물을 받고, 명분이 없으면 받아서는 안 된다. 이른바 명분이 있다는 것은 상례에 부의하고, 여행에 노자를 주고, 혼례에 부조하고, 가난에 도와주는 종류가 이것이다.
74 若是大段惡人心所鄙惡者 則其饋雖有名이나 受之 心必不安이리니 心不安이면 不可抑而受之也니라 孟子曰 無爲其所不爲하며 無欲其所不欲이라하시니 此是行義之法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만약 (생략) 대단한 악인이어서 (나의) 마음에 비루하고 악하다고 여기는 바의 사람이라면, 곧 그의 선물이 비록 명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받으면 마음이 반드시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면, 억지로 하여 (그것을) 받아서는 안된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며, 그 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의를 행하는 방법이다.
75 中朝則列邑之宰 有私俸이라 推其餘하여 可以周人之急矣어니와 我國則守令 別無私俸하고 只以公穀으로 應日用之需어늘 而若私與他人이면 則不論多少하고 皆有罪譴하여至於犯贓하고 受者亦然하니 爲士而受守令之饋 是乃犯禁也 古者 入國而問禁하니 則居其國者 豈可犯禁乎 守令之饋 大抵難受하니 若私與官庫之穀이면 則不論人之親疏名之有無物之多寡하고 皆不可受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중국은 여러 읍의 관리에게 사사로운 녹봉이 있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를 미루어서 이로써 남의 위급함을 도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령에게 따로 사사로운 녹봉이 없다. 다만 공곡으로 일상생활의 비용에 응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사사로이 다른 사람에게 준다면 곧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벌과 꾸짖음이 있다. 심하면 장물죄를 범하는 것에 이르고, 받은 사람 또한 그러하다. 선비가 되어 수령의 선물을 받으면 곧 이는 바로 금령을 범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의) 금령을 물었으니, 그렇다면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어찌 금령을 범할 수 있겠는가? 수령의 선물은 대개 받기가 어려운 것이니, 만약 사사롭게 국고의 곡식을 준다면 곧 사람이 친한지 소원한지와 명분이 있고 없는지와 물건이 많고 적은지를 따지지 않고 모두 받아서는 안 된다.
76 接人章 第九: 凡接人 當務和敬이니 年長以倍어든 父事之하고 十年以長이어든 兄事之하고 五年以長이어든 亦稍加敬이니 最不可恃學自高尙氣陵人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접인장 제 9권무릇 사람을 접할 때는 마땅히 온화하고 공경함을 힘써야 하니, (나보다) 나이가 곱절이 많으면 (그를) 아버지처럼 섬기고 십 년이 많으면 (그를) 형처럼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의 공경을 가할 것이니, 학문을 믿고서 스스로 높은 체하며, 기운을 숭상하여서 남을 업신여기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77 鄕人之善者 則必須親近通情하고 而鄕人之不善者 亦不可惡言揚其陋行이요 但待之泛然하여 不相往來 若前日相知者 則相見 只敍寒暄하고 不交他語 自當漸疎하여 亦不至於怨怒矣리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향인 중에 선한 사람은 곧 반드시 모름지기 친근하게 하여 정을 통하고, 향인 중에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또한 나쁜 말로 그의 비루한 행실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를) 범연하게 대하여서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만약 전날에 서로 아는 사람이라면 (생략) 서로 만났을 때 다만 안부만 묻고 다른 말은 주고받지 않는다면 곧 자연히 마땅히 점차 소원해져 또한 원망하고 노여워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78 凡拜揖之禮 不可預定이니 大抵父之執友 當拜 洞內年長十五歲以上者 當拜 爵階堂上而長於我十年以上者 當拜 鄕人年長二十歲以上者 當拜로되 而其間高下曲折 在隨時節中이요 亦不必拘於此例 但常以自卑尊人底意思 存諸胸中 可也니라 詩曰 溫溫恭人 惟德之基라하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절을 하고 읍하는 예는 미리 정할 수 없다. 대개 아버지의 친구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마을 안에 15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벼슬의 품계가 당상이고 나보다 10년 이상 많은 사람이면 마땅히 절해야 하고, 마을 사람 중에 20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은 마땅히 절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높이고 낮추는 곡절은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함에 달린 것이고, 또한 반드시 이 예에 구애될 것이 없다. 다만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생각을 마음속에 두는 것이 옳다. 시경에서 ‘온순하고 공손한 사람, 오직 덕의 기반이다.’라고 하였다.
79 人有毁謗我者어든 必反而自省이니 若我實有可毁之行이면 則自責內訟하여 不憚改過하고 若我過甚微而增衍附益이면 則彼言雖過 而我實有受謗之苗脈하니 亦當剗鋤前愆하여 不留毫末하고 若我本無過而捏造虛言이면 則此不過妄人而已 與妄人으로 何足計較虛實哉리오 且彼之虛謗 如風之過耳 雲之過空하니 於我 何與哉 夫如是 則毁謗之來改之하고加勉하여 莫非有益於我也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사람 중에 나를 헐뜯고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서 스스로 살펴야 한다. 만약 나에게 실제로 헐뜯을 만 한 는 행실이 있다면, 스스로 꾸짖고 안으로 책하여 잘못 고치지를 꺼리지 않는다. 만약 나의 잘못이 매우 작은데도 더하고 넓히고 보태어 말한만약 다면 저 사람의 말이 비록 지나치지만, 나에게 실제로 비방을 받을만한 실마리가 있는 것이니, 또한 마땅히 전날의 잘못을 깎고 제거하여 털끝만큼도 남겨두지 않는다. 만약 나에게 본래 허물이 없는데도 거짓말을 날조했다면, 이것은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망령된 사람과 어찌 거짓과 진실을 따질 수 있겠는가? 또 저 사람의 거짓된 훼방은 바람이 귀를 지나가고 구름이 허공을 지나가는 것과 같으니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무릇 이와 같다면 곧 훼방이 올 때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쓴다면, 나에게 유익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80 若聞過自辨하여 嘵嘵然不置하여 必欲置身於無過之地 其過愈深而取謗益重矣리라 昔者 或問止謗之道한대 文中子曰 莫如自修니라 請益한대 曰 無辨이라하니 此言 可爲學者之法이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만약 허물을 듣고서 스스로 변명하여 시끄럽게 떠들면서 내버려 두지 않고 반드시 허물이 없는 곳에 자신을 두고자 한다면 (생략) 그 허물은 더욱 깊어서 비방을 취하는 것이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비방을 그치는 방법을 물었다. 문중자가 “스스로 (행실을) 닦는 일 만한 것이 없다.” 라고 하였다. 더욱 (가르쳐주기를) 청하였다. (문중자가) "변명하지 말하라” 말하였다. 이 말은 배우는 사람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81 凡侍先生長者 當質問義理難曉處하여 以明其學하고 侍鄕黨長老 當小心恭謹하여 不放言語하여 有問敬對以實하고 與朋友處 當以道義講磨하여 只談文字義理而已 世俗鄙俚之說 及時政得失守令賢否他人過惡 一切不可掛口하고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선생과 어른을 모실 때는 마땅히 의리를 깨닫기 어려운 곳을 질문하여 그 학문을 밝혀야 하고, 향당의 모실 때는 장로를 마땅히 조심하고 공손하고 삼가하여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아서 묻는 것이 있으면 사실로써 공손하게 대답한다. 친구와 함께 지낼 때는 마땅히 도의를 강의하고 연마하여 다만 문자와 의리만을 이야기 할 뿐이고 세속의 비루한 말과 및 시정의 득실과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다른 사람의 잘못과 악행을 일체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82 處世章 第十: 古之學者 未嘗求仕로되 學成則爲上者 擧而用之하니 蓋仕者 爲人이요 非爲己也 今世不然하여 以科擧取人하여 雖有通天之學 絶人之行이라도 非科擧 無由進於行道之位 父敎其子하고 兄勉其弟하여 科擧之外 更無他術하니 士習之偸 職此之由 第今爲士者 多爲父母之望 門戶之計하여 不免做科業이나 亦當利其器 俟其時하여 得失 付之天命이요 不可貪躁熱中하여 以喪其志也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열째 〈처세장〉: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나 배움이 이루어지면 윗 사람이 천거하여 그 사람을 등용하였으니, 대체로 벼슬[仕]이란 남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 과거로 사람을 뽑아 비록 천리를 통달한 학문과 남들을 뛰어넘는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자신이 배운〉 도를 행하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그 자식에게 〈과거공부를〉 하게 하고 형은 그 아우에게 〈과거공부를〉 권면하여 과거의 〈공부〉 이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속이 경박한 것은 오로지 이러한 까닭이다. 다만 지금 선비된 자가 대부분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계책을 때문에 과거 공부하는 것을 벋어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실력을 연마하여 그 때를 기다려 얻음과 잃음을 하늘의 운수에 맡겨야 하며, 출세에 급급하고 열중해서 그 뜻을 잃어서는 안된다.
83 人於未仕時 惟仕是急하고 旣仕後 又恐失之하나니 如是汨沒하여 喪其本心者 多矣 豈不可懼哉 位高者 主於行道하니 道不可行이면 可以退矣 若家貧하여 未免祿仕 則須辭內就外하고 辭尊居卑하여 以免飢寒而已 雖曰祿仕 亦當廉勤奉公하여 盡其職務 不可曠官而餔啜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사람이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히 여기고 이미 벼슬한 뒤에는 다시 벼슬을 잃을까 염려한다. 이처럼 골몰하다가 그 본심을 잃은 사람이 많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은 도를 행하는 일을 중심으로 해야 하니, 도가 행해질 수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 만약 집안이 가난하여 녹을 받는 벼슬아치에서 벋어날 수 없다면, 반드시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에 나아가며, 높은 지위는 사양하고 낮은 벼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위한 벼슬이라고 하지만,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힘써서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하고, 관직을 버려두고서 먹고 마시기만 해서는 안된다.
84 五十步百步: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로니 河內凶이어든 移其民於河東하고 移其粟於河內하며 河東凶이어든 亦然하노니 察隣國之政한대 無如寡人之用心者로되 隣國之民不加少하며 寡人之民不加多 何也잇고하다 <原文故事成語, 形勢>  
85 曰 然王之所大欲 可知已 欲辟土地하며 朝秦楚하여 莅中國而撫四夷也로소이다 以若所爲 求若所欲이면 猶緣木而求魚也니이다하다 王曰 若是其甚與잇가하니 曰 殆有甚焉하니 緣木求魚 雖不得魚라도 無後災어니와 以若所爲 求若所欲이면 盡心力而爲之라도 後必有災하리이다하다 <原文故事成語, 愚鈍>  
86 子曰 孝子之事親也致其敬하고致其樂하고致其憂하고致其哀하고致其嚴이니라 <原本明心寶鑑, 孝行篇第四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효자가 부모를 섬길 때에 〈부모의〉 거처에는 〈효자는〉 그 공경을 다하고 〈부모를〉 봉양함에는 그 즐거움을 다하고 〈부모의〉 병에는 그 근심을 다하고 〈부모의〉 상에는 그 슬픔을 다하고 〈부모의〉 제사에는 그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
87 康節邵先生曰 聞人之謗이라도 未嘗怒하며 聞人之譽라도 未嘗喜하며 聞人之惡이라도 未嘗和하며 聞人之善이면 就而和之하고 又從而喜之니라 <原本明心寶鑑, 正己篇第五 >  
강절 소선생이 말하였다 남의 비방을 들어도 일찍이 성내지 않으며 남의 칭찬을 들어도 일찍이 기뻐하지 않으며 남의 나쁜 소문을 들어도 일찍이 동조하지 않으며 남의 좋은 소문을 들으면 곧 나아가서 (생략) 어울리고 또 따라서 (생략) 기뻐한다.
88 家語云 水至淸無魚하고 人至察無徒니라 <原本明心寶鑑, 省心篇第十一 >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이르길, “물이 지극히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무리가 없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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