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사를 물어 말하였다. “만일 무도한 자를 죽여 도가 있는 곳에 나아가게 한다면, 어떠하겠는가?”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당신이 정사 하는데 어찌 죽임을 쓰겠는가? 당신이 선을 하고자 하면 백성도 선할 것이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에 바람이 가해지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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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如有王者라도 必世而後에 仁이니라<論語, 子路第十三>
공자가 말하였다. “만일 왕 노릇 할 사람이 있더라도, 반드시 (한) 세대 이후에 인할 것이다.”
왕이 만약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어 형벌을 줄이고 세금 거두기를 적게 한다면, 깊이 밭 갈고 잘 김매고, 장성한 자는 한가한 날로써 자신의 효와 제와 충과 신을 닦아, 들어가서 제 부모와 형제를 섬기며, 나가서 제 어른을 섬기고, 몽둥이를 만들어서 진나라와 초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를 매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답하여 말하길, ‘세상에 돌아가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왕은 저 이삭을 아십니까? 칠팔월의 사이에 가물면 이삭이 마르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쏴아! 비를 내리면, 이삭이 쑥쑥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이와 같다면, 누가 싹이 자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 천하의 임금 중에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약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있다면, 세상의 백성이 모두 목을 빼고 그 임금을 바라볼 것이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백성이 그 임금에게 돌아가는 것이 물이 아래로 흘러감과 같을 것이니, 성대한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선생의〉 말씀이.”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 만약 제 말을 좋게 여긴다면 어찌하여 행하지 않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공류(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는데, 시경에 이르길 ‘(생략)〈많은 곡식을〉 노적하고 (생략)창고에 쌓았네. (생략)마른 식량을 싸되, 전대에 〈담고〉 자루에 〈담았네.〉 〈백성을〉 편안케 하여 이로써 〈나라를〉 빛낼 것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둘러 매고 방패와 창, 도끼와 큰도끼를 〈들고〉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났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있는 자는 노적과 창고〈의 곡식이〉 있고, 행군하는 자는 꾸려 놓은 양식이 있은 뒤에야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이 만일 재물을 좋아하시되 백성과 그것을 함께한다면 왕 노릇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과인에게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여색(女色)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태왕(大王)이 여색을 좋아하여, 자신의 왕비를 사랑하였습니다. 《시경》 〈면(綿)〉에 이르길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난을 피하려〉 다음 날 이른 아침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따라가서 기산(岐山) 아래에 이르렀네. 이에 강녀와 함께 드디어 와서 집터를 둘러 보았네.’ 하였으니, 이때를 당하여, 안에는 남편 없는 여자가 없고 밖에는 홀아비가 없었으니, 왕께서 만일 여색을 좋아하여 백성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신다면, 왕 노릇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만승(萬乘)의 〈제〉나라로 만승의 〈연〉나라를 치는데 〈연나라 백성이〉 대바구니에 밥을 담고 병에 장물을 담아서 왕의 군대를 맞이한 것은 어찌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물과 불을 피한 것입니다. 만일 물이 더욱 깊어지고, 만일 불이 더욱 뜨거워진다면 〈민심이〉 또한 옮겨갈 뿐입니다.
만약 치욕을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덕(德)을 귀하게 여기고 선비를 높이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어진 자가 〈높은〉 자리에 있으며 능력이 있는 자가 〈알맞은〉 직위에 있어서 나라가 평안한데, 이때에 미쳐 그 정사와 형벌까지 분명하게 한다면, 비록 대국이라도 반드시 그런 나라를 두려워할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유독 밭을 갈면서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인의 일이 있고 소인의 일이 있다네. 또 한 사람의 몸에 백공이 만든 것이 구비되어야 하니, 만일 반드시 스스로 만든 뒤에 도구를 써야 한다면, 이는 천하의 사람을 몰아서 길로 내보내는 것이네. 그러므로 말하길 ‘어떤이는 마음으로 애를 쓰고 어떤이는 힘으로 애를 쓰니, 마음으로 애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으로 애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려진다.’ 하였으니, 남에게 다스려지는 자는 남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서 먹는 것이 천하의 공통된 의리라네.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 제나라 경공(景公)이 사냥할 적에 동산 관리인을 〈대부를 부르는〉 정(旌)으로 불렀는데 〈관리인이〉 오지 않자 장차 그를 죽이려 하였네. 〈공자가 이를 일러〉 ‘지사(志士)는 도랑에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을 것을〉 잊지 않고 용사(勇士)는 그 머리를 잃게 될 것(전투에 목숨 바칠 것)을 잊지 않는다.’ 하시니, 공자께서 무엇을 취한 것이겠는가? 적절한 부름이 아니면 가지 않음을 취한 것이니, 〈내가〉 만일 〈제후의〉 적절한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서 간다면 어떠하겠는가.”
마부조차 사수와 영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영합해서 짐승을 잡은 것이 비록 구릉과 같이 〈많〉더라도 하지 않았다네. 만약 도를 굽혀서 〈예에 맞는 부름 없이〉 제후를 따른다면, 어떠하겠는가? 또 그대의 잘못이구나. 자신을 굽힌 자 중에 남을 펼 수 있는 자는 있지 않았다네.”
함구몽이 말하였다. “순임금이 요임금을 신하로 삼지 않은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얻어 들었습니다만, 《시경》 〈북산(北山)〉에 이르길, ‘온 하늘의 아래가 왕의 땅 아님이 없으며, 온 땅의 변경이 왕의 신하 아닌 이가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순임금이 이미 천자가 되었는데, 고수를 신하로 삼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감히 묻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이 시는 그것을 이른 것이 아니다. 〈순임금이〉 왕의 일에 수고로워서 부모를 봉양할 수 없어서, ‘이것은 왕의 일이 아닌 것이 없는데 나 홀로 어질다하여 수고롭구나.’ 라고 〈탄식하여〉 말한 것이네. 그러므로 시를 설명하는 자는 한 글자로써 어구를 해쳐서는 안되며, 한 어구로써 〈시의〉 뜻을 해쳐서는 안되고, 〈자신의〉 마음으로 〈작자의〉 뜻을 헤아려야 바로 의미를 얻게 된다네. 만일 어구로써 〈볼〉 뿐 이라면 〈운한〉이라는 시에 ‘주나라의 남은 백성은 남은 자가 없구나’ 하였으니, 진실로 이 말대로 〈해석한〉다면, 이는 ‘주나라에 〈한 사람도〉 남은 백성이 없다.’ 〈한 뜻이 된다네.〉
날로 옛일을 기억하여 지금과 옛날에 구애되지 않으면서, 반드시 먼저 효도와 공경과 충성과 믿음과 예절과 의리와 청렴과 부끄럼 등의 일로 해야 한다. 예컨대, 황향이 (부모의) 베개에 부채질함과 육적이 귤을 품음과 숙오의 숨은 덕과 자로가 쌀을 진 것의 종류를 다만 세속의 말같이 하면 곧 이 도리를 깨달을 것이니, 오래 하고 오래 하여 이루어지고 익으면, 덕성이 마치 저절로 그러한 것같이 될 것이다.”
여씨의 동몽훈에 말하였다. “군주 섬기기를 어버이를 섬기듯이 하며, 관청의 우두머리를 섬기기를 형을 섬기듯이 하며, 같은 동료와 더불적에 집안사람같이 하며, 여러 아전을 대하기를 (집안의) 노비와 종같이 하며, 백성을 사랑하기를 아내와 자식같이 하며, 관청의 일을 처리하기를 집안일같이 하고 그러한 뒤에 제대로 나의 마음을 다한 것이니, 만일 털의 끝만큼이라도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모두 나의 마음이 다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이다.”
안씨가훈에 말하였다. “부인은 규중에서 음식 올리는 일을 주장하므로 오직 술과 밥과 옷과 복식의 예를 일삼을 뿐이니, 나라에서는 정치에 참여하게 해선 안 되고, 집안에서는 일을 주관하게 해선 안 된다. 만약 슬기롭고 밝으며 재능있고 지혜롭고 지식이 옛날과 지금을 통달함이 있더라도, 바로 마땅히 군자를 보조하고 도와서 그 충분하지 못한 것을 권면해야 하니, 반드시 암탉이 새벽에 울어 그것으로 화를 이룸이 없어야 한다.
동몽훈에 말하였다. “함께 하는 동료의 합함과 교대하여 잇는 즈음은 형과 동생의 의리가 있으니, 그 자식과 손자에 이르러서도 또한 대대로 (그것을) 강해야 한다. 전의 무리는 오로지 이것으로 일삼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대개 적다. 또 옛날에 추천해준 장수 및 일찍이 옛날에 안찰관을 맡아 된 이와 같은 경우는 뒤에 자기의 관직이 비록 (그들보다) 위에 있더라도 전의 무리에 대해 모두 사양하고 회피하여 아래 자리에 앉았으니, 풍속이 이와 같으면 어찌 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장군 청이 시중으로 있을 때 상이 평상에 걸터앉아 (그를) 보았으며, 승상 홍이 한가할 때 알현하면 상은 어떤 때는 관을 쓰지 않았으나, 가령 급암을 만나보는 이르러서는 관을 쓰지 않고서는 만나보지 않았다. 상이 일찍이 군막에 앉아 있었는데 급암이 앞으로 나와 일을 아뢰려 하였는데 상이 관을 쓰지 않고 있다가 급암을 바라보고 휘장으로 피하고서 사람을 시켜 그가 아뢴 것을 허락하였으니, 그가 공경과 예우를 받음이 이와 같다.
근래에 보건대, 친족과 외척 가운데 벼슬하는 사람이 돈과 선물을 가져다가 제 부모에게 올리면 부모는 단지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만 알고 끝내 이 물건이 무엇으로부터 하여 왔는지 묻지 않는다. 반드시 이것이 녹봉의 나머지 재물이라면 진실로 또한 좋은 일이겠지만 만일 그 도리가 아닌 것으로 얻은 바라면 이것은 도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비록 큰 잘못이 없더라도 홀로 안으로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하였다. 현위가 가르침을 따르고 받들어서 청렴하고 근신함으로 칭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