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로워 제 본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 사이에서 나온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 백성의 군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시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복희·신농·황제·요·순이 천명을 계승하여 〈교육의〉 표준을 세운 까닭이요, 사도의 관직과 전악의 관직을 설치한 이유였다.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함과 바꾸며, 부모를 섬기되 제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기되 제 몸을 바칠 수 있으며, 벗과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아직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가 배웠다고 이를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하(夏)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후예인〉 기(杞)나라가 충분하게 증명하지 못하고, 은(殷)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후예인〉 송(宋)나라가 충분하게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문헌이 충분하지 않은 까닭이다. 〈문헌이〉 충분하다면 내가 그 말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7
子曰 惟仁者아能好人하며能惡人이니라<論語, 里仁第四>
공자가 말하였다. “오직 인자(仁者)만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8
子曰 誰能出不由戶리오마는 何莫由斯道也오<論語, 雍也第六>
공자가 말하였다. “누구인들 나갈 때 방문을 지나지 않을 수 있으랴마는 〈그런데〉 어찌하여 이 도(道)를 지나려 하지 않는가?”
자장이 인에 대해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다면 인(仁)이 된다.” 〈자장이〉 그것을 청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민첩함, 은혜로움이니, 공손하면 업신여기지 않고, 너그러우면 뭇사람들을 얻게 되고, 미더우면 남들이 그에게 일을 맡기고, 민첩하면 공이 있고, 은혜로우면 그로써 사람을 부릴 수 있다.”
23
吾豈匏瓜也哉라 焉能繫而不食이리오<論語, 陽貨第十七>
내가 어찌 박이겠는가? 어찌 매달려 있어 먹지 (생략) 못하는 것과 같겠는가?”
24
子張曰 執德不弘하며 信道不篤이면 焉能爲有며 焉能爲亡리오<論語, 子張第十九>
자장이 말하였다. 덕을 잡음이 넓지 못하며, 도를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면 어찌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어찌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시경에 이르길, ‘영대를 공사하기 시작하여, 그 일을 헤아리고 그 일을 꾀하니, 서민이 그 일을 처리하자, 하루가 되지 않아 그것을 완성하도다. 공사 시작될 때 급히 하지 말라 하였으나, 서민들이 자식처럼 찾아왔도다. 왕께서 영유에 계시니, 암사슴이 편안히 엎드렸도다. 암사슴은 살지고 백조는 깨끗하도다. 왕께서 영소에 계시니, 아! 가득히 물고기가 뛰논다’ 하였으니, 문왕이 백성의 힘으로 대를 만들고 못을 만들었으나, 그러나 백성이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누대를 일러 영대라 말하고, 그 못을 일러 영소라 말하여, 그가 고라니와 사슴, 물고기와 자라를 소유함을 즐겼으니, 옛날의 사람들은 백성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 때문에 즐길 수 있었습니다.
대답하여 말하길, ‘세상에 돌아가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왕은 저 이삭을 아십니까? 칠팔월의 사이에 가물면 이삭이 마르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쏴아! 비를 내리면, 이삭이 쑥쑥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이와 같다면, 누가 싹이 자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 천하의 임금 중에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약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있다면, 세상의 백성이 모두 목을 빼고 그 임금을 바라볼 것이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백성이 그 임금에게 돌아가는 것이 물이 아래로 흘러감과 같을 것이니, 성대한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32
曰 德이 何如則可以王矣리잇고 曰 保民而王이면 莫之能禦也리이다<孟子, 梁惠王上>
〈선왕이〉 말하였다. “덕이 어떠하면, 왕도정치를 할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을 보호하여 왕 노릇하면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 왕이 정령(政令)을 발표하고 인정(仁政)을 베풀어서, 천하의 벼슬아치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서 서고자 하게 하고, 밭 가는 이〈로 하여금〉 모두 왕의 들에서 밭을 갈고자 하〈게 하며〉, 상인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저자에서 보관하고자 하〈게 하며〉, 여행하는 나그네〈로 하여금〉 모두 왕의 길에 나오고자 하〈게 하며〉, 천하의 자기 군주를 미워하고자 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에게 달려가 하소연하고자 하〈게 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다면 누가 〈몰려드는 백성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왕께서 여기에서 음악을 연주하면 백성들이 왕의 종과 북의 소리와 피리와 젓대의 소리를 듣고 모두 흔연히 기뻐하는 낯 빛이 있어 서로에게 고하여 말하길, ‘우리 왕이 행여 질병이 없으신가? 어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가?’ 하며, 지금 왕께서 여기에서 사냥하시면 백성들이 왕의 수레와 말의 소리를 듣고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두 흔연히 기쁜 낯 빛이 있어서 서로에게 고하여 말하길, ‘우리 왕이 행여 질병이 없으신가? 어찌 사냥을 할 수 있는가?’ 하면, 이는 다름이 아닙니다.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해서입니다.
제(齊)나라 선왕이 물어 말하였다. “이웃 나라와 사귐에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이런 까닭으로 탕(湯)왕이 갈(葛)나라를 섬겼고, 문왕(文王)이 곤이(昆夷)를 섬겼습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때문에 태왕(大王)이 훈육(獯鬻)을 섬겼고,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섬겼습니다.”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 계책은 제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두지 말라.’ 하시면 거기엔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해자(垓子)를 (생략)파며 성벽을 (생략)쌓아서 백성과 함께 이곳을 지켜서 목숨을 바치면서 백성이 떠나지 않는다면 이 계책은 해볼 만합니다.”
37
或曰 世守也라 非身之所能爲也니 效死勿去라하나니<孟子, 梁惠王下>
혹자는 말하길, ‘대대로 지킨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목숨을 바치고 떠나지 말라.’ 합니다.
악정자(樂正子)가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임금께 고하니, 임금이 와서 〈선생님을〉 만나뵙고자 하였는데, 폐인(嬖人)에 장창(臧倉)이란 자가 있어 임금을 막았습니다. 임금이 이 때문에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가려한 것이 누군가 가도록 시켜서였으며 그만 둔 것도 누군가 가는 것을 막아서였지만 가려는 것과 그만 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내가 노나라 제후(평공)를 만나지 못한 것은 천명이니, 장씨란 사람이 어찌 나로 하여금 〈노 평공을〉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이 다섯 가지를 행할 수 있다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우러러 보기를 마치 부모와 같이할 것이니, 그 자제를 거느리고 그 부모를 공격하는 것은 백성이 생겨난 이래로 해낼 수 있는 자가 있지 않았으니, 이와 같다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면 천명을 받은 관리이니, 그렇게 하고도 왕 노릇하지 못한 자는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유하혜(柳下惠)는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작은 벼슬도 하찮게 여기지 않아, 벼슬에 나아가면 현명함을 숨기지 않아 반드시 그 도로 하였으며,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궁하여도 근심하지 않았다. 때문에 말하길,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곁에서 옷을 걷고 몸을 드러내더라도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수 있겠는가’ 하니, 때문에 유유자적하게 그와 함께 하여도 그에게서 자신을 잃지 않아 매달려서 자기를 붙잡으면 그쳤으니, 매달려서 자기를 붙잡으면 그친 것은 이 또한 떠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크구나. 요(堯)가 임금 노릇 함이여! 오직 하늘이 위대하거늘, 오직 요임금이 하늘을 본받았으니, 넓고 넓어 백성이 그것을 형용할 수 없도다. 임금답구나, 순(舜)이여! 우뚝히 천하를 소유했지만, 천하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다.’고 하였으니, 요와 순이 천하를 다스림에 어찌 그 마음을 쓴 것이 없겠는가? 다만 농사에 에 쓰지 않았을 뿐이라네.
나는 중국으로 오랑캐를 바꾼다는 것은 들었고, 오랑캐에게 변화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네. 진량(陳良)은 초(産)나라 태생인데, 주공(周公)과 중니(仲尼)의 도를 좋아하여 북쪽으로 와 중국에서 배웠는데, 북방의 배우는 자들이 어떤 이도 진량을 앞설 수 없었으니, 저 사람은 이른바 호걸의 선비라네. 그대의 형제가 수십 년 진량을 섬기다가 스승(진량)이 죽자 마침내 스승을 배반하였구나!
〈맹자가〉 말하였다. “대체로 물건〈의 품질〉이 같지 않은 것은 물건의 실상이네. 혹 서로의 차이가 두 배 다섯 배이며, 혹 서로의 차이가 열 배 백 배이며, 혹 서로의 차이가 천 배 만 배이거늘, 그대가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외형만〉 비교하여 가격을 똑같이 하니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네. 큰 신발 작은 신발이 같은 값이면, 사람들이 어찌 큰 것을 만들겠는가? 허자의 도를 따르면 서로 이끌어서 거짓을 행할 것이네. 어찌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준〉 경우에는 〈의롭지 않다 여겨〉 먹지 않고, 아내가 〈준〉 경우에는 그것을 먹으며, 형의 집에 〈사는〉 경우에는 〈의롭지 않다 여겨〉 살지 않고, 오릉에 〈사는〉 경우에는 그곳에 살았으니, 이런데도 오히려 그 〈지조의〉 유를 채울 수 있다 하겠는가? 중자와 같은 자는 지렁이가 〈된〉 뒤에야 그 지조를 채울 자라네.”
맹자가 말하였다. “섬김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지킴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제 자신을 잃지 않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았고, 제 자신을 잃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다.
〈만장이〉 말하였다. “‘행실과 일로써 그것을 보여주었다’라는 것은 그것을 어찌 했다는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천자는 사람을 하늘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하늘로 하여금 그에게 천하를 주게 할 수 없으며, 제후는 사람을 천자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천자로 하여금 그에게 제후의 직을 주게 할 수 없으며, 대부는 사람을 제후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제후로 하여금 그에게 대부의 직을 주게 할 수 없다네. 옛날에 요임금이 순임금을 하늘에 천거하자 하늘은 순을 받아들였고, 순을 백성에게 드러내자 백성이 순을 받아들였다네. 그러므로 말하길,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 행실과 일로써 그것을 보여줄 뿐이다.’라고 한 것이네.”
〈요의 아들〉 단주가 어리석었는데 순임금의 아들 또한 어리석었으며, 순이 요를 돕고 우가 순을 도운 것은 거쳐온 햇수가 많아서 백성에게 혜택을 베푼 것이 오래되었고, 계는 현명하여 공경히 우임금의 도를 이을 수 있었다네. 〈반면에〉 익이 우임금을 도운 것은 거쳐온 햇수가 적어서 백성에게 혜택을 베푼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네. 〈이렇게〉 순과 우와 익의 사이가 오래되고 먼 것, 그 아들의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것은 모두 천운이지, 사람이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그것을 한 적이 없는데도 〈그렇게〉 된 것은 천운이고, 그것을 이르게 함이 없는데도 〈그렇게〉 이른 것은 천명이라네.
〈백리해는〉 우공이 간언할 수 없음을 알고서 떠나 진으로 가니, 〈이때의〉 나이가 이미 칠십이었네. 일찍이 소를 먹이는 것으로써 진나라 목공에게 간언하는 것이 더러운 일이 됨을 알지 못했다면,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간언할 수 없어서 간언하지 않았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공이 망하려는 것을 알고서 먼저 그곳을 떠났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네. 당시에 진나라에 등용되어 ‘목공은 함께 행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를 도왔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를 도와서 그 임금을 천하에 드러내어 후세에 전할 수 있게 하니, 현명하지 않고서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팔아서 그 임금을 만드는 것은 시골의 스스로를 아끼는 자들도 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백리해 같은〉 현명한 자가 ‘그일을 했다’고 이르겠는가?”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으며, 나아가면 현명함을 숨기지 않아서 반드시 그 도리로써 하고, 버려지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며, 곤궁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으며, 시골 사람과 있어도 태연하게 차마 떠나지 않고서,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옆에서 옷을 걷고 벌거벗더라도,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하니, 그러므로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비루한 사내는 관대해지고, 야박한 사내는 후해진다.
현명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면서 올바른 도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가 들어오길 바라면서 그 문을 닫는 것과 같다네. 무릇 의리는 길이고 예는 문이니, 오직 군자만이 이 길을 경유하고 이 문을 출입할수 있다네. 《시경》 〈대동(大東)〉에 이르길, ‘큰 길은 숫돌과 같으니, 그 곧음은 화살과 같다. 군자가 밟는 것이고, 소인이 우러러보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네.”
맹자가 말하였다. “오늘날의 임금을 섬기는 자들이 말하길, ‘나는 임금을 위하여 토지를 개간하고, 창고를 채울 수 있다’ 하니, 오늘날의 이른바 훌륭한 신하이고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적이다. 임금이 도를 향하지 않아 인(仁)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군주를 부유하게 할 것을 찾으니, 이것은 걸(桀)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엔〉 ’나는 임금을 위하여 동맹국가 맹약하여 전쟁에 반드시 이길 수 있다’ 하니, 오늘날의 이른바 훌륭한 신하이고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적이다. 임금이 도를 향하지 않아 인(仁)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임금을 위하여 억지로 싸울 것을 찾으니, 이것은 걸을 돕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순임금이 깊은 산의 속에 거처할 적에 나무와 돌과 거처하며 사슴과 돼지와 노닐었으니, 그 깊은 산의 야인과 다른 것이 드물었는데, 그 하나의 선한 말을 듣고 하나의 선한 행실을 보게 되자 마치 양자강과 황하를 터놓은 듯하여 성대한 것을 막을 수 없었다.”
64
人能無以饑渴之害로 爲心害면 則不及人을 不爲憂矣리라<孟子, 盡心上>
사람이 굶주림과 목마름의 방해를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할까를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65
君子引而不發하나 躍如也하여 中道而立이어든能者從之니라<孟子, 盡心上>
군자는 〈가르칠 때에〉 〈활시위를〉 당기고 쏘지 않으나 튀어 나갈 듯하여 중도에 서 있으면 능한 자는 그것을 따라 한다네.”
66
孟子曰 梓匠輪輿 能與人規矩언정 不能使人巧니라<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목수와 수레공은 남에게 그림쇠와 곱자를 줄 수 있지만 남을 뛰어나게 할 수 없다.”
맹자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백 대의 스승이니,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가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욕심 많은 자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가 뜻을 세우는 일이 있게 된다.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각박한 자가 돈독해지고 천박한 자가 너그러워진다. 백 대의 앞에서 분발하면 백 대의 뒤에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고서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성인에게〉 직접 배운 사람에 있어서랴!”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그것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부부의 불초함으로도 (그것을) 해낼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에) 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천지의 큼에도 사람이 오히려 서운해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군자의 큰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실을 수 없으며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쪼갤 수 없다.
군자의 도 넷 중에 나는 하나도 잘하지 못한다. 자식에게 요구하는 바로 부모를 섬기는 것을 잘하지 못하며, 신하에게 요구하는 바로 임금을 섬기는 것을 잘하지 못하며, 아우에게 요구하는 바로 형을 섬기는 것을 잘하지 못하며, 벗에게 요구하는 바를 먼저 (그것을) 베푸는 것을 잘하지 못하며, 떳떳한 덕을 행하며 떳떳한 말을 삼가하여, 넉넉하지 않은 바가 있거든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넉넉함이 있거든 감히 다하지 못하여,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니, 군자가 어찌 독실히 하지 않겠는가?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을 (가진 사람이라야) 그 성을 다할 수 있으니 그 성을 다 할 수 있다면 사람의 성을 다 할 수 있을 것이오, 사람의 성을 다 할 수 있다면 물건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며, 물건의 성을 다할 수 있다면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면 천지와 더불어 참여할 수 있다.
자하가 말하였다. 현인을 현명하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함과 바꿔 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되 그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기되 그 몸을 바칠 수 있으며, 친구와 사귀되 말함에 신의가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
회남자가 말하였다. 주공이 문왕을 섬길 적에 행실은 마음대로 결정함이 없었으며, 일은 자기에게 말미암음이 없었으며, 몸은 옷을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였으며, 말은 입에서 내지 못하는 듯이 하였다. 문왕에게 잡음이 받들어 있을 때 공경하고 공경하여 장차 이기지 못할 듯이 하였으며,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듯이 하였으니, 자식의 도리를 잘하였다고 이를 만하다.
공명선이 말하였다. “어찌 감히 배우지 않았겠는가? 내가 선생님이 뜰에 있음을 보니, 부모가 있으면 꾸짖는 소리가 일찍이 개와 말에게도 이르지 않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잘하지 못한다. 내가 선생님이 빈객을 응접함을 보니, 공손하고 검소하면서 태만하고 게으르지 않으므로, 내가 (그것을)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잘하지 못한다. 내가 선생님이 조정에 있는 것을 보니, 엄격히 아랫사람에게 임하면서 훼상하지 않으므로, 내가 (그것을)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잘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 가지 것을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잘하지 못하니, 내가 어찌 감히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문하에 있겠는가?
84
夫寵而不驕하며 驕而能降하며 降而不憾하며 憾而能眕者는 鮮矣니이다<小學, 稽古第四>
무릇 총애를 받으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며, 교만하면서도 낮출 수 있으며, 낮추면서도 서운해하지 않으며, 서운해하면서도 자중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공이 말하였다. “좋구나. 무엇을 위의(威儀)라 이르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위엄이 있어 두려워할 만함을 (그것을) 위라 말하고, 예의가 있어 본받을 만함을 (그것을) 의라 말한다. 임금이 임금의 위의가 있으면, 그 신하가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하고 법칙으로 삼#아 (그를) 본받는다. 그러므로 그 국가를 잘 보유하여 훌륭한 명성이 후세에 오래간다. 신하가 신하의 위의가 있으면 그 아랫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그 관직을 잘 지켜 종족을 보존하고 집안을 화목하게 한다. 이를 따라 이로써 아래가 모두 이와 같다. 이 때문에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안정될 수 있는 것이다.”
관 쓰는 예가 폐해진 지 오래이니, 가까운 세대 이후로 사람의 정이 더욱 가볍고 박하게 되어서 아들을 낳으면, 아직 젖을 먹는데도 이미 두건과 모자를 씌우고, 관작이 있는 사람은 혹 (그를) 위해 벼슬아치의 옷을 만들어 (그를) 희롱한다. 열 살이 지나도록 오히려 땋은 머리를 뿔처럼 한 사람이 대개 적으니, 저들을 네 가지의 행실로써 책망한들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때때로 어렸을 때부터 장성함에 이르도록 우매하고 어리석음이 한결같으니, 완성한 사람의 도를 알지 못하는 연유의 까닭이다.
옛날의 예에 비록 20살이고서 관례를 한다고 했으나 그러나 세속의 폐단을 갑자기 바꿀 수 없으니, 만약 돈독하고 후하여 옛것을 좋아하는 군자가 그 아들의 나이가 열다섯 이상에 효경과 논어를 잘 통달하여 대략 예절과 의리의 방향을 알기를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를) 관례 하면, 이에 그 아름다울 것이다.”
여씨의 동몽훈에 말하였다. “군주 섬기기를 어버이를 섬기듯이 하며, 관청의 우두머리를 섬기기를 형을 섬기듯이 하며, 같은 동료와 더불적에 집안사람같이 하며, 여러 아전을 대하기를 (집안의) 노비와 종같이 하며, 백성을 사랑하기를 아내와 자식같이 하며, 관청의 일을 처리하기를 집안일같이 하고 그러한 뒤에 제대로 나의 마음을 다한 것이니, 만일 털의 끝만큼이라도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모두 나의 마음이 다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이다.”
유개 중도가 말하였다. “선친이 집안을 다스리되 효성스럽고 또 엄격하였다. 초하루와 보름에 자제와 며느리 무리가 대청 아래에서 절하고서 마치고는 곧 손을 들고 얼굴을 숙이고서 우리 선친의 가르침과 훈계를 들었는데 말하였다. ‘사람의 집에 형과 동생이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모두 아내를 맞이하여 집안에 들임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이 서로 모여 장점을 다투고 단점을 다투어 점차 (참소가) 젖어 들고 날로 (참소가) 들리며, 편벽되이 사랑하고 사사로이 저축하여 그것으로 등지고 어긋남에 이르러 집안을 나누고 집안을 쪼개어 근심하기를 도적과 원수처럼 여기니, 모두 너희 부인 된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남자로서 심장이 강한 사람 몇 사람이 부인 된 사람의 말에 미혹되는 바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본 것이 많으니, 너희들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제와 며느리가) 물러나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효성스럽지 않은 일 함을 한 마디도 내지 못하니, 유개 무리가 지금에 이르도록 (그것에) 힘입어 그 집안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가까운 시대에 (인정이) 얕아지고 박해져서 서로 기뻐하고 친압함을 서로 친함으로 여기며 모나고 뿔이 없는 것을 서로 기뻐하고 사랑함으로 여기니, 이 같은 것이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만약 오래 가기를 바란다면 모름지기 이 공손하고 공경해야 하니, 군주와 신하와 벗과 친구가 모두 마땅히 공경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
이를 지난 이후로 모든 행실이 다 그러하니, 비록 순전할 수 없더라도 지나친 것을 없애고 심한 것을 없애면 (그것을) 배워 아는 바를 시행함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글을 읽되 다만 (그것을) 잘 말하기만 하고 (그것을) 잘 행하지 못하니, 무예를 하는 사람과 세속의 아전에게 함께 비웃고 비방하는 바가 됨은 진실로 이 때문일 뿐이다.
당시 공은 막 십 여세였는데, 안으로는 곧 정헌공과 신국부인의 가르침이 이와같이 엄하였고 밖으로는 곧 초 선생의 교화와 지도가 이와같이 독실하였다. 그러므로 공의 덕기가 성취되어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달랐다. 공은 일찍이 말하였다. “인생이 안으로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스승과 벗이 없고, 그러면서도 성공함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급암이 병이 많아 병이 장차 3개월에 이르렀다. 상이 일찍이 고(휴가)를 준 것이 여러 번이었는데, 끝내 낫지 않았다. 최후에는 엄조가 (그를) 위하여 고(휴가)를 청하였다. 상이 말하였다 “급암은 어떠한 사람인가?” (엄조가) 말하였다. “가령 급암이 직무를 맡아 관직에 있다면 이로써 다른 사람보다 낫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 군주를 도와 왕업을 지키는 일에 이르러서는 비록 스스로 맹분, 하육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절개를) 빼앗거나 무너트릴 수 없을 것이다.” 상이 말하였다. “그렇다. 옛날에 사직의 신하가 있다고 하더니, 급암과 같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그것에) 가깝구나.”
황제가 돌아보며 태자에게 말하였다. “정직하구나! 이 인정에 (하기) 어려운 것이나 진실로 능히 (그것을) 하였으니 죽음에 임하여서도 말을 바꾸지 않는 것은 신의이고, 신하가 되어 임금을 속이지 않는 것은 곧음이다. 마땅히 특별히 그 죄를 면제하여서 (그를) 정표 해야겠다." 하고 마침내 (그를) 사면하였다.
한나라 포선의 아내 환씨는 자가 소군이다, 포선이 일찍이 소군의 아버지에게 나아가 배웠는데 (소군의) 아버지는 그의 청고함을 기특하게 여겨 딸로써 (그에게) 아내 삼아 주었는데, 실어 보내는 재물이 매우 성대하였다. 포선이 좋아하지 않으며 아내에게 말하였다. 소군이 부유하고 교만한 곳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꾸밈을 익혔는데, 나는 진실로 가난하고 천하니 예를 감당할 수 없다. 아내가 말하였다. “대인(아버지)이 선생(남편)이 덕을 닦고 검약을 지키는 것을 이유로 천첩으로 하여금 모시고 수건과 빗을 잡도록 하였습니다. 이미 군자(남편)를 받들게 되었으니 오직 명령을 이에 따를 뿐입니다.” 포선이 웃으며 말하였다.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이것이 나의 뜻이다.” 아내가 이에 모시는 이와 의복과 장식품을 모두 돌려보내고, 짧은 삼베 치마로 바꾸어 입고 포선과 함께 녹거를 끌며 (포선의) 마을로 돌아와 시어머니에게 절하는 예를 마치고 물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길어 부인의 도를 닦아 행하니 시골과 고을에서는 (그를) 칭찬하였다.
장공예는 9대가 함께 지내니, 북제와 수나라, 당나라에서 모두 그의 문에 정표하였다. 인덕 연간에 고종이 태산에 봉제사를 지내고 그 집에 행차하여 공예를 불러 보고는 그가 이로써 종족을 화목하게 할 수 있는 바의 도를 물었다. 공예가 종이와 붓으로 대답겠다고 청하고는 마침내 ‘참을 인‘자 백여 번을 써서 올렸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종족이 화목하지 않은 까닭은 존장의 옷과 음식에 혹 고르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며, 낮고 어린 사람의 예절이 혹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며, 번갈아가며 서로 책망하여 마침내 어긋나고 다투게 되기 때문이니, 진실로 서로 더불어 (그것을) 참을 수 있다면 집안의 도가 화목할 것입니다.’
온공이 말하였다. 국조의 공경 중에 옛 법을 제대로 지켜서 오래되어도 쇠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돌아가신 이상의 집안뿐이다. 자손이 몇 대 동안 200여 식구에 이르렀는데, 여전히 함께 살면서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전원과 객점에서 거두어들이는 것과 및 관직이 있는 사람의 녹봉을 모두 한 창고에 (그것을) 모아서 식구를 헤아려 날마다 양식을 공급하였으며, 혼인과 초상과 장례에 쓰이는바 모두 일정한 액수가 있어서 자제에게 나누어 명하여 그 일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 규모는 대체로 한림학사 종악이 만든 것에서 나왔다.
장문절공이 재상이 되어 스스로 받듦이 하양의 장서기 일 때와 같았다. 친한 사람이 혹 (그를) 타일러 말하기를 지금 공은 받는 녹봉이 적지 않거늘 스스로 받듦이 이와 같으니, 비록 스스로 청렴하고 검약함을 믿더라도 바깥사람들은 자못 공손이 삼베 이불을 덮었던 비난을 하고 있다. 공은 마땅히 조금은 대중을 따르라.” 공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지금의 봉급으로 비록 온 가족에게 비단옷과 진수성찬을 먹이더라도 어찌 할 수 없을까 걱정하겠는가? 다만 사람의 상정은, 검소함에서 사치함으로 들어가기는 쉽고 사치함에서 검소함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내 지금의 녹봉이 어찌 항상 있을 수 있으며, 몸이 어찌 항상 보존될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지금과 달라지면 집안 사람들은 익힌 지 사치를 이미 오래되어서 갑자기 검소할 수 없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을 잃는 상황에 이를 것이니, 어찌 내가 있거나 벼슬에 떠나거나, 벼슬을 몸이 생존하거나 몸이 죽는 것을 하루처럼 하는 것만 같겠는가?”
첫째. 뜻을 세우는 것에 대한 글: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이 될 것으로 스스로 기약하여, 한 가닥의 털 만큼도 스스로 작다 여기고 물러나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대체로 중인과 성인이 그 본성은 한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섞임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나, 만약 참되게 알고 실천할 수 있어서 그 옛날에 물든 것을 버리고 그 본성의 처음을 회복한다면, 털끝만큼을 보태지 않더라도 온갖 선이 두루 갖추어질 것이니, 중인들이 어찌 성인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는 ‘〈인간은〉 본성이 선(善)하다’고 말하되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어서 그것을 실증하며 말하길 ‘사람은 모두 그 때문에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시니,〉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셋째. 몸가짐[持身]에 대한 글: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도를 향하여, 세속의 잡된 일로 그 뜻을 어지럽히지 않아야, 그러한 뒤에 학문을 함에 기초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충성과 신의를 주로 해야 한다.” 〈하시고〉, 주자가 그 말씀을 해석하여 말하길 “사람이 충성과 신의가 없으면 일에 모두 진실함이 없어서, 악을 행하기는 쉽고 선을 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충과 신〉을 학문에 주로 삼아야 한다.” 〈하였으니〉 반드시 충성과 신의로 주를 삼고 용감히 공부에 착수하여야 그러한 뒤에 성취한 바가 있을 수 있다. 황 면재(황간)가 이른바 “마음을 진실하게 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라.”라는 두 마디 말이 그 뜻을 다하였도다.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선한지 선하지 않은지 살펴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하는지 효도하지 않는지 볼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 부모에게 효도한다면 그 효도를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에 미루어 봄에, 어디에 대입한들 옳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효도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고원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경》에) 말하였다.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로우셨다. 부모의 은혜는 어떠함이 되는가? 어찌 감히 스스로 그 몸을 소유하여 그것으로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절로 부모를 향한 정성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학자들은 겉으로는 비록 몸을 조심하면서도 안으로는 독실한 자가 드물어서, 부부 (생략) 사이에 이부자리 (생략) 위에서 정욕을 내버려 두어 그 위의를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부가 서로 친압하지 않으면서 서로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이와 같이 하면서 자신을 닦고 집을 바르게 하고자 하면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반드시(생략) 지아비는 온화하면서도 의로 제어하고 지어미는 유순하여 바름으로 받들어서 부부의 사이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은 연후에 집안의 일이 다스려질 수 있다. 만약 예전처럼 서로 친압하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서로 공경하고자 한다면, 그 형세가 행해지기 어려우니, 반드시 이에 아내와 함께 서로 경계하여 반드시 이전의 습관을 버리고 점차 예에 들어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내가 만약 내가 말을 하고 몸을 지키는 것이 한결같이 바름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면, (생략) 반드시 점차 서로 믿고 순종할 것이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마땅히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함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 할 뿐이고, 쌓아두고 풍족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생략)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 사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김을 매는 사람이 있으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부유함과 귀함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비교하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략) 어찌 마음의 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모름지기 부유함과 귀함을 가볍게 여기고 가난함과 천함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오늘의 선비 된 자는 부모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맡아 하기를 옛 사람같은 자는 보지 못하였고, 다만 이 과거 공부 하나의 일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에 바라는 것이라 하여, 이제 이미 공부함을 면치 못한다. 그렇다면 과거공부가 비록 이학 공부와 같지 않으나, 역시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이어서 그 몸소 밭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을 지는 것보다 편리함이 백 배일 뿐만이 아니다. 하물며 남은 힘이 있거든 성리의 책을 읽을 수 있음에랴? 다만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으레 성공과 실패에 동요한 바 되어, 마음이 항상 조급하고 다투니, 도리어 힘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 마음을 해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이 “공부에 방해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뜻을 빼앗길까 걱정한다.” 하였다. 만약 그 일을 하면서도 그 지킴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곧 과거 공부와 이학 공부가 함께 행해지더라도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금을 모아서 자손(子孫)에게 남겨도, 반드시 자손이 다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책을 쌓아서 자손에게 남기더라도 반드시 자손이 다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둠의 속에서 남 모를 덕[陰德]을 쌓아서, 자손의 계책(計策)을 삼는 것만 같지 못하다.”
131
景行錄云 屈己者는能處重하고 好勝者는 必遇敵이니라<原本明心寶鑑, 戒性篇第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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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행록》에 말하였다. “자기를 굽히는 자는 중요한 자리에 있을 수 있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적을 만난다.”
132
我身能賢이면 譽及父母니라 我身不賢이면 辱及父母니라<四字小學, 四字小學>
내 몸이 어질 수 있으면, 명예가 부모에게 미치느니라. 내 몸이 어질지 못하면, 욕이 부모에게 미치느니라.
133
兄弟有難이어든 悶而思救하라 兄能如此면 弟亦效之리라<四字小學, 四字小學>
형제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근심하고 도울 것을 생각하라. 형이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아우 또한 (그것을) 본받으리라.
134
能孝能悌가 莫非師恩이니라能知能行이 總是師功이니라<四字小學, 四字小學>
효도할 수 있고 공경할 수 있음은 스승의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알 수 있고 실천 할 수 있음은 모두 스승의 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