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라는 책은 옛날의 태학(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방법에 관한 것[책]이었다. 대개 하늘이 사람을 내릴 때부터 곧 이미 그들에게 인의예지의 성품을 부여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부여받은 기질이 간혹 고를 수 없다. 이 때문에 모두가 제 본성이 〈본래부터〉 가진 바(인의예지)를 알아서 그 본성을 온전하게 할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3
子曰 德之不修와 學之不講과 聞義不能徙하며 不善不能改가 是吾憂也니라<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덕이 닦이지 않음과 학문이 익혀지지 않음과 의를 듣고 옮겨갈 수 없음과 불선을 고칠 수 없는 것이 바로 나의 걱정이다.”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사귐을 묻자, 자장이 말하였다. “자하가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문인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자하가, ‘괜찮은 자는 (그와) 함께 하고 그 괜찮지 않은 자는 (그를) 거절하라.’라고 말하였다.” 자장이 말하였다. 내가 들었던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현인을 존경하고 대중을 포용하며, 잘하는 이를 아름답게 여기고 능숙하지 못하는 이를 불쌍히 여긴다. 내가 크게 어질다면 (생략) 남에 대해 누구인들 (생략) 용납하지 못할 것이며, 내가 어질지 못하다면 (생략) 남이 장차 나를 거절할 것이니 (그것을) 어찌하여 그렇게 남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왕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어 말하길, ‘제 힘으로는 백 균을 들기 충분하지만, 힘으로 깃털 하나를 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시력으로는 가을 털의 끝을 살피는 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합니다’ 한다면, 왕은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은혜로써 금수에 미치기에 충분하지만,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호받지 않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잘 다스리지 못함은 하지 않아서일지언정,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왕이〉 말하였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모습이 어떤 것이 다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것을 사람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할 수 없는 것이고,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유형이 아닙니다.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가지를 꺾는 유형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어두워서 이에 나아갈 수 없으니, 바라건데 부자는 나의 뜻을 도와 분명하게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한번 그것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항산(恒産)이 없는데에도 항심(恒産)이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거니와, 만약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심이 없으니,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트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16
曰 士師不能治士어든 則如之何잇고 王曰 已之니이다<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말하였다. “사사(士師:옥관)가 사(士)를 다스릴 수 없다면 그를 어찌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사사를 그만두게 하겠습니다.”
객이 불쾌해하며 말하였다. “제가 재계하고 하루를 묵은 뒤에 감히 말하였는데 선생은 누워서 듣지 않으니, 다시는 외람되지만 뵙지 않으려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앉으시오. 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겠소. 옛날에 노(魯)나라 목공(繆公)은 자사(子思)의 곁에 〈자신의 뜻을 전달할〉 사람이 없으면 자사를 편안히 여길 수 없었고, 설류(泄柳)와 신상(申詳)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제 몸을 편안히 여길 수 없었다네.
〈세자가〉 연우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전에 일찍이 배우지 않고, 말을 달리고 검술 익히기를 좋아하였는데, 지금은 종친과 백관이 나에게 만족하지 않으니, 그 대사를 완수할 수 없을까 염려되니, 선생께서 저를 위해 맹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연우가 다시 추(鄒) 땅에 가서 맹자에게 물었는데,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다른 것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죽으면 총재를 따른다.’고 하셨으니, 〈세자가〉 죽을 먹고 얼굴이 심하게 어두워져 자리에 나아가서 곡하면, 백관과 유사가 감히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은 〈세자가〉 이 일을 솔선해서입니다.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이 반드시 그보다 더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공자께서〉 ‘군자의 덕(德)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 하였으니, 이번 일은 세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천하의 넓은 집[仁]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큰 도[義]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를 따르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여,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할 수 없으며 빈천(貧賤)이 〈절개를〉 옮길 수 없으며 위세와 무력이 〈뜻을〉 굽힐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대장부(大丈夫)라고 합니다.”
20
故로 曰 徒善이 不足以爲政이요 徒法이不能以自行이라하니라<孟子, 離婁上>
그러므로 말하기를, 단지 선(善)만으로 정치할 만하지 않고, 단지 법률만으로 저절로 행해지게 할 수 없다.
맹자가 말하였다. “중(中)을 〈실천하는 자〉가 중도에 맞지 않는 자를 길러주며, 재주가 있는 자가 재주가 없는 자를 길러준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진 부형이 있는 것을 즐거워한다. 만일 중도에 맞는 자가 중도에 맞지 않는 자를 버리며, 재주가 있는 자가 재주가 없는 자를 버린다면,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의 거리가 그 간격이 한 치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감히 묻건대, 〈요임금이〉 순을 하늘에 천거하자 하늘이 그를 받아주고, 순을 백성들에게 드러내자 백성들이 그를 받아들인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순에게 제사를 주관하게 하자 온갖 신들이 제사를 흠향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그를 받아 준 것이고, 순에게 일을 주관하게 하자 일이 다스려져서 백성들이 그를 편안하게 여겼으니 이는 백성들이 순을 받아들인 것이네. 하늘이 그에게 주었고 사람이 그에게 주었으니, 그러므로 ‘천자는 천하를 사람에게 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네. 순이 요임금을 도운 것이 스물하고 또 여덟해이니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준 것〉이네. 요임금이 죽자 삼 년의 상을 마치고 순임금이 남하의 남쪽으로 요임금의 아들을 피하였는데 천하의 제후로서 조회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에게 가지 않고 순임금에게 갔으며, 송사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에게 가지 않고 순임금에게 갔으며, 칭송하여 노래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을 칭송하지 않고 순임금을 칭송하였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이다.’ 말한 것이네. 무릇 그런 뒤에야 중원으로 가서 그곳에서 천자의 자리에 오르셨으니, 만약 〈순이〉 요임금의 궁궐에 거처하면서 요임금의 아들을 핍박했다면 이는 찬탈한 것이지 하늘이 준 것이 아니라네.
천자의 제도엔 땅이 사방 천 리이고, 공(公)과 후(侯)는 모두 사방 백 리이고, 백(伯)은 〈사방〉 칠십 리이고, 자(子)와 남(男)은 〈사방〉 오십 리이니, 모두 네 등급입니다. 오십 리가 되지 않는 〈땅은〉 천자에 이르지 않아서 제후(諸侯)에게 부속되니, 〈이것을〉 부용국(附庸國)이라고 합니다.
〈만장이〉 말하였다. “임금이 구휼할 것을 보내주면 그것을 받는다고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계속 〈받아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목공이 자사를 대할 적에는 자주 문안하고 자주 삶은 고기를 보냈는데, 자사는 기뻐하지 않고서 결국에는 심부름 보낸 자를 물리쳐서 대문의 밖으로 내보내고, 북쪽을 마주하고 머리를 조아려 재배하고서 받지 않으며 말하길, ‘오늘 이후에 임금께서 개와 말처럼 나를 길렀다는 것을 알았다.’ 하였으니, 대체로 이때부터 〈명을 받은〉 하인을 〈통해〉 〈물건을〉 보낸 일이 없었으니, 현명한 자를 좋아하면서 등용할 수 없고 또 봉양할 수 없다면, 현명한 자를 좋아한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공도자(公都子)가 대답할 수 없어서 맹자에게 고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숙부를 공경하는가? 동생을 공경하는가?’ 〈말하면〉, 맹계자는 장차 ‘숙부를 공경한다.’ 말할 것이네. 〈그대가〉 ‘동생이 시동(尸童)이 되면 누구를 공경하겠는가?’ 말하면, 맹계자는 장차 ‘동생을 공경한다.’ 말할 것이네. 그대가 ‘어디에 그 숙부를 공경함이 있는가?’ 말하면, 맹계자는 장차 ‘시동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말할 것이네. 그대 역시 ‘빈객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게. 평소의 공경은 형에게 있고 잠깐의 공경은 마을 사람에게 있다네.”
측은해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공경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니, 측은지심은 인(仁)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이고 공경지심은 예(禮)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이니, 인·의·예·지가 밖으로부터 나를 녹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인의예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네. 그러므로 말하길, ‘구하면 인의예지를 얻고, 버리면 인·의·예·지를 잃는다.’ 하는 것이니, 혹 〈선악의 차이가〉 서로 두 배, 다섯 배가 되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자기의 〈타고난〉 재질을 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네.
〈공도자가〉 말하였다. “똑같이 사람인데, 어떤 이는 그 대체를 따르며 어떤 이는 그 소체를 따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귀와 눈이란 기관은 생각하지 못하여 물건에 가려지니 외물(外物)이 〈이목(耳目)이라는〉 물과 접촉하면 〈이목은〉 외물에 끌려갈 뿐이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대체를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네. 이것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준 것이니, 먼저 그 큰 것(마음)을 세운다면 그 작은 것(이목)이 빼앗을 수 없으니, 이것이 대인이 된 까닭일 뿐이라네.”
33
屋廬子不能對하여 明日에 之鄒하여 以告孟子한대 孟子曰 於答是也에 何有리오<孟子, 告子下>
옥려자가 잘 대답하지 못하고, 다음 날 추(鄒) 땅에 가서 맹자에게 〈그 일을〉 고하였는데, 맹자가 말하였다. “그 일을 답하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요순처럼 되는 것이〉 어찌 신장에 달려 있겠습니까? 또한 〈요순과 같은〉 노력을 하〈면 될〉 뿐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 힘이 한 마리 오리 새끼를 이길 수 없으면 힘없는 사람이 되고, 만약 ‘백 균을 든다.’고 한다면 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니, 그렇다면 오확(烏獲)의 짐을 든다면 그 또한 오확이 될 뿐입니다. 대체 사람들은 왜 이겨내지 못할 것으로 근심을 삼을까요? 〈근심할 것은 요순의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천천히 걸어 나이 많은 사람보다 뒤에 가는 것을 ‘공경한다.’ 이르고, 빨리 걸어 나이 많은 사람 보다 앞서는 것을 ‘공경하지 않는다.’ 이르니, 무릇 천천히 걷는 것이 어찌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겠습니까? 하지 않는 것이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는 효도와 공경일 뿐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아침에 먹지 못하고 저녁에 먹지 못하여 굶주려서 문을 나갈 수 없는데, 군주가 사실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크게는 그의 도를 행할 수 없고 또 그 말을 수 따를 없어서 〈그로〉 하여금 나의 토지에서 굶주리게 한 것을 내가 부끄러워한다.’ 하고 그를 구휼한다면, 또한 받을 수는 있겠지만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이라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한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며 그의 신체를 수고롭게 하며 그 체구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하여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거스르고 어지럽히니,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가 할 수 없는 것에 〈힘을〉 더하려는 까닭이다.
38
不能三年之喪而緦小功之察하며 放飯流歠而問無齒決이 是之謂不知務니라<孟子, 盡心上>
〈자신의〉 삼년의 상기를 해내지 못하면서 〈남의〉 시마(緦麻)며 소공(小功)을 살피며, 밥을 〈자신은〉 헤집어 놓고 국물을 흘리면서도 〈남에게〉 이로 끊는 것을 하지 말라 요구하는 것, 이것을 힘써야 할 것을 알지 못한다고 이른다.”
공손추가 말하였다. “무엇을 이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양나라 혜왕이 토지 때문에 자기 백성을 갈아넣어서 전투에서 싸우게 하여 크게 패하였네. 장차 전투를 다시 하려는데 이길 수 없음을 두려워하였다네. 그러므로 자신의 사랑하던 바 자제(태자)를 내몰아서 전투에서 죽게 하니 이것을 일러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미친다고 한다네.”
40
孟子曰 梓匠輪輿 能與人規矩언정不能使人巧니라<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목수와 수레공은 남에게 그림쇠와 곱자를 줄 수 있지만 남을 뛰어나게 할 수 없다.”
41
孟子曰 身不行道면 不行於妻子요 使人不以道면不能行於妻子니라<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자신이 도(道)를 행하지 않으면 처자식에게 〈도가〉 행해지지 않고, 사람을 부릴 적에 도로써 하지 않으면 처자식에게 〈명령이〉 행해질 수 없다.”
42
孟子曰 周于利者는 凶年이不能殺하고 周于德者는 邪世不能亂이니라<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이익에 치밀한 자는 흉년도 〈그를〉 죽일 수 없고, 덕(德)에 치밀한 자는 나쁜 세상도 〈그를〉 어지럽힐 수 없다.”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그것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부부의 불초함으로도 (그것을) 해낼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에) 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천지의 큼에도 사람이 오히려 서운해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군자의 큰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실을 수 없으며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쪼갤 수 없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으나 몸을 공경함이 큼이 된다. 몸이란 것은 부모의 가지이니, 감히 공경하지 않겠는가? 그 몸을 공경할 수 없다면 이는 그 부모를 상함이요. 그 부모를 상하면 이는 그 뿌리를 상함이니, 그 뿌리를 상하면 가지는 따라서 망한다.” 성인의 법을 우러르며 현인의 법을 우러르며 이 편을 지어 어린 선비를 가르치노라.
백유가 잘못이 있어 그 어머니가 (그를) 매질하자 울었다.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다른 날에 매질할 때 네가 일찍이 울지 않더니 오늘 우는 것은 어째서인가?” (백유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제가 죄를 얻어 매를 맞음에 항상 아프더니 오늘 어머니의 힘이 아프게 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웁니다.”
무릇 배움은 반드시 안정하여야 하고, 재주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 배움이 아니면 그것으로 재주를 넓힐 수 없고, 안정이 아니면 그것으로 배움을 이룰 수 없으니, 방자하고 게으르면 정밀한 것을 연구할 수 없고, 거칠고 조급하면 성품을 다스릴 수 없다. 나이가 때와 달리며 뜻이 해와 가서 마침내 마르고 시듦을 이루면 궁색한 오두막에서 슬퍼하고 탄식한들 장차 다시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무릇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 거하는 사람은 대상의 전에 모두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니, 만약 병이 있으면 잠시 모름지기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되, 병이 그치면 또한 마땅히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만일 고기 없는 음식이 목으로 잘 내려가지 않아서 오래되어 파리하고 여위어 병을 이룰까 염려되는 사람은 고기즙과 포와 젓갈이나 혹 고기 조금과 약간으로 그 입맛을 돋울 수 있을지언정 진귀한 음식, 성대한 음식을 마음대로 먹거나 및 남과 연회 하며 즐겨서는 안 되니, 이는 곧 비록 상복을 입었더라도 그 실제는 상례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50세 위로 혈기가 이미 쇠하여 반드시 술과 고기에 도움받아 받들어 봉양하는 사람은 곧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뿐이다.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시경의) 사간시에 말하였다. ‘형과 아우는 (어조사) 서로 사랑하고, 서로 같아선 안 된다.’ 형과 아우가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하고, 마땅히 서로 (나쁜 점을) 배워선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유‘는 같음이다. 사람의 정은 대저 병통이 은혜를 갚음을 당하지 않으면 그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은혜를 잘 마치지 못하니, 마땅히 서로 배우려 하지 말고 자기가 (그것을) 베풀고 그친다.
이를 지난 이후로 모든 행실이 다 그러하니, 비록 순전할 수 없더라도 지나친 것을 없애고 심한 것을 없애면 (그것을) 배워 아는 바를 시행함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글을 읽되 다만 (그것을) 잘 말하기만 하고 (그것을) 잘 행하지 못하니, 무예를 하는 사람과 세속의 아전에게 함께 비웃고 비방하는 바가 됨은 진실로 이 때문일 뿐이다.
안정선생 호원은 자가 익지이다. 수나라와 당나라 이래로 벼슬에 나아가는 자들이 문장을 숭상하고 경학을 버려서 구차히 녹봉과 이익에 달려갈 것을 걱정하였다. 소주와 호주 두 주의 교수가 됨에 이르러서는 조약을 엄격히 하여 자신으로 (그것을) 솔선하여, 비록 크게 덥더라도 반드시 종일토록 공복을 입고서 제생들을 만나서 스승과 제자의 예를 엄격히 하였으며, 경전을 풀이할 때 중요한 뜻이 있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간곡하게 제생을 위하여 그 자신을 다스린 이후에 남을 다스리게 되는 까닭을 말해주었다. 배우는 무리가 천 명이었는데 날마다 달마다 갈고 연마하여 문장을 짓되 모두 경서의 뜻에 따라서 반드시 이치로써 우세하게 하였으며 그 스승의 학설을 믿어 행실을 도타이 숭상하였다. 후에 태학(의 관원)이 되어서는 사방이 (그곳에) 모여들어 상사에 수용할 수 없었다
설포는 학문을 좋아하고 행실을 돈독히 하였다. 아버지가 후처를 맞이하고서는 포를 미워하여 분가하여 (그를) 내보내자 설표는 아침 저녁으로 울부짖으며 떠나지 못했다. 몽둥이로 매질을 당함에 이르러서는 부득이하게 집 밖에 여막을 짓고 새벽에 들어와서 물뿌리고 청소하였는데 아버지는 노하여 또다시 (그를) 쫒아내었다. 이에 마을 문에 여막을 짓고 혼정신성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 기간이) 일 년 남짓 쌓이자 부모가 부끄러워하면서 (그를) 돌아오게 하였다. 후에 상복을 입게 되어서는 지나치게 슬퍼하였다.
이윽고 아우의 아들들이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기를 원하였다. 설포는 만류할 수 없어서 이에 그 재산을 절반으로 나누었는데 노비는 그 늙은 자를 끌어오며 말하기를 “나와 더불어 일을 함께 한 지 오래 되었다. 너희들이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밭과 집은 그 황폐하고 기울어진 것을 취하며 말하기를 “내가 어린 시절에 다스리던 것이라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기물은 그 썩고 부서진 것을 취하며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입고 먹던 것이라서 (나의) 몸과 입에 편안한 것이다." 하였다. 아우의 아들들이 자주 그 재산을 파산하였는데, 그때마다 다시 도와주었다.
수창이 두 차례 군수가 되었는데 이에 이르러 어머니를 이유로 하여 하중부에 통판이 되었는데, 그 동복형제를 맞이하여서 돌아왔다. (함께) 지낸 지 몇 년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눈물 흘리며 울다가 거의 실명하게 되었다. 그 아우와 누이를 사랑하기를 더욱 돈독하게 하여 (그들을) 위하여 밭과 집을 사서 (그곳에) 살게 하였으며 그 종족에 대해서도 더욱 은혜로운 마음을 다하였다. 형제의 고아가 된 딸 두 사람을 시집보냈으며 그 장례 치르지 못한 사람 십여 초상을 장례 지냈으니, 대개 그 천성이 이와 같았다.
최현위의 어머니 노씨가 일찍이 현위를 훈계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종 오빠인 둔전낭중 신현어를 보니, (이종 오빠가) 말하기를 “아들로서 벼슬에 종사하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 와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좋은 소식이다, 만약 듣기에 재화가 충족하며 옷과 말이 가볍고 살쪘다고 하면 이는 나쁜 소식이다.’ 라고 하니 나는 일찍이 이로써 확론이라고 여긴다." 하였다.
상을 지낸지 3년이 되자, 그 부모가 그녀가 젊어 자식이없는데 일찍 과부가 된 것을 슬퍼하였다. 장차 (그녀를) 데려와 시집보내려 하려 하였다. 효부가 말하였다. “남편이 떠날 때 첩에게 노모를 봉양하는 것을 부탁하였는데, 첩이 이미 (그것) 허락하였다. 무릇 남의 노모를 봉양하다가 끝까지 하지 못하며 남에게‘알겠습니다‘라고 허락하였으나 신용을 지키지 못한다면, 장차 무엇 으로써 세상에 서겠는가?" 하고, 자살하려고 하였다. 그 부모가 두려워하여감히 시집보내지 못하고, 마침내 그 시어머니를 봉양하게 하였다. 28년 만에 시어머니가 80여세로천수로써 돌아가셨다. 모두 그 밭과 집과 재물을 팔아서 (그를) 장례 치르고, 끝까지 제사를받들었다.
목융이 어려서 고아가 되어 형제 네 명이 모두 재산과 가업을 함께하였다. 각자 아내를 맞이함에 이르러서는 여러 아내가 마침내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기를 요구하였으며, 또 자주 다투는 말이 있었다. 목융이 깊이 분노와 탄식을 품고, 이에 문을 닫고 스스로 종아리를 치며 말하였다. “목융아! 네가 몸을 닦고 행실을 삼가하여 성인의 법을 배우는 것은 장차 이로써 풍속을 정돈하려는 것이니, 어찌하여 그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느냐?" 하였다. 아우 및 여러 아내가 (그것을) 듣고 모두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마침내 고쳐서 돈독하고 화목한 행실을 하였다.
진나라 우복야 등유가 영가 말년에 석륵에게 패몰되어 사수를 지났는데, 등유는 소와 말에 아내와 아이를 업히고 도망가다가 또 만나 도적을 그 소와 말을 빼앗겨 걸어서 달아나면서 그의 아이와 및 그의 동생의 자식인 유를 업고 갔다. 둘 다 온전하게 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서 이에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우리 동생은 일찍 죽어서 오직 한 명의 자식이 있을 뿐이니, 도리상 (동생의 후사를) 끊을 수 없다. 다만 마땅히 스스로 우리 아이를 버려야 할 뿐이다. 다행하여 (우리가) 살아있다면 우리는 나중에 마땅히 자식이 있을 것이다. 아내가 울면서 (그 말을) 따랐다. 이에 그 아이를 버리고 (그를) 떠났는데 마침내 이로써 후사가 없었다.
근세의 고가 중에 오직 조씨 가문만이 이도가 거듭 자제에게 훈계한 것을 인하여 모두 법도가 있었다. 모여 살면서 서로 부를 적에 외성의 존장에게는 반드시 “무슨 성 몇 째 아저씨 혹 형” 이라 하고 여러 고모와 대고모의 남편에게는 반드시 말하기를 “아무개 성 고모부, 아무개 성 대고모부"라 하여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않았다. 그 부당의 교유를 말할 때는 반드시 “아무개 성 몇 째 어른” 이라 하고 또한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않았다. 당시의 고가와 구족이 모두 이와 같이 하지 못하였다.
한문공이 동생행을 지어 말하였다. “회수는 동백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멀리 달려 천 리를 쉬지 못하는데, 비수는 그 옆에서 나와 천 리를 못하여 백 리를 가서 회수로 들어가 흐르도다. 수주의 속현에 안풍이 있으니, 당나라 정원 연간에 현 사람 동생 소남이 그 가운데에서 은거하며 의를 행하도다. 자사가 천거하지 못하니, 천자가 (그의) 명성을 듣지 못하여 작록이 문에 미치지 못하고, 문 밖에는 오직 관리들이 날마다 와서 조세를 징수하고 다시 돈을 요구하는 일 만 있구나.
어떤 사람이 제오륜에게 물어 말하였다 “공에게도 사사로움이 있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 사람 중에 나에게 천리마를 준 사람이 있었다. 내가 비록 받지는 않았으나 삼공이 천거한 바가 있을 때마다 마음에 잊을 수 없었으나, 또한 끝내 등용하지 않았다. 내 형의 아들이 일찍이 병이 들었는데 하룻밤에도 열 번을 갔으나 물러나서 편안하게 잠들었고 내 아들이 병에 걸려서는 비록 살펴보지는 않았으나 밤을 마치도록 잠들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것이 어찌 사사로움이 없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또 명년에 왕씨와 가씨 모두 재앙을 만났다. 아! 왕씨는 진귀한 물건과 기이한 재화를 물건의 요망함이라 하였으니, 진실로 말을 안 것이지만, 물건의 요망함만 알고 은혜와 권세가 높고 빛남의 요망함이 물건보다 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가? 풍구는 낮은 지위로 보화를 탐하여 이미 그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였고 섬기는 바에 충성을 다하였으나 그 몸을 보전하지 못했으니, 이 또한 말하기에 부족하다. 가씨의 노복이 장무의 사이에서 문객을 해쳤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부귀를 누리고자 하였으나,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그 윗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대함에 한결같이 스스로 믿음으로서 하여, 이익과 해로움을 가려서 나아가거나 버리지 (생략) 않았으며, 그 하는 바가 있을 때 반드시 그 방법을 다하면서 말하였다. “나로부터 (생략) 하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 그 성공함과 (성공하지) 못함은 나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이 있다. 비록 성현이라도 기필할 수 없으니, 내 어찌 구차히 하겠는가?”
장문절공이 재상이 되어 스스로 받듦이 하양의 장서기 일 때와 같았다. 친한 사람이 혹 (그를) 타일러 말하기를 지금 공은 받는 녹봉이 적지 않거늘 스스로 받듦이 이와 같으니, 비록 스스로 청렴하고 검약함을 믿더라도 바깥사람들은 자못 공손이 삼베 이불을 덮었던 비난을 하고 있다. 공은 마땅히 조금은 대중을 따르라.” 공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지금의 봉급으로 비록 온 가족에게 비단옷과 진수성찬을 먹이더라도 어찌 할 수 없을까 걱정하겠는가? 다만 사람의 상정은, 검소함에서 사치함으로 들어가기는 쉽고 사치함에서 검소함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내 지금의 녹봉이 어찌 항상 있을 수 있으며, 몸이 어찌 항상 보존될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지금과 달라지면 집안 사람들은 익힌 지 사치를 이미 오래되어서 갑자기 검소할 수 없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을 잃는 상황에 이를 것이니, 어찌 내가 있거나 벼슬에 떠나거나, 벼슬을 몸이 생존하거나 몸이 죽는 것을 하루처럼 하는 것만 같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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嗟乎라 風俗頹弊如是하니 居位者 雖不能禁이나 忍助之乎아<小學, 善行第六>
아! 풍속이 퇴폐한 것이 이와 같으니, 지위에 있는 사람이 비록 금지하지는 못할지라도 차마 (그것을) 조장하겠는가?”
둘째. 구습을 고치는 것에 대한 글: 사람이 비록 배움에 뜻이 있는데도 용감하게 나아가고 곧게 전진하여 성취하는 바가 있을 수 없는 것은 구습이 성취를 좌절시킨 까닭[所以]이 있다. 구습의 항목을 왼쪽과 같이 조목별로 열거하니 만약 마음을 다하여 〈구습을〉 철저하게 끊어내지 않는다면 끝내 학문을 하는 바탕이 없을 것이다.
그 첫째는 자신의 심지를 게을리하고 자신의 몸가짐을 멋대로 하여 다만 한가하고 편안하기만을 생각하여 구속을 매우 싫어하는 것이요. 그 둘째는 항상 움직일 것을 생각하여 고요함을 지킬 수 없고 어지럽게 출입하며 말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요. 그 셋째는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고 달리하는 것을 싫어하여 유속에 빠져서 점차 〈몸을〉 닦고 삼가고자 하나 사람들과 어긋날까 두려워하는 것이요. 그 넷째는 문사로 당시 사람에게 칭찬받기를 좋아하여 경전을 표절하여 쓸데없이 화려한 글을 꾸미는 것이요.
학문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도를 향하여 외부의 사물이 이기는 바가 되어선 안 되니, 외부의 사물이 바르지 못한 것을 응당 일체 마음에 머물게 하지 말아서 마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 만일 장기, 바둑, 주사위 놀이 등의 놀이를 벌여 놓았으면 응당 눈을 붙이지 말아서 뒷걸음질 쳐서 (몸을) 이끌어 물러나고, 만일 광대와 기생이 노래와 춤을 하는 것을 만나면 반드시 모름지기 피하여 떠나야 하고, 만일 마을 안의 큰 모임을 만나 혹시 존귀하고 나이 많은 이가 억지로 만류하여 피하고 물러갈 수 없으면 비록 자리에 있더라도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사한 소리와 음란한 색이 나를 침범함이 있게 안 된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양육을 받기만 하고 자기 힘으로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니, 만약 이처럼 문득 세월을 보내면 끝내 정성으로 봉양할 때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모름지기 몸소 집안일을 맡아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마련한 뒤에야 자식의 직분이 곧 닦여진다. 만약 부모가 굳이 들어 따라주지 않으면 비록 집안일을 맡을 수는 없더라도 또한 마땅히 주선하고 보조하여 힘을 다해 맛있는 음식의 갖춤을 얻어 그것으로 어버이의 입에 맞도록 함이 옳다. 만약 마음마다 생각마다 어버이 봉양함에 있다면 진미를 또한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양 생각해보면 왕연이 추위가 지독한 겨울날 매서운 추위에 몸에는 온전한 옷이 없었는데 어버이는 맛있는 음식을 다하여 사람들에게 감탄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게 한다.
사람이 거상함에 성효가 지극하지 못하여 예를 따를 수 없는 자는 진실로 말할만 한 것도없으나, 간혹 자질이 아름다우나 아직 배우지 못한 자가 있어 단지 예를 행하는 것이 효가 되는 줄만 알고 생명을 손상하는 것이 바름을 잃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슬퍼하고 훼손하기를 지나쳐 파리한 병이 이미 일어났는데 차마 권도를 따르지 못하여 그것으로 생명을 잃는 데 이르는 자가 혹 (그런 자가) 있으니, 매우 애석할 만하다. 이런 까닭으로 훼손하고 수척하여 생명을 상하게 함을 군자는 (그를) 일러 불효라고 한다.
스승과 벗의 의리가 중한 자와 친척 중에 복입는 예가 없으면서 정이 두터운 자와 무릇 서로 알던 교분이 친밀한 자는 모두 상을 들은 날에 만약 길이 멀어 그 상에 가서 지킬 수 없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한다. 스승이라면 그 정의의 깊고 얕음을 따라 혹 심상 삼 년, 혹 기년, 혹 9개월, 혹 5개월, 혹 3개월이요, 친구라면 비록 가장 중하더라도 3개월을 넘지 않는다. 만약 스승의 상에 삼 년이나 기년을 행하고자 하는 자가 초상에 달려갈 수 없으면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곡하여, 나흘에 그친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마땅히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함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 할 뿐이고, 쌓아두고 풍족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생략)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 사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김을 매는 사람이 있으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부유함과 귀함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비교하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략) 어찌 마음의 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모름지기 부유함과 귀함을 가볍게 여기고 가난함과 천함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집에서 생활할 때 가난하면 (생략) 반드시 가난에 곤궁한 바 되어서 그 지키는 (생략) 것을 잃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바로 마땅히 이곳에서 노력해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였다. “곤궁할 때 그가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난할 때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본다.” 공자가 “소인은 가난하면 넘친다” 라고 하였다. 만약 가난함에 움직여서 의를 행할 수 없다면, (생략)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무릇 사양하고 받고 가지고 주는 사이에 반드시 의인지와 의가 아닌지를 정밀하게 생각하여 의라면 (그것을) 가지고, 의가 아니라면 가지지 않아서 터럭만큼도 그대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공부에 매이게 되어 학문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이것은 또한 미루고 핑계대는 말이고 성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옛날 사람은 어버이를 봉양할 때 몸소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으며, 품팔이 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으며 쌀을 지고 나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무릇 몸소 밭을 갈고 품팔이 하러 다니고 쌀을 지고 나르는 때에 부지런히 애쓴 것이 심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책을 읽었겠는가? 오직 그 어버이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자임하여 이미 자식의 직분을 닦고서 여력이 있을 때 글을 배웠어도 또한 덕에 나아갈 수 있었다.
요즘 사람은 명분으로는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공부하지 않고, 명분으로는 이학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손을 대지 않는다. 만약 과거 공부로 책망하면 곧 말하기를, “내가 이학 공부에 뜻을 두고 있어서 거기(과거)에 전념할 수 없다.” 하고, 만약 이학 공부로 책망하면, 곧 말하기를 “나는 과거 공부에 얽매이는 바 되어서, 실지에 힘을 쓸 수 없다.”라고 한다. 이처럼 양쪽으로 편리한 점만 살펴서 한가롭게 날만 보내다가 마침내 과거 공부와 이학 공부 양 쪽 〈모두〉 이룬 바가 없는 데에 이르게 되니, 늙은 뒤에 비록 후회하더라도 어찌 따라잡겠는가? 오호라! 경계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사람이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히 여기고 이미 벼슬한 뒤에는 다시 벼슬을 잃을까 염려한다. 이처럼 골몰하다가 그 본심을 잃은 사람이 많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은 도를 행하는 일을 중심으로 해야 하니, 도가 행해질 수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 만약 집안이 가난하여 녹을 받는 벼슬아치에서 벋어날 수 없다면, 반드시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에 나아가며, 높은 지위는 사양하고 낮은 벼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위한 벼슬이라고 하지만,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힘써서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하고, 관직을 버려두고서 먹고 마시기만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