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낳으면, 아는 것이 조금 생길 때부터 마땅히 자식을 선으로 인도해야 하니,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미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곧 나쁜 것을 익히고 마음을 풀어놓아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 자식을 가르치는 차례는 마땅히 《소학(小學)》을 따라야 한다. 대체로 한 집안의 안에 예법이 성행하고, 책을 엮고 글씨 쓰기의 외에 다른 잡기가 없으면, 자제들 또한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서 배움을 저버리는 근심이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은 나의 자식과 같으니, 그 조카를 사랑하는 것, 그 조카를 가르치는 것을 마땅히 동일해야 하고, 가볍게 하거나 중하게 하고, 후하게 하거나 박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손윗동서와 손아랫동서를 형과 동생에 견주면 소원하고 박하니, 이제 소원하고 박한 사람으로 친하고 후한 은혜를 절제하고 헤아리게 하면, 모난 밑에 동그란 덮개와 같아서 반드시 맞지 않을 것이니, 오직 우애와 공경이 깊고 지극하여 옆 사람이 옮긴 바 되지 않은 사람이라야 면할 수 있다!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시경의) 사간시에 말하였다. ‘형과 아우는 (어조사) 서로 사랑하고, 서로 같아선 안 된다.’ 형과 아우가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하고, 마땅히 서로 (나쁜 점을) 배워선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유‘는 같음이다. 사람의 정은 대저 병통이 은혜를 갚음을 당하지 않으면 그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은혜를 잘 마치지 못하니, 마땅히 서로 배우려 하지 말고 자기가 (그것을) 베풀고 그친다.
14
子曰 過猶不及이니라<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15
子曰 聽訟이 吾猶人也나 必也使無訟乎인저<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송사(訟事)를 듣는 것은 나도 남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가 없게 할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벼슬하는 것은, 농부가 밭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가 어찌 국경을 나가기 위하여 자기의 쟁기와 보습을 버리겠습니까?” 〈주소가〉 말하였다. “진(晉)나라 또한 벼슬할 만한 나라입니다만, 일찍이 벼슬하는 것이 이처럼 매우 조급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벼슬하는 것이 이처럼 매우 조급하다면, 군자가 벼슬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부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아내가 있기를 원하고, 여자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시댁이 있기를 원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모두 그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의 명과 매파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을 뚫어서 서로 엿보고 담장을 넘어 서로 따른다면, 부모와 나라 사람이 모두 그들을 천시할 것입니다. 옛날의 사람들이 일찍이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또한,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미워하였으니, 올바른 길을 통하지 않고서 가는 것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은 부류입니다.”
18
然則犬之性이猶牛之性이며 牛之性이猶人之性與아<四書독해첩경, 孟子>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개의 성(性)이 소의 성(性)과 같으며, 소의 성(性)이 사람의 성(性)과 같다 〈고 말하는 것〉 입니까?”
비록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 사람이 스스로의 양심(良心)을 잃은 까닭은 또한 도끼가 나무를 를 만나면 날마다 나무를 베어버리는 것과 같으니, 〈산이〉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 밤낮의 자라는 바와 새벽의 기운에, 그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본성이〉 다른 사람과 서로 가까운 것이 거의 없는데, 곧 그 낮에 행동하는 것이 본성을 구속하여 없앰이 있으니, 구속을 반복하면 그 밤 기운이 보존되는 것이 충분하지 않고, 밤 기운이 보존되는 것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으니, 사람이 그 금수를 보고서 ‘일찍이 그 사람에게 재질이 없었다’ 여길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 모습이겠는가?
공자가 말하길, “송사(訟事)를 판결하는 것은 나도 남과 같으나, 반드시 〈백성에게〉 송사가 없게 할 것이다.” 하였으니, 진실하지 않는 자가 〈터무니 없는〉 제 말을 다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성인이〉 백성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해서이니, 이것을 ‘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사(士)가 지위를 잃는 것은 제후가 국가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예(禮)》에 이르기를 ‘제후가 밭을 갈면 〈백성이 농사를〉 도와서 자성(粢盛)을 바치고 부인은 누에를 치고 고치를 켜서 〈제사용〉 옷을 만든다. 희생(犧牲)이 자라지 않으며 자성이 깨끗하지 못하며 〈제사용〉 의복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감히 이 때문에 제사 지내지 못한다. 그리고 선비는 〈섬기는 군주가 없어서〉 제전(祭田)이 없으면 또한 제사 지내지 못한다.’ 하니, 희생과 제기와 제복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감히 이 때문에 제사 지내지 못하면 감히 이 때문에 연회를 열지 못하니, 또한 위로하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벼슬하는 것은, 농부가 밭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가 어찌 국경을 나가기 위하여 자기의 쟁기와 보습을 버리겠습니까?” 〈주소가〉 말하였다. “진(晉)나라 또한 벼슬할 만한 나라입니다만, 일찍이 벼슬하는 것이 이처럼 매우 조급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벼슬하는 것이 이처럼 매우 조급하다면, 군자가 벼슬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부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아내가 있기를 원하고, 여자가 태어나면 그를 위하여 시댁이 있기를 원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모두 그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의 명과 매파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을 뚫어서 서로 엿보고 담장을 넘어 서로 따른다면, 부모와 나라 사람이 모두 그들을 천시할 것입니다. 옛날의 사람들이 일찍이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또한,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미워하였으니, 올바른 길을 통하지 않고서 가는 것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은 부류입니다.”
31
泄泄는猶沓沓也니라<孟子, 離婁上>
‘예예(泄泄)’는 ‘답답(沓沓)’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
32
事君無義하며 進退無禮하고 言則非先王之道者 猶沓沓也니라<孟子, 離婁上>
임금을 섬김에 의(義)가 없으며 나아가고 물러남에 예(禮)가 없고, 말만하면 선왕의 도를 비난하는 것이 답답(沓沓)과 같은 것이다.
33
今에 惡死亡而樂不仁하나니 是猶惡醉而强酒니라<孟子, 離婁上>
지금 사망을 싫어하면서도 불인(不仁)을 즐거워하니, 이는 취하기를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
34
今也에 小國이 師大國而恥受命焉하나니 是猶弟子而恥受命於先師也니라<孟子, 離婁上>
지금에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본받으면서도 대국에게 명령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니, 이것은 제자이면서도 스승에게 명령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의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장차 자기에게 귀의하는데도, 천하가 기뻐하면서 자기에게 귀의하는 것을 보고도 초개를 〈보는 것과〉 같이한 것은 오직 순임금만이 그렇게 하였으니, 어버이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로써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어버이를 순응하게 하지 못하면 그로써 자식이라 할 수 없다.
현명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면서 올바른 도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가 들어오길 바라면서 그 문을 닫는 것과 같다네. 무릇 의리는 길이고 예는 문이니, 오직 군자만이 이 길을 경유하고 이 문을 출입할수 있다네. 《시경》 〈대동(大東)〉에 이르길, ‘큰 길은 숫돌과 같으니, 그 곧음은 화살과 같다. 군자가 밟는 것이고, 소인이 우러러보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네.”
41
告子曰 性은猶杞柳也요 義는猶桮棬也니 以人性爲仁義는猶以杞柳爲桮棬이니라<孟子, 告子上>
고자(告子)가 말하였다. “〈사람의〉 성(性)은 버들과 같고 의(義)는 나무 그릇과 같으니, 사람의 본성으로 인과 의를 행하는 것이 버드나무로 나무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저 물을 쳐서 튀기면 〈물로〉 하여금 이마를 지나게 할 수 있으며, 막아서 물을 흐르게 하면 〈물로〉 하여금 산에 있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습니까? 그 〈외부의〉 힘이 곧 그러한 것이니, 사람에게 불선을 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성품이 또한 물의 본성과 같아서 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타고난 것을 성이라 하는 것은 흰 색을 희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까?” 〈고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흰 깃털의 흰 것은 흰 눈의 흰 것과 같으며, 흰 눈의 흰 것은 흰 옥의 흰 것과 같습니까?” 〈고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46
然則犬之性이猶牛之性이며 牛之性이猶人之性與아<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개의 성(性)이 소의 성(性)과 같으며, 소의 성(性)이 사람의 성(性)과 같다 〈고 말하는 것〉 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인(仁)은 안에 있고 의(義)는 밖에 있다고 이릅니까?” 〈고자가〉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른이어서 내가 저 사람을 어른으로 여기는 것이지, 어른으로 공경함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니, 저것이 희어서 내가 저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외면에서 그 하얀 것을 취하였던 까닭에 의(義)를 밖에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길, ‘입이 맛에 대하여 똑같이 즐기는 것이 있으며, 귀가 소리에 대하여 똑같이 듣는 것이 있으며, 눈이 채색에 대하여 똑같이 아름다워하는 것이 있다.’ 하니, 마음에 이르러서 유독 똑같이 그러한 것이 없겠는가? 마음이 똑같이 그러한 것은 무엇인가? 이(理)와 의(義)를 이르니, 성인은 우리 마음이 똑같이 그러한 것을 먼저 알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理)와 의(義)가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가축의 고기가 우리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비록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 사람이 스스로의 양심(良心)을 잃은 까닭은 또한 도끼가 나무를 를 만나면 날마다 나무를 베어버리는 것과 같으니, 〈산이〉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 밤낮의 자라는 바와 새벽의 기운에, 그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본성이〉 다른 사람과 서로 가까운 것이 거의 없는데, 곧 그 낮에 행동하는 것이 본성을 구속하여 없앰이 있으니, 구속을 반복하면 그 밤 기운이 보존되는 것이 충분하지 않고, 밤 기운이 보존되는 것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으니, 사람이 그 금수를 보고서 ‘일찍이 그 사람에게 재질이 없었다’ 여길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 모습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