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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 동등 AB A와 B는 같다 ; A는 B와 같다
대표 : A 如 B
동의 : AB ; AB ; AB ; AB ; AB ;
76 개의 글에 글자가 검색되었습니다.
1 在位 矢 有信 無恥 <漢文독해기본패턴, 한문 패턴의 기초>  
자리에 있다. 화살과 같다. 믿음이 있다. 부끄러움이 없다.
2 少年 <漢文독해기본패턴, 三字~八字 풀이 패턴>  
소년과 같다.
3 夫妻相敬 <漢文독해기본패턴, 三字~八字 풀이 패턴>  
남편과 아내가 서로 공경함이 손님과 같다.
4 學者 <漢文독해기본패턴, 三字~八字 풀이 패턴>  
배우는 사람은 모와 같고 벼와 같다.
5 君子之交하고 小人之交 甘若醴니라 <漢文독해기본패턴, 공통 기본 패턴>  
군자(君子)의 사귐은 담담함이 물과 같고, 소인(小人)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다.
6 太公曰 人生不學이면 冥冥夜行이니라 <漢文독해기본패턴, 문장 유형별 패턴 1>  
태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태어나서 배우지 않으면 깜깜한 것이 마치 밤에 걷는 것과 같다.”
7 過去事이요 未來事 暗似漆이니라 <漢文독해기본패턴, 문장 유형별 패턴 1>  
지나간 일은 밝기가 거울과 같고, 오지 않은 일은 어둡기가 칠흑과 같다.
8 探湯 <漢文독해기본패턴, 연습문제 모음>  
끓는 물을 더듬는 것과 같다.
9 恩高하시고 德厚似地하시니 <[新編]四字小學, 父母1>  
은혜의 높이는 하늘과 같고, 덕의 두터움이 땅과 같으시니,
10 一欺父母 其罪이니라 <[新編]四字小學, 父母2>  
한 번 부모님을 속이면, 그 죄가 산과 같다네.
11 事親 可謂孝矣니라 <[新編]四字小學, 父母2>  
어버이를 섬김이 이와 같다면, 효도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12 敬信節用하야 愛民하라 <[新編]四字小學, 父母2>  
삼가고 미더우며 씀씀이를 절약하여, 백성 사랑을 자식과 같게 하라.
13 以衣溫我하시고 以食飽我로다 恩高하시고 德厚似地하시니 <四字小學, 四字小學>  
옷으로써 나를 따뜻하게 하고 밥으로써 나를 배부르게 하였다. 은혜의 높이가 하늘과 같다. 덕의 두터움이 땅과 같다.
14 一欺父母 其罪이니라 <四字小學, 四字小學>  
한 번이라도 부모님을 속이면 그 죄가 산과 같다네.
15 山靜似太古 日長少年이라 <新編推句, 天高>  
산은 태고와 같이 고요한데, 해는 소년처럼 길구나.
16 雨後山이요 風前草似醉 <新編推句, 耕田>  
비 내린 뒤의 산은 목욕한 것 같고, 바람 앞의 풀은 술 취한 것 같네.
17 竹筍尖이요 松葉細似針이라 <新編推句, 竹筍>  
죽순은 뾰족하여 붓과 같고, 솔잎은 가늘어 바늘과 같네.
18 父臨終戒之曰 汝當見金하라하니 瑩佩服이라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최영의〉 아비가 임종하면서 최영에게 경계하여 말하길, “너는 마땅히 황금 보기를 돌과 같이 하라.” 하니, 최영이 마음에 간직하였다.
19 東嶽聖帝垂訓曰 一日行善이면 福雖未至 禍自遠矣 一日行惡이면 禍雖未至 福自遠矣 行善之人 春園之草하여 不見其長이라도 日有所增하고 行惡之人 磨刀之石하여 不見其損이라도 日有所虧니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동악성제수훈(東嶽聖帝垂訓)》에 말하였다. “하루라도 선을 행하면, 복은 비록 이르지 않더라도 재앙은 저절로 멀어질 것이요, 하루라도 악을 행하면, 재앙은 비록 이르지 않더라도 복이 저절로 멀어질 것이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풀의 성장을 보지 않더라도 날로 더해지는 바가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돌과 같아서 그 칼의 줄어듬을 보지 않더라도 날로 닳는 바가 있다.”
20 武蘇曰 一言之益 重於千金이요 一行之虧蛇蝎이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무소가 말하였다. “한 마디 말의 이로움은 천금보다 무겁고, 한 가지 행동의 잘못은 독사나 전갈과 같이 독하다.”
21 惡人 罵善人이면 善人 摠不對하라 不對 心淸閑이요 罵者 口熱沸니라人唾天이면 還從己身墜니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을 꾸짖으면 착한 사람은 모두 대꾸하지 말라. 대꾸하지 않으면 〈착한 사람은〉 마음이 맑고 한가롭고, 꾸짖는 사람은 입이 몹시 뜨거워진다. 바로 사람이 하늘에 침을 뱉으면 도로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과 같다.
22 莊子曰 人之不學 登天而無術이니 學而智遠이면 披祥雲而覩靑天하고 登高山而望四海니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장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는 것은 하늘에 오르는데 기술이 없는 것과 같으니, 배워서 지혜가 원대해지면, 상서로운 구름을 젖혀서 푸른 하늘을 보고 높은 산에 올라서 사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23 家語云 與好人同行이면 霧露中行하여 雖不濕衣라도 時時有潤하고 與無識人同行이면 厠中坐하여 雖不汚衣라도 時時聞臭니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공자가어》에 말하였다. “좋은 사람과 함께 가면 안개 속을 가는 것 같아서, 비록 옷을 적시지 않더라도 매번 젖음이 있고, 무식한 사람과 함께 가면 뒷간 안에 앉은 것 같아서, 비록 옷을 더럽히지 않더라도 매번 냄새를 풍기게 된다.”
24 玄帝垂訓曰 人間私語라도 天聽 若雷하고 暗室欺心이라도 神目 이니라 <明心寶鑑, 天命篇>  
《현제수훈》에 말하였다. “사람 사이 사사로운 말이라도 하늘이 듣는 것은 우레와 같고 어두운 방에서 마음을 속이더라도 귀신이 보는 것은 번개와 같다.”
25 景行錄云 人性 하여 水一傾則不可復이요 性一縱則不可反이니 制水者 必以堤防하고 制性者 必以禮法이니라 <明心寶鑑, 戒性篇>  
《경행록》에 말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아서, 물은 한 번 엎질러지면 회복할 수 없고, 성품은 한 번 방종해지면 되돌릴 수 없다. 물을 제어하는 자는 반드시 제방을 쓰고, 성품을 제어하는 자는 반드시 예법을 써야 한다.”
26 莊子曰 人之不學 登天而無術하고 學而智遠이면 披祥雲而覩靑天하고 登高山而望四海니라 <明心寶鑑, 勤學篇>  
장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는 것은 하늘을 오르려 하는데 재주가 없는 것과 같다. 배워서 지혜가 원대해지면, 상서로운 구름을 헤치고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과 같고, 높은 산에 올라 사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27 太公曰 人生不學이면 冥冥夜行이니라 <明心寶鑑, 勤學篇>  
태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캄캄한 것이 밤에 길을 걷는 것과 같다.”
28 徽宗皇帝曰 學者 하고 不學者 로다 稻兮 國之精糧이요 世之大寶로다 草兮 耕者憎嫌하고 鋤者煩惱니라 他日面墻 悔之已老로다 <明心寶鑑, 勤學篇>  
휘종황제(徽宗皇帝)가 말하였다. “배우는 자는 곡식과 같고 벼와 같으며, 배우지 않은 자는 쑥과 같고 풀과 같다. 곡식과 같고 벼와 같은 것은 나라의 좋은 양식이고, 세상의 큰 보물이다. 쑥과 같고 풀과 같은 것은 농사짓는 자가 미워하고, 김매는 자가 괴로워한다. 훗날에 담장을 마주한 때는 후회한들 이미 늙었도다.”
29 過去事이요 未來事 暗似漆이니라 <明心寶鑑, 省心篇上>  
과거의 일은 밝기가 거울과 같고, 미래의 일은 어둡기가 옻과 같다.
30 君子之交하고 小人之交 甘若醴니라 <明心寶鑑, 交友篇>  
군자의 사귐은 담박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다.
31 當正身心하여 表裏이니 處幽하며 處獨하여 使此心靑天白日 人得而見之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겉과 속이 한결같도록 해야 하니, 깊숙한 곳에 처해도 드러난 곳에 있는 듯이 하고, 홀로 있는 곳에 처해도 여럿이 있는 듯이 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푸른 하늘의 밝은 해를 사람들이 자기를 볼 수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
32 兄弟 同受父母遺體하여 與我一身하니 視之 當無彼我之間하여 飮食衣服有無 皆當共之니라 設使兄飢而弟飽하고 弟寒而兄溫이면 則是一身之中 肢體或病或健也 身心 豈得偏安乎 今人 兄弟不相愛者 皆緣不愛父母故也 若有愛父母之心이면 則豈可不愛父母之子乎 兄弟 若有不善之行이면 則當積誠忠諫하여 漸喩以理하여 期於感悟 不可遽加 厲色拂言하여 以失其和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형제는 부모가 남겨준 몸을 함께 받았으니, 나와 한 몸과 같다. 형제를 볼 때 마땅히 서로의 구분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의 가진 것을 모두 마땅히 함께해야 한다. 만약 형은 굶는데 동생은 배불리 먹고, 동생은 추운데 형은 따뜻하다면, 이는 한 몸의 안에서 몸의 어느 부분은 병들고 어느 부분은 건강한 것이니,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같은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아니 할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약 좋지 않은 행실이 있다면, 마땅히 정성을 계속하여 충심으로 간하여, 마땅히 점차 이치로서 깨우쳐서 〈형제가〉 감동 되어 깨우치기를 기약해야 하고, 갑자기 노여운 얼굴과 거슬리는 말을 건네서 형제간의 화목을 잃어서는 안 된다.
33 羽乃夜從八百餘騎하고 潰圍南出이라 渡淮한대 迷失道하여 陷大澤中하니 漢追及之 至東城 乃有二十八騎 羽謂其騎曰 吾起兵八歲 七十餘戰한대 未嘗敗也 今卒困此하니 此天亡我 非戰之罪 今日固決死하리라 願爲諸君決戰하여 必潰圍斬將하여 令諸君知之라한대其言이라 <原文故事成語, 形勢>  
34 吳越同舟: 善用兵者 譬如率然이라 率然者 常山之蛇也 擊其首則尾至하고 擊其尾則首至하고 擊其中則首尾俱至 敢問兵可使如率然乎아하면 曰 可라하다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라가 遇風이면 其相救也 左右手 <原文故事成語, 形勢>  
35 項王見秦宮하니 皆以燒殘破하고 又心懷思欲東歸曰 富貴不歸故鄕 衣繡夜行이니 誰知之者오하다 說者曰 人言楚人沐猴而冠耳한대 果然이라하니 項王聞之하고 烹說者 <原文故事成語, 愚鈍>  
36 居三年 晉與楚戰한대 有一臣常在前하여 五合五奮하여 首却敵하여 卒得勝之 莊王怪而問曰 寡人德薄하고 又未嘗異子한대 子何故出死不疑오하니 對曰 臣當死니이다 往者醉失禮한대 王隱忍不加誅也니이다 臣終不敢以蔭蔽之德而不顯報王也니이다 常願肝腦塗地하고 用頸血湔敵 久矣니이다 臣乃夜絶纓者也니이다하다 遂敗晉軍하고 楚得以强하니 此有陰德者必有陽報也 <原文故事成語, 信義>  
37 學優則可以攝官守之職하여 從國家之政이니 子路之果 子貢之達 冉有之藝 夫子皆許從政也하시니라 <9, 君子修身之道>  
38 樂有等威하니 天子八佾 諸侯六佾 大夫四佾 士庶人二佾之屬이니 貴賤之殊也 <9, 君子修身之道>  
39 一日 疾病이어늘 長幼咸萃러니 宣言無以報新婦恩이로소니 願新婦 有子有孫 皆得新婦 孝敬하노니 則崔之門 安得不昌大乎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하루는 심하여 (장손부인의) 병이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였는데, (장손부인이) 선언하기를 “이로써 신부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다. 신부는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으니, 모두 신부처럼 효도하고 공경할 수 있기를 바라노니, 곧 최씨의 집안이 어찌 번창하고 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40 海虞令何子平 母喪 去官하고 哀毁踰禮하여 每哭踊 頓絶方蘇하니라 屬大明末 東土饑荒하고 繼以師旅하니 八年 不得營葬하여 晝夜號哭하되袒括之日하여 冬不衣絮하고 夏不就淸凉하며 一日 以米數合으로 爲粥하고 不進鹽菜하니라 所居屋敗하여 不蔽風日이어늘 兄子伯興 欲爲葺理한대 子平 不肯曰 我情事 未申하니 天地一罪人耳 屋何宜覆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해우령 하자평은 어머니상에 관직을 버리고 슬퍼하며 (몸을) 해치는 것이 예를 넘어서 매번 울고 뛰고, 갑자기 기절했다가 겨우 깨어나곤 하였다. 마침 명나라 말기에 동쪽 지역에 흉년이 들고 전쟁이 이어져 여덟 해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울부짖어 항상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는 날과 같이하였으며, 겨울에는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 나아가지 않았다. 하루에 쌀 몇 홉으로 죽을 만들고, 소금이나 채소도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지내는 바의 집이 무너져 바람이나 해도 가리지 못하자 형의 아들인 백홍이 (그를) 위하여 수리하고자 했으나 자평이 달가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내 감정이 펴지지 못하고 있으니 천지의 한 죄인일 뿐이다. 집을 어찌 마땅히 덮겠는가?”
41 壽昌 再爲郡守러니 至是하여 以母故 通判河中府하여 迎其同母弟妹以歸러니 居數歲 母卒이어늘 涕泣幾喪明이러라 拊其弟妹益篤하여 爲買田宅居之하고 其於宗族 尤盡恩意하여 嫁兄弟之孤女二人하며 葬其不能葬者十餘喪하니 蓋其天性 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수창이 두 차례 군수가 되었는데 이에 이르러 어머니를 이유로 하여 하중부에 통판이 되었는데, 그 동복형제를 맞이하여서 돌아왔다. (함께) 지낸 지 몇 년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눈물 흘리며 울다가 거의 실명하게 되었다. 그 아우와 누이를 사랑하기를 더욱 돈독하게 하여 (그들을) 위하여 밭과 집을 사서 (그곳에) 살게 하였으며 그 종족에 대해서도 더욱 은혜로운 마음을 다하였다. 형제의 고아가 된 딸 두 사람을 시집보냈으며 그 장례 치르지 못한 사람 십여 초상을 장례 지냈으니, 대개 그 천성이 이와 같았다.
42 多病하여 病且滿三月이어늘 常賜告者數하되 終不瘉러니 最後 嚴助爲請告한대 上曰 汲黯 何如人也 曰 使黯 任職居官이면 亡以瘉人이어니와이나 至其輔少主守成하여는 雖自謂賁育이라도 弗能奪詭리이다 上曰 然하다 古有社稷之臣이러니汲黯하여는 近之矣로다 <小學, 善行第六>  
급암이 병이 많아 병이 장차 3개월에 이르렀다. 상이 일찍이 고(휴가)를 준 것이 여러 번이었는데, 끝내 낫지 않았다. 최후에는 엄조가 (그를) 위하여 고(휴가)를 청하였다. 상이 말하였다 “급암은 어떠한 사람인가?” (엄조가) 말하였다. “가령 급암이 직무를 맡아 관직에 있다면 이로써 다른 사람보다 낫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 군주를 도와 왕업을 지키는 일에 이르러서는 비록 스스로 맹분, 하육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절개를) 빼앗거나 무너트릴 수 없을 것이다.” 상이 말하였다. “그렇다. 옛날에 사직의 신하가 있다고 하더니, 급암과 같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그것에) 가깝구나.”
43 大將軍靑 侍中 踞厠視之하고 丞相弘 宴見이어든 或時不冠하되 至如見黯하여는 不冠不見也러라 嘗坐武帳이어늘 前奏事러니 不冠이라가 望見黯하고 避帷中하여 使人可其奏하니 其見敬禮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대장군 청이 시중으로 있을 때 상이 평상에 걸터앉아 (그를) 보았으며, 승상 홍이 한가할 때 알현하면 상은 어떤 때는 관을 쓰지 않았으나, 가령 급암을 만나보는 이르러서는 관을 쓰지 않고서는 만나보지 않았다. 상이 일찍이 군막에 앉아 있었는데 급암이 앞으로 나와 일을 아뢰려 하였는데 상이 관을 쓰지 않고 있다가 급암을 바라보고 휘장으로 피하고서 사람을 시켜 그가 아뢴 것을 허락하였으니, 그가 공경과 예우를 받음이 이와 같다.
44 太子見帝言하되 高允小心愼密하고 且微賤이라 制由崔浩하니 請赦其死하소서 帝召允하여 問曰 國書皆浩所爲乎 對曰 臣與浩共爲之니이다 然浩 所領事多 總裁而已어니와 至於著述하여는 臣多於浩호이다 帝怒曰 允罪甚於浩로소니 何以得生이리오 太子懼曰 天威嚴重하시니 允小臣이라 迷亂失次耳로소이다 臣曏問하니 皆云浩所爲라하더이다 帝問允하되東宮所言乎 對曰 臣罪當滅族이라 不敢虛妄이니이다 殿下以臣侍講日久 哀臣欲丐其生耳언정 實不問臣하시며 臣亦無此言하니 不敢迷亂이로이다 <小學, 善行第六>  
태자가 황제를 뵙고 말하였다. “고윤은 소심하고 삼가고 치밀하며 또 미천합니다. 제술은 최호를 통한 것이니, 청컨대 그의 죽음을 사면해주십시오.” 황제가 고윤을 불러서 물어 말하였다. “국서는 모두 최호가 만든 것인가?” (최호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이 최호와 함께 (그것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최호는 담당하고 있는 바의 일이 많으므로 총괄하여 결제하였을 뿐입니다. 저술하는 데 이르러서는 신이 최호보다 많이 하였습니다.” 황제가 노하여 말하였다. “고윤의 죄가 최호보다 심하니, 어찌 이로써 살아날 수 있겠는가?” 태자가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하늘(황제)의 위엄이 엄중하시니 고윤은 낮은 신하이므로 혼미하고 어지러워서 순서를 잃었을 뿐입니다. 신이 예전에 물어보니, 모두 ‘최호가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황제가 고윤에게 물었다. “진실로 동궁(태자)가 말한 바와 같은가?” (고윤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의 죄는 마땅히 멸족해야 하니, 감히 허망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전하(태자)는 신이 모시고 강학한 날이 오래이기 때문에, 신을 불쌍히 여겨 그 살기를 빌고자 하였을 뿐일지언정, 실제는 신에게 묻지 않았고, 신 또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으니, 감히 혼미하고 어지러워서가 아닙니다.
45 漢鮑宣 妻桓氏 字少君이라 嘗就少君父學하더니 父奇其淸苦하여 以女妻之하니 裝送資賄甚盛이어늘 不悅하여 謂妻曰 少君 生富驕하여 習美飾하니 而吾實貧賤이라 不敢當禮로다 妻曰 大人 以先生修德守約故 使賤妾으로 侍執巾櫛하시니 旣奉承君子인댄 惟命是從하리이다 笑曰 能 是吾志也로다 妻乃悉歸侍御服飾하고 更著短布裳하여 與宣으로 共挽鹿車하여 歸鄕里하여 拜姑禮畢하고 提甕出汲하여 修行婦道하니 鄕邦 稱之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한나라 포선의 아내 환씨는 자가 소군이다, 포선이 일찍이 소군의 아버지에게 나아가 배웠는데 (소군의) 아버지는 그의 청고함을 기특하게 여겨 딸로써 (그에게) 아내 삼아 주었는데, 실어 보내는 재물이 매우 성대하였다. 포선이 좋아하지 않으며 아내에게 말하였다. 소군이 부유하고 교만한 곳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꾸밈을 익혔는데, 나는 진실로 가난하고 천하니 예를 감당할 수 없다. 아내가 말하였다. “대인(아버지)이 선생(남편)이 덕을 닦고 검약을 지키는 것을 이유로 천첩으로 하여금 모시고 수건과 빗을 잡도록 하였습니다. 이미 군자(남편)를 받들게 되었으니 오직 명령을 이에 따를 뿐입니다.” 포선이 웃으며 말하였다.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이것이 나의 뜻이다.” 아내가 이에 모시는 이와 의복과 장식품을 모두 돌려보내고, 짧은 삼베 치마로 바꾸어 입고 포선과 함께 녹거를 끌며 (포선의) 마을로 돌아와 시어머니에게 절하는 예를 마치고 물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길어 부인의 도를 닦아 행하니 시골과 고을에서는 (그를) 칭찬하였다.
46 謂之曰 人生世間 輕塵棲弱草耳 何辛苦乃爾 且夫家夷滅已盡하니 守此欲誰爲哉 令女曰 聞仁者 不以盛衰改節하고 義者 不以存亡易心이라하니 曹氏全盛之時라도 尙欲保終이어든 況今衰亡하니 何忍棄之리오 禽獸之行 吾豈爲乎리오 <小學, 善行第六>  
어떤 사람이 () 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가벼운 먼지가 연약한 풀에 깃드는 것과 같을 뿐이다. 어찌 괴롭게 지내는 것을 이에 이와 같이 하는가? 게다가 남편의 집안이 멸망하여 이미 없어졌으니 이것(절개)을 지키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하고자 하는가?” 영녀가 말하였다. 들으니, ‘인자는 성쇠로써 절개를 고치지 않고, 의자는 존망으로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니, 조씨가 온전하고 성했던 시절에도 오히려 보존하여 마치고자 하였을 터인데 하물며 지금 쇠하고 망하였으니, 어찌 차마 (그것을) 버리겠는가? 금수의 행동을 내가 어찌하겠는가?”
47 晉咸寧中 大疫이러니 庾袞 二兄 俱亡하고 次兄毗復危殆하여 癘氣方熾어늘 父母諸弟皆出次于外하되 獨留不去어늘 諸父兄 强之한대 乃曰 袞 性不畏病이라하고 遂親自扶持하여 晝夜不眠하며 其間 復撫柩하여 哀臨不輟하더니 此十有餘旬 疫勢旣歇이어늘 家人 乃反하니 毗病 得差하고 袞亦無恙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진나라 함녕 연간에 큰 전염병이 나서 유곤의 두 형이 모두 죽고 다음 형인 유비도 다시 위태해져서 병세가 막 치성하였으므로 부모와 여러 아우들 모두 나가서 (집) 밖에서 머물렀는데, 유곤만 남아 떠나지 않았다. 여러 부형이 (그에게) 강요하자이에 “저(곤)는 본성이 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고 마침내 친히 스스로 (형을) 부축하고 아침 저녁으로 잠들지 않았다, 그 사이에 다시 관을 어루만지며 슬프게 임함을 그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십 여순에 병세가 이미 수그러들어 집안 사람이 마침내 돌아오니 유비의 병세가 쾌차하였고 유곤 또한 병이 없었다.
48 楊播家世純厚하여 竝敦義讓하여 昆季相事하되父子하더니 椿津 恭謙하여 兄弟旦則聚於廳堂하여 終日相對하여 未嘗入內하며 有一美味어든 不集不食하니라 廳堂間 往往幃幔隔障하여 爲寢息之所하여 時就休偃하고 還共談笑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양파의 가문은 대대로 순후하여 모두 의리와 겸양을 돈독히 하여 형제가 서로 섬기기를 부자 같음이 있었다. 양춘과 양진은 공손하고 겸손하여 형제가 아침에 곧 대청에 모여서 날을 마치도록 서로 마주하여 일찍이 안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한 가지라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형제들이) 모이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대청 사이에 왕왕 휘장으로 사이를 막아 자거나 쉬는 곳으로 삼고는 때로 나아가 쉬고 누우며 돌아와 함께 담소하곤 하였다.
49 唐英公李勣 貴爲僕射로되 其姊病이어든 必親爲然火煮粥하더니 火焚其鬚어늘 姊曰 僕妾 多矣 何爲自苦 勣曰 豈爲無人耶리오 顧今 姊年老하고 勣亦老하니 雖欲數爲姊煮粥인들 復可得乎잇가 <小學, 善行第六>  
당나라 영공 이적은 귀하기가 복야가 되었는데도 그 누이가 병을 앓으면 반드시 직접 〈누이를〉 위하여 불을 피워 죽을 끓였다. 불에 그 수염을 태우자 누이가 말하였다. “종과 첩이 많다. 무엇 때문에 스스로 고생하는 것이 이와 같은가? 이적이 말하였다. “어찌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는가? 다만 지금 누이의 나이가 늙었고 저(적) 또한 늙었으니 비록 자주 누님을 위하여 죽을 끓이고 싶어도, 다시 할 수 있겠는가?”
50 司馬溫公 與其兄伯康으로 友愛尤篤이러니 伯康 年將八十이라 奉之嚴父하며 保之嬰兒하여 每食少頃이면 則問曰 得無饑乎아하며 少冷이면 則拊其背曰 衣得無薄乎아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사마온공은 그 형 백강과 우애가 특별히 돈독하였다. 백강이 나이가 장차 80이 되려는데, 온공이 (그를) 엄한 아버지처럼 받들었고 (그를) 어린아이처럼 돌보아서 매양 밥을 먹고 조금 지나서 곧 물어 말하기를 “배고픔이 없습니까? 하고 날씨가 조금 추워지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옷이 얇지는 않습니까?
51 近世故家 惟晁氏因以道 申戒子弟하여 皆有法度하니 群居相呼 外姓尊長 必曰某姓第幾叔若兄이라하며 諸姑尊姑之夫 必曰某姓姑夫 某姓尊姑夫라하고 未嘗敢呼字也하며 其言父黨交遊 必曰某姓幾丈이라하고 亦未嘗敢呼字也하니 當時故家舊族 皆不能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근세의 고가 중에 오직 조씨 가문만이 이도가 거듭 자제에게 훈계한 것을 인하여 모두 법도가 있었다. 모여 살면서 서로 부를 적에 외성의 존장에게는 반드시 “무슨 성 몇 째 아저씨 혹 형” 이라 하고 여러 고모와 대고모의 남편에게는 반드시 말하기를 “아무개 성 고모부, 아무개 성 대고모부"라 하여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않았다. 그 부당의 교유를 말할 때는 반드시 “아무개 성 몇 째 어른” 이라 하고 또한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않았다. 당시의 고가와 구족이 모두 이와 같이 하지 못하였다.
52 時賜食於家어든 必稽首俯伏而食하여 在上前하며 其執喪 哀戚甚하니 子孫 遵敎하여하니라 萬石君家以孝謹으로 聞乎郡國이라 雖齊魯諸儒라도 質行 皆自以爲不及也라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상이 때때로 집안에 음식을 내리면 반드시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리고 먹어 임금의 앞에 있는 듯하였으며 그 상례를 집행함에 슬퍼함이 심하니 자손들도 가르침을 따라 또한 (그) 처럼 하였다. 만석군의 집은 효성과 삼감으로 군국에 알려졌다. 비록 제나라와 노나라의 여러 유학자들도 질박한 행실을 모두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53 內史慶 醉歸하여 入外門하여 不下車한대 萬石君 聞之하고 不食이어늘하여 肉袒謝罪호되 不許 擧宗及兄建 肉袒한대 萬石君 讓曰 內史 貴人이라 入閭里어든 里中長老皆走匿이어늘 而內史坐車中自하니 固當이로다하고 乃謝罷慶하니 慶及諸子入里門하여 趨至家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내사 경이 취해 돌아와서 바깥 문으로 들어와서도 수레에서 내리지 않았다. 만석군은 (그것을) 듣고 먹지 않으니 경은 두려워하여 어깨를 드러내고 사죄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종족과 형 건도 어깨를 드러내자 만석군이 꾸짓으며 말하였다. “내사는 귀한 사람이니 마을에 들어오면 마을 안의 어른도 모두 달아나 숨는데 내사는 수레 속에 앉아 그대로 있으니 진실로 마땅하도다." 하고 이에 경을 타일러 보냈다. 경과 모든 아들은 이문에 들어오면 종종걸음으로 집에 이르렀다.
54 龐公 未嘗入城府하고 夫妻相敬하더니 劉表候之하니 龐公 釋耕於壟上하고 而妻子耘於前이어늘 表指而問曰 先生 苦居畎畝而不肯官祿하니 後世 何以遺子孫乎 龐公曰世人 皆遺之以危어늘 今獨遺之以安하노니 雖所遺不同하나 未爲無所遺也라한대 表嘆息而去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방공이 일찍이 성부에 들어가지 않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처럼 하였다. 유표가 (그를) 방문하자 방공이 밭두둑 위에서 밭갈기를 멈추었고, 처자는 앞에서 김매었다. 유표가 (처자를) 가리키면서 물어 말하였다. 선생이 “농토에서 괴롭게 지내면서 관청의 녹봉을 즐기지 않으니, 후세에 무엇으로 자손에게 남겨주겠는가?” 방공이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위태로움을 남겨주는데, 지금 (나는) 유독 (그에게) 편안함을 남겨줍니다. 비록 남겨준 것이 같지 않더라도 남겨주는 것이 없는 아닙니다.” 유표가 탄식하며 떠났다.
55 孝芬 叔振 旣亡後 孝芬等 承奉叔母李氏하되 若事所生하여 旦夕溫凊하며 出入啓覲하며 家事巨細 一以咨決하며 每兄弟出行 有獲이면 則尺寸以上 皆入李之庫하고 四時分賚 李氏自裁之하더니 此二十餘歲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효분의 숙부 진이 이미 죽고 난 뒤에 효분 등은 숙모 이씨를 받들되 낳아준 바를 섬기듯이 하여 아침저녁으로 따뜻하고 시원하게 해드리며 나가고 들어올 때 아뢰고 뵈었으며 집안일의 크고 작은 것을 한결같이 물어서 결정하였다. 매번 형제가 출행하다가 한 척, 한 자 이상의 것을 얻은 것이 있으면 모두 이씨의 창고에 넣고 사시에 나누어 주는 일을 이씨가 스스로 (그것을) 재량하게 하였는데, 이와 같이 20여 년이었다.
56 姑姊妹姪 有孤嫠者어든 雖疏遠이라도 必爲擇婿嫁之하되 皆用刻木粧奩하며 纈文絹으로 爲資裝하더니 常言必待資裝豐備嫁不失時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고모와 자매와 조카딸 중에 고아나 과부된 사람이 있으면 비록 소원한 관계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위하여 사윗감을 가려서 (그를) 시집보냈는데, 모두 나무를 조각한 화장대와 매듭 무늬의 비단을 사용하여 혼수품으로 삼았다. (유공작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혼수품이 풍요롭게 갖추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찌 시집가는 것이 때를 잃지 않는 것과 같겠는가?" 하였다.
57 及公綽卒하여는 仲郢 一遵其法하여 事公權하되 事公綽하며 非甚病이어든 見公權 未嘗不束帶하니라 爲京兆尹鹽鐵使하여 出遇公權於通衢 必下馬端笏立하여 候公權過하여 乃上馬하며 公權 莫歸어든 必束帶迎候於馬首하더니 公權 屢以爲言하되 仲郢 終不以官達 有小改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공작이 돌아가심에 이르러서 중영이 한결같이 그 법을 따라 공권을 섬기면서 공작을 섬기는 것처럼 하였다. 심한 병이 아니면 공권을 만날 적에 일찍이 띠를 묶지 않은 적이 없었다. 경조윤과 염철사가 되어 외출하다가 공권을 통하는 거리에서 만나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홀을 단정하게 하고 서서 공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이에 말에 올랐으며 공권이 늦게 돌아오면 반드시 띠를 묶고 말 머리에서 마중하였다. 공권은 자주 이로써 (그만두라고) 말하였으나, 중영은 끝내 관직이 현달한 것 때문에 조금도 바뀌는 것이 있지 않았다.
58 劉寬 雖居倉卒하나 未嘗疾言遽色하더니 夫人 欲試寬令恚하여 伺當朝會하여 裝嚴已訖이어늘 使侍婢 奉肉羹하여 飜汚朝服하고 婢遽收之러니 神色不異하여 乃徐言曰 羹爛汝手乎아하니 其性度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유관은 비록 창졸간에 처하더라도 일찍이 말을 빨리하거나 낯빛을 급히 하지 않았다. 부인이 유관을 시험하여 성내게 하기를 바랐다. 엿보아 조회에 이르러 꾸밈을 이미 마칠 때 계집종으로 하여금 고깃국을 받들어 올리다가 엎어서 조복을 더럽히게 하였다. 계집종이 급히 (그것을) 거두자 유관은 신색을 달리하지 않고 이에 말을 천천히 하며 이르기를 “국에 너의 손을 데었는가?" 하니 그의 성품과 도량이 이와 같았다.
59 王勃楊炯盧照隣駱賓王 皆有文名이라 謂之四傑이러니 裵行儉曰 士之致遠 先器識而後文藝 勃等 雖有文才 而浮躁淺露하니 豈享爵祿之器耶리오 楊子 沈靜하니 應得令長이어니와 餘得令終 爲幸이라하더니 其後 溺南海하고 照隣 投潁水하고 賓王 被誅하고 終盈川令하여行儉之言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왕발·양형·노조린·낙빈왕이 모두 문학으로 명성이 있어서 그들을 사걸이라 일렀는데, 배행검이 〈그들을 평하여〉 말하였다. “선비가 원대함에 이르는 것은 도량과 식견을 우선시하고 문예를 뒤로하니, 왕발 등이 비록 글재주가 있으나 경솔하고 조급하며 얕아서 속을 드러내니, 어찌 작위와 봉록을 누릴 만한 그릇이겠는가? 양자는 침착하고 안정되니 마땅히 수령의 지위를 얻겠지만, 나머지는 좋은 죽음을 얻으면 다행이다.” 그 뒤에 왕발은 남해에 빠져 죽고, 조린은 영수에 투신하고, 낙빈왕은 처형을 당하고, 양형은 영천의 수령으로 마쳐 모두 배형검의 말과 같았다.
60 其事上遇人 一以自信하여 不擇利害爲趨捨하고 其有所爲 必盡其方하여 曰 爲之自我者 其成與否 有不在我者 雖聖賢이라도 不能必이시니 吾豈苟哉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그 윗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대함에 한결같이 스스로 믿음으로서 하여, 이익과 해로움을 가려서 나아가거나 버리지 (생략) 않았으며, 그 하는 바가 있을 때 반드시 그 방법을 다하면서 말하였다. “나로부터 (생략) 하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 그 성공함과 (성공하지) 못함은 나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이 있다. 비록 성현이라도 기필할 수 없으니, 내 어찌 구차히 하겠는가?”
61 明道先生 終日端坐 泥塑人이러시니 及至接人하여는 則渾是一團和氣러시다 <小學, 善行第六>  
명도선생이 종일 단정하게 앉아서 진흙으로 빚은 사람 같더니 사람을 접하는 것에 이름에 미쳐서는 곧 완전히 한 덩어리의 온화한 기운이었다.
62 張文節公 爲相하여 自奉 河陽掌書記時러니 所親 或規之曰 今公 受俸不少어늘 而自奉 若此하니 雖自信淸約이라도 外人 頗有公孫布被之譏하니 公宜少從衆하라 嘆曰吾今日之俸 雖擧家錦衣玉食인들 何患不能이리오 顧人之常情 由儉入奢하고 由奢入儉하니 吾今日之俸 豈能常有 身豈能常存이리오 一旦 異於今日이면 家人 習奢已久 不能頓儉하여 必至失所하리니 豈若吾居位去位身存身亡 一日乎리오 <小學, 善行第六>  
장문절공이 재상이 되어 스스로 받듦이 하양의 장서기 일 때와 같았다. 친한 사람이 혹 (그를) 타일러 말하기를 지금 공은 받는 녹봉이 적지 않거늘 스스로 받듦이 이와 같으니, 비록 스스로 청렴하고 검약함을 믿더라도 바깥사람들은 자못 공손이 삼베 이불을 덮었던 비난을 하고 있다. 공은 마땅히 조금은 대중을 따르라.” 공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지금의 봉급으로 비록 온 가족에게 비단옷과 진수성찬을 먹이더라도 어찌 할 수 없을까 걱정하겠는가? 다만 사람의 상정은, 검소함에서 사치함으로 들어가기는 쉽고 사치함에서 검소함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내 지금의 녹봉이 어찌 항상 있을 수 있으며, 몸이 어찌 항상 보존될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지금과 달라지면 집안 사람들은 익힌 지 사치를 이미 오래되어서 갑자기 검소할 수 없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을 잃는 상황에 이를 것이니, 어찌 내가 있거나 벼슬에 떠나거나, 벼슬을 몸이 생존하거나 몸이 죽는 것을 하루처럼 하는 것만 같겠는가?”
63 嗟乎 風俗頹弊하니 居位者 雖不能禁이나 忍助之乎 <小學, 善行第六>  
아! 풍속이 퇴폐한 것이 이와 같으니, 지위에 있는 사람이 비록 금지하지는 못할지라도 차마 (그것을) 조장하겠는가?”
64 子曰 吾未見好德 好色者也로라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덕을 좋아하는 것이 여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자를 보지 못하였다.”
65 子曰 吾未見好德 好色者也로라 <論語, 子罕第九>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덕을 좋아하는 것이 여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자를 보지 못하였다.”
66 子曰 桓公 九合諸侯호되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其仁 其仁이리오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환공(桓公)이 제후들을 규합하되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管仲)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
67 滕文公 問曰 滕 小國也 竭力以事大國이라도 則不得免焉이로소니 如之何則可잇고 孟子對曰 昔者 大王 居邠하실새 狄人 侵之어늘 事之以皮幣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犬馬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珠玉이라도 不得免焉하여 乃屬其耆老而告之曰 狄人之所欲者 吾土地也 吾聞之也호니 君子 不以其所以養人者 害人이라하니 二三子 何患乎無君이리오 我將去之호리라하시고 去邠하시고 踰梁山하사 邑于岐山之下하여 居焉하신대 邠人曰 仁人也 不可失也라하고 從之者歸市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물어 말하였다. “등은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기더라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태왕(太王)이 빈 땅에 살 적에 적인(狄人)이 그곳을 침략하자, 가죽과 비단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개와 말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주옥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 기로(耆老)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고하여 말하길, ‘적인이 원하는 것은 나의 토지이다. 내 이에 관하여 들으니, 「군자는 그 사람을 기르는 것 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니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을까를 근심하는가? 나는 장차 빈 땅을 떠나겠소.’ 하고 빈 땅을 떠나 양산(耆老)을 넘어 기산(岐山)의 아래에 도읍을 정하여 그곳에 거주하셨습니다. 빈땅 사람들이 말하길, ‘어진 사람이다. 잃어서는 안된다.’ 하고 태왕을 따르는 자가 마치 저자로 모이는 듯 〈많았습니다〉.
68 欲見賢人而不以其道 猶欲其入而閉之門也니라 夫義 路也 門也 惟君子能由是路하며 出入是門也 詩云 周道하니 其直로다 君子所履 小人所視라하니라 <孟子, 萬章下>  
현명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면서 올바른 도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가 들어오길 바라면서 그 문을 닫는 것과 같다네. 무릇 의리는 길이고 예는 문이니, 오직 군자만이 이 길을 경유하고 이 문을 출입할수 있다네. 《시경》 〈대동(大東)〉에 이르길, ‘큰 길은 숫돌과 같으니, 그 곧음은 화살과 같다. 군자가 밟는 것이고, 소인이 우러러보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네.”
69 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하며 國家將亡 必有妖孽하여 見乎蓍龜하며 動乎四體 禍福將至 必先知之하며 不善 必先知之하나니 至誠 이니라 <中庸, 中庸章句>  
지극히 성실한 도(道)로는 미리 〈조짐을 보아〉 알 수 있다. 국가가 장차 흥하려 할 때는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으며, 국가가 장차 망하려 할 때는 반드시 불길한 징조가 있어서, 시초점과 거북점에 나타나며 사지를 움직이는 데 〈나타나므로,〉 재앙과 행복이 장차 이르려 할 때에, 좋은 일을 반드시 미리 알고 좋지 못할 일을 반드시 미리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지극히 성실한 것은 귀신과 같다.
70 國語云 從善이요 從惡이라 <原本明心寶鑑, 繼善篇第一 >  
《국어(國語)》 〈〈주어(周語)〉에〉 이르길, “선을 따르기는 올라가는 것같이 〈어렵고〉 악을 따르기는 무너지는 것같이 〈쉽다〉.” 하였다.
71 東嶽聖帝垂訓曰 一日行善이면 福雖未至 禍自遠矣 一日行惡이면 禍雖未至 福自遠矣 行善之人 春園之草하여 不見其長이라도 日有所增하고 行惡之人 磨刀之石하여 不見其損이라도 日有所虧니라 <原本明心寶鑑, 繼善篇第一 >  
《동악성제수훈(東嶽聖帝垂訓)》에 말하였다. “하루를 선(善)을 행하면 복이 비록 아직 이르지 않더라도 재앙이 저절로 멀어지고, 하루 악을 행하면 재앙이 비록 아직 이르지 않더라도 복이 저절로 멀어지니,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남을 보지 못하나 날마다 더해지는 것이 있고, 악(惡)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돌(숯돌)과 같아서 그 닳는 것을 보지 못하나 날마다 줄어드는 것이 있다.”
72 玄帝垂訓曰 人間私語라도 天聽 若雷하고 暗室欺心이라도 神目 이니라 <原本明心寶鑑, 天命篇第二 >  
현제수훈에서 말하였다. “사람 사이에 사사로운 말이라도 하늘이 듣는것은 우레와 같고 어두운 방에서 마음을 속이더라도 귀신이 보는것은 번개와 같다.”
73 景行錄云 人性 하여 水一傾則不可復이요 性一縱則不可反이니 制水者 必以堤防하고 制性者 必以禮法이니라 <原本明心寶鑑, 戒性篇第八 >  
《경행록》에 말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아서, 물은 한 번 엎질러지면 다시 담을 수 없고, 성품은 한 번 방종해지면 되돌릴 수 없다. 물을 제어하는 자는 반드시 제방으로써 하며, 성품을 제어하는 자는 반드시 예와 법으로써 해야 한다.”
74 惡人罵善人이라도 善人總不對니라 善人若還罵 彼此無智慧 不對어든 心淸凉하고 罵者口熱沸리라人唾天이어든 還從己身墜니라 <原本明心寶鑑, 戒性篇第八 >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꾸짖더라도 선한 사람은 모두 대꾸하지 않아야 한다. 선한 사람이 만약 다시 꾸짖으면 서로 지혜가 없는 〈사람이 될 것이요〉, 대꾸하지 않으면 〈선한 사람은〉 마음이 맑아지고, 꾸짖은 사람만 입에 열이 날 것이니, 바로 〈이것은〉 사람이 하늘에 침을 뱉으면 다시 자신을 좇아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75 莊子曰 人之不學 登天而無術하고 學而智遠이면 披祥雲而覩靑天하고 登高山而望四海니라 <[原本]明心寶鑑, 勤學篇第九 >  
장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는 것은 하늘을 오르려는데 재주가 없는 것과 같고, 배워서 지혜가 원대해지면 상서로운 구름을 헤치고서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으며, 높은 산에 올라서 사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아진다〉.”
76 太公曰 人生不學이면 冥冥夜行이니라 <原本明心寶鑑, 勤學篇第九 >  
태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캄캄하기가 밤에 길을 걷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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