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상덕이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창궐한 때를 만나서 부모가 굶주리고 병들어 죽음이 가까워졌다. 상덕은 밤낮으로 옷을 벗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위로하였는데, 봉양할 방법이 없으면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부모에게 먹이고, 어머니가 종기가 나면 종기를 빨아서 곧 낫게 하였다. 왕(경덕왕)이 상덕을 가상하게 여겨 하사품을 매우 후하게 하였고 명하여 그 마을 문에 정표하게하고, 비석을 세워 일을 기록하게 하였다.
6
荀子曰 不積蹞步면無以至千里요 不積小流면無以成江河니라<明心寶鑑, 勸學篇>
순자가 말하였다.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를 수가 없고 작은 물줄기가 모이지 않으면 강을 이룰 수가 없다.”
〈격몽요결의 서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이 아니면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이른바 학문은 또한 이상한 별개의 일이 아니다. 단지 아버지가 되어선 응당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되어선 응당 〈부모에〉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선 응당 〈임금에게〉 충성하고, 남편과 아내가 되어선 응당 〈서로〉 분별이 있고, 형과 아우가 되어선 응당 〈서로〉 우애하고, 어린 사람이 되어선 응당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가 되어선 응당 〈서로〉 신의가 있음이니, 모두 일상생활의 사이에서 일에 따라 각각 그 마땅함을 얻을 뿐이요, 심오한 것에 마음이 쏠려 기이한 효과를 허황되게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해산의 남쪽[해주]에 거처를 정하자 어떤 한둘의 학도들이 함께 어울려 배우기를 청하였다. 나는 스승 될 자질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또 처음 배우는 이가 방향을 알지 못하고 또 견고하고 굳은 뜻이 없어 대강대강 배움을 청하면 저와 내가 도움이 없고 도리어 남의 비웃음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러므로 한 책자를 간략하게 써서, 마음을 세우고 몸을 삼가고 부모를 봉양하고 사물을 접하는 방법을 대략 서술하고, ‘격몽요결’이라 이름하였다. 학도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 마음을 씻고 토대를 세우고 당일에 공부를 시작하게 하고자 하고, 나 역시 〈나쁜 습관을〉 인습한 것을 오랫동안 근심했는데, 이로써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정축년(1577) 늦겨울에 덕수 이이는 쓴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면 될 뿐이지, 재물을 쌓아두고 풍족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가슴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사는 자, 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자, 지팡이를 꽂아 두고 김을 매는 자가 있었지만, 이런 무리의 사람들은 부귀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것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지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마음 수양의 해가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볍게 여기고 빈천을 지킬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진나라 왕[소양왕]은 마침내 누완(樓緩)을 재상으로 삼고, 맹상군을 가두어서 그를 죽이고자 했다. 맹상군이 사람을 보내서 진나라 왕의 애첩에게 풀어줄 것을 요구하니, 애첩이 말하길, “맹상군의 호백구(狐白裘)를 얻고 싶습니다.” 하였다. 맹상군은 호백구가 있었으나, 이미 호백구를 진나라 왕에게 바쳐서 애첩의 요구에 응할 방법이 없었다.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중니를 헐뜯자, 자공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없게 하십시오. 중니는 헐뜯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 중에 현명한 자는 언덕〈과 같〉아서 오히려 넘을 수 있지만, 중니는 해와 달〈과 같〉아서 얻어서 넘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끊고자 하지만, 그 어찌 해와 달을 해치겠습니까? 다만 그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탕(湯)왕이〉 말하였다. “나 소자(小子) 리(履)는 감히 검은 숫소를 써서 감히 거룩한 상제(上帝)에게 분명하게 아룁니다. 죄가 있는 자를 감히 용서할 수 없으며, 상제의 신하를 가리지 못하니, 간택하는 것이 상제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제 몸에 죄가 있다면 만 방의 〈백성〉 때문이 아니고, 만 방의 〈백성에게〉 죄가 있다면 죄는 제 몸에 있는 것입니다.”
25
子曰 不知命이면無以爲君子也요<論語, 堯曰第二十>
공자가 말하였다.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26
不知禮면無以立也요<論語, 堯曰第二十>
예(禮)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고,
27
不知言이면無以知人也니라<論語, 堯曰第二十>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28
孟子對曰 殺人以梃與刃이 有以異乎잇가 曰 無以異也니이다<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사람을 죽임에 몽둥이와 칼날을 씀이 다른 것이 있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29
以刃與政이 有以異乎잇가 曰 無以異也니이다<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물었다.〉 “칼날과 정치를 씀이 다른 것이 있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다른 점이 없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탕(湯)임금이 박읍(亳邑)에 거처할 때 갈(葛)나라와 이웃하였는데 갈백(葛伯)이 방탕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았네. 탕(湯)임금이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묻기를 ‘무엇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하니, 〈갈백이〉 말하길 ‘희생으로 이바지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네. 탕임금이 사람을 시켜 그에게 소와 양을 보냈는데, 갈백이 희생을 잡아먹고 또 그것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네. 탕임금이 또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묻기를 ‘무엇 때문에 제사 지내지 않는가?’ 하니, 〈갈백이〉 말하길 ‘자성(粢盛)으로 이바지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네. 탕임금이 박읍(亳邑)의 백성으로 하여금 가서 그를 위하여 밭을 갈게 하니, 노약자들이 밥을 제공하였네. 갈백이 자기 백성을 거느려서 그 술과 밥과 기장과 쌀을 가진 자들을 협박하여 음식을 빼앗되, 내놓지 않는 자를 죽였네. 어떤 어린아이가 기장과 고기를 내왔는데, 〈갈백은 아이를〉 죽이고 음식을 빼앗았네. 《서경(書經)》에 이르길, ‘갈백은 음식을 내놓는 자와 원수가 되었다.’ 하였으니, 이일을 이른것이네.
〈맹자가〉 말하였다. “말의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 없겠거니와,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말의 나이 많은 것을 나이 많게 여기는 것이 사람의 나이 많은 것을 나이 많게 여기는 것과 다른 점이 없겠습니까? 또 나이 많은 것이 의롭다고 말하겠습니까? 어른을 나이 많게 여기는 것이 의롭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이 〈사사로운〉 형기를 가지지 않은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또한, 이 〈바른〉 성명을 가지지 않은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가장 어리석은 자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인심과 도심의〉 두 가지가 짧은 순간의 사이에 섞여있는데도 그것을 다스릴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위태한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해져서 공정한 천리가 끝내 저 사사로운 인욕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