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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爲 > 단정 A 以爲 B A를 B라고 여기다/말하다/삼다
대표 : 以 A 爲 B
동의 : AB ; AB ; A B ; 以爲 A ; AB ; AB ; A 以爲 B ; A 以爲 B ; AB ; AB ; 以爲 AB ;
73 개의 글에 글자가 검색되었습니다.
1 楚書曰 楚國 無以爲寶 惟善 라하니라 <漢文독해기본패턴, 공통 기본 패턴>  
《초서(楚書)》에 말하였다. 초(楚)나라는 보배로 여기는 것이 없고, 오직 선(善)을 보배로 여긴다.
2 楚書曰 楚國無以爲寶 惟善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초서》에 말하였다. “초나라는 보배로 여기는 것이 없고, 오직 선을 보배로 여긴다.”
3 妻曰 得此奇物 殆兒之福이라 埋之不可라한대 하여 將兒與鍾還家하여 懸於樑撞之러니 <明心寶鑑, 孝行篇續>  
아내가 말하였다. “이 기이한 물건을 얻은 것은 아마 아이의 복일 것입니다. 아이를 매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손순이 그 말을 옳다 여겨서 아이와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들보에 매달고 석종을 쳤는데,
4 其五 工於筆札하고 業於琴酒하여 優游卒歲하여 自謂淸致 其六 好聚閒人하여 圍棋局戲하여 飽食終日하여 只資爭競이요 其七 歆羨富貴하고 厭薄貧賤하여 惡衣惡食 其八 嗜慾無節하여 不能斷制하여 貨利聲色 其味如蔗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그 다섯째는 글솜씨를 익히고 거문고 타고 술마시는 것을 일삼아서 한가롭게 놀면서 세월을 보내며 스스로 운치있다고 말하는 것이요, 그 여섯째는 한가한 사람을 모아서 바둑을 두고 장기를 두는 것을 좋아하여 하루 종일 배불리 먹고 다만 다투는 데에 빠지는 것이요, 그 일곱째는 부유함과 귀함을 부러워하고 가난함과 천함을 싫어하여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요, 그 여덟째는 기호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여 끊고 억제할 수 없어서 재물과 이권, 음악과 여색의 그 맛을 단수수처럼 〈여기는 것이다.〉
5 鷄鳴狗盜: 秦王聞孟嘗君之賢하고 使涇陽君으로 爲質於齊以請하니 孟嘗君來入秦이라 秦王丞相하니 或謂秦王曰 孟嘗君相秦이면 必先齊而後秦하리니 秦其危哉리이다하다 <原文故事成語, 處世>  
닭처럼 울고 개처럼 훔치다 : 진나라 왕[소양왕(昭襄王)]이 맹상군(孟嘗君)이 현명하다는 것을 듣고, 경양군(涇陽君)에게 제나라에 볼모가 되게 하여 청하니, 맹상군이 진나라에 찾아왔다. 진나라 왕이 그를 승상으로 삼으니, 어떤 사람이 진나라 왕에게 말하길, “맹상군이 진나라에 재상을 맡으면 반드시 제나라를 우선시하고 진나라를 뒤로할 것이니, 진나라가 분명 위태로울 것입니다.” 하였다.
6 畵龍點睛: 張僧繇于金陵安樂寺 畫四龍于壁하고 不點睛이라 每曰 點之하면 卽飛去라하니이어늘 因點其一하니 須臾雷電破壁하고 一龍乘雲上天이요 未點睛者 皆在 <原文故事成語, 處世>  
용을 그리고 눈동자를 찍다 : 장승요(張僧繇)가 금릉(金陵)의 안락사(安樂寺)에서 벽에 용 네 마리를 그리면서 눈동자를 찍지 않았다. 〈물을 때마다〉 늘 말하길, “용에 점을 찍으면 날아가 버릴 것이오.” 하니, 사람들은 그것을 거짓말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중에 하나에 점을 찍으니, 잠시 뒤에 천둥과 번개가 벽을 부수었고, 한 마리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눈에 점을 찍지 않은 것은 모두 남아 있었다.
7 信持其首하고 謁高祖於陳하니 上令武士縛信하고 載後車 信曰 果若人言이로다 狡兎死 良狗烹이요 高鳥盡이면 良弓藏이요 敵國破 謀臣亡이라 天下已定하니 我固當烹이라하니 上曰 人告公反이라하다 遂械繫信하여 至洛陽하여 赦信罪하고 淮陰侯 <原文故事成語, 形勢>  
8 雎曰 夫穰侯越韓魏而攻齊 非計也니이다 今王不如遠交而近攻이니 得寸이라도 則王之寸也 得尺이라도 則王之尺也니이다 今夫韓魏 中國之處而天下之樞也 王若欲霸인댄 必親中國하여 天下樞하여 以威楚趙 楚趙皆附 齊必懼矣리니 齊附 則韓魏因可虜也리이다하니 王曰 善타하고 乃以范雎爲客卿하여 與謀國事하다 <原文故事成語, 形勢>  
9 狐假虎威: 虎求百獸而食之라가 得狐 狐曰 子無敢食我也 天帝使我長百獸 今子食我 是逆天帝命也 子以我爲不信커든 吾爲子先行하리니 子隨我後하여 觀百獸見我而敢不走乎하라하다 虎以爲然이라 故遂與之行한대 獸見之하고 皆走어늘 虎不知獸畏己而走也하고 畏狐也 <原文故事成語, 形勢>  
10 今日減一分하고 明日減一分하여 及至中年之後 渾然天成이라 後人之戒輕薄子弟者 必擧李公하여 則云이라 <原文故事成語, 努力>  
11 靑出於藍: 君子曰 學不可以已 靑取之於藍이나 而靑於藍이요 冰水爲之 而寒於水 木直中繩이라도하면 其曲中規한대 雖有槁暴이라도 不復挺者 輮使之然也 <原文故事成語, 愚鈍>  
12 助長: 宋人 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러니 芒芒然歸하여 謂其人曰 今日 病矣로라 予助苗長矣로라하여늘 其子趨而往視之하니 苗則槁矣러라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原文故事成語, 愚鈍>  
13 是時 諸侯多辯士한대 如荀卿之徒 著書布天下 呂不韋乃使其客으로 人人著所聞하여 集論하니 八覽六論十二紀二十餘萬言이라 備天地萬物古今之事하여 號曰 呂氏春秋 布咸陽市門하고 懸千金其上하고 延諸侯游士賓客하여 有能增損一字者 予千金하리라하다 <原文故事成語, 才致>  
14 淮陰屠中少年 有侮信者하여 曰 若雖長大하고 好帶刀劍이라도 中情怯耳라하고 衆辱之曰 信 能死 刺我하고 不能死 出我袴下하라하다 於是信孰視之라가 俛出袴下蒲伏하니 一市人皆笑信하며 이라 <原文故事成語, 慾心>  
15 初魏武子有嬖妾한대 無子 武子病 命顆曰 必嫁是하라하다 疾病則曰 必하라하다 及卒 顆嫁之曰 疾病則亂하니 吾從其治也라하다 及輔氏之役 顆見老人結草하여 以亢杜回 杜回躓而顚이라 故獲之 夜夢之 曰 余 而所嫁婦人之父也 爾用先人之治命이라 余是以報라하다 <原文故事成語, 信義>  
16 曲每奏 鍾子期輒窮其趣하니 伯牙乃舍琴而嘆曰 善哉善哉로다 子之聽夫 志想象猶吾心也 吾於何逃聲哉리오하다 鍾子期死하니 伯牙破琴絶弦하고 終身不復鼓琴하며 世無足復爲鼓琴者 <原文故事成語, 信義>  
17 倚閭之望: 齊淖齒之亂 王孫賈從湣王이라가 失王之處 其母曰 汝朝出而晩來 則吾倚門而望하고 汝暮出而不還하면 則吾倚閭而望이러니 汝今事王이라가 王走어시늘 汝不知其處하니 汝尙何歸焉고하다 王孫賈乃攻淖齒하여 殺之 於是 齊亡臣 相與求湣王子法章하여齊王하고 保莒城하여 以拒燕하다 <原文故事成語, 信義>  
18 酒池肉林: 帝紂資辨捷疾하고 聞見甚敏이라 材力過人하여 手格猛獸 知足以距諫하고 言足以飾非 矜人臣以能하여 高天下以聲하며 皆出己之下 好酒淫樂하고 嬖於婦人이라 愛妲己하여 妲己之言是從이라 於是使師涓으로 作新淫聲北里之舞靡靡之樂이라 <原文故事成語, 慾心>  
19 紅紫褻服이러시다 <小學, 敬身第三>  
홍색과 자주색으로 그것으로 평상복을 만들지 않는다.
20 樂記曰 豢豕爲酒 非禍也언마는 而獄訟益繁 則酒之流生禍也 是故 先王 因爲酒禮하사 一獻之禮 賓主百拜하여 終日飮酒하되 而不得醉焉하니 此先王之所以備酒禍也시니라 <小學, 敬身第三>  
악기에 말하였다. 돼지를 길러 잡고 술을 만드는 것이 그것으로 화를 만듦이 아니지마는 옥송이 더욱 많아짐은 술의 유폐가 화를 낳아서이다. 이런 까닭으로 선왕이 인하여 주례를 만들어서 한번 (술을) 올리는 예에 손님과 주인이 백 번 절하여, 날을 마치도록 술을 마시면서도 취할 수 없게 하였다. 이는 선왕이 이로써 술의 화에 대비한 것이다.
21 趙襄子殺智伯하고 漆其頭하여 飮器러니 智伯之臣豫讓 欲爲之報仇하여 乃詐爲刑人하여 挾匕首하고 入襄子宮中하여 塗厠이러니 左右欲殺之한대 襄子曰 智伯 死無後어늘 而此人 欲爲報仇하니 眞義士也 吾謹避之耳니라 <小學, 稽古第四>  
조나라 양자가 지백을 죽이고 그 머리(뼈)에 옻칠하여 음료수 그릇으로 삼았다. 지백의 신하 예양이 (그를) 위해 원수를 갚고자 하여, 이에 거짓으로 벌 받는 사람이 되어 비수를 끼고 양자의 궁중에 들어가 뒷간을 칠하였는데, 좌우의 신하들이 (그를) 죽이려 하자, 양자가 말하였다. 지백이 죽고 후사도 없는데 이 사람이 (그를) 위해 원수를 갚고자 하니, 참으로 의로운 선비이다. 내가 삼가 (그를) 피할 뿐이다.
22 公父文伯之母 季康子之從祖叔母也 康子往焉이어늘 䦱門而與之言하고 皆不踰閾한대 仲尼聞之하시고 別於男女之禮矣라하시니라 <小學, 稽古第四>  
공보문백의 어머니는 계강자의 종조숙모였는데 강자가 그곳에 찾아가자, 문을 열고서 함께 (그와) 말하며, 모두 문지방을 넘지 않았다. 중니가 (그것을) 듣고서 “남녀의 예를 구별하였다."라고 하였다.
23 衛莊公 娶于齊東宮得臣之妹하니 曰莊姜이라 美而無子러니 其娣戴嬀生桓公이어늘 莊姜 己子하니라 <小學, 稽古第四>  
위나라 장공이 제나라 동궁 득신의 누이에게 장가드니, 장강이라 하였다. 아름다웠으나 아들이 없었는데, 그 누이 대규가 환공을 낳자, 장강이 그를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24 崔玄暐 母盧氏嘗誡玄暐曰 吾見姨兄屯田郞中辛玄馭하니 曰 兒子從宦者 有人 來云貧乏不能存이라하면 是好消息이어니와 若聞貲貨充足하며 衣馬輕肥라하면 惡消息이라하니 吾嘗確論이라하노라 <小學, 善行第六>  
최현위의 어머니 노씨가 일찍이 현위를 훈계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종 오빠인 둔전낭중 신현어를 보니, (이종 오빠가) 말하기를 “아들로서 벼슬에 종사하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 와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좋은 소식이다, 만약 듣기에 재화가 충족하며 옷과 말이 가볍고 살쪘다고 하면 이는 나쁜 소식이다.’ 라고 하니 나는 일찍이 이로써 확론이라고 여긴다." 하였다.
25 夫果死不還이어늘 婦養姑不衰하여 慈愛愈固하여 紡績織紝하여 家業하고 終無嫁意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남편이 결국 죽어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효부는 시어머니 봉양이 줄지 않아서, 〈시어머니의〉 자애와 〈며느리의〉 사랑이 더욱 견고하였고, 실을 뽑고 베를 짜는 것으로 집의 생계로 삼고, 끝내 〈다시〉 시집갈 뜻이 없었다.
26 時賜食於家어든 必稽首俯伏而食하여 如在上前하며 其執喪 哀戚甚하니 子孫 遵敎하여 亦如之하니라 萬石君家以孝謹으로 聞乎郡國이라 雖齊魯諸儒라도 質行 皆自不及也라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상이 때때로 집안에 음식을 내리면 반드시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리고 먹어 임금의 앞에 있는 듯하였으며 그 상례를 집행함에 슬퍼함이 심하니 자손들도 가르침을 따라 또한 (그) 처럼 하였다. 만석군의 집은 효성과 삼감으로 군국에 알려졌다. 비록 제나라와 노나라의 여러 유학자들도 질박한 행실을 모두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27 長子建 爲郞中令이요 少子慶 爲內史러니 老白首하되 萬石君 尙無恙하니라 每五日洗沐 歸謁하고 親入子舍하여 竊問侍者하여 取親中裙厠牏하여 身自浣滌하여 復與侍者하되 不敢令石君知之하여 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큰아들 건은 낭중령이 되고 작은아들 경은 내사가 되었는데, 건은 늙어서 머리가 희었으나 만석군은 여전히 병이 없었다. 5일마다 목욕하는 휴가를 받아 돌아와서 찾아뵙고 직접 딸린 방으로 들어와 가만히 모시는 사람에게 물어 어버이의 내의와 속적삼을 가져다가 몸소 스스로 빨아 다시 모시는 사람에게 주었다. 감히 만석군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 하지 않아 이로써 일정함으로 삼았다.
28 張公藝九世同居하더니 北齊隋唐 皆旌表其門하니라 麟德中 高宗 封泰山하고 幸其宅하여 召見公藝하여 問其所以能睦族之道한대 公藝請紙筆以對하고 乃書忍字百餘하여 以進하니 其意宗族所以不協 由尊長衣食 或有不均하며 卑幼禮節 或有不備어든 更相責望하여 遂爲乖爭하나니 苟能相與忍之 則家道雍睦矣라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장공예는 9대가 함께 지내니, 북제와 수나라, 당나라에서 모두 그의 문에 정표하였다. 인덕 연간에 고종이 태산에 봉제사를 지내고 그 집에 행차하여 공예를 불러 보고는 그가 이로써 종족을 화목하게 할 수 있는 바의 도를 물었다. 공예가 종이와 붓으로 대답겠다고 청하고는 마침내 ‘참을 인‘자 백여 번을 써서 올렸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종족이 화목하지 않은 까닭은 존장의 옷과 음식에 혹 고르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며, 낮고 어린 사람의 예절이 혹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며, 번갈아가며 서로 책망하여 마침내 어긋나고 다투게 되기 때문이니, 진실로 서로 더불어 (그것을) 참을 수 있다면 집안의 도가 화목할 것입니다.’
29 近日士大夫家 酒非內法이며 果非遠方珍異 食非多品이며 器皿 非滿案이어든 不敢會賓友하여 常數日營聚然後에야 敢發書하나니 苟或不然이면 人爭非之하여 鄙吝이라 不隨俗奢靡者鮮矣니라 <小學, 善行第六>  
근일 사대부 집안은 술은 내법이 아니며, 과일은 먼 지역의 진귀하고 특이한 것이 아니며, 음식은 여러 물품이 아니며, 그릇이 상에 가득하지 않으면 감히 빈객과 친구를 모으지 못하며, 항상 몇 날을 장만하여 모은 연후에 감히 (초청하는) 글을 낸다. 만일 혹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투어 (그것을) 비난하여 이로써 비루하고 인색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속을 따라 사치하고 화려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30 楚書曰 楚國 無以爲寶 惟善 라하니라 <四書독해첩경, 大學>  
《국어(國語)》 〈초어(楚語)〉에 이르길, “초(楚)나라는 보배로 삼는 것이 없고, 오직 선(善)한 사람을 보배로 여긴다.” 하였다.
31 舅犯曰 亡人 無以爲寶 仁親 라하니라 <四書독해첩경, 大學>  
〈진 문공(晉文公)의〉 외숙 범(犯)이 말하길, “도망 중인 사람[亡人]은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어버이 사랑하는 것[仁親]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다.
32 子曰 事君盡禮 諂也로다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는 것 사람들이 그것을 아첨한다고 말하는구나.”
33 己任이니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四書독해첩경, 論語>  
인(仁)을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 그치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
34 曰 若是其大乎잇가 曰 民小也니이다 曰 寡人之囿 方四十里로되 何也잇고 曰 文王之囿 方七十里 芻蕘者往焉하며 雉兎者往焉하여 與民同之하시니小 不亦宜乎잇가 <四書독해첩경, 孟子>  
〈제선왕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그것이 큽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작다고 생각합니다.” 〈제선왕이〉 말하였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사십리인데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크다고 생각함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칠십리인데, 꼴 베고 나무 하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며,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서, 백성과 그것을 함께하였으니, 백성이 그것을 작다고 생각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35 必有事焉而勿正하여 心勿忘하며 勿助長也하여 無若宋人然이어다 宋人 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러니 芒芒然歸하여 謂其人曰 今日 病矣로라 予助苗長矣로라하여늘 其子趨而往視之하니 苗則槁矣러라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호연지기를 기르려면〉 반드시 의를 일삼음이 있더라도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 말아서 마치 송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 하네. 송나라 사람 중에 제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근심하여 새싹을 뽑아 올린 자가 있었네.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피곤하오.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소.’ 하자,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그 싹을 보았더니 싹이 말라 있었다네. 〈이처럼〉 천하에 싹이 자라는 것을 돕지 않는 자가 적다네. 이로움이 없다고 여겨서 싹을 버려두는 자는 싹을 김매지 않는 자이고, 싹이 자라기를 돕는 자는 싹을 뽑은 자이니, 다만 이로움이 없을 뿐 아니고 또 싹을 해치는 것이네.
36 孟子曰 牛山之木 嘗美矣러니 以其郊於大國也 斧斤 伐之어니 可以爲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이언마는 牛羊 又從而牧之 是以 若彼濯濯也하니 見其濯濯也하고 未嘗有材焉이라하나니 此豈山之性也哉리오 <四書독해첩경, 孟子>  
맹자가 말하였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우산이 큰 도성에 근교(近郊)이기 때문에 도끼로 나무를 벌목하였으니,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체로 그곳에서 밤낮으로 자라는 까닭과 비와 이슬이 적셔준 까닭에 새싹이 우산에서 생겨나고 있었지만, 소와 양까지 또 우산에 풀어놓고서 길렀[放牧]으니, 이 때문에 저처럼 민둥민둥[濯濯]한 것인데, 사람들은 우산이 민둥민둥한 것을 보고서 ‘일찍이 우산에는 재목(材木)이 없었다.’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37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이라하니 執柯以伐柯호되 睨而視之하고하나니 君子 以人治人하다가 改而止니라 <四書독해첩경, 中庸>  
《시경》 〈벌가(伐柯)〉에 이르길 ‘도끼자루를 베는데, 그 기준은 멀지 않다.’고 하니, 도끼자루를 잡고서 도끼자루를 베는데, 눈을 흘기고 자루를 보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멀다고 여기니,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의 도로써 사람을 다스리다가 〈잘못을〉 고치면 〈다스림을〉 그만둔다.
38 楚書曰 楚國 無以爲寶 惟善 라하니라 <大學, 傳>  
《국어(國語)》 〈초어(楚語)〉 이르길 “초(楚)나라는 보배로 삼는 것이 없고, 오직 선(善)한 사람을 보배로 여긴다.” 하였다.
39 舅犯曰 亡人 無以爲寶 仁親 라하니라 <大學, 傳>  
〈진 문공(晉文公)의〉 외숙인 범(犯)이 말하길 “도망 중인 사람[亡人]은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어버이 사랑하는 것[仁親]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다.
40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 出於其間이면 則天必命之하사 億兆之君師하여 使之治而敎之하여 以復其性케하시니 伏羲神農黃帝堯舜 所以繼天立極이요 而司徒之職 典樂之官 所由設也 <大學章句, 大學章句序>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로워 제 본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 사이에서 나온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 백성의 군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시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복희·신농·황제·요·순이 천명을 계승하여 〈교육의〉 표준을 세운 까닭이요, 사도의 관직과 전악의 관직을 설치한 이유였다.
41 子夏問孝한대 子曰 色難이니 有事어든 弟子服其勞하고 有酒食어든 先生饌 曾是孝乎 <論語, 爲政第二>  
자하(子夏)가 효(孝)를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를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선생이 드시게 하는 것 일찌기 이것을 효라 하겠는가?”
42 子曰 事君盡禮 諂也로다 <論語, 八佾第三>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는 것 사람들이 그것을 아첨한다고 말하는구나.”
43 己任이니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論語, 泰伯第八>  
인(仁)을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 그치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
44 克伐怨欲 不行焉이면仁矣잇가 <論語, 憲問第十四>  
〈원헌(原憲)이 물었다.〉 “이기려 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욕심부리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인(仁)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45 子曰 可難矣어니와 仁則吾不知也로라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그것(克伐怨欲)을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인(仁)한 것인지는 내가 모르겠네.”
46 子曰 士而懷居 不足士矣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만약 편안함을 생각하면 그를 선비라 할 수 없다.”
47 子曰 孟公綽 爲趙魏老則優어니와 不可滕薛大夫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맹공작(孟公綽)이 조씨와 위씨의 가신(家臣)의 우두머리가 되기에는 〈자격이〉 충분하지만 그를 등나라와 설나라의 대부로 삼을 수는 없다.”
48 子路問成人한대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이면 亦可成人矣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자로가 성인(成人)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만일 장무중(臧武仲)의 지혜와 공작(公綽)의 무욕(無慾)과 변장자(卞莊子)의 용맹과 염구(冉求)의 재주에 꾸미기를 예악(禮樂)으로써 한다면 또한 이를 성인이라 말할 수 있네.”
49 子聞之하시고 曰 可文矣로다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그 일을 듣고 말하였다. “시호를 문(文)이라 이를 만하다.”
50 子曰 君子이요 禮以行之하며 孫以出之하며 信以成之하나니 君子哉 <論語, 衛靈公第十五>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의(義)로 바탕을 삼고 예(禮)로 의를 행하고 겸손함으로 의를 드러내며 신(信)으로 의를 완성하니, 군자답구나.”
51 夫顓臾 昔者 先王 東蒙主하시고 且在邦域之中矣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爲리오 <論語, 季氏第十六>  
저 전유(顓臾)는 옛날에 선왕이 그곳을 동몽산의 제주로 삼았고 또한 국경의 안에 있으니, 이는 사직(社稷)의 신하이니, 무엇 때문에 정벌하겠는가?”
52 曰 若是其大乎잇가 曰 民小也니이다 曰 寡人之囿 方四十里로되 何也잇고 曰 文王之囿 方七十里 芻蕘者往焉하며 雉兎者往焉하여 與民同之하시니小 不亦宜乎잇가 <孟子, 梁惠王下>  
〈제선왕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그것이 큽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작다고 생각합니다.” 〈제선왕이〉 말하였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사십리인데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크다고 생각함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칠십리인데, 꼴 베고 나무 하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며,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서, 백성과 그것을 함께하였으니, 백성이 그것을 작다고 생각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53 始至於境하여 問國之大禁然後 敢入하니 臣聞郊關之內 有囿方四十里 殺其麋鹿者 如殺人之罪라하니 則是方四十里 爲阱於國中이니大 不亦宜乎잇가 <孟子, 梁惠王下>  
신이 처음 국경에 이르러 나라가 크게 금하는 일을 물은 뒤에 감히 들어왔습니다. 신이 들으니, ‘교관의 안에 동산이 사방 사십 리가 있는데, 그 고라니와 사슴을 죽인 사람을 살인한 죄와 같이한다’ 하니, 그렇다면 이는 사방 사십 리로 나라 안에 함정을 만든 것이니, 백성이 그것을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54 孟子見齊宣王曰 爲巨室인댄 則必使工師 求大木하시리니 工師得大木이면 則王喜하여 能勝其任也라하시고 匠人 斲而小之 則王怒하여 不勝其任矣라하시리니 夫人 幼而學之 壯而欲行之 王曰 姑舍女所學하고 而從我라하시면 則何如하니잇고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제나라 선왕을 보고 말하였다. “큰 궁궐을 만들려면 반드시 도목수(都木手)로 하여금 큰 나무를 구하게 하실 것이니, 도목수가 큰 나무를 얻으면 왕께서 기뻐하여 그 임무를 다할 수 있다 여기고, 장인이 그 나무를 깎아서 작게 하면 왕이 노하여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무릇 사람이 어려서 도를 배우는 것은 장성하여 배운 것을 행하고자 하는 것인데, 왕께서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55 燕虐其民이어늘 往而征之하시니將拯己於水火之中也라하여 簞食壺漿으로 以迎王師어늘 若殺其父兄하며 係累其子弟하며 毁其宗廟하며 遷其重器하면 如之何其可也리오 天下固畏齊之彊也 今又倍地而不行仁政이면 動天下之兵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지금 연(燕)나라가 자기 백성을 학대하는데 왕이 가서 거기를 정벌하니, 백성이 장차 자신을 물과 불의 가운데에서 구원하리라 여겨서 대바구니 밥과 호리병의 장물로써 왕의 군대를 맞이하였는데, 만일 그 부형을 죽이고 그 자제를 구속하고 그 종묘를 부수고 그 중요한 기물들을 옮겨간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천하가 진실로 제(齊)나라의 강함을 두려워하는데 지금 또 땅을 배로 하고 어진 정사를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천하의 군대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56 必有事焉而勿正하여 心勿忘하며 勿助長也하여 無若宋人然이어다 宋人 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러니 芒芒然歸하여 謂其人曰 今日 病矣로라 予助苗長矣로라하여늘 其子趨而往視之하니 苗則槁矣러라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孟子, 公孫丑上>  
〈호연지기를 기르려면〉 반드시 의를 일삼음이 있더라도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 말아서 마치 송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 하네. 송나라 사람 중에 제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근심하여 새싹을 뽑아 올린 자가 있었네.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피곤하오.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소.’ 하자,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그 싹을 보았더니 싹이 말라 있었다네. 〈이처럼〉 천하에 싹이 자라는 것을 돕지 않는 자가 적다네. 이로움이 없다고 여겨서 싹을 버려두는 자는 싹을 김매지 않는 자이고, 싹이 자라기를 돕는 자는 싹을 뽑은 자이니, 다만 이로움이 없을 뿐 아니고 또 싹을 해치는 것이네.
57 不得이란 不可이며 無財 不可이니 得之爲有財하여는 古之人 皆用之하니 吾何爲獨不然이리오 <孟子, 公孫丑下>  
〈법제에〉 할 수 없는 것이면 그 때문에 기뻐할 수 없으며, 〈마련할〉 재력이 없으면 그 때문에 기뻐할 수 없네. 〈법제에〉 관곽을 할 수 있고 재력도 있으면 옛날의 사람이 모두 관곽을 썼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홀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58 陳賈曰 王無患焉하소서與周公孰仁且智니잇고 王曰 惡 是何言也 曰 周公 使管叔監殷이어시늘 管叔 以殷畔하니 知而使之 是不仁也 不知而使之 是不智也 仁智 周公 未之盡也시니 而況於王乎잇가 賈請見而解之하리이다 <孟子, 公孫丑下>  
진가(陳賈)가 말하였다. “왕은 그것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왕은 스스로 주공과 누가 어질고 또 지혜롭다고 여기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 이 무슨 말인가?” 〈진가가〉 말하였다. “주공이 관숙(管叔)에게 은(殷)나라를 감독하게 했는데 관숙은 은나라로써 배반하였으니, 〈주공이〉 알고서 그에게 시켰으면 이는 어질지 못한 것이고, 알지 못하고서 그에게 시켰다면 이는 지혜롭지 않은 것입니다. 인과 지는 주공도 그것을 다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왕에 있어서랴? 제가 〈맹자를〉 만나보고 그 일을 해명하겠습니다.”
59 予三宿而出晝호되 於予心하노니 王庶幾改之 王如改諸시면 則必反予시리라 <孟子, 公孫丑下>  
내가 사흘을 유숙하고 주(晝) 땅을 벗어났으나 내 마음에는 오히려 이것을 빠르다고 여겼네. 왕이 혹시라도 마음을 고쳤을까? 왕이 만약 마음을 고친다면 반드시 나를 되돌아오게 할 것이네.
60 有爲神農之言者許行 自楚之滕하여 踵門而告文公曰 遠方之人 聞君行仁政하고 願受一廛而爲氓하노이다 文公 與之處하니 其徒數十人 皆衣褐하고 捆屨織席하여 하더라 <孟子, 滕文公上>  
신농의 말을 하는 농가자(農家者) 허행(許行)이 있었다. 초나라에서 등나라로 가서 궐문에 이르러서 문공(文公)에게 고하였다. “먼 지방의 사람이 ‘임금께서 인정(仁政)을 시행한다.’고 듣었습니다. 전(廛) 하나를 받아서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문공이 허행에게 거처를 주니 그의 무리 수십 인이 모두 갈옷을 입고 신발을 삼고 자리를 짜면서 양식을 마련하였다.
61 他日 又求見孟子한대 孟子曰 吾今則可以見矣어니와 不直則道不見하나니 我且直之호리라 吾聞 夷子 墨者라하니 墨之治喪也 以薄爲其道也 夷子 思以易天下하나니非是而不貴也리오 然而夷子葬其親하니 則是以所賤事親也로다 <孟子, 滕文公上>  
다른 날에 〈이지(夷之)가〉 또 맹자를 만나기를 요구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은 〈이자를〉 만날 수 있네. 직언하지 않으면 〈우리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장차 그에게 직언하겠네. 내가 듣기에, 이자는 묵가(墨家)라 하니, 묵가가 상을 치루는 것은 검소함을 바른 도로 여긴다네. 이자는 검소함으로 천하를 바꾸겠다 생각하니, 어찌 검소함을 옳지 않다고 여겨서 중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자는 자기 어버이를 장례 지낸 것이 후하였으니 이것은 천하게 〈여기는〉 것으로 부모를 섬긴 것이네.”
62 徐子以告夷子한대 夷子曰 儒者之道 古之人 若保赤子라하니 此言 何謂也 之則愛無差等이요 施由親始라하노라 徐子以告孟子한대 孟子曰 夫夷子人之親其兄之子 爲若親其鄰之赤子乎 彼有取爾也 赤子匍匐將入井 非赤子之罪也 且天之生物也 使之一本이어늘 而夷子 二本故也로다 <孟子, 滕文公上>  
서자(서벽)가 이 일을 이자(이지)에게 말하자, 이자가 말하였다. “유가(儒家)의 말 《서경》 〈강고(康誥)〉에 ‘옛날의 사람(왕)은 갓난아이를 돌보듯 한다.’ 하였으니, 이 말은 무엇을 이르는 것이겠는가? 나(이지)는 곧 이 말의 뜻을 ‘사랑에는 차등이 없고 〈사랑을〉 베푸는 일은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한다.’라고 생각한다.” 서자가 이자의 말로 맹자에게 고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저 이자는 진실로 ‘사람이 제 형의 자식을 친히 하는 것이 제 이웃의 갓난아이를 친히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서경》의〉 저 말은 다음을 취한 것이 있으니, 〈그 뜻은 바로〉 ‘갓난아이가 기어서 장차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은 갓난아이의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사람으로 하여금 뿌리(부모)를 하나로 하였는데, 이자는 뿌리를 둘로 여기기 때문이다.
63 不告而娶 爲無後也시니 君子猶告也라하니라 <孟子, 離婁上>  
순(舜)이 아뢰지 않고 장가든 것은 후손이 없기 때문이니, 군자는 이를 아뢴 것과 같다고 한다.”
64 夫章子 豈不欲有夫妻子母之屬哉리오마는 爲得罪於父하여 不得近이라 出妻屛子하여 終身不養焉하니 其設心 不若是 是則罪之大者라하니 是則章子已矣니라 <孟子, 離婁下>  
저 장자(章子)가 어찌 남편과 아내, 자식과 어미의 가족을 가지고자 하지 않았겠는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기 때문에 가까이할 수 없었네. 아내를 내보내고 자식을 물리쳐서 생을 마치도록 그들에게 봉양 받지 않았으니, 그가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처럼 하지 않으면 이는 죄 중에 큰 것이다.’라고 여겼으니, 이런 사람이 곧 장자라네.”
65 孟子曰 牛山之木 嘗美矣러니 以其郊於大國也 斧斤 伐之어니 可以爲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이언마는 牛羊 又從而牧之 是以 若彼濯濯也하니 見其濯濯也하고 未嘗有材焉이라하나니 此豈山之性也哉리오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우산이 큰 도성에 근교(近郊)이기 때문에 도끼로 나무를 벌목하였으니,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체로 그곳에서 밤낮으로 자라는 까닭과 비와 이슬이 적셔준 까닭에 새싹이 우산에서 생겨나고 있었지만, 소와 양까지 또 우산에 풀어놓고서 길렀[放牧]으니, 이 때문에 저처럼 민둥민둥[濯濯]한 것인데, 사람들은 우산이 민둥민둥한 것을 보고서 ‘일찍이 우산에는 재목(材木)이 없었다.’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66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이라하니 執柯以伐柯호되 睨而視之하고하나니 君子 以人治人하다가 改而止니라 <中庸, 中庸章句>  
《시경》 〈벌가(伐柯)〉에 이르길 ‘도끼자루를 베는데, 그 기준은 멀지 않다.’고 하니, 도끼자루를 잡고서 도끼자루를 베는데, 눈을 흘기고 자루를 보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멀다고 여기니,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의 도로써 사람을 다스리다가 〈잘못을〉 고치면 〈다스림을〉 그만둔다.
67 鼠以一猫夜獵之故 不死則皆遠避하니患遂絶이로되他猫之功하야 遂笞其一猫而放之 鼠乃相率而來하니 不可復禁 使知者擇之 寧畜其一猫耶 將畜其餘猫耶 <文學독해첩경, 論辨類>  
68 方金君之徑造花園也하야 目注於花하며 終日不瞬이라 兀兀乎寢卧其下하고 客主不交一語이라 觀之者非狂則癡하며 嗤點笑罵之不休矣 然而笑之者 笑聲未絶而生意已盡 <文學독해첩경, 序跋類>  
69 金君則心師萬物하야 技足千古 所畫百花譜 足以冊勳甁史 配食香國이니 癖之功信不誣矣 嗚呼 彼伈伈泄泄하며 誤天下大事하니无病之偏者 觀此帖可以警矣 <文學독해첩경, 序跋類>  
70 上秦皇逐客書 李斯 : 臣聞吏議逐客이라하니過矣라하노이다 <文學독해첩경, 奏議類>  
71 余固知謇謇之爲患兮 忍而不能舍也로다 指九天以爲正兮 夫唯靈脩之故也 曰黃昏期兮 羌中道而改路 初旣與余成言兮 後悔遁而有他 余旣不難夫離別兮 傷靈脩之數化 余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 畦留夷與揭車兮 雜杜衡與芳芷 冀枝葉之峻茂兮 願竢時乎吾將刈 雖萎絶其亦何傷兮 哀衆芳之蕪穢 <古文眞寶後集, 卷之一 >  
72 臣聞吏議逐客이라하니過矣로이다 昔者 繆公 求士하되 西取由余於戎하고 東得百里奚於宛하며 迎蹇叔於宋하고 來邳豹公孫支於晉하니 此五子者 不産於秦이로되 而繆公用之하여 幷國二十하여 遂霸西戎하니이다 <古文眞寶後集, 卷之一 >  
신이 들으니, ‘관리들이 객경을 내쫓고자 의논한다.’ 하는데, 〈신(臣)은〉 감히 그 일을 지나치다고 여깁니다. 옛날에 목공은 선비를 구하되, 서쪽으로는 융(戎) 땅에서 유여를 취하였고, 동으로는 완 땅에서 백리해를 얻었고, 송에서 건숙을 맞이하였고, 진에서 비표와 공손지를 불러왔으니, 이 다섯 사람은 진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나, 목공이 그들을 등용하여 20개 국을 병합하여, 결국 서융에서 패자가 되었습니다.
73 楚書曰 楚國 無以爲寶 惟善 라하니라 <原本明心寶鑑, 繼善篇第一 >  
초서(楚書)에 말하였다. “초(楚)나라는 보배로 여기는 것이 없고, 오직 선(善)을 보배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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