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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爲 > 단정 AB A를 B라고 여기다/말하다/삼다
대표 : 以 A 爲 B
동의 : AB ; AB ; A B ; 以爲 A ; AB ; AB ; A 以爲 B ; A 以爲 B ; AB ; AB ; 以爲 AB ;
125 개의 글에 글자가 검색되었습니다.
1 二三子 隱乎 吾無隱乎爾로라 <漢文독해기본패턴, 공통 기본 패턴>  
“그대들은 나를 숨긴다고 여기는가?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2 事君盡禮諂也로다 <漢文독해기본패턴, 공통 기본 패턴>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첨한다 여기는구나.
3 夫天子 四海하니 非壯麗 亡以重威 <漢文독해기본패턴, 공통 기본 패턴>  
무룻 천자는 사해(四海)를 집으로 삼으니,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으면 위엄을 중후하게 할 수 없다.
4 二三子 隱乎 吾無隱乎爾로라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니라 <漢文독해기본패턴, 문장 유형별 패턴 1>  
그대들은 나를 숨긴다고 여기는가? 나는 그대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나는 무슨 행동이건 그대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적이 없는 사람이니 그것이 바로 나이다.
5 光宗曰 卿能不 予當卿言라하다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광종(光宗)이 말하였다. “경은 보물을 보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마땅히 경의 말을 보물로 여길 것이오.”
6 天下之事貴賤貧富之高下者 唯文章耳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천하의 일 가운데 귀천과 빈부로서 그 높고 낮음을 삼지 않는 것은 오직 문장 뿐이다.
7 福者 位替則賤하고 福者 財盡則貧이니라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대체로 귀함을 복으로 삼는 사람은 지위가 바뀌면 천하게 되고, 부유함을 복으로 삼는 사람은 재물이 없어지면 가난하게 된다.
8 得所欲爲樂이니 欲有爲者 하고 欲無爲者 이니라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행하고자 하는 것을 얻는 것이 즐거움이니, 할 일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일이〉 있음을 즐거움으로 삼고, 할 일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은 〈일이〉 없음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9 人子之事親恭敬하고 修身愼行이라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사람의 자식이 어버이를 섬김에는 반드시 공경을 근본으로 삼고 몸을 닦고 행동을 삼가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10 當官者暴怒하여 事有不可어든 當詳處之 必無不中이어니와 若先暴怒 只能自害 豈能害人이리오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관직을 맡은 자는 반드시 몹시 성내는 것을 경계로 삼아서, 일에 옳지 않음이 있거든 마땅히 세밀하게 그 일을 처리하면 반드시 맞지 않음이 없거니와, 만약 먼저 몹시 성낸다면 다만 스스로 해칠 수 있을 뿐, 어찌 남을 해칠 수 있겠는가?
11 神宗皇帝御製曰 遠非道之財하고 戒過度之酒하며 居必擇隣하고 交必擇友하며 嫉妬 勿起於心하고 讒言 勿宣於口하며 骨肉貧者 莫疎하고 他人富者 莫厚하며 克己 勤儉하고 愛衆 謙和하며 常思已往之非하고 每念未來之咎하라 若依朕之斯言이면 治國家而可久니라 <明心寶鑑, 省心篇下>  
〈신종황제어제(神宗皇帝御製)〉에 말하였다. “도가 아닌 재물을 멀리하고, 정도가 지나치는 술을 경계하며, 거처할 때 반드시 이웃을 가리고, 사귈 때는 반드시 벗을 가리며, 질투를 마음에서 일으키지 말고, 헐뜯는 말을 입에서 내지 말며, 동기 중에 가난한 자를 멀리하지 말며, 남 중에 부유한 자를 후하게 대하지 말고, 사욕을 극복하는 일은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우선으로 삼고, 대중을 사랑하는 일은 겸손함과 온화함을 으뜸으로 삼을 것이며, 언제나 지나간 잘못을 생각하고, 늘 미래의 잘못을 생각하라. 만약 짐의 이 말을 따른다면 국가 다스리는 것을 오래할 수 있을 것이다.”
12 當官者暴怒하여 事有不可어든 當詳處之 必無不中이어니와 若先暴怒 只能自害 豈能害人이리오 <明心寶鑑, 治政篇>  
“관직을 맡은 자는 반드시 갑자기 성내는 것을 경계로 삼아야 하니, 일에 옳지 않은 점이 있으면 마땅히 일을 자상히 살펴 처리하면 반드시 들어맞지 않음이 없을 것이나, 만약 먼저 갑자기 성을 내면 단지 자신을 해칠 할 뿐, 어찌 남을 해칠 수 있겠는가?”
13 周易曰 善不積이면 不足以成名이요 惡不積이면 不足以滅身이어늘 小人 小善으로 无益而弗爲也하고 小惡으로 无傷而弗去也니라 惡積而不可掩이요 罪大而不可解니라 <明心寶鑑, 增補篇>  
《주역》에 말하였다. “선을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루는 것에는 부족하고, 악을 쌓지 않으면 몸을 망치는 것에는 부족한데, 소인은 작은 선으로는 유익함이 없다고 여겨서 행하지 않고, 작은 악으로는 해로움이 없다고 여겨서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 쌓여서 가릴 수 없고, 죄가 커져서 벗어날 수 없다.”
14 梨栗枾棗之果 味非不佳也로되 其香芬芳이라橘柚하고 蘿蔔蔓菁諸瓜之菜 種非不多也로되 其味辛烈이라芥薑하나니라 <啓蒙篇, 物篇>  
배, 밤, 감, 대추의 과실이 맛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향이 향기로운 까닭에 과실은 귤과 유자를 보배로 여기고, 무, 순무와 여러 오이의 채소는 종류가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맛이 매운 까닭에 채소는 겨자와 생강을 귀중하게 여긴다.
15 苟或交遊之際切磋琢磨 相與하고歡狎戱謔으로 相親이면 則安能久而不疎乎리오 <童蒙先習, 朋友有信>  
만약 교유하는 즈음에 절차탁마(切磋琢磨)로 함께하지 않고, 다만 스스럼없이 농담하는 것으로 서로 친하다면, 어찌 오래도록 〈서로〉 멀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16 宋太祖立國之初 五星 聚奎하여 濂洛關閩 諸賢 輩出하니 若周敦頤 程顥 程頤 司馬光 張載 邵雍 朱熹 相繼而起하여 闡明斯道 己任하되 身且不得見容하고 而朱子集諸家說하사 註四書五經하시니 其有功於學者 大矣로다 <童蒙先習, 總論>  
송(宋)나라 태조가 나라를 세운 초기에 〈하늘의〉 다섯 별이 규성에 모여, 염수(濂水)‧락수(洛水)‧관중(關中)‧민중(閩中)에서 제현이 무리지어 나왔다. 주돈이‧정호‧정이‧사마광‧장재‧소옹‧주희 같은 사람이 서로 이어서 일어나서, 우리 도를 밝히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삼았으나, 자신의 몸조차 용납될 수 없었고, 주자는 제가의 학설을 모아서, 사서오경에 주를 냈으니, 참으로 배우는 자에게 공 있음이 크도다.
17 燕人衛滿 因盧綰亂하여 亡命來하여 誘逐箕準하고 據王儉城하더니 至孫右渠하여 漢武帝討滅하고 分其地하여 置樂浪臨屯玄菟眞蕃四郡하다 昭帝平那玄菟 平州하고 臨屯樂浪으로 爲東府二都督府하다 <童蒙先習, 總論>  
연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노관의 난리로 인하여 망명해 와서 기준(箕準)을 유인하여 쫒아내고 왕검성을 점거하였는데 손자인 우거에 이르러 한나라 무제가 그를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낙랑ㆍ임둔ㆍ현도ㆍ진번의 사군을 설치하였다. 소제가 평나와 현도로써 평주를 만들고 임둔과 낙랑을 동부의 두 도독부로 만들었다.
18 新羅始祖赫居世 都辰韓地하여 하고 高句麗始祖朱蒙 至卒本하여 自稱高辛之後로라하여 因姓高하고 百濟始祖溫祚 都河南慰禮城하여 扶餘 하여 三國 各保一隅하여 互相侵伐하더니 <童蒙先習, 總論>  
신라(新羅)의 시조 혁거세(赫居世)는 진한(辰韓) 땅에 도읍을 정하여 박(朴)을 성(姓)으로 삼고, 고구려(高句麗)의 시조 주몽(朱蒙)은 졸본(卒本)에 이르러 ‘고신씨(高辛氏)의 후예다.’라고 자칭하여 그에 따라 고(高)를 성(姓)으로 삼았고, 백제(百濟)의 시조 온조(溫祚)는 하남(河南)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하여 부여를 성씨(姓氏)로 삼으니, 세 나라가 각각 〈삼한 지역의〉 한 모퉁이를 지키면서 서로 침략하고 정벌하였다.
19 其況堯舜之道 孝弟而已 舜之命契하사대 五品하시니 此文之冠以五倫者 其意宏矣로다 孝於親然後 忠於君하고 弟于兄然後 敬于長하나니 以此觀之컨대 五倫之中 孝弟爲先이라 <童蒙先習, 御製童蒙先習序>  
그 하물며 요순(堯舜)의 도(道)는 효도와 공경일 뿐이다. 순(舜)이 설(契)에게 명하시되 ‘오품(五品)을 중하게 여겨라’ 하시니, 이 책에서 오품(五品)을 머리에 둔 것은 그 뜻이 매우 크다. 아! 어버이에게 효도한 뒤에 임금에게 충성하고 형을 공경한 뒤에 어른을 공경하니 이 로써 이 책을 살펴보건데, 오륜의 가운데 효제가 우선(于先)이다.
20 孟子曰 讀其書하고 誦其詩하되 不知其人 可乎아하시니라 余幼時 見人家子弟初學者 無不是書하되 而第不知出於何人之手矣러니 今朴上舍廷儀氏 來謂余曰 此 吾高祖諱世茂之所編也라하니 余不覺驚喜曰 今日 始知其人矣와라 <童蒙先習, 跋文>  
맹자가 말하길 ‘그 글을 읽고 그 시를 외우면서도 그 〈글 쓴〉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이 옳은가?’ 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에 다른 집의 초학자인 자제들을 보았더니 이 책을 먼저 배울 것으로 삼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다만 〈이 책이〉 어떤 사람의 손에서 나왔는지 몰랐었다가, 이제 상사 박정의 씨가 찾아와서 나에게 일러 말하길, ‘이 책은 나의 고조부 휘 세무(世茂)께서 엮은 것이다.’ 하니, 나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고 기뻐하며 말하길,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되었구나!’ 하였다.
21 當常自奮發曰 人性本善하여 無古今智愚之殊어늘 聖人 何故獨爲聖人이며 我則何故獨爲衆人耶 良由志不立 知不明 行不篤耳 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皆在我耳 豈可他求哉리오 顔淵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 亦若是라하시니 我亦當顔之希舜으로 이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차이가 없거늘, 성인은 무슨 연고로 홀로 성인이 되었으며, 나는 무슨 연고로 홀로 중인(衆人)이 되었는가? 진실로 뜻이 확립되지 못하고 앎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실하지 못한 데서 말미암았을 뿐이다. 뜻을 확립하고 앎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는 것이 모두 나에게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할 수 있겠는가?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또한 이와 같다’ 하였으니 나 또한 마땅히 안연(顔淵)이 순임금처럼 〈되고자〉 바란 것으로 본보기를 삼겠다.”
22 持身章 第三: 學者必誠心向道하여 不以世俗雜事 亂其志라야 然後 爲學有基址 夫子曰 主忠信이라하시니 朱子釋之曰 人不忠信이면 事皆無實하여 爲惡則易하고 爲善則難이라主焉이라하시니忠信主而勇下工夫라야 然後 能有所成就 黃勉齋所謂眞實心地 刻苦工夫兩言 盡之矣로다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셋째. 몸가짐[持身]에 대한 글: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도를 향하여, 세속의 잡된 일로 그 뜻을 어지럽히지 않아야, 그러한 뒤에 학문을 함에 기초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충성과 신의를 주로 해야 한다.” 〈하시고〉, 주자가 그 말씀을 해석하여 말하길 “사람이 충성과 신의가 없으면 일에 모두 진실함이 없어서, 악을 행하기는 쉽고 선을 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충과 신〉을 학문에 주로 삼아야 한다.” 〈하였으니〉 반드시 충성과 신의로 주를 삼고 용감히 공부에 착수하여야 그러한 뒤에 성취한 바가 있을 수 있다. 황 면재(황간)가 이른바 “마음을 진실하게 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라.”라는 두 마디 말이 그 뜻을 다하였도다.
23 父母有疾이어시든 心憂色沮하여 捨置他事하고問醫劑藥 疾止어시든 復初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부모에게 병환이 있으면 마음으로 근심하고 얼굴빛으로 걱정하여 다른 일은 제쳐두고 다만 의원에게 물어 약 짓는 것을 힘써야 하니, 병이 나으시면 평소대로 돌아간다.
24 尸在牀而未殯 男女位于尸傍이면 則其位南上이니 尸頭所在上也 旣殯之後 女子則依前位于堂上호되 南上하고 男子則位于階下호되 其位當北上이니 殯所在上也 發引時 男女之位 復南上이니 靈柩所在上也 隨時變位而各有禮意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시신이 침상에 있고 빈소를 갖추기 전에는, 남자와 여자가 시신의 곁에 자리하면 그 자리는 남쪽을 상석으로 하니, 시신의 머리가 있는 곳이 상석이 되기 때문이다. 빈소가 차려진 뒤에 딸은 전례를 따라서 당의 위에 자리하되 남쪽을 상석으로 하고, 남자는 섬돌 아래에 자리하되 그 위치는 마땅히 북쪽을 상석으로 삼아야 하니, 빈소가 있는 곳이 상석이 되기 때문이다. 발인(發靷)할 때는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다시 남쪽을 상석으로 하니, 영구가 있는 곳이 상석이 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자리를 바꾸는 것에는 각각 예의 뜻이 있는 것이다.
25 凡大功以上喪 則未葬前 非有故어든 不可出入이며 亦不可弔人이요治喪講禮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대공복(大功服) 이상의 상에는, 장례 전에 연고 없이 출입해서는 안 되고, 또 남의 상에 조문해도 안 된다. 항상 상례를 관리하고 예를 익히는 것을 일로 삼아야 한다.
26 君子憂道 不當憂貧이니 但家貧하여 無以資生이면 則雖當思救窮之策이나 亦只可免飢寒而已 不可存居積豊足之念이며 且不可以世間鄙事 留滯于心胸之間이니라 古之隱者 有織屨而食者 樵漁而活者 植杖而耘者하니 此等人 富貴不能動其心이라 能安於此하니 若有較利害計豊約之念이면 則豈不爲心術之害哉 學者 要須輕富貴守貧賤이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면 될 뿐이지, 재물을 쌓아두고 풍족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가슴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사는 자, 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자, 지팡이를 꽂아 두고 김을 매는 자가 있었지만, 이런 무리의 사람들은 부귀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것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지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마음 수양의 해가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볍게 여기고 빈천을 지킬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27 溫恭慈愛惠人濟物이니 若其侵人害物之事 則一毫不可留於心曲이니라 凡人 欲利於己인댄 必至侵害人物이라 故學者先絶利心然後 可以學仁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항상 온화하고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남을 구제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해치는 일 같은 것은 털끝만큼도 마음속에 남겨서는 안 된다. 무릇 사람은 자기를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는 것에 이른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먼저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끊어낸 뒤에 인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8 秦王乃樓緩하고 囚孟嘗君하여 欲殺之 孟嘗君 使人으로 求解於秦王幸姬하니 姬曰 願得君狐白裘하노라하다 孟嘗君有狐白裘러니 已獻之秦王하여 無以應姬求 <原文故事成語, 處世>  
진나라 왕[소양왕]은 마침내 누완(樓緩)을 재상으로 삼고, 맹상군을 가두어서 그를 죽이고자 했다. 맹상군이 사람을 보내서 진나라 왕의 애첩에게 풀어줄 것을 요구하니, 애첩이 말하길, “맹상군의 호백구(狐白裘)를 얻고 싶습니다.” 하였다. 맹상군은 호백구가 있었으나, 이미 호백구를 진나라 왕에게 바쳐서 애첩의 요구에 응할 방법이 없었다.
29 與世推移: 屈原名平이요 楚之同姓이라 爲懷王左徒하고 博聞强志하며 明於治亂이라 嫺於辭令하여 王甚任之 上官大夫與之同列 爭寵而心害其能하여 因讒之하니 王怒而疏平이라 後秦昭王欲與懷王會하니 平曰 秦虎狼之國으로 不如無行이니이다하나 懷王稚子子蘭勸王行하여 王死於秦이라 長子頃襄王立하여 子蘭令尹이라 子蘭使上官大夫 短原於王하니 王怒而遷之 <原文故事成語, 處世>  
세상과 함께 옮겨가다 : 굴원(屈原)의 이름은 평(平)이며, 초(楚)나라의 동성이다. 회왕(懷王)의 좌도(左徒)가 되었고,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났고, 치세와 난세에 밝고, 응대하는 말에 능숙하여 왕이 그를 매우 신임하였다. 상관대부로 그와 항렬을 같이하는 자가 총애를 다투어서 마음으로 그의 능력을 시기하였다. 그로 인하여 굴원을 헐뜯으니, 왕이 노하여 굴원을 멀리하게 되었다. 뒤에 진나라의 소양왕(昭襄王)이 회왕과 회합하고자 하자, 굴원이 말하길, “진나라는 호랑이의 나라입니다. 가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으나, 회왕의 어린 아들인 자란(子蘭)이 회왕에게 권하여 〈모임에〉 가게 하자, 〈결국〉 회왕은 진나라에서 죽게 되었다. 〈회왕의〉 장자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자, 자란을 영윤으로 삼았는데, 자란은 상관대부로 하여금 경양왕에게 굴원을 헐뜯게 하였고, 경양왕이 노하여 굴원을 추방하였다.
30 雎曰 夫穰侯越韓魏而攻齊 非計也니이다 今王不如遠交而近攻이니 得寸이라도 則王之寸也 得尺이라도 則王之尺也니이다 今夫韓魏 中國之處而天下之樞也 王若欲霸인댄 必親中國하여 以爲天下樞하여 以威楚趙 楚趙皆附 齊必懼矣리니 齊附 則韓魏因可虜也리이다하니 王曰 善타하고范雎客卿하여 與謀國事하다 <原文故事成語, 形勢>  
범저가 말하길, “무릇 양후가 한나라ㆍ위나라를 넘어서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지금 왕께서 먼 나라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는 것만 못하니, 한 치를 얻더라도 왕의 한 치 땅이고, 한 자를 얻더라도 왕의 한 자의 땅입니다. 지금 저 한나라ㆍ위나라는 나라의 중앙에 처한 곳이고 천하의 중추입니다. 왕께서 만약 패자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중국을 가까이하여 천하의 중추로 삼아서 초나라와 조나라를 위협해야 할 것이니, 초나라와 조나라가 모두 따르면 제나라를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따르면 한나라 위나라는 그로 인해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길, “좋다.” 하고, 마침내 범저를 객경으로 삼아서 함께 나랏일을 도모하였다.
31 讀書亡羊: 夫小惑易方하고 大惑易性이라 自三代以下者 天下莫不以物易其性矣 小人則以身殉利하고 士則以身殉名하고 大夫則以身殉家하고 聖人則以身殉天下 故此數子者 事業不同하고 名聲異號 其於傷性에는 一也니라 <原文故事成語, 形勢>  
책을 읽다 양을 잃어버리다: 무릇 작은 의혹은 방향을 바꾸고, 큰 의혹은 성품을 바꾼다. …… 삼대 이후에는 천하에 외물 때문에 제 본성을 바꾸지 않은 자가 없었다. 소인은 몸을 이익에 희생하였고, 선비는 몸을 명분에 희생하였고, 대부는 몸을 가문에 희생하였고, 성인은 몸을 천하에 희생하였다. 그러므로 이 몇몇 사람은 일이 같지 않고, 명성이 다르게 불렸지만, 그들은 본성을 손상시켜 몸으로 희생한 것에서는 같다.
32 狐假虎威: 虎求百獸而食之라가 得狐 狐曰 子無敢食我也 天帝使我長百獸 今子食我 是逆天帝命也不信커든 吾爲子先行하리니 子隨我後하여 觀百獸見我而敢不走乎하라하다 虎以爲然이라 故遂與之行한대 獸見之하고 皆走어늘 虎不知獸畏己而走也하고 以爲畏狐也 <原文故事成語, 形勢>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다: 호랑이가 모든 짐승을 잡아서 그것을 먹다가 여우를 붙잡았다. 여우가 말하길, “그대는 감히 나를 잡아먹지 못한다. 천제가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으니, 지금 그대가 나를 잡아먹으면 이는 천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그대가 나를 불신한다면, 내가 그대보다 선행을 할테니, 그대는 내 뒤를 따르면서 모든 짐승들이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못하는가를 보아라.” 하였다. 호랑이가 그렇다고 여긴 까닭에 마침내 여우와 함께 길을 갔는데, 짐승들이 호랑이를 보고 모두 달아나는데, 호랑이는 짐승이 자기를 두려워하여 달아나는 줄 알지 못하고, 여우를 두려워한다고 여겼다.
33 秦之間言曰 秦之所惡 獨畏馬服君趙奢之子趙括爲將耳라하다 趙王因하여 代廉頗 藺相如曰 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니이다 括徒能讀其父書傳이요 不知合變也니이다하다 趙王不聽하고 遂將之 <原文故事成語, 愚鈍>  
34 癡人說夢: 僧伽龍朔中 游江淮間한대 其跡甚異 有問之曰 汝何姓고하니 答曰 姓何라하다 又問 何國人고하니 答曰 何國人이라하다 唐李邕作碑한대 不曉其言하고 乃書傳曰 大師姓何 何國人이라하다 此正所謂對癡人說夢耳 李邕遂하니 眞癡絶也 <原文故事成語, 愚鈍>  
35 於是昭王爲隗하여 改築宮而師事之하다 於是士爭趣燕하여 樂毅自魏往하고 劇辛自趙往하니 昭王樂毅 亞卿하여 任以國政하다 <原文故事成語, 才致>  
36 相如至秦하니 秦王無意償趙城이라 相如乃紿秦王하여 復取璧하여 遣使者懷歸趙하고 而以身待命於秦하니 秦王賢而弗誅하고 禮而歸之어늘 趙王相如上大夫하다 <原文故事成語, 才致>  
37 斗酒不辭: 舞陽侯樊噲者 沛人也 屠狗하고 與高祖俱隱이라 …… 項羽在戲下하며 欲攻沛公하니 沛公從百餘騎하여 因項伯面見項羽하여 謝無有閉關事 項羽旣饗軍士하여 中酒 亞父謀欲殺沛公하여 令項莊拔劍舞坐中하여 欲擊沛公하니 項伯常肩蔽之 <原文故事成語, 才致>  
38 管仲曰 吾始困時 嘗與鮑叔賈한대 分財利 多自與 鮑叔不하니 知我貧也 吾嘗爲鮑叔謀事라가 而更窮困 鮑叔不하니 知時有利不利也 吾嘗三仕하여 三見逐於君한대 鮑叔不不肖하니 知我不遭時也 吾嘗三戰三走한대 鮑叔不하니 知我有老母也 公子糾敗 召忽死之한대 吾幽囚受辱이나 鮑叔不無恥하니 知我不羞小節하고 而恥功名不顯于天下也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하다 鮑叔旣進管仲하여 以身下之하며 子孫世祿于齊하여 有封邑者十餘世하여 常爲名大夫 天下不多管仲之賢하고 而多鮑叔能知人也 <原文故事成語, 信義>  
39 旣罷歸國하여 相如功大하여上卿하니 位在廉頗之右 廉頗曰 我爲趙將하여 有攻城野戰之大功하나 而藺相如徒口舌한대 而位居我上이라 且相如素賤人이니 吾羞不忍爲之下라하고 宣言曰 我見相如 必辱之하리라하다 相如聞하고 不肯與會 相如每朝時 常稱病하고 不欲與廉頗爭列이라 <原文故事成語, 信義>  
40 厚賦稅하여 以實鹿臺之錢하고 而盈鉅橋之粟이라 益收狗馬奇物하여 充仞宮室이라 益廣沙丘苑臺하여 多取野獸蜚鳥하여 置其中하고 慢於鬼神이라 大聚樂戲於沙丘한대 하고 縣肉爲林하며 使男女 裸相逐其間하고 爲長夜之飮이라 百姓怨望하고 而諸侯有畔者하니 於是紂乃重刑辟하여 有炮烙之法이라 <原文故事成語, 慾心>  
41 言父之姊妹兄弟也 伯叔 卽兄弟之稱이어늘 而俗父之兄하고 叔爲父之弟하니 此亦承俗謬也 <9, 君子修身之道>  
42 言五嶽 恒岱宗也 唐本作泰하니 泰岱 東嶽也 <9, 王天下之基>  
43 帝王爲治하니 蓋君 하고 天故也 <9, 處身治家之道>  
44 이라 故必令專力於春稼秋穡하여 不奪其時也 <9, 處身治家之道>  
45 萬章問曰 象殺舜어늘 立爲天子則放之 何也잇고 孟子曰 封之也어늘 或曰放焉이라하나니 仁人之於弟也 不藏怒焉하며 不宿怨焉이요 親愛之而已矣니라 <小學, 稽古第四>  
만장이 물어 말하였다. “상은 날마다 순을 죽이는 것을 일삼았는데, (순이) 즉위하여 천자가 되어서는 (그를) 추방하였으니 어째서인가?” 맹자가 말하였다. (그를) 봉해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길 ‘그곳에 추방하였다.’ 하나 어진 사람이 동생에 있어서는 그에게 노여움을 감추지 않으며, 그에게 원망을 묵혀 두지 않고, (그를) 친히 하고 사랑할 뿐이다.”
46 虞芮之君 相與爭田하여 久而不平이러니 乃相謂曰 西伯 仁人也 盍往質焉이리오하고 乃相與朝周할새 入其境하니 則耕者讓畔하고 行者讓路하며 入其邑하니 男女異路하고 班白 不提挈하며 入其朝하니 士讓爲大夫하고 大夫讓爲卿이어늘 二國之君 感而相謂曰 我等 小人이라 不可以履君子之庭이라하고 乃相讓하여 其所爭田으로 閒田而退하니 天下聞而歸之者四十餘國이러라 <小學, 稽古第四>  
우나라와 예나라의 임금이 서로 함께 토지를 다투어 오래되도록 화평하지 못했다. 이에 서로 일러 말하였다. “서백은 어진 사람이니, 어찌 찾아가서 그에게서 바로잡지 않겠는가?” 이에 서로 함께 주나라로 조회를 갔다. 그 국경에 들어가니, 밭 가는 사람은 밭두둑을 양보하고,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였으며, 그 도읍에 들어가니, 남자와 여자가 길을 달리하고, 머리가 반백인 사람은 (짐을) 들지 않았으며, 그 조정에 들어가니, 사는 대부가 되기를 사양하고, 대부는 경이 되기를 사양하였다. 두 나라의 임금이 감동하여 서로 일러 말하였다. “우리는 소인이다. 이로서 군자의 조정을 밟을 수 없다.” 이에 서로 사양하여, 그 다투던 토지를 을 한전으로 삼고서 물러가니, 천하에서 듣고 (그에게) 귀의하는 자가 사십여 나라였다.
47 楊文公家訓曰 童穉之學 不止記誦이라 養其良知良能이니先入之言으로 니라 <小學, 嘉言第五>  
양문공 가훈에 말하였다. “어린이의 배움은 기억하고 외우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 타고난 앎과 타고난 능력을 길러야 하니, 마땅히 먼저 들어가는 말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
48 其四 崇好優游하며 耽嗜麯糵하여 啣盃 高致하고 勤事 俗流하나니 習之易荒이라 覺已難悔니라 <小學, 嘉言第五>  
그 넷째는 한가로이 노니는 것을 숭상하고 좋아하며 술을 즐기고 좋아하여, 술잔을 머금는 것으로 고상한 운치로 여기고,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으로 속세의 습속이라 하니, (그것을) 익힘에 거칠어지기 쉬워 깨달아도 이미 뉘우치기 어렵다.
49 擧世好承奉하여 昂昂增愚氣하나니 不知承奉者 玩戲니라 所以古人疾 籧篨與戚施니라 <小學, 嘉言第五>  
온 세상이 받들고 올려 줌을 좋아하여 으스대면서 어리석은 기운을 돋구니, 받들어 올려 주는 사람이 그것으로 너를 완호품과 장난감으로 여김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옛사람이 미워함이 새가슴과 곱사등이
50 立心 忠信不欺 主本하며 <小學, 嘉言第五>  
마음을 세움은 충성과 믿음과 속이지 않음으로 주장과 근본을 삼으며,
51 汝勉之哉어다 治心修身 飮食男女 切要 從古聖賢 自這裏做工夫하시니 其可忽乎 <小學, 嘉言第五>  
너는 (그것을) 힘쓸지어다.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음은 마시고 먹고 남자와 여자로써 절실하고 긴요함을 삼아야 하니, 옛날부터 성인과 현인이 이 속으로부터 공부를 했으니 그 소홀히 할수 있겠는가?”
52 或所命 有不可行者어든 則和色柔聲하여 具是非利害而白之하여 待父母之許然後 改之하고 若不許라도 苟於事 無大害者어든 亦當曲從이니父母之命 하여 而直行己志하면 雖所執 皆是라도 猶爲不順之子 況未必是乎 <小學, 嘉言第五>  
혹 명령한 바가 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갖추어 (그것을) 말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것을) 고치고, 만약 허락하지 않더라도 만약 일에 있어 큰 해가 없는 것이면, 또한 마땅히 굽혀 따라야 한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그르다 여겨 곧바로 자기의 뜻을 행하면, 비록 집행하는 바가 모두 옳더라도 오히려 순하지 못한 자식이 되니, 하물며 반드시 옳지 않음에 있어서랴.
53 若親之故舊所喜 當極力招致하며 賓客之奉 當極力營辦하여悅親 不可計家之有無니라이나 又須使之不知其勉强勞苦 苟使見其爲而不易 則亦不安矣시리라 <小學, 嘉言第五>  
만약 어버이의 옛 친구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힘을 다하여 초청하여 이르게 하며, 손님을 받들기를 마땅히 힘을 다하여 계획하고 장만하여 힘써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것으로 일삼고 집안의 있고 없고를 따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또 응당 (그가) 자신이 힘쓰고 힘써 애쓰고 수고로운 것을 알지 않게 해야 하니, 만약 그 함에 쉽지 않음을 보게 되면, 또한 편하지 않을 것이다.”
54 然則五代之時 居喪食肉者 人猶異事하니 是流俗之弊 其來甚近也니라 今之士大夫 居喪 食肉飮酒 無異平日하고 又相從宴集하여 靦然無愧어든 人亦恬不爲怪하나니 禮俗之壞하니 悲夫 <小學, 嘉言第五>  
그렇다면 오대의 시대에 상에 거함에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으로 이상한 일로 여겼으니, 이 흘러가는 속세의 폐단이 그 유래가 매우 가깝다. 지금의 사대부는 상에 거하면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심이 평소의 날과 다름이 없고, 또 서로 따라 잔치하고 모여 뻔뻔하게 부끄러움이 없거든 사람들 또한 편안하게 여겨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의 있는 풍속이 무너짐에 익숙하여 그것으로 보통으로 여기니, 슬프구나!
55 晉陳壽遭父喪하여 有疾이어늘 使婢丸藥하더니 往見之하고 鄕黨 貶議하니 坐是沈滯하여 坎坷終身하니 嫌疑之際 不可不愼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진나라 진수는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병이 있으므로 종에게 환약을 짓게 했는데, 빈객이 가서 (그것을) 보고, 마을 무리가 그것으로 비판하고 책잡는 거리로 삼았다. 이로 인하여 잠기고 막혀서 고생하고 힘들게 몸을 마치니, 혐의스럽고 의심스러울 때에 삼가지 않아선 안 된다.
56 伊川先生曰 人無父母 生日 當倍悲痛이니 更安忍置酒張樂하여 이리오 若具慶者 可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으면 태어난 날에 마땅히 배로 슬퍼하고 아파해야 하니, 다시 어찌 차마 술자리를 마련하고 풍악을 벌여 그것으로 즐거움을 삼을 수 있겠는가? 만약 복을 갖춘 사람은 괜찮다.”
57 當官者 凡異色人 皆不宜與之相接이니 巫祝尼媼之類 尤宜疎絶이니淸心省事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관직을 맡은 사람은 무릇 색다른 사람을 모두 마땅히 () 와 서로 접하지 말아야 하니, 여자무당, 남자 무당, 여승, 중매쟁이의 부류를 더욱 마땅히 소원히 하고 끊어야 한다. 요컨대 마음을 맑게 하고 일을 생략함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58 當官者暴怒하여 事有不可어든 當詳處之 必無不中이어니와 若先暴怒 只能自害 豈能害人이리오 <小學, 嘉言第五>  
관직을 맡은 사람은 우선 갑자기 성냄을 경계로 삼아서, 일에 해선 안 됨이 있으면 마땅히 자세히 (그것을) 처리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반드시 맞지 않음이 없거니와 만약 먼저 갑자기 성내면 다만 스스로 해칠 수 있을 뿐이니, 어찌 남을 해칠 수 있겠는가?
59 文中子曰 婚娶而論財 夷虜之道也 君子不入其鄕하나니 古者 男女之族 各擇德焉이요하더니라 <小學, 嘉言第五>  
문중자가 말하였다. “시집가고 장가감에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도이다. 군자는 그런 마을에 들어가지 않으니, 옛날에는 남자와 여자의 종족이 각각 그에게 덕을 가렸고, 재물로 예를 삼지 않았었다.”
60 伊川先生曰 近世淺薄하여 相歡狎으로 相與하며 無圭角으로 相歡愛하나니 如此者 安能久리오 若要久인댄 須是恭敬이니 君臣朋友皆當主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가까운 시대에 (인정이) 얕아지고 박해져서 서로 기뻐하고 친압함을 서로 친함으로 여기며 모나고 뿔이 없는 것을 서로 기뻐하고 사랑함으로 여기니, 이 같은 것이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만약 오래 가기를 바란다면 모름지기 이 공손하고 공경해야 하니, 군주와 신하와 벗과 친구가 모두 마땅히 공경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
61 橫渠先生曰 今之朋友 擇其善柔以相與하여 拍肩執袂하여 氣合하고 一言不合이어든 怒氣相加하나니 朋友之際 欲其相下不倦이라 於朋友之間 主其敬者라야 日相親與하여 得效最速하나니라 <小學, 嘉言第五>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지금의 벗과 친구는 그 유순하기를 잘하는 것을 가려 그것으로 서로 친하여 어깨를 치고 소매를 잡으면서 그것으로 기가 합하였다고 여긴다. 한마디 말이 합하지 않으면 노여운 기운이 서로 더하니, 벗과 친구의 사이에는 그 서로 낮추기를 게을리하지 않고자 해야 한다. 그러므로 벗과 친구의 사이에 그 공경을 주장하는 사람이어야 날로 서로 친하고 우호하여 효과를 얻음이 가장 빠르다.”
62 童蒙訓曰 同僚之契 交承之分 有兄弟之義하니 至其子孫하여 亦世講之하니 前輩하더니 今人 知之者蓋少矣니라 又如舊擧將嘗爲舊任按察官者 己官 雖在上이나 前輩皆辭避하여 坐下坐하니 風俗 如此 安得不厚乎리오 <小學, 嘉言第五>  
동몽훈에 말하였다. “함께 하는 동료의 합함과 교대하여 잇는 즈음은 형과 동생의 의리가 있으니, 그 자식과 손자에 이르러서도 또한 대대로 (그것을) 강해야 한다. 전의 무리는 오로지 이것으로 일삼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대개 적다. 또 옛날에 추천해준 장수 및 일찍이 옛날에 안찰관을 맡아 된 이와 같은 경우는 뒤에 자기의 관직이 비록 (그들보다) 위에 있더라도 전의 무리에 대해 모두 사양하고 회피하여 아래 자리에 앉았으니, 풍속이 이와 같으면 어찌 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63 司馬溫公曰 凡爲家長 必謹守禮法하여 以御羣子弟及家衆이니 分之以職하고 授之以事하여 而責其成功하며 制財用之節하여 量入하며 稱家之有無하여 以給上下之衣食 及吉凶之費하되 皆有品節而莫不均一하며 裁省冗費하고 禁止奢華하여 常須稍存贏餘하여 以備不虞니라 <小學, 嘉言第五>  
사마온공이 말했다. “무릇 집안의 어른이 되어서는 반드시 삼가 예와 법을 지켜서 그것으로 여러 자식과 동생 및 집안의 무리를 다스려야 한다. (그들에게) 직임으로 나누어 주고 (그들에게) 일로 주어 그 공을 이룸을 책임지우며, 재물 쓰임의 절도를 제정하여 수입을 헤아려 그것으로 지출을 삼으며, 집안의 있고 없음에 맞추어 그것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옷과 음식 및 좋은 일과 흉한 일의 비용을 지급하되, 모두 등급과 절도가 있어서 고르고 일정하지 않음이 없게 하며, 쓸데없는 비용을 제재하여 줄이며, 사치스럽고 화려함을 금하고 막아서, 항상 모름지기 조금 여유 있고 넉넉함을 남겨두어 그것으로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비해야 한다.”
64 明道先生 言於朝曰 治天下하되 正風俗得賢才 이니 <小學, 善行第六>  
명도 선생이 조정에서 말하였다. “ 천하를 다스리되 풍속을 바로잡고 덕 있는 자와 재주 있는 사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65 海虞令何子平 母喪 去官하고 哀毁踰禮하여 每哭踊 頓絶方蘇하니라 屬大明末 東土饑荒하고 繼以師旅하니 八年 不得營葬하여 晝夜號哭하되 常如袒括之日하여 冬不衣絮하고 夏不就淸凉하며 一日 米數合으로 하고 不進鹽菜하니라 所居屋敗하여 不蔽風日이어늘 兄子伯興 欲爲葺理한대 子平 不肯曰 我情事 未申하니 天地一罪人耳 屋何宜覆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해우령 하자평은 어머니상에 관직을 버리고 슬퍼하며 (몸을) 해치는 것이 예를 넘어서 매번 울고 뛰고, 갑자기 기절했다가 겨우 깨어나곤 하였다. 마침 명나라 말기에 동쪽 지역에 흉년이 들고 전쟁이 이어져 여덟 해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울부짖어 항상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는 날과 같이하였으며, 겨울에는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 나아가지 않았다. 하루에 쌀 몇 홉으로 죽을 만들고, 소금이나 채소도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지내는 바의 집이 무너져 바람이나 해도 가리지 못하자 형의 아들인 백홍이 (그를) 위하여 수리하고자 했으나 자평이 달가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내 감정이 펴지지 못하고 있으니 천지의 한 죄인일 뿐이다. 집을 어찌 마땅히 덮겠는가?”
66 又明年 王賈皆遘禍하니珍玩奇貨 物之妖하니 信知言矣어니와 徒知物之妖而不知恩權隆赫之妖甚於物耶 馮以卑位 貪寶貨하여 已不能正其家하고 盡忠所事而不能保其身하니 斯亦不足言矣로다 賈之臧獲 害門客于牆廡之間而不知하니 欲終始富貴인들 其可得乎 <小學, 善行第六>  
또 명년에 왕씨와 가씨 모두 재앙을 만났다. 아! 왕씨는 진귀한 물건과 기이한 재화를 물건의 요망함이라 하였으니, 진실로 말을 안 것이지만, 물건의 요망함만 알고 은혜와 권세가 높고 빛남의 요망함이 물건보다 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가? 풍구는 낮은 지위로 보화를 탐하여 이미 그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였고 섬기는 바에 충성을 다하였으나 그 몸을 보전하지 못했으니, 이 또한 말하기에 부족하다. 가씨의 노복이 장무의 사이에서 문객을 해쳤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부귀를 누리고자 하였으나,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67 呂正獻公 自少 講學하되治心養性하여 寡嗜慾하며 薄滋味하며 無疾言遽色하며 無窘步하며 無惰容하며 凡嬉笑俚近之語 未嘗出諸口하며 於世利紛華聲伎遊宴 以至於博奕奇玩 淡然無所好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여정헌공은 어려서부터 강학하되 곧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근본으로 하여 기욕을 적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적게 하며 말을 빨리하거나 낯빛을 급하게 하지 않으며 촉박한 걸음걸이가 없었으며, 게으른 모양이 없었다. 무릇 희롱하거나 웃거나 비속하거나 천근한 말을 일찍이 입에서 내지 않았으며 세상의 이익과 분화와 음악과 재주와 놀고 잔치함에서 장기와 바둑과 기이한 물건에 이르기까지 담박하여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68 徐積仲車初從安定胡先生學하더니 潛心力行하여 不復仕進하고 其學 至誠하여 事母至孝하니라 自言初見安定先生하고 退 頭容 少偏이러니 安定 忽厲聲云 頭容直이라하여시늘 某因自思호되 不獨頭容直이라 心亦要直也라하여 自此 不敢有邪心호라하니라커늘 諡節孝先生이라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서적 중거가 처음 안정 호선생을 따라 배웠는데 마음을 침잠하고 행하여 힘써 다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그의 학문은 지성을 근본으로 삼아 어머니를 섬김에 효성을 지극히 하였다. 스스로 말하기를 “처음 안정선생을 만나고 물러 나올 때 머리 모양이 조금 기울었는데, 안정이 갑자기 엄숙한 소리로 말하였다. “머리 모양을 바르게 해야 한다” 나(아무개)는 (말씀을) 인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다만 머리 모양만 바를 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바르게 해야겠다.’ 고 여겼다. 이로부터 감히 삿된 마음을 두지 않았다. 죽은 뒤에 절효선생이라고 시호 하였다.
69 自天子 以至於庶人 壹是皆修身이니라 <四書독해첩경, 大學>  
천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일체[壹是] 모두 몸을 닦는 것[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70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鷄豚하고 伐冰之家 不畜牛羊하고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하나니 與其有聚斂之臣으론 寧有盜臣이라하니 此謂 國 利也니라 <四書독해첩경, 大學>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길, “말 네 필[馬乘]을 기르는 자(대부)는 닭과 돼지를 돌보지 않고, 얼음을 쓰는 집안(경대부 이상)은 소와 양을 키우지 않고, 〈식읍을 가진〉 백승의 집안은 취렴(聚斂)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그 취렴하는 신하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도적질하는 신하를 두겠다.” 하니, 이것을 일러 ‘나라는 이(利)를 이롭게 여기지 않고, 의(義)를 이롭게 여긴다.’고 하는 것이다.
71 儀封人 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로라 從者見之한대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 久矣 天將夫子 木鐸이시리라 <四書독해첩경, 論語>  
의(儀)땅의 국경 수비가 〈공자〉 뵙기를 청하며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이 국경에 이르신 때에는 제가 일찍이 만날 수 없던 적이 없었답니다.” 〈공자의〉 수행자가 그를 뵙게 하였는데,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선생의 벼슬이〉 사라질까를 걱정하십니까? 천하가 무도(無道)한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을 목탁(木鐸)으로 삼을 것입니다.”
72 子曰 二三子 隱乎 吾無隱乎爾로라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니라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를 숨긴다고 여기는가?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게 없다. 나는 행하는 것마다 너희와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는 자이니 〈그런 사람이〉 바로 나이다.”
73 曰 有之하니이다 曰 是心 足以王矣리이다 百姓愛也어니와 固知王之不忍也하노이다 <四書독해첩경, 孟子>  
〈선왕이〉 말하였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이 마음으로 왕 노릇하기에 충분합니다. 백성은 모두 왕을 아낀다 여길 것이겠으나, 신은 진실로 왕이 차마 하지 못하셨음을 압니다.”
74 曰 王 無異於百姓之愛也하소서 以小易大어니 彼惡知之리잇고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 則牛羊 何擇焉이리잇고 笑曰 是誠何心哉런고 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언마는 宜乎百姓之謂我愛也로다 <四書독해첩경, 孟子>  
〈맹자가〉 말하였다. “왕은 백성이 왕을 아낀다고 여기는 점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작은 〈양〉 으로 큰 소를 바꾸었으니, 저들이 어찌 왕의 뜻을 알겠습니까? 왕이 만약 그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나아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 양을 어찌 택하였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게 진실로 무슨 마음이었던가? 내가 그 재물을 아껴서 소를 양으로 바꾼 것이 아니었으나, 당연히 백성은 내가 아낀다 말했겠습니다!”
75 孟子曰 牛山之木 嘗美矣러니 以其郊於大國也 斧斤 伐之어니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이언마는 牛羊 又從而牧之 是以 若彼濯濯也하니 見其濯濯也하고 以爲未嘗有材焉이라하나니 此豈山之性也哉리오 <四書독해첩경, 孟子>  
맹자가 말하였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우산이 큰 도성에 근교(近郊)이기 때문에 도끼로 나무를 벌목하였으니,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체로 그곳에서 밤낮으로 자라는 까닭과 비와 이슬이 적셔준 까닭에 새싹이 우산에서 생겨나고 있었지만, 소와 양까지 또 우산에 풀어놓고서 길렀[放牧]으니, 이 때문에 저처럼 민둥민둥[濯濯]한 것인데, 사람들은 우산이 민둥민둥한 것을 보고서 ‘일찍이 우산에는 재목(材木)이 없었다.’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76 自天子 以至於庶人 壹是皆修身이니라 <大學, 大學 經>  
천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일체[壹是] 모두 몸을 닦는 것[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77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鷄豚하고 伐冰之家 不畜牛羊하고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하나니 與其有聚斂之臣으론 寧有盜臣이라하니 此謂 國 利也니라 <大學, 傳>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길, “말 네 필[馬乘]을 기르는 자(대부)는 닭과 돼지를 돌보지 않고, 얼음을 쓰는 집안(경대부 이상)은 소와 양을 키우지 않고, 〈식읍을 가진〉 백승의 집안은 취렴(聚斂)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그 취렴하는 신하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도적질하는 신하를 두겠다.” 하니, 이것을 일러 ‘나라는 이(利)를 이롭게 여기지 않고, 의(義)를 이롭게 여긴다.’고 하는 것이다.
78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爲善之하여 小人之使爲國家 菑害竝至 雖有善者라도 亦無如之何矣리니 此謂 國 利也니라 <大學, 傳>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서 재물에 힘쓰는 것은 반드시 소인이 〈이끌기〉 때문이니, 소인이 재물에 힘쓰는 것을 잘 한다 하여 소인을 시켜서 국가를 다스리게 하면, 재앙과 피해가 함께 이를 것이다. 비록 잘한 점이 있더라도 또한 재해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일러 ‘나라는 이(利)를 이익이라 여기지 않고 의(義)를 이익이라 여긴다.’고 한다.
79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絢兮라하니 何謂也잇고 <論語, 八佾第三>  
자하(子夏)가 물었다. “〈《시경》 〈석인(碩人)〉에〉 ‘예쁜 웃음에 보조개 예쁘며, 아름다운 눈에 선명한 눈동자여, 흰 바탕에 채색을 하였네.’라고 하니 무엇을 이른 것입니까?”
80 儀封人 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로라 從者見之한대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 久矣 天將夫子 木鐸이시리라 <論語, 八佾第三>  
의(儀)땅의 국경 수비가 〈공자〉 뵙기를 청하며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이 국경에 이르신 때에는 제가 일찍이 만날 수 없던 적이 없었답니다.” 〈공자의〉 수행자가 그를 뵙게 하였는데,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선생의 벼슬이〉 사라질까를 걱정하십니까? 천하가 무도(無道)한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을 목탁(木鐸)으로 삼을 것입니다.”
81 子曰 能禮讓이면 國乎 何有 不能禮讓이면 如禮何 <論語, 里仁第四>  
공자가 말하였다. “예(禮)를 지켜 겸양(謙讓)하는 것이 능하다면 나라를 다르시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며, 예를 지켜 겸양하는 것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면 예를 어찌하겠는가?”
82 子曰 二三子 隱乎 吾無隱乎爾로라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니라 <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를 숨긴다고 여기는가?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게 없다. 나는 행하는 것마다 너희와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는 자이니 〈그런 사람이〉 바로 나이다.”
83 紅紫爲褻服이러시다 <論語, 鄕黨第十>  
다홍색과 자주색으로 평상복을 만들지 않았다.
84 子畏於匡하실새 顔淵러니 子曰 吾死矣라호라 曰 子在어시니 回何敢死리잇고 <論語, 先進第十一>  
공자가 광(匡) 땅에서 포위 당하였는데, 안연(顔淵)이 뒤쳐지자,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너를 죽었다고 여겼다.” 〈안연이〉 말하였다. “선생이 계시니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
85 子曰 吾異之問이러니 曾由與求之問이로다 <論語, 先進第十一>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너에게 특이한 질문을 〈하리라고〉 여겼는데, 겨우 중유(仲由, 자로)와 염구(冉求)를 묻는구나!”
86 子曰 賜也多學而識之者與 <論語, 衛靈公第十五>  
공자가 말하였다. “사(자공)야. 너는 나를 많이 배워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 여기느냐?”
87 子夏曰 君子 信而後 勞其民이니 未信則厲己也니라 信而後이니 未信則謗己也니라 <論語, 子張第十九>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백성에게〉 신뢰를 얻은 뒤에 그 백성을 부려야 하니, 신뢰를 얻지 못하〈고 부리〉면 〈백성은〉 그 일을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임금에게〉 신뢰를 얻은 뒤에 간해야 하니, 신뢰를 얻지 못하〈고 간하〉면 〈임금은〉 그 일을 자기를 비방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88 子貢曰 君子一言 하며 一言 不知 言不可不愼也니라 <論語, 子張第十九>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는 한마디 말로 지혜롭게 되고 한마디 말로 지혜롭지 못하게 되니, 말을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되네.
89 詩云 經始靈臺하여 經之營之하시니 庶民攻之 不日成之로다 經始勿亟하시나 庶民子來로다 王在靈囿하시니 麀鹿攸伏이로다 麀鹿濯濯이어늘 白鳥鶴鶴이로다 王在靈沼하시니 於牣魚躍이라하니 文王 民力하시나 而民 歡樂之하여 謂其臺曰靈臺라하고 謂其沼曰靈沼라하여 樂其有麋鹿魚鼈하니 古之人 與民偕樂이라 能樂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시경에 이르길, ‘영대를 공사하기 시작하여, 그 일을 헤아리고 그 일을 꾀하니, 서민이 그 일을 처리하자, 하루가 되지 않아 그것을 완성하도다. 공사 시작될 때 급히 하지 말라 하였으나, 서민들이 자식처럼 찾아왔도다. 왕께서 영유에 계시니, 암사슴이 편안히 엎드렸도다. 암사슴은 살지고 백조는 깨끗하도다. 왕께서 영소에 계시니, 아! 가득히 물고기가 뛰논다’ 하였으니, 문왕이 백성의 힘으로 대를 만들고 못을 만들었으나, 그러나 백성이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누대를 일러 영대라 말하고, 그 못을 일러 영소라 말하여, 그가 고라니와 사슴, 물고기와 자라를 소유함을 즐겼으니, 옛날의 사람들은 백성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 때문에 즐길 수 있었습니다.
90 曰 有之하니이다 曰 是心 足以王矣리이다 百姓愛也어니와 固知王之不忍也하노이다 <孟子, 梁惠王上>  
〈선왕이〉 말하였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이 마음으로 왕 노릇하기에 충분합니다. 백성은 모두 왕을 아낀다 여길 것이겠으나, 신은 진실로 왕이 차마 하지 못하셨음을 압니다.”
91 曰 王 無異於百姓之愛也하소서 以小易大어니 彼惡知之리잇고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 則牛羊 何擇焉이리잇고 笑曰 是誠何心哉런고 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언마는 宜乎百姓之謂我愛也로다 <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말하였다. “왕은 백성이 왕을 아낀다고 여기는 점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작은 〈양〉 으로 큰 소를 바꾸었으니, 저들이 어찌 왕의 뜻을 알겠습니까? 왕이 만약 그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나아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 양을 어찌 택하였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게 진실로 무슨 마음이었던가? 내가 그 재물을 아껴서 소를 양으로 바꾼 것이 아니었으나, 당연히 백성은 내가 아낀다 말했겠습니다!”
92 不得已而之景丑氏하여 宿焉이러시니 景子曰 內則父子 外則君臣 人之大倫也 父子 主恩하고 君臣 主敬하니 丑見王之敬子也 未見所以敬王也니이다 曰 惡 是何言也 齊人 無以仁義與王言者仁義不美也리오 其心曰 是何足與言仁義也云爾 則不敬 莫大乎是하니 非堯舜之道어든 不敢以陳於王前하노니 齊人 莫如我敬王也니라 <孟子, 公孫丑下>  
〈맹자는〉 부득이하게 경추 씨(景丑氏)에게 가서 그 집에서 묵었는데,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안에서는 부자(父子)의 관계, 밖에서는 군신(君臣)의 관계가 사람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 사이에는 은혜를 위주로 하고 군신 사이에는 공경을 위주로 합니다. 저(경추)는 왕이 그대를 공경하는 것은 보았고 〈그대가〉 왕을 공경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제나라 사람 중에 인의(仁義)를 왕과 말하는 자가 없는 것이 어찌 인의를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서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어찌 함께 인과 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해서일 뿐이니 그렇다면 〈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저(맹자)는 요순(堯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그것을 왕 앞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 중에 나처럼 왕을 공경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93 不得舜으로 己憂하시고 不得禹皐陶 己憂하시니百畝之不易 己憂者 農夫也니라 <孟子, 滕文公上>  
요(堯)임금은 순(舜)을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 근심으로 삼았고, 순임금은 우(禹)와 고요(皐陶)를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 근심으로 삼았네. 무릇 100묘의 농지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을 자기 근심으로 삼는 자는 농부라네.
94 他日 又求見孟子한대 孟子曰 吾今則可以見矣어니와 不直則道不見하나니 我且直之호리라 吾聞 夷子 墨者라하니 墨之治喪也 其道也 夷子 思以易天下하나니 豈以爲非是而不貴也리오 然而夷子葬其親하니 則是以所賤事親也로다 <孟子, 滕文公上>  
다른 날에 〈이지(夷之)가〉 또 맹자를 만나기를 요구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은 〈이자를〉 만날 수 있네. 직언하지 않으면 〈우리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장차 그에게 직언하겠네. 내가 듣기에, 이자는 묵가(墨家)라 하니, 묵가가 상을 치루는 것은 검소함을 바른 도로 여긴다네. 이자는 검소함으로 천하를 바꾸겠다 생각하니, 어찌 검소함을 옳지 않다고 여겨서 중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자는 자기 어버이를 장례 지낸 것이 후하였으니 이것은 천하게 〈여기는〉 것으로 부모를 섬긴 것이네.”
95 孟子曰 是焉得爲大丈夫乎리오 子未學禮乎 丈夫之冠也 父命之하고 女子之嫁也 母命之하나니 送之門할새 戒之曰 往之女家하여 必敬必戒하여 無違夫子라하나니 正者 妾婦之道也니라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이들을 어찌 대장부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예를 배우지 않았습니까? 장부의 관례에 아버지가 장부를 가르치고 여자의 가례에 어머니가 딸을 가르칩니다. 〈여자가 시집을〉 갈 때에 문에서 딸을 전송하며 딸에게 경계하여 말하길, ‘너의 집에 가서는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하여 남편의 〈뜻을〉 어기지 말라.’ 하였으니, 순종을 바른 도로 여기는 것이 아내의 도리입니다.
96 孟子曰 於齊國之士 吾必仲子 巨擘焉이어니와 雖然이나 仲子惡能廉이리오 充仲子之操 則蚓而後 可者也니라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제(齊)나라의 선비 중에 나는 반드시 중자(仲子)를 거벽(巨擘)으로 여기네. 비록 그렇지만 중자를 어찌 청렴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자의 지조를 채우려면 지렁이인 뒤에야 가능할 것이네.
97 曰 仲子 齊之世家也 兄戴蓋祿 萬鍾이러니 兄之祿으로 不義之祿而不食也하며 兄之室 不義之室而不居也하고 辟兄離母하여 處於於陵이러니 他日歸하니 則有饋其兄生鵝者어늘 己頻顣曰 惡用是鶃鶃者爲哉리오하니라 他日 其母殺是鵝也하여 與之食之러니 其兄 自外至曰 是鶃鶃之肉也라한대 出而哇之하니라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중자는 제나라에서 대대로 벼슬하던 가문이였네. 형 대(戴)는 합(蓋) 땅의 녹이 만 종이었는데, 형의 녹을 의롭지 않은 녹이라 여겨서 먹지 않았으며, 형의 집을 의롭지 않은 집이라 여겨서 살지 않았고, 형을 피하고 어머니를 떠나서 오릉(於陵)에 살았다네. 다른 날에 〈형의 집에〉 돌아갔더니 그 형에게 산 거위를 선물한 자가 있었는데, 〈중자가〉 제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길, ‘이 꽥꽥하는 것을 어디에 쓰겠는가?’ 하였네. 다른 날에 그 어머니가 그 거위를 잡아서, 중자와 함께 그것을 먹고 있는데, 그 형이 밖에서 돌아와 말하길, ‘이것이 꽥꽥이의 고기다.’ 하니, 〈중자는〉 밖으로 나가서 먹은 것을 토했다네.
98 孟子曰 天下之言性也 則故而已矣 故者 이니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성(性)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자취〈를 말하는 것〉 뿐이니, 자취란 순리를 근본으로 삼는다.
99 孟子聞之하시고 曰 禮 朝廷 不歷位而相與言하며 不踰階而相揖也하나니 我欲行禮어늘 子敖하니 不亦異乎 <孟子, 離婁下>  
맹자가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예(禮)에 ‘조정에서 지위를 뛰어넘어서 함께 말하지 않으며, 품계를 뛰어넘어서 서로 읍(揖)하지 않는다.’ 하니, 나는 예를 행하고자 하는데 자오는 나를 무시한다고 여기니 또한 이상하지 않은가?”
100 萬章曰 父母愛之어시든 喜而不忘하고 父母惡之어시든 勞而不怨이니 然則舜 怨乎잇가 曰 長息 問於公明高曰 舜 往于田 則吾旣得聞命矣어니와 號泣于旻天 于父母 則吾不知也로이다 公明高曰 是 非爾所知也라하니 夫公明高 孝子之心 不若是恝이라 我竭力耕田하여 共爲子職而已矣 父母之不我愛 於我 何哉오하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은〉 기뻐하고 잊지 말아야 하고,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면 〈자식은〉 노력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하니, 그렇다면 순은 〈부모를〉 원망하였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식이 〈스승인〉 공명고에게 물어 말하길 ‘순이 밭에 간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지만, 하늘과 부모에 부르짖으며 운 것은 제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공명고가 말하길, ‘그것은 네(장식)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저 공명고(公明高)는 효자의 마음을 다음처럼 무관심하진 않다고 여겼다네. ‘나는 힘을 다해 밭을 갈아 공손히 자식의 직분을 할 뿐이니, 부모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어떠하겠는가?’라고….
101 萬章 問曰 象殺舜어늘 立爲天子則放之 何也잇고 孟子曰 封之也어시늘 或曰放焉이라하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물어 말하였다. “상이 날마다 순을 죽이는 것으로 일을 삼았는데, 〈순이〉 즉위하여 천자가 되어서는 상을 추방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상을 〈제후에〉 봉해준 것인데, 어떤 자가 그 일을 대해 추방했다고 말한 것이네.”
102 耕者之所獲 一夫百畝 百畝之糞 上農夫 食九人하고 上次 食八人하고 食七人하고 中次 食六人하고 食五人이니 庶人在官者 其祿 니라 <孟子, 萬章下>  
농민이 얻는 것은 한 가장이 백 묘이니, 백 묘를 가꾸는 데 상농부는 아홉 사람을 먹이고, 상농부의 다음은 여덟 사람을 먹이고, 중농부는 일곱 사람을 먹이고, 중농부의 다음은 여섯 사람을 먹이고, 하농부는 다섯 사람을 먹이고, 평민으로서 관직에 있는 사람은 그 봉록이 이것으로써 차등을 삼았습니다.
103 曰 卻之卻之 爲不恭 何哉잇고 曰 尊者賜之어든 曰 其所取之者義乎 不義乎아하여 而後受之 不恭이니 弗卻也니라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예물을 돌려보내(고 예물을 돌려보내)는 것이 ‘공손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존귀한 자가 예물을 줬는데 〈받는 자가〉 말하길, ‘그 취한 바의 것이 의로운가, 의롭지 않은가?’ 한 뒤에 예물을 받는다. 이것을 공손하지 않다고 하니, 그러므로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네.”
104 友天下之善士 未足하여 又尙論古之人하나니 頌其詩하며 讀其書호되 不知其人 可乎 是以 論其世也 是尙友也니라 <孟子, 萬章下>  
천하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을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서 또 위로 올라가서 옛날의 사람을 논하니, 옛사람의 시를 외우고 옛사람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이 때문에 옛사람의 시대에 〈행한 자취를〉 논하는 것이니, 이는 위로 올라가 〈옛사람을〉 벗하는 것이라네.”
105 告子曰 性 猶杞柳也 猶桮棬也 人性仁義杞柳桮棬이니라 <孟子, 告子上>  
고자(告子)가 말하였다. “〈사람의〉 성(性)은 버들과 같고 의(義)는 나무 그릇과 같으니, 사람의 본성으로 인과 의를 행하는 것이 버드나무로 나무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106 孟子曰 子能順杞柳之性而桮棬乎 將戕賊杞柳而後 桮棬也 如將戕賊杞柳而桮棬이면 則亦將戕賊人仁義與 率天下之人而禍仁義者 必子之言夫인저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버드나무의 본성을 잘 따라서 그것으로 나무 그릇을 만듭니까? 장차 버드나무를 해치고 난 뒤에 그것으로 나무 그릇을 만들 것이니, 만약 장차 버드나무를 해쳐서 그것으로 나무 그릇을 만든다면 또한 장차 사람을 해쳐서 인과 의를 행한다는 것입니까? 천하의 사람을 몰아서 인과 의를 해치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말일 것입니다.”
107 曰 吾弟則愛之하고 秦人之弟則不愛也하나니 悅者也 謂之內 長楚人之長하며 亦長吾之長하나니 悅者也 謂之外也라하노라 <孟子, 告子上>  
〈고자가〉 말하였다. “내 아우이면 아우를 사랑하고 진(秦)나라 사람의 아우이면 사랑하지 않으니, 이는 나를 〈위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仁)을 ‘안에 있다’ 이른 것입니다. 초(楚)나라 사람의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고 또 나의 어른도 어른으로 여기니, 이는 나이가 많은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義)를 ‘밖에 있다’ 이른 것입니다.”
108 或曰 有性善하며 有性不善하니 是故 君而有象하며 瞽瞍父而有舜하며 兄之子이로되 而有微子啓王子比干이라하나니 <孟子, 告子上>  
혹자는 말하길, ‘성이 선한 이도 있고 성이 불선한 이가 있으니, 이 때문에 요(堯)를 군주로 삼았는데도 상(象)〈과 같은 동생이〉 있었으며, 고수(瞽瞍)를 아버지로 삼았는데도 순(舜)〈과 같은 자식이〉 있었으며, 주(紂)를 형의 아들로 삼고 또 그를 군주 삼았는데도 미자(微子) 계(啓)와 왕자(王子) 비간(比干) 〈같은 사람이〉 있었다.’ 하였습니다.
109 孟子曰 乃若其情則可以善矣 乃所謂善也니라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 정으로 말하면 선하다고 할 수 있으니, 바로 이른바 선(善)이라네.
110 孟子曰 牛山之木 嘗美矣러니 以其郊於大國也 斧斤 伐之어니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이언마는 牛羊 又從而牧之 是以 若彼濯濯也하니 見其濯濯也하고 以爲未嘗有材焉이라하나니 此豈山之性也哉리오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우산이 큰 도성에 근교(近郊)이기 때문에 도끼로 나무를 벌목하였으니,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체로 그곳에서 밤낮으로 자라는 까닭과 비와 이슬이 적셔준 까닭에 새싹이 우산에서 생겨나고 있었지만, 소와 양까지 또 우산에 풀어놓고서 길렀[放牧]으니, 이 때문에 저처럼 민둥민둥[濯濯]한 것인데, 사람들은 우산이 민둥민둥한 것을 보고서 ‘일찍이 우산에는 재목(材木)이 없었다.’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111 曹交問曰 人皆可堯舜이라하니 有諸잇가 孟子曰 然하다 <孟子, 告子下>  
조교(曹交)가 물어 말하였다. “‘사람은 모두 요(堯)와 순(舜)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하니, 그런 말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112 曰 奚有於是리오 亦爲之而已矣니라 有人於此하니 力不能勝一匹雛 則爲無力人矣 今曰擧百鈞이면 則爲有力人矣 然則擧烏獲之任이면 是亦爲烏獲而已矣니라 夫人不勝患哉리오 弗爲耳니라 <孟子, 告子下>  
〈맹자가〉 말하였다. “〈요순처럼 되는 것이〉 어찌 신장에 달려 있겠습니까? 또한 〈요순과 같은〉 노력을 하〈면 될〉 뿐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 힘이 한 마리 오리 새끼를 이길 수 없으면 힘없는 사람이 되고, 만약 ‘백 균을 든다.’고 한다면 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니, 그렇다면 오확(烏獲)의 짐을 든다면 그 또한 오확이 될 뿐입니다. 대체 사람들은 왜 이겨내지 못할 것으로 근심을 삼을까요? 〈근심할 것은 요순의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113 曰 孔子爲魯司寇러시니 不用하고 從而祭 燔肉 不至어늘 不稅冕而行하시니 不知者 爲肉也라하고 其知者 爲無禮也라하니 乃孔子則欲以微罪行하사 不欲爲苟去하시니 君子之所爲 衆人 固不識也니라 <孟子, 告子下>  
〈맹자가〉 말하였다. “공자가 노(魯)나라의 사구(司寇)가 되었는데, 〈말이 정치에〉 쓰이지 않았고 이어서 교(郊)제사 〈뒤에〉 제사 고기가 이르지 않자, 면류관도 벗지 않고 떠났습니다. 〈공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사 고기 때문이라 여겼고 공자를 아는 사람들은 그 일로 〈노나라가〉 무례했기 때문이라 여겼는데, 〈이는〉 바로 공자가 작은 허물로 〈핑계삼아〉 떠나고자 한 것이지 구차한 일 때문에 떠나고자 한 것이 아니니, 군자가 하는 바를 일반인은 진실로 알 수 없습니다.”
114 五霸 桓公 爲盛하더니 葵丘之會 諸侯束牲載書而不歃血하고 初命曰 誅不孝하며 無易樹子하며라하고 再命曰 尊賢育才하여 以彰有德이라하고 三命曰 敬老慈幼하며 無忘賓旅라하고 四命曰 士無世官하며 官事無攝하며 取士必得하며 無專殺大夫라하고 五命曰 無曲防하며 無遏糴하며 無有封而不告라하고 曰 凡我同盟之人 旣盟之後 言歸于好라하니 今之諸侯 皆犯此五禁하나니 曰 今之諸侯 五霸之罪人也라하노라 <孟子, 告子下>  
오패(五霸)에 환공(桓公)이 강성하였는데, 규구(葵丘)의 회맹(會盟)에 제후를 〈모아놓고〉 희생을 묶어 〈맹약하는〉 글을 올리고 삽혈하지 않고 〈명령하였다.〉 첫 번째 명에 말하길 ‘불효자를 처벌하며, 〈천자의 명을 받은〉 세자(世子)를 바꾸지 말며 첩을 아내로 삼지 말라.’ 하였다. 두 번째 명에 말하길 ‘어진 이를 높이고 재주 있는 이를 길러서 덕있는 이를 표창하라.’ 하였다. 세 번째 명에 말하길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손님과 나그네를 잊지 말라.’ 하였다. 네 번째 명에 말하길 ‘선비는 관직을 세습시키지 말며, 관청의 일은 겸직시키지 말며 선비를 취함에 반드시 〈적임자를〉 얻도록 하며 마음대로 대부를 죽이지 말라.’ 하였다. 다섯 번째 명에 말하길 ‘제방을 굽게 하지 말며 〈다른 나라가〉 쌀 사들이는 것을 막지 말며 〈대부를〉 봉해 준 사실이 있는데 고하지 않는 것을 하지 말라’ 하고, 말하길 ‘무릇 우리 동맹한 사람들이 이미 맹약한 뒤에 (생략) 좋은 데로 돌아가자.’ 하였는데, 지금의 제후들은 모두 이 다섯가기 금기를 범하였으니, 그러므로 말하길 ‘지금의 제후들은 오패에게 죄인이다.’ 한 것이다.
115 今魯 方百里者五有王者作인댄 則魯在所損乎 在所益乎 <孟子, 告子下>  
지금 노나라가 사방 백 리인 땅이 다섯이오. 그대 생각에는, 왕업을 이루는 자가 나오는 일이 있다면 노나라는 줄어드는 편에 있겠소? 더해지는 편에 있겠소?
116 是故 四海이어시늘 吾子 鄰國이로다 <孟子, 告子下>  
이 때문에 우(禹)임금은 사해(四海)를 골짜기로 삼았는데 오늘 그대는 이웃 나라를 골짜기로 삼았소.
117 有安社稷臣者하니 安社稷悅者也니라 <孟子, 盡心上>  
사직(社稷)을 편안하게 하는 신하가 있으니 사직을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는 자이다.
118 孟子曰 伯夷辟紂하여 居北海之濱이러니 聞文王作하고 興曰 盍歸乎來리오 吾聞西伯 善養老者라하고 大公 辟紂하여 居東海之濱이러니 聞文王作하고 興曰 盍歸乎來리오 吾聞西伯 善養老者라하니 天下 有善養老 則仁人 己歸矣리라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伯夷)는 주(紂)왕을 피하여 북해(北海)의 가에 살았는데,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분발하여 말하길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듣기에, 서백(西伯, 문왕)은 노인을 잘 봉양하는 사람이다.’ 하였다. 태공(大公)은 주(紂)왕을 피하여 동해의 가에 살았는데, 문왕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분발하여 말하길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듣기에 서백은 노인을 잘 봉양하는 사람이다.’ 하니, 천하에 노인을 잘 봉양하는 이가 있으면 어진 사람들이 그곳을 자신이 돌아갈 곳으로 삼을 것이다.
119 人能無饑渴之害 心害 則不及人 不爲憂矣리라 <孟子, 盡心上>  
사람이 굶주림과 목마름의 방해를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할까를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120 問之曰 若是乎從者之廋也 曰 子竊屨來與 曰 殆非也 夫子之設科也 往者 不追하며 來者 不拒하사 苟以是心으로어든 斯受之而已矣니이다 <孟子, 盡心下>  
혹자가 이일에 대해 물어 말하였다. “이와 같구나, 종자들이 숨김이여!”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제자들을 신을 훔치러 왔다고 여기는가?” 〈혹자가〉 말하였다. “결코 아닙니다. 선생의 교과는 가는 자를 좇지 않으며, 오는 자를 막지 않고, 〈제자가〉 만일 이 마음으로 오면, 그들을 받아줄 뿐이었습니다.”
121 萬章曰 一鄕 皆稱原人焉이면 無所往而不爲原人이어늘 孔子德之賊 何哉잇고 <孟子, 盡心下>  
만장(萬章)이 말하였다. “한 마을이 모두 그를 공손한 사람이다 일컬으면 가는 곳마다 공손한 사람이 아님이 없을 것인데 공자가 그를 덕(德)의 적이라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122 曰 非之無擧也하며 刺之無刺也하고 同乎流俗하며 合乎汚世하여 居之似忠信하며 行之似廉潔하여 衆皆悅之어든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 曰 德之賊也라하시니라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향원은〉 비난에 근거가 없으며 풍자에 풍자할 것이 없어서, 유속(流俗)과 동화하며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머무를 때는 진실하고 미더운 것 같으며 행동할 때는 청렴하고 결백한 것 같아서,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에 들어 갈 수 없다네. 그러므로 ‘덕의 적’이라 말한 것이라네.
123 子曰 無憂者 其惟文王乎신저 王季하시고 武王하시니 父作之어시늘 子述之하시니라 <中庸, 中庸章句>  
공자가 말하였다. “근심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오직 문왕(文王)뿐이로다. 왕계(王季)를 아버지로 삼고 무왕(武王)을 아들로 삼았으니, 아버지는 왕업을 일으키고 아들은 그것을 계승하였다.
124 童心說 李贄 : 夫童心者 眞心也童心不可眞心不可也 夫童心者 絶假純眞하야 最初一念之本心也 <文學독해첩경, 論辨類>  
125 夫旣聞見道理心矣 則所言者 皆聞見道理之言이고 非童心自出之言也 言雖工 於我何與리오 豈非以假人言假言하고 而事假事文假文乎 <文學독해첩경, 論辨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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