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황제어제(神宗皇帝御製)〉에 말하였다. “도가 아닌 재물을 멀리하고, 정도가 지나치는 술을 경계하며, 거처할 때 반드시 이웃을 가리고, 사귈 때는 반드시 벗을 가리며, 질투를 마음에서 일으키지 말고, 헐뜯는 말을 입에서 내지 말며, 동기 중에 가난한 자를 멀리하지 말며, 남 중에 부유한 자를 후하게 대하지 말고, 사욕을 극복하는 일은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우선으로 삼고, 대중을 사랑하는 일은 겸손함과 온화함을 으뜸으로 삼을 것이며, 언제나 지나간 잘못을 생각하고, 늘 미래의 잘못을 생각하라. 만약 짐의 이 말을 따른다면 국가 다스리는 것을 오래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에 말하였다. “선을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루는 것에는 부족하고, 악을 쌓지 않으면 몸을 망치는 것에는 부족한데, 소인은 작은 선으로는 유익함이 없다고 여겨서 행하지 않고, 작은 악으로는 해로움이 없다고 여겨서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 쌓여서 가릴 수 없고, 죄가 커져서 벗어날 수 없다.”
송(宋)나라 태조가 나라를 세운 초기에 〈하늘의〉 다섯 별이 규성에 모여, 염수(濂水)‧락수(洛水)‧관중(關中)‧민중(閩中)에서 제현이 무리지어 나왔다. 주돈이‧정호‧정이‧사마광‧장재‧소옹‧주희 같은 사람이 서로 이어서 일어나서, 우리 도를 밝히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삼았으나, 자신의 몸조차 용납될 수 없었고, 주자는 제가의 학설을 모아서, 사서오경에 주를 냈으니, 참으로 배우는 자에게 공 있음이 크도다.
연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노관의 난리로 인하여 망명해 와서 기준(箕準)을 유인하여 쫒아내고 왕검성을 점거하였는데 손자인 우거에 이르러 한나라 무제가 그를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낙랑ㆍ임둔ㆍ현도ㆍ진번의 사군을 설치하였다. 소제가 평나와 현도로써 평주를 만들고 임둔과 낙랑을 동부의 두 도독부로 만들었다.
신라(新羅)의 시조 혁거세(赫居世)는 진한(辰韓) 땅에 도읍을 정하여 박(朴)을 성(姓)으로 삼고, 고구려(高句麗)의 시조 주몽(朱蒙)은 졸본(卒本)에 이르러 ‘고신씨(高辛氏)의 후예다.’라고 자칭하여 그에 따라 고(高)를 성(姓)으로 삼았고, 백제(百濟)의 시조 온조(溫祚)는 하남(河南)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하여 부여를 성씨(姓氏)로 삼으니, 세 나라가 각각 〈삼한 지역의〉 한 모퉁이를 지키면서 서로 침략하고 정벌하였다.
그 하물며 요순(堯舜)의 도(道)는 효도와 공경일 뿐이다. 순(舜)이 설(契)에게 명하시되 ‘오품(五品)을 중하게 여겨라’ 하시니, 이 책에서 오품(五品)을 머리에 둔 것은 그 뜻이 매우 크다. 아! 어버이에게 효도한 뒤에 임금에게 충성하고 형을 공경한 뒤에 어른을 공경하니 이 로써 이 책을 살펴보건데, 오륜의 가운데 효제가 우선(于先)이다.
맹자가 말하길 ‘그 글을 읽고 그 시를 외우면서도 그 〈글 쓴〉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이 옳은가?’ 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에 다른 집의 초학자인 자제들을 보았더니 이 책을 먼저 배울 것으로 삼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다만 〈이 책이〉 어떤 사람의 손에서 나왔는지 몰랐었다가, 이제 상사 박정의 씨가 찾아와서 나에게 일러 말하길, ‘이 책은 나의 고조부 휘 세무(世茂)께서 엮은 것이다.’ 하니, 나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고 기뻐하며 말하길,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되었구나!’ 하였다.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차이가 없거늘, 성인은 무슨 연고로 홀로 성인이 되었으며, 나는 무슨 연고로 홀로 중인(衆人)이 되었는가? 진실로 뜻이 확립되지 못하고 앎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실하지 못한 데서 말미암았을 뿐이다. 뜻을 확립하고 앎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는 것이 모두 나에게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할 수 있겠는가?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또한 이와 같다’ 하였으니 나 또한 마땅히 안연(顔淵)이 순임금처럼 〈되고자〉 바란 것으로 본보기를 삼겠다.”
셋째. 몸가짐[持身]에 대한 글: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도를 향하여, 세속의 잡된 일로 그 뜻을 어지럽히지 않아야, 그러한 뒤에 학문을 함에 기초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충성과 신의를 주로 해야 한다.” 〈하시고〉, 주자가 그 말씀을 해석하여 말하길 “사람이 충성과 신의가 없으면 일에 모두 진실함이 없어서, 악을 행하기는 쉽고 선을 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충과 신〉을 학문에 주로 삼아야 한다.” 〈하였으니〉 반드시 충성과 신의로 주를 삼고 용감히 공부에 착수하여야 그러한 뒤에 성취한 바가 있을 수 있다. 황 면재(황간)가 이른바 “마음을 진실하게 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라.”라는 두 마디 말이 그 뜻을 다하였도다.
시신이 침상에 있고 빈소를 갖추기 전에는, 남자와 여자가 시신의 곁에 자리하면 그 자리는 남쪽을 상석으로 하니, 시신의 머리가 있는 곳이 상석이 되기 때문이다. 빈소가 차려진 뒤에 딸은 전례를 따라서 당의 위에 자리하되 남쪽을 상석으로 하고, 남자는 섬돌 아래에 자리하되 그 위치는 마땅히 북쪽을 상석으로 삼아야 하니, 빈소가 있는 곳이 상석이 되기 때문이다. 발인(發靷)할 때는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다시 남쪽을 상석으로 하니, 영구가 있는 곳이 상석이 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자리를 바꾸는 것에는 각각 예의 뜻이 있는 것이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면 될 뿐이지, 재물을 쌓아두고 풍족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가슴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사는 자, 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자, 지팡이를 꽂아 두고 김을 매는 자가 있었지만, 이런 무리의 사람들은 부귀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것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지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마음 수양의 해가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볍게 여기고 빈천을 지킬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항상 온화하고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남을 구제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해치는 일 같은 것은 털끝만큼도 마음속에 남겨서는 안 된다. 무릇 사람은 자기를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는 것에 이른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먼저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끊어낸 뒤에 인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진나라 왕[소양왕]은 마침내 누완(樓緩)을 재상으로 삼고, 맹상군을 가두어서 그를 죽이고자 했다. 맹상군이 사람을 보내서 진나라 왕의 애첩에게 풀어줄 것을 요구하니, 애첩이 말하길, “맹상군의 호백구(狐白裘)를 얻고 싶습니다.” 하였다. 맹상군은 호백구가 있었으나, 이미 호백구를 진나라 왕에게 바쳐서 애첩의 요구에 응할 방법이 없었다.
세상과 함께 옮겨가다 : 굴원(屈原)의 이름은 평(平)이며, 초(楚)나라의 동성이다. 회왕(懷王)의 좌도(左徒)가 되었고,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났고, 치세와 난세에 밝고, 응대하는 말에 능숙하여 왕이 그를 매우 신임하였다. 상관대부로 그와 항렬을 같이하는 자가 총애를 다투어서 마음으로 그의 능력을 시기하였다. 그로 인하여 굴원을 헐뜯으니, 왕이 노하여 굴원을 멀리하게 되었다. 뒤에 진나라의 소양왕(昭襄王)이 회왕과 회합하고자 하자, 굴원이 말하길, “진나라는 호랑이의 나라입니다. 가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으나, 회왕의 어린 아들인 자란(子蘭)이 회왕에게 권하여 〈모임에〉 가게 하자, 〈결국〉 회왕은 진나라에서 죽게 되었다. 〈회왕의〉 장자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자, 자란을 영윤으로 삼았는데, 자란은 상관대부로 하여금 경양왕에게 굴원을 헐뜯게 하였고, 경양왕이 노하여 굴원을 추방하였다.
범저가 말하길, “무릇 양후가 한나라ㆍ위나라를 넘어서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지금 왕께서 먼 나라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는 것만 못하니, 한 치를 얻더라도 왕의 한 치 땅이고, 한 자를 얻더라도 왕의 한 자의 땅입니다. 지금 저 한나라ㆍ위나라는 나라의 중앙에 처한 곳이고 천하의 중추입니다. 왕께서 만약 패자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중국을 가까이하여 천하의 중추로 삼아서 초나라와 조나라를 위협해야 할 것이니, 초나라와 조나라가 모두 따르면 제나라를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따르면 한나라 위나라는 그로 인해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길, “좋다.” 하고, 마침내 범저를 객경으로 삼아서 함께 나랏일을 도모하였다.
책을 읽다 양을 잃어버리다: 무릇 작은 의혹은 방향을 바꾸고, 큰 의혹은 성품을 바꾼다. …… 삼대 이후에는 천하에 외물 때문에 제 본성을 바꾸지 않은 자가 없었다. 소인은 몸을 이익에 희생하였고, 선비는 몸을 명분에 희생하였고, 대부는 몸을 가문에 희생하였고, 성인은 몸을 천하에 희생하였다. 그러므로 이 몇몇 사람은 일이 같지 않고, 명성이 다르게 불렸지만, 그들은 본성을 손상시켜 몸으로 희생한 것에서는 같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다: 호랑이가 모든 짐승을 잡아서 그것을 먹다가 여우를 붙잡았다. 여우가 말하길, “그대는 감히 나를 잡아먹지 못한다. 천제가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으니, 지금 그대가 나를 잡아먹으면 이는 천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그대가 나를 불신한다면, 내가 그대보다 선행을 할테니, 그대는 내 뒤를 따르면서 모든 짐승들이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못하는가를 보아라.” 하였다. 호랑이가 그렇다고 여긴 까닭에 마침내 여우와 함께 길을 갔는데, 짐승들이 호랑이를 보고 모두 달아나는데, 호랑이는 짐승이 자기를 두려워하여 달아나는 줄 알지 못하고, 여우를 두려워한다고 여겼다.
만장이 물어 말하였다. “상은 날마다 순을 죽이는 것을 일삼았는데, (순이) 즉위하여 천자가 되어서는 (그를) 추방하였으니 어째서인가?” 맹자가 말하였다. (그를) 봉해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길 ‘그곳에 추방하였다.’ 하나 어진 사람이 동생에 있어서는 그에게 노여움을 감추지 않으며, 그에게 원망을 묵혀 두지 않고, (그를) 친히 하고 사랑할 뿐이다.”
우나라와 예나라의 임금이 서로 함께 토지를 다투어 오래되도록 화평하지 못했다. 이에 서로 일러 말하였다. “서백은 어진 사람이니, 어찌 찾아가서 그에게서 바로잡지 않겠는가?” 이에 서로 함께 주나라로 조회를 갔다. 그 국경에 들어가니, 밭 가는 사람은 밭두둑을 양보하고,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였으며, 그 도읍에 들어가니, 남자와 여자가 길을 달리하고, 머리가 반백인 사람은 (짐을) 들지 않았으며, 그 조정에 들어가니, 사는 대부가 되기를 사양하고, 대부는 경이 되기를 사양하였다. 두 나라의 임금이 감동하여 서로 일러 말하였다. “우리는 소인이다. 이로서 군자의 조정을 밟을 수 없다.” 이에 서로 사양하여, 그 다투던 토지를 을 한전으로 삼고서 물러가니, 천하에서 듣고 (그에게) 귀의하는 자가 사십여 나라였다.
혹 명령한 바가 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갖추어 (그것을) 말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것을) 고치고, 만약 허락하지 않더라도 만약 일에 있어 큰 해가 없는 것이면, 또한 마땅히 굽혀 따라야 한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그르다 여겨 곧바로 자기의 뜻을 행하면, 비록 집행하는 바가 모두 옳더라도 오히려 순하지 못한 자식이 되니, 하물며 반드시 옳지 않음에 있어서랴.
만약 어버이의 옛 친구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힘을 다하여 초청하여 이르게 하며, 손님을 받들기를 마땅히 힘을 다하여 계획하고 장만하여 힘써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것으로 일삼고 집안의 있고 없고를 따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또 응당 (그가) 자신이 힘쓰고 힘써 애쓰고 수고로운 것을 알지 않게 해야 하니, 만약 그 함에 쉽지 않음을 보게 되면, 또한 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대의 시대에 상에 거함에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으로 이상한 일로 여겼으니, 이 흘러가는 속세의 폐단이 그 유래가 매우 가깝다. 지금의 사대부는 상에 거하면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심이 평소의 날과 다름이 없고, 또 서로 따라 잔치하고 모여 뻔뻔하게 부끄러움이 없거든 사람들 또한 편안하게 여겨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의 있는 풍속이 무너짐에 익숙하여 그것으로 보통으로 여기니, 슬프구나!
진나라 진수는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병이 있으므로 종에게 환약을 짓게 했는데, 빈객이 가서 (그것을) 보고, 마을 무리가 그것으로 비판하고 책잡는 거리로 삼았다. 이로 인하여 잠기고 막혀서 고생하고 힘들게 몸을 마치니, 혐의스럽고 의심스러울 때에 삼가지 않아선 안 된다.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가까운 시대에 (인정이) 얕아지고 박해져서 서로 기뻐하고 친압함을 서로 친함으로 여기며 모나고 뿔이 없는 것을 서로 기뻐하고 사랑함으로 여기니, 이 같은 것이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만약 오래 가기를 바란다면 모름지기 이 공손하고 공경해야 하니, 군주와 신하와 벗과 친구가 모두 마땅히 공경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지금의 벗과 친구는 그 유순하기를 잘하는 것을 가려 그것으로 서로 친하여 어깨를 치고 소매를 잡으면서 그것으로 기가 합하였다고 여긴다. 한마디 말이 합하지 않으면 노여운 기운이 서로 더하니, 벗과 친구의 사이에는 그 서로 낮추기를 게을리하지 않고자 해야 한다. 그러므로 벗과 친구의 사이에 그 공경을 주장하는 사람이어야 날로 서로 친하고 우호하여 효과를 얻음이 가장 빠르다.”
동몽훈에 말하였다. “함께 하는 동료의 합함과 교대하여 잇는 즈음은 형과 동생의 의리가 있으니, 그 자식과 손자에 이르러서도 또한 대대로 (그것을) 강해야 한다. 전의 무리는 오로지 이것으로 일삼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대개 적다. 또 옛날에 추천해준 장수 및 일찍이 옛날에 안찰관을 맡아 된 이와 같은 경우는 뒤에 자기의 관직이 비록 (그들보다) 위에 있더라도 전의 무리에 대해 모두 사양하고 회피하여 아래 자리에 앉았으니, 풍속이 이와 같으면 어찌 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마온공이 말했다. “무릇 집안의 어른이 되어서는 반드시 삼가 예와 법을 지켜서 그것으로 여러 자식과 동생 및 집안의 무리를 다스려야 한다. (그들에게) 직임으로 나누어 주고 (그들에게) 일로 주어 그 공을 이룸을 책임지우며, 재물 쓰임의 절도를 제정하여 수입을 헤아려 그것으로 지출을 삼으며, 집안의 있고 없음에 맞추어 그것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옷과 음식 및 좋은 일과 흉한 일의 비용을 지급하되, 모두 등급과 절도가 있어서 고르고 일정하지 않음이 없게 하며, 쓸데없는 비용을 제재하여 줄이며, 사치스럽고 화려함을 금하고 막아서, 항상 모름지기 조금 여유 있고 넉넉함을 남겨두어 그것으로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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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道先生이 言於朝曰 治天下하되以正風俗得賢才로爲本이니<小學, 善行第六>
명도 선생이 조정에서 말하였다. “ 천하를 다스리되 풍속을 바로잡고 덕 있는 자와 재주 있는 사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해우령 하자평은 어머니상에 관직을 버리고 슬퍼하며 (몸을) 해치는 것이 예를 넘어서 매번 울고 뛰고, 갑자기 기절했다가 겨우 깨어나곤 하였다. 마침 명나라 말기에 동쪽 지역에 흉년이 들고 전쟁이 이어져 여덟 해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울부짖어 항상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는 날과 같이하였으며, 겨울에는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 나아가지 않았다. 하루에 쌀 몇 홉으로 죽을 만들고, 소금이나 채소도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지내는 바의 집이 무너져 바람이나 해도 가리지 못하자 형의 아들인 백홍이 (그를) 위하여 수리하고자 했으나 자평이 달가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내 감정이 펴지지 못하고 있으니 천지의 한 죄인일 뿐이다. 집을 어찌 마땅히 덮겠는가?”
또 명년에 왕씨와 가씨 모두 재앙을 만났다. 아! 왕씨는 진귀한 물건과 기이한 재화를 물건의 요망함이라 하였으니, 진실로 말을 안 것이지만, 물건의 요망함만 알고 은혜와 권세가 높고 빛남의 요망함이 물건보다 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가? 풍구는 낮은 지위로 보화를 탐하여 이미 그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였고 섬기는 바에 충성을 다하였으나 그 몸을 보전하지 못했으니, 이 또한 말하기에 부족하다. 가씨의 노복이 장무의 사이에서 문객을 해쳤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부귀를 누리고자 하였으나,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여정헌공은 어려서부터 강학하되 곧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근본으로 하여 기욕을 적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적게 하며 말을 빨리하거나 낯빛을 급하게 하지 않으며 촉박한 걸음걸이가 없었으며, 게으른 모양이 없었다. 무릇 희롱하거나 웃거나 비속하거나 천근한 말을 일찍이 입에서 내지 않았으며 세상의 이익과 분화와 음악과 재주와 놀고 잔치함에서 장기와 바둑과 기이한 물건에 이르기까지 담박하여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서적 중거가 처음 안정 호선생을 따라 배웠는데 마음을 침잠하고 행하여 힘써 다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그의 학문은 지성을 근본으로 삼아 어머니를 섬김에 효성을 지극히 하였다. 스스로 말하기를 “처음 안정선생을 만나고 물러 나올 때 머리 모양이 조금 기울었는데, 안정이 갑자기 엄숙한 소리로 말하였다. “머리 모양을 바르게 해야 한다” 나(아무개)는 (말씀을) 인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다만 머리 모양만 바를 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바르게 해야겠다.’ 고 여겼다. 이로부터 감히 삿된 마음을 두지 않았다. 죽은 뒤에 절효선생이라고 시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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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天子로 以至於庶人히 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四書독해첩경, 大學>
천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일체[壹是] 모두 몸을 닦는 것[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길, “말 네 필[馬乘]을 기르는 자(대부)는 닭과 돼지를 돌보지 않고, 얼음을 쓰는 집안(경대부 이상)은 소와 양을 키우지 않고, 〈식읍을 가진〉 백승의 집안은 취렴(聚斂)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그 취렴하는 신하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도적질하는 신하를 두겠다.” 하니, 이것을 일러 ‘나라는 이(利)를 이롭게 여기지 않고, 의(義)를 이롭게 여긴다.’고 하는 것이다.
의(儀)땅의 국경 수비가 〈공자〉 뵙기를 청하며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이 국경에 이르신 때에는 제가 일찍이 만날 수 없던 적이 없었답니다.” 〈공자의〉 수행자가 그를 뵙게 하였는데,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선생의 벼슬이〉 사라질까를 걱정하십니까? 천하가 무도(無道)한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을 목탁(木鐸)으로 삼을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은 백성이 왕을 아낀다고 여기는 점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작은 〈양〉 으로 큰 소를 바꾸었으니, 저들이 어찌 왕의 뜻을 알겠습니까? 왕이 만약 그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나아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 양을 어찌 택하였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게 진실로 무슨 마음이었던가? 내가 그 재물을 아껴서 소를 양으로 바꾼 것이 아니었으나, 당연히 백성은 내가 아낀다 말했겠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우산이 큰 도성에 근교(近郊)이기 때문에 도끼로 나무를 벌목하였으니,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체로 그곳에서 밤낮으로 자라는 까닭과 비와 이슬이 적셔준 까닭에 새싹이 우산에서 생겨나고 있었지만, 소와 양까지 또 우산에 풀어놓고서 길렀[放牧]으니, 이 때문에 저처럼 민둥민둥[濯濯]한 것인데, 사람들은 우산이 민둥민둥한 것을 보고서 ‘일찍이 우산에는 재목(材木)이 없었다.’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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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天子로 以至於庶人히 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大學, 大學 經>
천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일체[壹是] 모두 몸을 닦는 것[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길, “말 네 필[馬乘]을 기르는 자(대부)는 닭과 돼지를 돌보지 않고, 얼음을 쓰는 집안(경대부 이상)은 소와 양을 키우지 않고, 〈식읍을 가진〉 백승의 집안은 취렴(聚斂)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그 취렴하는 신하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도적질하는 신하를 두겠다.” 하니, 이것을 일러 ‘나라는 이(利)를 이롭게 여기지 않고, 의(義)를 이롭게 여긴다.’고 하는 것이다.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서 재물에 힘쓰는 것은 반드시 소인이 〈이끌기〉 때문이니, 소인이 재물에 힘쓰는 것을 잘 한다 하여 소인을 시켜서 국가를 다스리게 하면, 재앙과 피해가 함께 이를 것이다. 비록 잘한 점이 있더라도 또한 재해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일러 ‘나라는 이(利)를 이익이라 여기지 않고 의(義)를 이익이라 여긴다.’고 한다.
79
子夏問曰 巧笑倩兮며 美目盼兮여 素以爲絢兮라하니 何謂也잇고<論語, 八佾第三>
자하(子夏)가 물었다. “〈《시경》 〈석인(碩人)〉에〉 ‘예쁜 웃음에 보조개 예쁘며, 아름다운 눈에 선명한 눈동자여, 흰 바탕에 채색을 하였네.’라고 하니 무엇을 이른 것입니까?”
의(儀)땅의 국경 수비가 〈공자〉 뵙기를 청하며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이 국경에 이르신 때에는 제가 일찍이 만날 수 없던 적이 없었답니다.” 〈공자의〉 수행자가 그를 뵙게 하였는데,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선생의 벼슬이〉 사라질까를 걱정하십니까? 천하가 무도(無道)한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을 목탁(木鐸)으로 삼을 것입니다.”
81
子曰 能以禮讓이면爲國乎에 何有며 不能以禮讓爲國이면 如禮何오<論語, 里仁第四>
공자가 말하였다. “예(禮)를 지켜 겸양(謙讓)하는 것이 능하다면 나라를 다르시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며, 예를 지켜 겸양하는 것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면 예를 어찌하겠는가?”
82
子曰 二三子는以我爲隱乎아 吾無隱乎爾로라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니라<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를 숨긴다고 여기는가?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게 없다. 나는 행하는 것마다 너희와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는 자이니 〈그런 사람이〉 바로 나이다.”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백성에게〉 신뢰를 얻은 뒤에 그 백성을 부려야 하니, 신뢰를 얻지 못하〈고 부리〉면 〈백성은〉 그 일을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임금에게〉 신뢰를 얻은 뒤에 간해야 하니, 신뢰를 얻지 못하〈고 간하〉면 〈임금은〉 그 일을 자기를 비방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88
子貢曰 君子一言에以爲知하며 一言에以爲不知니 言不可不愼也니라<論語, 子張第十九>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는 한마디 말로 지혜롭게 되고 한마디 말로 지혜롭지 못하게 되니, 말을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되네.
시경에 이르길, ‘영대를 공사하기 시작하여, 그 일을 헤아리고 그 일을 꾀하니, 서민이 그 일을 처리하자, 하루가 되지 않아 그것을 완성하도다. 공사 시작될 때 급히 하지 말라 하였으나, 서민들이 자식처럼 찾아왔도다. 왕께서 영유에 계시니, 암사슴이 편안히 엎드렸도다. 암사슴은 살지고 백조는 깨끗하도다. 왕께서 영소에 계시니, 아! 가득히 물고기가 뛰논다’ 하였으니, 문왕이 백성의 힘으로 대를 만들고 못을 만들었으나, 그러나 백성이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누대를 일러 영대라 말하고, 그 못을 일러 영소라 말하여, 그가 고라니와 사슴, 물고기와 자라를 소유함을 즐겼으니, 옛날의 사람들은 백성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 때문에 즐길 수 있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은 백성이 왕을 아낀다고 여기는 점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작은 〈양〉 으로 큰 소를 바꾸었으니, 저들이 어찌 왕의 뜻을 알겠습니까? 왕이 만약 그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나아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 양을 어찌 택하였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게 진실로 무슨 마음이었던가? 내가 그 재물을 아껴서 소를 양으로 바꾼 것이 아니었으나, 당연히 백성은 내가 아낀다 말했겠습니다!”
〈맹자는〉 부득이하게 경추 씨(景丑氏)에게 가서 그 집에서 묵었는데,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안에서는 부자(父子)의 관계, 밖에서는 군신(君臣)의 관계가 사람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 사이에는 은혜를 위주로 하고 군신 사이에는 공경을 위주로 합니다. 저(경추)는 왕이 그대를 공경하는 것은 보았고 〈그대가〉 왕을 공경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제나라 사람 중에 인의(仁義)를 왕과 말하는 자가 없는 것이 어찌 인의를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서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어찌 함께 인과 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해서일 뿐이니 그렇다면 〈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저(맹자)는 요순(堯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그것을 왕 앞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 중에 나처럼 왕을 공경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날에 〈이지(夷之)가〉 또 맹자를 만나기를 요구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은 〈이자를〉 만날 수 있네. 직언하지 않으면 〈우리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장차 그에게 직언하겠네. 내가 듣기에, 이자는 묵가(墨家)라 하니, 묵가가 상을 치루는 것은 검소함을 바른 도로 여긴다네. 이자는 검소함으로 천하를 바꾸겠다 생각하니, 어찌 검소함을 옳지 않다고 여겨서 중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자는 자기 어버이를 장례 지낸 것이 후하였으니 이것은 천하게 〈여기는〉 것으로 부모를 섬긴 것이네.”
맹자가 말하였다. “이들을 어찌 대장부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예를 배우지 않았습니까? 장부의 관례에 아버지가 장부를 가르치고 여자의 가례에 어머니가 딸을 가르칩니다. 〈여자가 시집을〉 갈 때에 문에서 딸을 전송하며 딸에게 경계하여 말하길, ‘너의 집에 가서는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하여 남편의 〈뜻을〉 어기지 말라.’ 하였으니, 순종을 바른 도로 여기는 것이 아내의 도리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중자는 제나라에서 대대로 벼슬하던 가문이였네. 형 대(戴)는 합(蓋) 땅의 녹이 만 종이었는데, 형의 녹을 의롭지 않은 녹이라 여겨서 먹지 않았으며, 형의 집을 의롭지 않은 집이라 여겨서 살지 않았고, 형을 피하고 어머니를 떠나서 오릉(於陵)에 살았다네. 다른 날에 〈형의 집에〉 돌아갔더니 그 형에게 산 거위를 선물한 자가 있었는데, 〈중자가〉 제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길, ‘이 꽥꽥하는 것을 어디에 쓰겠는가?’ 하였네. 다른 날에 그 어머니가 그 거위를 잡아서, 중자와 함께 그것을 먹고 있는데, 그 형이 밖에서 돌아와 말하길, ‘이것이 꽥꽥이의 고기다.’ 하니, 〈중자는〉 밖으로 나가서 먹은 것을 토했다네.
98
孟子曰 天下之言性也는 則故而已矣니 故者는以利爲本이니라<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성(性)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자취〈를 말하는 것〉 뿐이니, 자취란 순리를 근본으로 삼는다.
만장이 말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은〉 기뻐하고 잊지 말아야 하고,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면 〈자식은〉 노력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하니, 그렇다면 순은 〈부모를〉 원망하였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식이 〈스승인〉 공명고에게 물어 말하길 ‘순이 밭에 간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지만, 하늘과 부모에 부르짖으며 운 것은 제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공명고가 말하길, ‘그것은 네(장식)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저 공명고(公明高)는 효자의 마음을 다음처럼 무관심하진 않다고 여겼다네. ‘나는 힘을 다해 밭을 갈아 공손히 자식의 직분을 할 뿐이니, 부모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어떠하겠는가?’라고….
농민이 얻는 것은 한 가장이 백 묘이니, 백 묘를 가꾸는 데 상농부는 아홉 사람을 먹이고, 상농부의 다음은 여덟 사람을 먹이고, 중농부는 일곱 사람을 먹이고, 중농부의 다음은 여섯 사람을 먹이고, 하농부는 다섯 사람을 먹이고, 평민으로서 관직에 있는 사람은 그 봉록이 이것으로써 차등을 삼았습니다.
〈만장이〉 말하였다. “예물을 돌려보내(고 예물을 돌려보내)는 것이 ‘공손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존귀한 자가 예물을 줬는데 〈받는 자가〉 말하길, ‘그 취한 바의 것이 의로운가, 의롭지 않은가?’ 한 뒤에 예물을 받는다. 이것을 공손하지 않다고 하니, 그러므로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네.”
천하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을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서 또 위로 올라가서 옛날의 사람을 논하니, 옛사람의 시를 외우고 옛사람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이 때문에 옛사람의 시대에 〈행한 자취를〉 논하는 것이니, 이는 위로 올라가 〈옛사람을〉 벗하는 것이라네.”
105
告子曰 性은 猶杞柳也요 義는 猶桮棬也니以人性爲仁義는 猶以杞柳爲桮棬이니라<孟子, 告子上>
고자(告子)가 말하였다. “〈사람의〉 성(性)은 버들과 같고 의(義)는 나무 그릇과 같으니, 사람의 본성으로 인과 의를 행하는 것이 버드나무로 나무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버드나무의 본성을 잘 따라서 그것으로 나무 그릇을 만듭니까? 장차 버드나무를 해치고 난 뒤에 그것으로 나무 그릇을 만들 것이니, 만약 장차 버드나무를 해쳐서 그것으로 나무 그릇을 만든다면 또한 장차 사람을 해쳐서 인과 의를 행한다는 것입니까? 천하의 사람을 몰아서 인과 의를 해치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말일 것입니다.”
〈고자가〉 말하였다. “내 아우이면 아우를 사랑하고 진(秦)나라 사람의 아우이면 사랑하지 않으니, 이는 나를 〈위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仁)을 ‘안에 있다’ 이른 것입니다. 초(楚)나라 사람의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고 또 나의 어른도 어른으로 여기니, 이는 나이가 많은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義)를 ‘밖에 있다’ 이른 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길, ‘성이 선한 이도 있고 성이 불선한 이가 있으니, 이 때문에 요(堯)를 군주로 삼았는데도 상(象)〈과 같은 동생이〉 있었으며, 고수(瞽瞍)를 아버지로 삼았는데도 순(舜)〈과 같은 자식이〉 있었으며, 주(紂)를 형의 아들로 삼고 또 그를 군주 삼았는데도 미자(微子) 계(啓)와 왕자(王子) 비간(比干) 〈같은 사람이〉 있었다.’ 하였습니다.
109
孟子曰 乃若其情則可以爲善矣니 乃所謂善也니라<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 정으로 말하면 선하다고 할 수 있으니, 바로 이른바 선(善)이라네.
맹자가 말하였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우산이 큰 도성에 근교(近郊)이기 때문에 도끼로 나무를 벌목하였으니, 아름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체로 그곳에서 밤낮으로 자라는 까닭과 비와 이슬이 적셔준 까닭에 새싹이 우산에서 생겨나고 있었지만, 소와 양까지 또 우산에 풀어놓고서 길렀[放牧]으니, 이 때문에 저처럼 민둥민둥[濯濯]한 것인데, 사람들은 우산이 민둥민둥한 것을 보고서 ‘일찍이 우산에는 재목(材木)이 없었다.’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111
曹交問曰 人皆可以爲堯舜이라하니 有諸잇가 孟子曰 然하다<孟子, 告子下>
조교(曹交)가 물어 말하였다. “‘사람은 모두 요(堯)와 순(舜)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하니, 그런 말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요순처럼 되는 것이〉 어찌 신장에 달려 있겠습니까? 또한 〈요순과 같은〉 노력을 하〈면 될〉 뿐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 힘이 한 마리 오리 새끼를 이길 수 없으면 힘없는 사람이 되고, 만약 ‘백 균을 든다.’고 한다면 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니, 그렇다면 오확(烏獲)의 짐을 든다면 그 또한 오확이 될 뿐입니다. 대체 사람들은 왜 이겨내지 못할 것으로 근심을 삼을까요? 〈근심할 것은 요순의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공자가 노(魯)나라의 사구(司寇)가 되었는데, 〈말이 정치에〉 쓰이지 않았고 이어서 교(郊)제사 〈뒤에〉 제사 고기가 이르지 않자, 면류관도 벗지 않고 떠났습니다. 〈공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사 고기 때문이라 여겼고 공자를 아는 사람들은 그 일로 〈노나라가〉 무례했기 때문이라 여겼는데, 〈이는〉 바로 공자가 작은 허물로 〈핑계삼아〉 떠나고자 한 것이지 구차한 일 때문에 떠나고자 한 것이 아니니, 군자가 하는 바를 일반인은 진실로 알 수 없습니다.”
오패(五霸)에 환공(桓公)이 강성하였는데, 규구(葵丘)의 회맹(會盟)에 제후를 〈모아놓고〉 희생을 묶어 〈맹약하는〉 글을 올리고 삽혈하지 않고 〈명령하였다.〉 첫 번째 명에 말하길 ‘불효자를 처벌하며, 〈천자의 명을 받은〉 세자(世子)를 바꾸지 말며 첩을 아내로 삼지 말라.’ 하였다. 두 번째 명에 말하길 ‘어진 이를 높이고 재주 있는 이를 길러서 덕있는 이를 표창하라.’ 하였다. 세 번째 명에 말하길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손님과 나그네를 잊지 말라.’ 하였다. 네 번째 명에 말하길 ‘선비는 관직을 세습시키지 말며, 관청의 일은 겸직시키지 말며 선비를 취함에 반드시 〈적임자를〉 얻도록 하며 마음대로 대부를 죽이지 말라.’ 하였다. 다섯 번째 명에 말하길 ‘제방을 굽게 하지 말며 〈다른 나라가〉 쌀 사들이는 것을 막지 말며 〈대부를〉 봉해 준 사실이 있는데 고하지 않는 것을 하지 말라’ 하고, 말하길 ‘무릇 우리 동맹한 사람들이 이미 맹약한 뒤에 (생략) 좋은 데로 돌아가자.’ 하였는데, 지금의 제후들은 모두 이 다섯가기 금기를 범하였으니, 그러므로 말하길 ‘지금의 제후들은 오패에게 죄인이다.’ 한 것이다.
115
今魯는 方百里者五니 子以爲有王者作인댄 則魯在所損乎아 在所益乎아<孟子, 告子下>
지금 노나라가 사방 백 리인 땅이 다섯이오. 그대 생각에는, 왕업을 이루는 자가 나오는 일이 있다면 노나라는 줄어드는 편에 있겠소? 더해지는 편에 있겠소?
116
是故로 禹는以四海爲壑이어시늘 今에 吾子는以鄰國爲壑이로다<孟子, 告子下>
이 때문에 우(禹)임금은 사해(四海)를 골짜기로 삼았는데 오늘 그대는 이웃 나라를 골짜기로 삼았소.
117
有安社稷臣者하니以安社稷爲悅者也니라<孟子, 盡心上>
사직(社稷)을 편안하게 하는 신하가 있으니 사직을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는 자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伯夷)는 주(紂)왕을 피하여 북해(北海)의 가에 살았는데,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분발하여 말하길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듣기에, 서백(西伯, 문왕)은 노인을 잘 봉양하는 사람이다.’ 하였다. 태공(大公)은 주(紂)왕을 피하여 동해의 가에 살았는데, 문왕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분발하여 말하길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듣기에 서백은 노인을 잘 봉양하는 사람이다.’ 하니, 천하에 노인을 잘 봉양하는 이가 있으면 어진 사람들이 그곳을 자신이 돌아갈 곳으로 삼을 것이다.
119
人能無以饑渴之害로爲心害면 則不及人을 不爲憂矣리라<孟子, 盡心上>
사람이 굶주림과 목마름의 방해를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할까를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가 이일에 대해 물어 말하였다. “이와 같구나, 종자들이 숨김이여!”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제자들을 신을 훔치러 왔다고 여기는가?” 〈혹자가〉 말하였다. “결코 아닙니다. 선생의 교과는 가는 자를 좇지 않으며, 오는 자를 막지 않고, 〈제자가〉 만일 이 마음으로 오면, 그들을 받아줄 뿐이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향원은〉 비난에 근거가 없으며 풍자에 풍자할 것이 없어서, 유속(流俗)과 동화하며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머무를 때는 진실하고 미더운 것 같으며 행동할 때는 청렴하고 결백한 것 같아서,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에 들어 갈 수 없다네. 그러므로 ‘덕의 적’이라 말한 것이라네.